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126화 XXX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1-31)
“…미안해. 내가 우는 바람에…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들었네.”
“무슨소리야. 이런 상황에서 제일 힘들었을 텐데.”
“흐흐….”
민하연은 방실방실 웃으며 눈가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아내며 나를 올려다봤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그냥 친분이 있고, 애정이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민하연과 나의 신뢰를 직접 연결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단 답답한 상황을 넘겼기에 나도 존댓말을 생략하고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좋아. 확실히 이제 답답한 게 많이 사라졌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안전지대 밖에는 아직 쇼크 비 세 마리가 우리를 위협하며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냥 내가 쓸어버려야 하나?’
모조리 쓸어버릴까!?
입도 뻥긋… 아니다, 여기까지만 하자….
[분명 수호님이라면 저 세 마리를 잡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마나가 생각보다 모자라서 강한 딱콩에도 죽지 않는다면 골치 아파진다.
한번 마나 탈진이 일어나면 에넬로 회복한다고 해도 그사이의 시간 동안 몸을 가눌 수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수호님, 제 추천은…. 마법력을 올려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레벨이 8….’
아르모니아의 추천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는 것 뿐만아니라, 나중을 위해서라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내 주력은 결국 마법이니까.
[남은 에넬은 9만 3천. 11까지 올릴 수 있지만, 그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에넬을 소모하게 됩니다. 일단 안전하게 10까지 올려보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10까지 올리면 남는 에넬은?’
[5만 4천 정도 남습니다.]
슬슬 오르는 폭이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에 100으로 시작했던 소모량이 고작 레벨 10 넘어갈 뿐인데, 몇만을 소모하기 시작했다.
‘이런 수준이면 레벨 20을 올리는것도 불가능하겠네.’
[레벨 10을 넘기면 오르는 폭이 달라지지만 그건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오케이~ 일단 10까지는 올려보자.’
어차피 회귀도 극복했고, 능력 올리는데 짜게 굴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마법력은 파괴력과 마나 둘다 올려주는 유용한 녀석이다.
내게 현재 평생 자산 1순위인 녀석이다.
‘한번 쏴보자, 일단 약한 걸로 내가 유도하고 안전지대 근처에서 쏴봐야겠어.’
[즉시 마나 탈진을 풀 수 있도록 집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신중히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응, 알았어.’
내가 아르모니아와 통신을 마무리할 때쯤 민하연이 내게 말했다.
“그… 가호를사용해보는 게 어떨까?”
“아냐, 그건 좀 더 신중히 사용하자.”
일단 내가 쓰는 가호야 필수불가결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민하연은 달랐다.
만약 이곳에서 필요한 가호 하나를 적어버렸는데, 그게 훗날 쓸모없는 데다 초기화를 못 하는 상황이 생기면?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길 것을 고려하면, 민하연의 가호를 허투루 쓰게 만들 수 없었다.
포인트를 낭비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더라도 가호는 최대한 신중히 적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민하연은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일단 내가 먼저 도망ㅇ….”
“웃기고 있네! 야! 너 저번에도그랬거든!?”
민하연은 내 말을 끊고 발끈하더니, 내 옷깃을 잡고 나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연인이 하는 장난 같아보일지 모르지만, 내 두개골 안에 있는 뇌는 푸딩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토할 거 같아….
“저, 저번에 그거랑은 다른 건데.”
“다르긴! 절대 안 돼!”
민하연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내 옷자락을 쥐어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녀에게 그 당시 있었던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단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내가 가진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쓰는 마법.
그걸시험해보기 위해서하고 했다.
그런데도 민하연은절대 안 된다고 바락바락 우기고 있었다.
이유는….
“너 저번에도 거짓말했거든! 기억 안 나지?”
“….”
그때 뻥카친 걸 기억하는 민하연에게 지금 내가 하는 행동도 딱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복 포션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다친 민하연을 멀리 보내고 나 혼자 유인했던 일은 그녀가 잊을 리가 없었다.
민하연은 나를 붙잡고 내려앉은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
“그러지 마…. 나 진짜 너랑 그런 식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아.”
“…미안. 그럼 같이 가는 걸로 하자.”
사실 혼자 이동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이유는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인원.
지금까지 본 적은 없었지만, 게꼬수는 분명안전지대 중에 희박하지만 1명만 들어갈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만약 운이 나빠서 도착한 곳이 1인 안전지대라면?
일단 나는 딱콩을 쏘고 나서 잠시 리타이어가 되어버리니 민하연 혼자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그건 또 내가 싫다.
하지만 이미 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된 계획이 필요했다.
현재제일 가까운 안전지대는 대략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보였다.
“하연아, 지금 시야에서 화살로 쟤들 맞출 수 있겠어?”
“흠… 맞출 수는 있는데, 맞춰도 소용이 없어.”
민하연은 전에 아르테미스의 물약을 마시고 대낮에 집중해서 화살을 쐈는데도불구하고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거기다 지금 유일하게 시야를 밝혀주는 건 안전지대와 달빛뿐.
명중률뿐만 아니라, 어설프게 쏜 화살은 데미지도 평소보다 적게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일단 내 마법에 걸어보자.”
“응.”
***
성수호가 계획을 말해줬다.
계획은 단순했다. 다음 안전지대까지 도망치고, 그곳에서 성수호의 마법을 시험해보자는 것이었다.
민하연은의문이 들었다.
“그냥 여기서 잠시 나가서 쏘고 들어오면 되지 않아?”
민하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굳이 도망갈 필요가 있느냐였다.
성수호가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평소에 쏘는 거랑 다르게 그건 한 발 쏘는 데 시간이 좀 걸려. 그리고 쏘고 나서도 한 5초 정도는 정신을 못 차린다고 보면돼.”
“아….”
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괜히 바깥에 잠시 나가서 어물쩍거리는 사이에 쇼크비가 쏘는 침을 맞고 바로 황천길로 갈 수 있다고 성수호가 설명했다.
그러니 도망을 친 다음 거리가 벌어진 상태로 성수호가 조준하고, 민하연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엄호해주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성수호는 지금 보이는 안전지대가 1인 안전지대일까봐 걱정을 했다.
“역시 혼자 행동하는 쪽이 좋아 보이는데.”
“아냐! 무조건 같이 가자. 1인 안전지대라면 내가 어떻게든 도망쳐볼게. 그리고 만약 마법이 효과가 있으면 정말 승산이 있는 거잖아.”
민하연은 성수호의 마법이 쇼크 비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면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에 클리어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리고 내 화살이 피해는 못 주더라도 견제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그렇게하자.”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안전지대의 남은 시간이 15분 정도 남아 있었다.
민하연은 같이 가겠다는 내 말에 안도하고 내게 팔짱을 끼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상하지? 처음 봤는데, 나처럼 막 달라붙는 여자….”
“아니, 그렇지 않아. 오히려 고마워.”
“….”
“나는 회귀라는 게 마냥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만약 다음에도 이렇게 내 기억이 없어지면 계속 말해줘. 나는 끝까지 너를 믿으려고 노력할 테니까.”
“…내 말을 왜 그렇게 잘 믿는 거야?”
민하연은 의구심을 가진 표정으로 성수호를 바라봤다.
민하연의 입장에서, 성수호는 그녀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 성수호가 그녀의 고백을 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모습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성수호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나를 믿고 의지해주는 사람을 믿어. 그게 전부야.”
“…후후.”
민하연은 기분이좋아져서는 성수호의 팔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 애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능력만 보고 다가간 남자가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빼앗았다.
지금까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을 이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한테 이렇게 신뢰를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잖아.’
민하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수호에게 말했다.
“저번에 부탁 하나 정해 놓으라고 한 거 정했어?”
“아…. 따로 정해 놓은 건 없는데.”
민하연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저대로 두면 평생 쓰지도 않고 넘기게 생겼네.’
기껏 부탁 하나 들어준다고 했는데, 성수호는 딱히 바라는 게 없어 보였다.
차라리 전처럼 가까운 관계였다면 오히려 짓궂은 부탁을 하면서 장난을 쳤겠지만,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좀 강하게 가야겠네.’
민하연은 속으로 다짐하면서 성수호에게 말했다.
“안 되겠어. 보스전 끝나면 꼭 하나 부탁해. 안 그러면….”
“…?”
민하연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내가 마음대로 정할 거야. 니가 좋아하던, 싫어하든.”
“하하….”
성수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녀 사이의 부탁이라고 해봐야 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성수호가 민하연에게 ‘포인트 줘.’라고 할 인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진짜 포인트 달라고 하면 웃기긴 하겠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부탁에 허탈하게 웃으며 성수호의 팔을 감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자, 갈 준비하자.”
“응.”
두 사람은 안전지대의 남은 시간을 보면서 자세를 잡았다.
00:01 [2/2]
민하연은 혹시 몰라서 아르테미스의 물약을 복용했다.
성수호는 주머니에서 탄환을 꺼내서 쏠 준비를 마쳤다.
“일단 내가 저기 두 마리한테 약한 걸로 한발씩 쏠게, 하연이 니가 나머지 한 마리 좀 견제해줘.”
“응, 알았어.”
“가자!”
성수호의 외침과 함께 민하연은 안전지대 밖으로 나와서 쇼크 비 한 마리에게 화살을 쐈다.
파앗!
쇼크 비에 맞은 화살은 간단하게 박살 났고, 잠시 움찔거렸던 쇼크 비는 민하연을 향해서 날아왔다.
탕!
엄청난 총성과 함께 민하연에게 날아오던 쇼크 비는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는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성수호의 마법이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별개로 외부에 따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성수호는 다가오는 두 마리에게도 탄환을 발사했다.
탕! 탕!
“자, 가자!”
“응.”
성수호는 민하연의 팔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숲은 바로 앞에 있는 나무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고, 도망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안전지대가 두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부우우웅….
뒤에서 들리는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성수호가 소리쳤다.
“저기다!”
“어!?”
하지만 성수호의 외침에 민하연은 당황한 기색으로 대응했다.
안전지대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뭐야!? 여기로 오지 마!”
“하필….”
성수호는 안전지대 안에서 자신들을 향해 외치는 한여름을 보면서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한여름은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여기 정원 한 명이야! 빨리 다른 곳으로 가라고!”
“….”
한여름은 민하연이 위기의 상황임에도 자신이 사는 것이 먼저라는 듯이 그녀를 내쫓으려고 했다.
민하연과 성수호가 안전지대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할 수 있었다.
민하연은 다급하게 안전지대의 막을 두드리고는 짙게 한숨을 쉬었다.
“맞아. 정말 한 명밖에 못 들어가는 것 같아….”
“….”
성수호는 조용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뒤, 뒤를 돌아봤다.
쇼크 비가 이미 거의도달한 상태였다.
그런데 쇼크 비가 다가오는 것과 별개로 한여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빨리 꺼져!!”
“…?”
민하연은 한여름이 왜 흥분해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안전지대 안에 시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00:01[1/1]
이제 고작 해봐야 1분.
“일단 우리도 빨리 가자! 이대로는 잡히겠어.”
“그래.”
성수호는 민하연의 말에 동의하면서 바로 자리를 이탈했다.
하지만 이탈과 동시에 뒤에서 한여름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런 씨발!!”
한여름의 안전지대가 사라졌고, 그도 우리의 뒤를 쫓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민하연은 그런 한여름을힐끗 보면서 생각했다.
‘한여름이 지금 죽으면 곤란해…. 일단 수호의 마법이 통하는지 한번은 확인해야 해.’
민하연은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서 한여름의 뒤에 날아오는 쇼크 비를 향해 활을 겨눴다.
하지만 그 순간….
슈욱!
파악!
“아아악!!”
활을 겨눈 민하연의 팔을 무언가가 뚫고 지나갔다.
‘아윽! 이, 이럴 때!’
이 고통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쇼크 비가 쏜 침.
고통에 정신이 혼미한 민하연은 자신을 지나치며 도망치는 한여름을 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저런 녀석을 내가 도대체 왜 좋아했던 걸까?’
부우우우웅!!!
엄청난 모래폭풍과 함께.
쇼크 비가 자신을 향해 턱을 들이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그 벌의 외관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죽겠지만….’
그렇게 죽음을 직감한 민하연은 눈을 꽉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울려 퍼지는 파공음.
솨아악! 솨아악! 솨아악!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
민하연은 살며시 눈을 떴고, 그녀의 시야에 비추는 건….
“괜찮아?”
활을 들고 자신의 옆에 서있는 성수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