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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174화 (175/898)

 “자, 그럼 출발하죠.”

 “네.”

 다들 이 장소가 던전의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힘겹게 대답했다.

 한봄이 내게 다가오려는 찰나, 한여름이 그녀에게 붙어서 소곤거렸다.

 “만약… 저 새끼가….”

 “아! 알았다니까 그러네!”

 아까부터 계속되는 한여름의 잔소리에 한봄은 더는 못 참고 짜증으로 응대했다.

 그렇게 소리치며 내게 다가온 한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가요.”

 “네.”

 나와 한봄은 세 갈래로 갈라진 수로 중에 가운데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고작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온 시야를 가리는 빛이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솨아악!

 “응?”

 “어?”

 빛이 거둬지고, 나와 한봄은 환한 햇빛을 맞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더럽고 냄새나는 수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맑은 공기와 산새가 울며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숲이 등장했다.

 한봄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뭐야? 여기 어디야?”

 “아마 아까 세 갈림길이 던전 마지막이었나 보네요.”

 “오! …그런데 마을이 아닌데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수로는 마을과 이어져 있는 던전이었다.

 문제는 내부 구조는 마을 NPC들도 모른다는 것뿐.

 나도 모르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녀석들 아직 없네.’

 [그래도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혹시 몰라서 지금 옆에 레나 씨도 같이 있습니다.]

 양지현이 말해준 계획을 들어보면 무차별적으로 기습할 예정은 아니라고 설명해줬다.

 한봄의 환각제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나와 실랑이를 벌이게 만드는 게 1차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야지 한봄을 주황색 소환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한 명을 레드 소환사 만들겠다는 계획치고는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예산을 투입한 느낌을 받았다.

 ‘…한번 발을 담그면 결국 살기 위해서라도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겠지.’

 아마 지금 내가 만나려는 붉은 초승달 조직도 대부분 그렇게 모였을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살기 위해서 협력하는 거겠지.

 그리고 양지현은 특이한 케이스 중의 한 명일 것이고.

 나도 모르는 척 주위를 둘러보다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내가 꺼낸 아이템은 나침반이었다. 양지현이 알려준 사용법을 기억해내고 나침반을 사용해봤다.

 한봄은 나침반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려보는 나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뭐 하세요?”

 “원래 지내던 마을이 어딘지 확인해봤어요.”

 “아… 어때요?”

 “…이거 큰일인데요.”

 “엥? 왜요?”

 나는 모르는 척하며 설명해줬다.

 “제가 생각한 곳은 분명 다른 세 군데인데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네요.”

 “…? 그런데 그게 왜 큰일이에요?”

 “제가 생각한 곳은 마을 한가운데, 마을 끝, 제가 결투를 했던 숲이에요. 그런데 그 세 군데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그 말은….”

 지금 이 장소가 프리뭄 마을에서 굉장히 먼 장소라는 의미였다.

 별과 마찬가지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이 멈춰 보인다고 해서 그 별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공전하더라도 너무 멀리 있어서 가만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즉 멀리 떨어진 상태로 가만히 있어 보이는 별처럼 프리뭄 마을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라는 의미였다.

 “그럼 다른 마을이랑 가까울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아니에요.”

 분명 다른 두 마을은 프리뭄 마을에서 4시와 8시 방향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나침반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프리뭄 마을에서 12시 방향에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추측을 마치고 결론을 말해줬다.

 “아마 던전 마지막에 있던 세 갈래 길 중에 가운데는 다른 장소로 떨구는 용도인 거 같네요.”

 “그럼 설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레드 소환사가 우글거리는 숲이라는 의미예요.”

 ..

 ..

 일단 양지현의 말대로 마지막 세 갈래 중에서 가운데가 외딴 지역으로 가는 통로였다.

 그리고 그 통로로 들어가면 마을에서 12시 방향에 굉장히 먼 곳에 텔레포트 하게 된다고 했다.

 다만 정확한 좌표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랜덤한 장소로 이동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수로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생각보다 넓은 범위에서 무작위로 출구가 생성되는 건가 보네.’

 [그만큼 붉은 초승달 조직도 흩어져 있을 테니 다행입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기습하는 다수를 한 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전에 100명 넘게 결투로 이긴 건 어디까지나 내가 은신으로 숨어서 기습했기 때문이다.

 정면 승부를 했다면 오히려 내가 10초 컷을 당했을 것이다.

 일단 지금은 레나도 모니터링하고 있고, 나도 은신 감지가 있어서 마음 놓고 프리뭄 마을 쪽으로 향했다.

 “후우… 후우….”

 하지만 한봄은 달랐다.

 과거 레드 소환사들에게 죽을 뻔했던 한봄은 평소에 보여줬던 당돌함이 싹 사라지고, 어두운 낯빛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공포심은 지우고 싶다고 해서 지우거나,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아… 한여름 빼고.

 거지 같은 회귀자 새끼….

 내가 그렇게 한여름에 대해서 곱씹고 있을 때, 한봄이 식은땀을 흘리며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괜찮아요?”

 “아… 괜찮아요… 긴장해서 그런가 봐요….”

 환각제를 복용한 사실을 모르는 한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두려움으로 인한 긴장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일단 좀 쉬다 가죠.”

 “아, 안 돼요. 지금 여기에 있으면….”

 “여차하면 제가 어떻게든 할게요. 지금 이런 상태라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네….”

 한봄은 내 말을 들으며 내 부축을 받았다.

 한봄이 지금 내 말을 잘 듣는다는 건 내 실력을 믿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며 쉴 곳을 찾아봤다.

 숲이라는 장소 자체가 쉼터라고 할 수 있었지만, 주위에는 온통 축축한 흙바닥 뿐이었다.

 앉거나 누울 장소가 필요했다.

 ‘안 되겠다.’

 나는 한봄의 어깨에 손을 떼고 그녀의 앞에서 뒤돌아서 앉은 상태로 말했다.

 “일단 업혀요.”

 ***

 “지금 여기는 쉴 곳이 없으니까, 가면서 찾아보죠.”

 “그… 괘, 괜찮은데….”

 “안 괜찮은 거 아니까, 빨리 업혀요.”

 “으….”

 성수호의 강압적인 태도에 한봄은 움찔하더니, 몸에 힘이 풀린 듯이 쓰러지며 그의 등에 업혔다.

 한봄이 남자에게 업혀본 건 어린 시절 아버지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없었다.

 거부감이 아닌, 부끄러움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수호는 딱히 그녀를 업으면서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금씩 내비칠 뿐이었다.

 “조금만 참아요.”

 “…네.”

 성수호는 그렇게 짧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한봄은 느낄 수 있었다.

 한발 한발 조심히 걷고 있는 성수호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어지러움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인가 성수호의 등에 감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업히니까, 보기보다 넓네.’

 그동안 눈으로만 봐왔던 남자 등을 처음 느껴본 한봄은 성수호의 목덜미나 팔의 감촉을 느끼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녀는 발레를 하는 시절에도 남자 발레리노와 공연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성수호와의 스킨쉽은 어떠한 불편함이나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그의 등에서 계속 안겨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과 포근함이 동시에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러움도 밀려 들어왔다.

 ‘…언니 부럽네.’

 한봄은 설마 이성에 관해서 민하연을 부러워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언제나 민하연의 성격이나 심성 노력, 포용력 부분을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그런 민하연을 보면서 한봄도 자극을 받아서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 대한 동경심보다 질투심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씨… 바보 같네…. 언니한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가슴 한가운데에 느껴지는 질투심이 한봄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한봄은 민하연에게 느껴지는 질투를 버텨내며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투심을 계속 늘어나고, 그로 인해서 자기혐오가 또다시 증폭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병신 같아…. 고작 남자 때문에 내가 언니한테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도저히 감정을 주체못하고 있을 때, 성수호가 앞을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아, 저기 큰 바위 있네요. 저기서 좀 쉬죠.”

 비록 딱딱한 바위들로 쌓여 있는 곳이었지만, 질척질척한 흙더미보다는 훨씬 나은 곳처럼 보였다.

 성수호는 큰 바위 위에 한봄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아직도 상태 안 좋아요?”

 “…네. 하아… 하아….”

 한봄은 앉아서 휴식을 취했지만, 휴식을 취하면 취할수록 점점 더 상태가 악화하고 있었다.

 ‘나는 평생 그 병신 같은 놈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아야 해? 언니는 이 아저씨랑 행복하고?’

 한봄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퍼져나오는 분노의 원인을 알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상태였다.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몸 전체에 환각제가 퍼져가고 있었다.

 한봄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사라진 상태였고, 원래 새하얗던 그녀의 몸은 창백하다 못해 핏줄기 한 가닥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봄의 귓속에 단 하나의 음성이 들리자, 그녀가 잡고 있던 마지막 정신이 끊어져 버렸다.

 “이럴 때, 하연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

 분명 꿈이었다.

 한봄에게 이 현상은 꿈과 같았다.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기괴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을 보살펴주던 성수호가 사라지고 등장한 레드 소환사.

 그리고 자신을 덮치려는 레드 소환사에게 공격을 감행한 한봄.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실명탄을 쓴 뒤, 자신이 가진 단도로 상대를 찔러서 그를 저지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한봄의 시야는 흐릿했고, 단 하나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아저씨! 어, 어디 있어!’

 그저 사라진 성수호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옆에 징그럽게 서 있는 나무는 기괴한 얼굴로 한봄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고, 발밑에 밟히는 식물들은 풀잎을 칼날로 바꿔서 한봄의 다리에 생채기를 내며 그녀를 저지했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도망쳤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성수호는 보이지 않았고, 뒤에서 레드 소환사가 소리치며 달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난동을 피우던 중에 다른 레드 소환사들에게 포위를 당했다.

 한봄은 두려움에 다리가 풀려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녀는 절망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성수호에게 버림받은 거라고….

 한봄은 며칠 전에 꿨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자신을 버리고 간 한여름… 그리고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준 성수호.

 하지만 현실은 두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한여름과 성수호 두 사람 다 민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만… 나만 혼자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주위에 있던 레드 소환사들끼리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봄의 귀에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혼미해지며 정신을 잃기 시작할 뿐이었다.

 ..

 ..

 “아으…. 머리야….”

 한봄은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흐릿한 시야뿐이었다.

 “뭐야… 여기 어디야?”

 흐릿한 시야를 너머로 보이는 건 검게 그을린 어두운 하늘이었다.

 흐릿했던 시야는 점점 초점이 맞춰졌고, 하늘에 비추는 달과 별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수호가 보였다.

 “괜찮아요?”

 “어… 아저씨? 여긴…?”

 한봄은 비몽사몽 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딱 봐도 시간은 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누워있던 곳은 성수호의 허벅지였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주위에는 피칠갑한 시신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어…. 뭐, 뭐야! 아저씨 이게 무슨! 어….”

 주위를 보며 놀랬던 한봄의 눈에는 시선을 뗄 수 없는 장면이 들어왔다.

 “아, 아저씨… 다리에 그거….”

 성수호의 허벅지쪽 바지가 피로 흥건히 적셔 있었다.

한봄은 창백한 얼굴을 들어 올려서 나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저, 저리가!”

 “잠깐! 크윽!”

 한봄은 나에게 실명탄을 던지고, 단도를 꺼내서 내 허벅지에 내리꽂았다.

 작은 단도라고 해도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실명탄으로 내 시야가 가려지는 일은 없어서 단도가 급소에 맞는 일은 없었다.

 ‘뭐야? 실명탄 쓴 거 맞나?’

 [에넬로 바로 실명을 치료했습니다. 6천 에넬 소모했습니다.]

 ‘오! 잘했어!’’

 고작 상태 이상 치료에 6천 에넬을 쓴 거 보면 최상급이 괜히 최상급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봄은 내 허벅지에 단도를 꽂은 다음, 소리 지르면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다행인 점은 단도가 생각보다 깊게 박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검술을 전혀 익히지 않은 여자가 단도를 사용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상처를 낼 리 만무했다.

 하지만 무작정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한봄이 꽂은 단도로 인해서 허벅지에 출혈 저주가 걸려버렸다.

 ‘안 되겠다! 일단 한봄부터 쫓자!’

 나는 단도를 일단 뽑아서 챙긴 뒤에 한봄의 뒤를 따라갔다.

 일단 안심할 점은 붉은 초승달이 한봄을 죽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포획하기 위해서….

 진짜 중요한 건 내 목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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