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137화 영웅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2-5)
“하아… 하아….”
온통 쇠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거친 호흡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간은 대략 100평 정도로 높은 천장으로 정육면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쇠로 된 벽에는 무수한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공간 중앙에는 한 여성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얀색의 셔츠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면바지를 입고 있는 여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검을 꽉 쥔 상태로 기백이 넘치는 포즈로 서 있었다.
하얀색 셔츠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속이 다 비치고 있지만 숨을 고르고 있는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주위에 아무도 없거니와 남자가 있더라도 신경을 쓰는 인물도 아니었다.
숨을 한참 고르던 송아라는 눈에 힘을 주면서 외쳤다.
“레벨 7 시작!”
그녀의 외침과 함께 벽에 있던 구멍에서 송아라를 향해서 엄청난 속도의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비록 위협적으로 날아오는 총알이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총알을 피하지 않았다.
캉! 까깡! 깡!
무수하게 날아오는 총알을 칼로 베고 튕겨내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총알을 전부 막아낼 것 같은 송아라의 손등에 하나의 총알을 허용해버렸다.
“아얏!”
송아라가 총알에 맞자 구멍에서는 총알이 더는 날아오지 않았다.
“스읍….”
송아라는 팔을 휘휘 저으며 팔등으로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을 견뎌냈다.
땅바닥에는지금까지 날아왔던 구형의 플라스틱 총알들이 즐비하였다.
송아라는 한참을 손을 휘휘 젖고는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워버렸다.
이마에 한없이 맺히는 땀방울은 은빛을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옷에 스며든 땀으로 셔츠는 이미 속살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건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늘 오전에 있었던 대련으로만 꽉 차 있었다.
초서현 교관을 잡는데 안간힘을 쓰는 자신을 방해하는 성수호 교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었을까?”
오늘 오전에 있었던 수업은 애초에 승패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련일 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로 분하거나 짜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초서현에게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마다 방해하는 성수호 교관.
그런 상황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저녁도 먹지 않고 생도 전용 훈련장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 저녁도 안 먹고.
“잠깐! 지금 몇 시야!?”
그녀는 다급하게 벽에 설치되어 있는 전자시계에 눈이 갔다.
10 : 34
이미 저녁을 넘어서 취침 시간이었다.
그리고 교내 식당의 운영 시간은 저녁 10시까지로 이미 닫혀서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시간이었다.
송아라는 허탈하게 시계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내 밥….”
그녀는 밥, 밥 거리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생도복 재킷을 챙겨서 기숙사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성수아는 아이가 된 내 손을 붙잡고 마을을 구경하면서 말했다.
“일단 야간형 마을로 변경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야간형 마을이요?”
이 게임은 특성상 외부의 동일한 시간이 흐르게 시스템이 되어 있다.
현실 시간이 저녁 10시라면 이곳도 저녁 10시, 아침 8시라면 이곳도 아침 8시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퇴근 후 저녁 늦게 플레이하는사람을 배려해서 NPC의 활동 시간이나 상점 이용 시간을 야간으로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해줬다.
“신청만 하면 바로 변경이 된다고 하니 한번 변경해봐요.”
“네.”
성수아는 교관으로서 내게 대하는 행동도 좀 달라졌지만, 게임 속의 성수아는 완전 딴판이었다.
내 생김새 때문에 그런 건지, 외부랑 완벽하게 단절되어서 그런 건지 나한테 하는 행동들이 거리낌 없었다.
손잡는 것부터 껴안는 것까지 주말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하루 만에 풀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체가 작아짐으로 인해서 재미있는 사실.
‘이야… 가슴을 이렇게 아래에서 올려다보니까 기분 묘한데?’
지금까지 여성의 가슴을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해서 그런지 이렇게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지금의 성수아라면 실수로 주물러도 용서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추잡한 욕망이 부풀어 오르기 전에 마을 사무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야간형 마을로 신청하면 다른 NPC들도 밤에 이사하고, 활동도 한다고 하네요.”
성수아는 내 손을 꼭 잡고 사무소에 들어갔다.
진짜 애 취급 제대로 받는구나….
성수아는 마을 사무소에 들어오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한곳을 향해 손을 뻗어서 가리켰다.
“여기서… 아, 저 캐릭터한테 말하면 될 거예요.”
그곳에는 하나의 NPC가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NPC를 보자마자 성수아의 손을 놓고 바로 달려가서 구경했다.
“오!!”
“???”
내가 구경하고 있는 NPC는 강아지를 인간형으로 만든 1.5 등신의 SD 캐릭터였다.
여자 캐릭터로 딱 봐도 이곳의 마스코트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내가 후다닥 가서 말을 거니까, 나에게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방울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와… 대박… 진짜…귀엽다….”
나는 지금까지 NTL 게임만 해와서 그런지 이런 캐릭터는 좀처럼 볼 일이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는 처음 봤다.
성수아가 나를 껴안고, 손잡고, 스킨쉽을 하는 것처럼 나도 이 캐릭터를 마구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는 밝게 웃으며 성수아에게 방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귀여움을 열변했다.
“와… 성수아 교관님. 이 캐릭터 진짜 귀엽지 않아요?”
“….”
“…?”
그런데 성수아의 표정이 안 좋았다.
나는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뻘쭘하게 입을 열었다.
“그… 귀엽지 않나요?”
“…빨리 야간형으로 바꾸고 가죠.”
성수아는 빠르게 방울이 앞에 가서 야간형으로 바꾸더니 내 손을 끌고 빠르게 마을 사무소를 나와버렸다.
나는 성수아의 손에 이끌려 집까지 끌려왔다.
이거 체격이 작아지니까 성수아의 힘에 이끌려 아무 힘도 쓰지못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성수아 교관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에요.주말 동안 못한 거 같이 빨리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성수아는 나를 향해 억지로 웃으며 손을 꼭 잡았다.
그런 성수아의 모습을 보면서 통신했다.
‘저런 거에 질투를 하나?’
[단둘만 있을 때, 다른 존재에게 과한 신경을 쏟으니 심기가 거슬리는 모양입니다.]
‘아니, 그냥 귀엽다고 한 거 가지고… 너는 어때? 방울이 귀여웠지?’
[제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
너도 질투하니?
..
..
오늘 성수아와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낚시를 하기로 했다.
일단 첫 번째 목표로 처음 받은 집 대출금을 갚고 집의 크기를 한 단계 더 올리자는 것이었다.
꾸미는 건 일단 집을 한 단계 올리고 나서라는 게 계획이었다.
나는 성수아와 느긋하게 낚시를 하면서 질문을 했다.
“성수아 교관님, 회과는 어떤 수업을 하는지 아시나요?”
“회과요?”
성수아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흐음… 저도 사실 회과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게 없어요.”
“아….”
“회과 생도는 대부분 교단 쪽에서 엄격히 통제된 시설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회과 건물은 교관도 출입 불가능할 거예요.”
성수아 정도 되는 인물도 출입이 안 된다는 것을 보면 보통 시설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내가 회과 건물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면 퇴직하기 전에 끌려가는 수준이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고작 해봐야 애들 가르치는 시설인데 기과랑 마과랑 너무 다른데?’
[…생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해도 보안이 너무 과한 느낌이 듭니다.]
‘뭔가 알아내려면 내부로 침입할 방법이 필요하겠네.’
그나마 은신술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 있는 영웅들 수준에서는분명 탄로 날 것이 뻔했다.
은신술로 가다가 걸리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현행범으로 체포될 것이고….
거기다 회과에는 이 세계의 주인공, 초강현이 어슬렁거리는 곳이다.
그 녀석 근처에 있으면 은신 레벨과 상관없이 백 퍼센트 걸릴 것이다.
초강현 정보 알아내려다가 본인한테 걸려서 뒤지는 거지.
무언가 다른 방법을 모색해봐야 했다.
내가 갑자기 침묵하자 성수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회과는 왜 궁금하신 거예요?”
“아… 그냥 궁금했습니다. 하하….”
“에이… 말씀해주세요~”
성수아는 장난기가 서린 웃음을 내며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런데 그 콕콕 찌르는 행위가 나를 강제로 댄스를 추게 했다.
“자, 잠시만요! 하하! 흐이!”
“어머? 간지럼 많이 타시는구나. 에잇!”
“자, 잠깐만!! 흐앙!! 으아아!!”
성수아는 한참을 찌르다가 내가 포기하고 입을 열자 간신히 멈췄다.
“그… 하아… 하아…. 워낙 알려진 게 없어서 궁금했습니다… 하아…하아….”
“후후… 하긴 회과는 대부분 영사관 출신 분들도 잘 몰라서 궁금해하긴 해요.”
하물며 생도들도 궁금해서 건물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혼나기 일쑤라고 한다.
일단 지금 당장 성수아에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하마터면 초강현 이름까지 내뱉을 뻔했어….’
[그냥 초강현에 관해서 물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절대 안 돼.’
성수아라면 초강현에 관해서 물어보면 잘 대답해줄 것이다.
성수아 성격상 아니다 싶은 부분은 알아서 걸러서 이야기해 주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의 부담감이다.
지금 당장 약혼자 몰래 이렇게 남자랑 하하호호하고 있는데, 이 분위기에서 초강현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성수아와의 VR 생활이 바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초강현과 엮는 건 좀 뒤로 미뤄야 해. 최소한 나한테 남자로서 호감이 있으면 모랄까, 지금은 오히려 독이야.’
성수아가 이 VR 세계에 있는 동안 그녀가 나에게 남자로서 호감이 생겨야 한다.
나와 있을 때, 초강현이 떠오르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과 다르게 마음속 깊숙이 내 호감을 뿌리를 내리기 전에는 그녀가 주도하는 상황에 잘 따르는 게 핵심이었다.
나는 성수아가 중간에 딴생각이 들지 않게 상황극에 잘 따라가 주고.
“자~ 저기 물고기 보이네요. 빨리 잡아요!”
“어어!”
성수아는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나를 껴안고 물고기 실루엣이 보이는 장소로 향했다.
..
..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잠에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했다.
“흐아아….”
“….”
슬슬 시간이 정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내비치는 숲은 전혀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면 전에 굳이 야광충을 잡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숲인데도 불구하고 게임 특성상 전혀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인벤토리에는 물고기가 한 가득 있었다.
그리고 그 물고기들은 다 도트 형식으로 귀엽게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막 잡은 물고기를 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웃었다.
“이거 확실히 게임이라 그런지 전혀 징그럽다는 느낌이 안 드네요.”
“야광충도 그렇고 벌레들도 다 그렇게 귀엽게 표현되어 있을 거예요.”
“슬슬 팔고 오늘은 마무리할까요?”
“아….”
성수아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좀 더 하면 안 될까요? 빨리 대출금 갚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아… 그런데 뭐, 천천히 하면 좋지 않을까요? 느긋하게 즐기는 게임이잖아요.”
“후후… 느긋하게 빨리 대출금이 갚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뭐죠. 전설의 레전드 같은 건가?
슬로우 라이프지만 미친 듯이 일해서 대출금 갚고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는 건가?
“졸리시면… 자!”
“으어!”
성수아는 갑자기 나를 자기 무릎에 앉히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여기서 잠시 주무세요. 그동안 제가 좀 더 잡을게요.”
“그, 그게… 매번 죄송해서….”
“에이… 그런걸로 죄송할 필요 없어요.”
나는 성수아의 무릎에 앉은 상태로 그녀의 포근한 가슴을 목덜미로 느끼고 있었다.
분명 성수아도 가슴으로 내 촉감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거리낌 없이 나를 껴안았다.
말랑말랑한 가슴이 내 뒷덜미를 자극하고, 내 하복부를 서서히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자극과 별개로 성수아의 품 안에 들어오니 졸음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통신으로 말했다.
‘하아… 아르모니아… 아침에 깨워줘…’
[알겠습니다.]
그 후 나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눈을 감고 잠들었다.
***
성수아는 갑자기 잠이 든 성수호를 보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수호… 씨?”
“흐으….”
VR 헤드기어로 인해 감각이 둔해진 건지 성수호는 성수아의 스킨쉽에 깨지 않았다.
성수아는 그런 성수호를 옆으로 업어서 살며시 들었다.
그녀는 성수호를 데리고 집으로 가면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매번 이렇게 잘 때까지 일부러 귀찮게 하고….’
다행히 성수호가 따로 귀찮아하는 모습은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수아의 입장에서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그건 모든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평소에 자제를 잘해오던 성수아는 유독 이곳에서 일탈의 기분에 점차 빠져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성수아는 그 일탈에 다시 정신이 홀린 상태로 성수호를 껴안으며 침대에 누웠다.
성수아는 성수호를 양손으로 꼭 감싸며 중얼거렸다.
“하아…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는 거죠?”
“흐으….”
성수아는 잠이 들 때까지 성수호의 볼을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
“…으어?”
“….”
햇볕에 눈을 떠보니 내 시야에는 익숙하지않은 모습이 보였다.
웬 아름다운 산봉우리 두 개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성수아가 나를 껴안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었다.
내 양 볼을 비비는 성수아의 가슴은 아침잠을 확 깨워줬다.
그렇게 가슴의 기운을 받아 음기를 충전하는 중에 갑자기 통신이 들려왔다.
[주인님, 일어나셨습니까.]
목소리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레나?’
[네, 그렇습니다.]
‘이야, 밤새 나 지켜봐 준 거야?고마워.’
통신으로 아르모니아 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라 신기해서 주절주절 이야기하려는 순간이었다.
[그… 주인님.]
‘응? 왜?’
레나는 조용히 있더니 말했다.
[성수아… 음험한 여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
너까지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