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애초에 민하연이 내 여자니까, 박선희는 한여름의 정실이라고 보면 되나?
[제 기준에서 보자면 딱히 한여름에게 관심을 가지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저기 있는 나머지 두 여자도 한여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호 님을 관심있게 보는 듯 합니다.]
‘그래? 나는 별 관심이 없어서….’
박선희? 예쁘긴 한데….
솔직히 내가 이 여자랑 좋은 관계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귀찮단 말이지.
솔직히 마왕성에 있던 귀족녀들처럼 그냥 한 번 정도 하는 건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민하연….
‘하연이한테 들키면 나 죽일지도….’
[하지만 한여름과 가까웠던 여성인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민하연의 문제도 분명 언젠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결할 수 있는 게…. 어…. 어!?’
[…?]
‘괜찮은 방법 떠올랐는데?’
이 세계에 있는 동안 한여름과 관계된 여자는 뺏어야 한다.
내가 떠올린 건 하연이한테 미안한 방법이었지만, 그 방법만이 내가 그녀와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음…. 모, 몰아세우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다만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수호 씨가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박선희의 입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이 나왔다.
확실히 박선희가 느끼는 나에 대한 감정이 달라져 보이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박선희가 섭섭해하는 이유는 타당했다.
내가 한여름을 망 세우고 민하연과 섹스를 하면서 한여름의 상태를 매일 봐왔다.
죽는 것보다 더한 좆같은 고통이 뭔지 느낄 수 없었지만,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아니, 이미 몇십 번 죽었지.’
수십 번 죽어본 한여름의 기분을 내가 느끼는 날이 오지는 않겠지만, 박선희가 느꼈을 굴욕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호감이 없다고 해도 그건 기분 나쁜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해줘야 해….’
[일단 불평을 계속 들어주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르모니아는 박선희의 불평을 들어주면서 그녀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쪽을 택하는 게 좋다고 조언을 해줬다.
불평을 계속 듣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슬슬 한봄과 다른 두 여자가 우리 쪽을 보면서 주시하기 시작했다.
박선희도 대충 눈치를 보더니, 마무리를 지으며 한마디 했다.
“이따… 따로 이야기해요.”
“…?”
왜죠?
..
..
박선희가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식사 중에 손혜은이 나를 불러서 이야기했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박진희가 나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이야기의 맥락은 비슷했다.
너무하지 않느냐… 그리고 이따 따로 이야기하자.
‘얘들 왜 이러냐….’
[아마 한봄과의 행위를 보니, 마음이 다급해진 것 같습니다.]
‘…다급해지던 뭐든간에 내 입장에서 이 여자들은 그냥 한여름의 여자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 여자는 지금 기준으로 한여름과 살을 섞어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내 회귀 기억에 존재하는 그녀들은 이미 한여름과 즐긴 여자들일 뿐이었다.
불쌍한 여자들이다.
회귀 전의 일 때문에 내가 관심을 안 가질 거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일단 이거 던전 상황만 다 끝내놓고 나중에 뭘 하든가 해야지.’
[…과연 그때까지 놔줄까 싶습니다.]
‘…? 뭔 소리야?’
나는 아르모니아가 했던 말의 의미를 듣기 위해 기다렸지만, 내게 들려온 건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저씨… 아까 저분들이 무슨 말 했어요?”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한 뒤에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시 쉬고 있었다.
한봄은 아까 모유를 쭉 빼낸 후로 통증이 완전히 가셨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세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아…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까 그 일 때문이죠?”
“하하… 아니에요.”
“….”
딱 봐도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믿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결국 휴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내가 그녀에게 솔직히 말하는 일은 없었다.
..
..
여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한봄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나가 없으시다고요?”
“네… 죄송합니다. 아까 통증이 와서 거기에 쏟아붓느라.”
한봄은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주뼛주뼛 서 있었다.
마나는 무한정이 아니다.
한봄이 가진 마나통이면 일정한 휴식을 취하면 금방 회복이 되지만 지금 회복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고갈된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도 마나 탈진 증세를 보이지 않는 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생명 유지에 관여된 마나는 쓰고 싶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처럼 한방에 모든 것을 건 뇌속성 마법을 강제로 끌어 쓰지 않는 한 몸에 남아 있는 최소한의 마나는 쓰지 못하게 무의식적으로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나는 한봄이 아까 젖몸살로 인한 통증을 없애느라 계속 마나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살짝 피곤해 보이는 한봄을 보면서 다른 세 여성이 난감해했다.
“뭐… 힐러라는 직업을 제가 아는 건 아니라, 할 말은 없지만….”
“죄송합니다….”
여자들이 한봄을 몰아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세 여자도 한봄에게 도움받았기에 이렇게 여유롭게 사냥하면서 던전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만약 한봄이 없었다면 지금쯤 다른 여관 패거리에 들어가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좀 쉬다 가죠.”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동안 고생하셨잖아요. 쉬세요.”
박선희는 한봄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았다. 손혜은과 박진희도 그동안 도움받은 게 있어서 따로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만이 없다고 해서 그녀들의 상처가 자동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상처는 포션으로 치료할게요. 한봄씨는 그동안 쉬고 계세요.”
“네….”
“성수호 씨.”
“네?”
내가 한봄의 상태를 둘러보고 있을 때, 박선희가 내 옷깃을 잡아끌면서 입을 열었다.
“저, 포션으로 치료해야 할 거 같아요. 잠시만 이쪽으로….”
“…? 포션 부족하세요? 드릴까요?”
“아뇨, 잠깐만 이쪽으로….”
“….”
나는 일단 박선희에게 끌려서 어디론가 향했다.
내 눈에는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봄이 스쳐 지나갔다.
‘…누가 보면 노예로 팔려 가는 줄 알겠네.’
[정말 그렇게 보는 듯 합니다.]
‘야이….’
그렇게 박선희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이미 지나왔던 수로를 역행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포션 필요하신 거 아니에요? 왜 여기까지?”
“아… 그 포션을 바르기 힘든 위치라서….”
포션은 마시면 즉시 모든 상처가 회복되는 음료 같은 게 아니다.
상처 부위에 적절하게 발라줘야 하는 젤 같은 녀석이다.
그야 내상을 입으면 마셔야 하는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다른 여성분들한테 부탁드리는 게 낫지 않나요? 남자인 제가 하면….”
“너무해요….”
“네?”
뭐가 너무한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고, 박선희는 심통 맞은 표정을 지으며 툴툴댔다.
“아까 한봄씨랑은 물고 빨고 잘하시던데. 저는 이깟 포션 발라주느라 손 닿는 것도 싫다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 그 일 다른 분들한테 말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나는 짜증이 일어나면서 통신으로 말했다.
‘안 되겠다. 그냥 빨리 먹고 뭔 조치를 취하든가 해야지.’
[말씀대로 차라리 빨리 종속을 걸어서 편하게 이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어. 나중에 좀 여유 있을 때 하려고 했는데. 귀찮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이런 식으로 휘둘리면 귀찮은 수준을 넘어서 한봄을 손에 넣는데 오히려 방해될 수 있겠다 싶었다.
빨리 종속을 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 종속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던전 마지막에 안전지대 있으니까. 거기서 어떻게 해봐야겠다.’
이 던전 마지막에 모두 모인 상태로 세 개의 터널을 맞이한다.
계획대로라면 양지현이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 모르니 하룻밤 지내고 다음 날 출발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몰아갈 예정이었다.
‘이 정도로 적극적이면 밤 중에 몰래 꼬시면 어떻게든 되겠지.’
…민하연에게 걸리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
..
포션 발라주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내 자지는 그걸 귀찮아하지 않았다.
‘…몸들이 예쁘긴 하더라.’
[….]
내 지조 없는 꼬추는 박선희의 맨살에 손이 닿을 때마다 혈류가 들끓기 시작했다.
거기다 박선희의 치료를 하고 나니, 나머지 두 여자도 서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결국 그녀들의 맨살을 마음껏 보고 만질 수 있었다.
‘뭐… 흉터 남으면 포션으로도 치료가 안 되잖아. 해줘야지.’
[….]
‘침묵하지 마….’
변명 같지만 내가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포션은 상처에 있어서 만능에 가까운 물질이었다.
하지만 상처를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흉터가 남고, 훗날 그 흉터는 포션이나 회복 스킬로도 지울 수 없어서 여자들은 흉터가 생기지 않게 상처를 꼼꼼하게 치료하는 편이다.
내가 그렇게 세 여자의 몸을 봐주고, 수로 탐색을 재개하자 투덜거리는 존재가 있었으니….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하… 나도 한물 갔나 보네. 설마 저것도 넘어갈 줄이야.
게꼬수는 아까부터 채팅으로 투덜대고 있었다.
저 양반은 내가 한봄의 가슴을 빨고 나서 계속 구시렁대고 있었다.
“50만 포인트 준비해주셔야겠는데요?”
나는 채널로 말하면서 웃었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딸딸이도 못 보고 이게 뭐냐….
저놈의 딸딸이는….
하긴 딸딸이 보러 들어왔는데, 딸딸이는 보지 못하고 포인트는 계속 의미없이 나가고 있으니 좌절할만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내가 이 양반한테 포인트 받는다고 삶이 확 나아질 거 같지는 않단 말이지.
어차피 지금 170만 포인트도 어디에 써야 하나 고민 중이고….
나는 회귀동안 도와준 의리를 생각해서 호의를 넌지시 던져봤다.
“어떻게… 포인트 줄여드릴까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정말?
결국 부랴부랴 요정을 불러서 미션의 내용을 황급히 재조정했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충성! 충성!
원래 걸었던 10만 포인트로 줄였다.
‘…저 양반은 나중에 다른 식으로라도 걸겠지.’
[….]
분명 내가 이 위그드라실을 등반하다 보면 언젠가 또 자신만만하게 몰빵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게꼬수를 보면서 확신했다.
분명 도박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닐 것이다.
신이라는 놈들이 저런 도박에 빠져서 허우적 대는 걸 보면….
비록 짭신이긴 하지만….
그렇게 게꼬수의 충성을 받아내며 수로 탐색을 진행했다.
탐색 중에는 세 여자가 상처를 입으면 내가 구석에서 포션으로 마사지(?)를 해줬고, 한봄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점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바뀌기 시작했다.
다행히 포션 마사지의 행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 수호야! 봄아!”
민하연 일행을 만나게 됐다.
..
..
우리는 수로를 진행하는 중에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수로였다.
문제는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
‘이상한데? 분명 여기가 마지막 지점이고, 여기에 안전지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양지현도 당황하는 것을 보니, 그녀도 모르는 사실 같습니다. 직접 물어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나는 양지현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요청했다.
나와 양지현은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뭐야? 여기 안전지대 있다며?”
“죄송합니다. 분명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당황한 양지현의 표정을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양지현을 대신해서 해명해준 건 다름 아닌 게꼬수였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이거 던전 구조가 바뀌었나 봐.
“구조가 바뀌었다고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ㅇㅇ 아마 쓸모없는 안전지대라 그냥 삭제한 듯?
게꼬수의 말로는 던전도 난이도나 구조가 필요에 따라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밸런스가 터질 만큼 바뀌지는 않지만, 정말 쓸모없다 싶으면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바꾸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세 갈래로 뻗어나가는 수로는 사실상 이 던전의 출구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던전을 통과하면서 몬스터를 전부 잡은 상태였다.
굳이 안전지대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지운 게 아닐까... 하는 게 게꼬수의 생각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는 양지현을 보면서 말했다.
“뭐, 구조가 바뀐 모양이네. 그런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후우….”
“그럼 일단 계획대로 처리해.”
“알겠습니다.”
양지현은 나와 대화를 마치고 다른 멤버들을 향해서 침착하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오늘은… 여기서 불침번을 서면서 교대로 취침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필드와 던전에 있는 몬스터는 일단 외형부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호전성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던전에 있는 몬스터는 일단 침입자를 보면 100마리 중에서 99마리가 달려든다고 보면 된다.
그에 비해서 필드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도주하거나 아예 선공을 감행하지 않는 몬스터도 더러 있다.
즉 만약 우리가 수로를 탐색하는 동안 몬스터를 실수로 놓치거나 하지 않았다면 지금 던전 안에는 한 마리의 몬스터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침번을 안 설 수도 없었다.
표면상 양지현도 여기는 처음 온 것으로 위장을 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이에요! 하고 출구로 나가면 바로 의심의 눈초리를 살 것이다.
우리가 앞둔 세 갈래 수로는 출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딱 봐도 저 멀리 뻗어난 게 한참을 걸어야 할 거 같은 길처럼 보였다.
다들 양지현의 말을 듣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양지현이 나를 따로 불러서 계획을 다시 설명해줬다.
지금 이 마지막 갈림길에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 중앙으로 가면 외딴 장소에 떨어지는 구조라고 한다.
그리고 양지현이 직접 이 던전에 한봄을 끌고 온 건 그녀를 가운데 길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구해서 얻은 신뢰와 나서서 이끄는 실행력, 이 두 가지로 인해서 한봄이 잘 따라와 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 한여름이랑 내가 나타나서 나를 죽이는 조건으로 약을 먹이는 역할을 한여름한테 맡긴 거고?”
“…그렇습니다.”
거기다 그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나와 같이 가는 녀석에게 먹여줄 테니, 나를 확실히 죽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