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138화 영웅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6)
나는 아침 일찍 식당을 향하면서 물었다.
‘아니, 도대체 뭐가 음흉하고, 음험하다는 건지….’
[연인도 아닌 남자를 그렇게 만지작거리는 여자를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
둘이 아주 쌍으로 그러네.
그런데 잠깐….
분명 레나랑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저러지 않았나? 나분명 자고 있는 레나한테 부비부비했는데.
‘레나, 너 자고 있을 때 내가 껴안고 그랬잖아.’
[주인님. 여자와 남자는 다릅니다.]
‘….’
맙소사 이것이야말로 남녀 차별.
남자는 되지만 여자는 안 된단다.
[아무리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다고 해도 어려졌다는 이유로 저렇게 외간 남자의 몸을 더듬는 행위를 저지른 여자입니다.]
[정작 주인님을 남자로 보지도 않고 그런 행위를 한 것입니다.]
‘그, 그래….’
두 명이 쌍으로 나를 몰아붙이니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여자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그래도 이제 집중해줘. 계속 음흉하다, 음험하다 하니까 나도 집중 안 되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주인님.]
그 후 새벽 동안 자리를 지키느라 고생한 레나는 취침하러 갔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성수아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는 VR 속에서 아침 인사를 하고 같이 식사하기로 약속했다.
남자와 다르게 성수아는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나는 식당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식당에서 기다리며 오늘 수업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일단 초서현이 무기를 든다면 어제보다는 훨씬 낫겠지?’
[하지만 회피보다는 방어에 주력한다고 했으니, 리스크도 그만큼 증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송아라만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던데.’
다른 생도를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초서현이라는 상대와대련하면서 그 정도로 실력을 낼 수 있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다.
다만 그중에 송아라가 유독 빛날 뿐이지.
‘아쉽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송아라, 걔 활로 전향하면 기가 막힐 거 같은데.’
-[궁술 LV 29]-
지금 당장 교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1년 동안 성장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송아라가 주특기로 활을 사용했다면 나도 초서현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조 교관의 처지에서 송아라의 장래를 가지고 이런저런 조언을 할 수 없었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었지만,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볼까?
보자마자 나에게 주제를 알라고 하면서 면박을 줄 게 뻔하다.
보조 교관은 그냥 시키는 일만 잘하면 그만인 존재다.
그리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지.
“아… 쌤 안녕하세요.”
“아, 그래. 밥 먹으러 왔니?”
“네….”
“…?”
얘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인다냐.
평소에는 상큼하고 발랄한 녀석이 평소랑 다르게 굉장히 축 늘어져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 메뉴를 보더니….
“오예! 고기다!”
그 말과 함께 식당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걱정해서 바보가 된 꼴이 이런 경우일까나?
그리고 그렇게 식판을 들고 들어가는 송아라를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손가락을 쿡쿡 찔러왔다.
“기다리셨죠? 들어가요.”
성수아가 상큼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얼떨결에 세 명이 같이 식사하게 되었다.
사실 같이 식사한다고 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나와 성수아는 건너편에서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송아라의 식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송아라의 식판에는 평소보다 3배 정도 많아 보이는 밥과 반찬이 쌓여 있었다.
아구아구.
나는 송아라를 보면서 감탄했다.
‘진짜 저렇게 먹으면 매력뚝 떨어질 법한데, 쟤는 진짜 귀엽네.’
대부분 여자가 저렇게 막 퍼먹는 느낌을주면 별로이기 마련인데, 송아라는 그냥 애 같아서 귀여웠다.
하지만 무서운 점이 있다면….
“조심해야겠네요….”
“저는 혹시 몰라서 마법 쓸 준비도 하고 있어요…”
나와 성수아는 피식 웃으며 송아라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아라한테 이야기했는데. 들으셨나요?”
“네? 어떤 거요?”
“수호 교관님 예전에 다리 다치셨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난다.
그냥 대충 둘러댄 이야기였는데.
“아라한테 혹시 몰라서 이야기해놨어요. 성수호 교관님 잘 보살펴 달라고.”
“하하…, 그럴 필요는 없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아라가 또 입은 무거워요. 저도 그거 믿고 말한 거예요.”
하긴 성격이 올곧아서 남의 약점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았다.
어차피 다리를 다쳤다는 것도 그냥 핑계를 대려고 했던 말이었고, 크게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냥 체력이 딸린 것뿐이니까….
나는 복스럽게 먹는 송아라를 보면서 생각했다.
‘제발… 제발 튀기지 말아라….’
다행히 송아라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숟가락이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
..
“….”
“흐으….”
초서현이 가림막을 치고 책상 위에 엎드려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제를 제외하고 정상적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매번 오면 이렇게 자는 모습일 뿐….
‘그러고보니까, 밥도 안 먹는 거 같고…. 이 정도면 게임 중독 아닌가?’
[그래도 수업 시간에는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보면 저는 오히려 능력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하긴 자기 할일만 잘하면 게임 즐기는 건 자유지.
궁금하다.
오늘은 또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교무실에는 몇몇 교관들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아직한산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수업 시작까지 30분 정도 남았고….
‘잠깐만 들어갔다가 올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통신하고 조심스럽게 침몽을 시전했다.
..
..
“응?”
초서현의 꿈에 들어가자마자 내 시야에 비친 건 게임 속 환경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환경이었다.
“영사관이네?”
분명 내가 아는 영사관은 맞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하긴 꿈이라고 정밀하게 구조를 맞추는 건 아니니까.’
나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영사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초서현을 찾기 위해 교무실로 향했다.
‘설마꿈속에서도 자고 있는 거 아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초서현의 자리로 가보니….
“…응?”
“누구죠?”
눈매가 날카롭고 성격이 나빠 보이는 4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아니면 봤어도 중요하지 않아서 까먹었거나?’
나를 한참 노려보던 여성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입꼬리를 비틀었다.
“설마 새로 온 보조 교관?”
“아… 네.”
표정에서 드러나는 성격처럼 시작부터 말이 짧구만….
나를 한참 흘겨보던 40대 여성은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오늘 할 일을 설명하면서 나를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오늘 입학식인데, 빨리도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들려요?”
아니, 칭찬 아닌 거 알고 있는데. 꿈속에서도 이런취급 받고 싶지 않아서 말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훗날 귀찮아질 거 같아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내 말에 빡친 여성은 50대의 얼굴로 변하더니, 막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당에 도착하고 나서야 다시 40대 피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강당 안에는 엄청난 인파의 생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단상 위에는 처음 보는 교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40대 여성의 뒤를 따라가 단상에 올라간 뒤 그녀 옆에 우두커니 섰다.
40대 교관은 아까부터 뭐가 문제인지 계속 구시렁구시렁했고, 나는 그걸 대충 흘려들었다.
‘귀찮네…. 그런데 초서현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돌리며 단상에 있는 교관들을계속 살펴봤지만, 초서현을 찾을 수 없었다.
‘…성수아도 안 보이네?’
꿈이 개판이구만….
슬슬 시간도 꽤 지났고, 침몽을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였다.
단상 앞으로 웬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다가가서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오늘 영웅 사관 학교에 입학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거지 같은 교장의 훈화 시간이 이어…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교장은 간략하게 자기소개만 하고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자! 수석 입학생은 단상 앞으로 나와주세요.”
교장의 말과 함께 한 생도가 위풍당당한 자세로 단상 위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살짝 웨이브를 한 긴 머리카락과 시원한 미소, 자신감 넘치는 눈매, 그리고… 살짝 작은 키.
나는 단상 위로 올라오는 생도를 보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누구지?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분명 봤던 느낌만 있지,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없었다.
여자 생도가 단상 앞에 당당하게 서자, 교장이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여자 생도에게 종이 문서를 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여기 선서문을 읽으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여자 생도는 자신감 넘치는태도로 예의 바르게 교장에게 문서를 받고 교장을 바라보며 섰다.
그녀는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오른팔을 직각으로 들어 올리며 엄숙한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선서! 나는 영웅 사관 학교 생도로서….”
나는 생도의 선서를 들으며 속으로 결심했다.
‘에이… 나가자.’
이대로 있다가는 꿈속에서 초서현을 찾기는커녕 교무실에서나태하게 자는 보조 교관으로 낙인찍힐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침몽을 해제하려는 중에도 여자 생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굳게 다짐합니다!”
그렇게 초서현을 못 찾은 채로 꿈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1학년생도 대표! 초! 서! 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