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89화 영웅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9)
“…보이지 않네. 타이밍이 안 좋은 걸까?”
성수아는 아침 일찍 평소대로 캐쥬얼 정장 차림으로 구내식당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가 찾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 건가?”
그녀의 생각대로 성수호는 아침을 거르는 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구내식당도 아침이 제일 널널한 편이었다.
점심이라면 북새통을 이루는 식당도 아침에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였다.
성수아는 성수호가 없다고 판단하고 적당히 혼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아침의 느슨한 분위기와 다른 존재가 눈에 보였다.
남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양의 음식을 행복하게 입 안에 넣고 있는 생도.
송아라였다.
송아라는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오늘도 혼자네….’
성수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송아라의 옆에 앉았다.
“같이 앉아도 되겠니?”
“으억! 쌤! 그럼요!”
송아라는 혹시라도 성수아에게 음식물이 튈까 봐 걱정돼서 입을 가리고 말했다.
“쌤… 그 지은이는 다음 주에 오는 거 맞나요?”
“…일단 다음 주부터 등교 예정이긴 한데, 확정은 아니란다.”
“아….”
송아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숟가락 끝을 입술에 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서 성수아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렴. 꼭 다시 올 테니까.”
“헤헤….”
송아라는그렇게 말하고는 밥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성수아는 어제부터 고민했던 부분을 송아라에게 물어봤다.
“아라야.”
“넴.”
“너는 남자들이 뭐 좋아하는지 아니?”
“남자요?”
송아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수초간 생각하더니, 손바닥으로 식탁을 살짝 치면서 말했다.
“VR 기기죠.”
“…그건 니가 좋아하는 거 아니니?”
“헤헤… 그렇긴 한데… 남자애들은 영웅되서 돈벌면 무조건 그거부터 산다고 난리치고 있어요.”
“너는 어떻니?”
“…무조건 1순위죠. 헤헤….”
VR 헤드기어는 VR 시스템의 보급형 모델임에도 5억원 상당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보다 고가인 캡슐도 있었지만, 그건 현역 영웅으로지내는 성수아조차도 구입하기 힘들었다.
지금 영사관에서 쓰이는 것과 비슷한 녀석이었다.
‘확실히 아라 정도면 금방 살 수 있겠지.’
모든 교관에게 이번 연도 수석 졸업을 누구로 생각하냐고 하면 단 한 명을 지목할 것이다.
송아라.
기량, 재능, 심성 모든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아이였다.
다만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면….
‘융통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들 좋아했을 텐데….’
생도로서 인지도와 출중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그녀에게 주위의 생도들이 잘 다가가지 못했다.
싫어하는 것이 아닌, 다들 꺼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너무 유도리가 없는 게 오히려 흠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성수아는 복스럽게 밥을 먹는 송아라를 보면서 걱정을 접었다.
‘하긴, 내가 이 애를 걱정한 처지가 아니지…. 그런데 VR 기기라….’
그녀의 기억에도 어제 성수호는 가상현실이 즐거운 듯 행동했던 게 기억이 남았다.
하지만 VR 헤드기어의 가격을 생각하면 아무리 친분을 고려한다고 해도 동료에게 줄 선물로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걸 줄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성수아가 가지고 있는 VR 헤드기어는 구입한 지 꽤 오래됐고, 무엇보다 그녀는 그 기기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구입 당시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쓰지도 않을 물건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 그게 좋겠다.’
성수아는 식판에 있는 밥을 한숟갈 뜨면서 걱정했다.
‘…설마 썻던거라고 기분 나빠하지는 않겠지?’
***
“저한테 줄 필요 없어요.”
“…네?”
나는 초서현에게 VR 가상훈련 기계실의 카드키를 돌려주려고 했지만, 반납을 거절당했다.
초서현은 팔짱을 낀 채 작은 키로 옆으로 힐끗보며 말했다.
“어차피 VR 가상훈련 때는 보조 교관도 무조건 동행해야 해요. 그러니까, 분실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이용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수고했어요, 가보세요.”
“네.”
나는 초서현의 말에 짧게 대답하고 교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나를 향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신기하네, 초서현 교관님이 저렇게 보조교관에게 잘해주는 사람이었나?)
(그러게, 지금쯤이면 큰소리치면서없던 잘못도 뒤집어씌울 텐데.)
(첫날 괜찮게 봤나 봐요.)
(…꼬마라고 한 거?)
(에이, 그거 말고요. 무기 전달식 때 둘이 진짜 빨리 끝냈더라고요. 들어보니까, 저 보조 교관이 일처리는 빠릿빠릿한가 봐요.)
(아….)
나는 그들의 대화를 언뜻 들으며 안도했다.
‘초서현… 도대체 평소에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
[첫날에 했던 기질 파악이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짜… 그거 아니었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나는 주위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못 들은 척하며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한 식당에는 점심을 먹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생도들과 직원들이 보였다.
“오늘 반찬은무엇일까나~”
“오늘은 한식으로, 소고기에 계란말이랑 미역국이 주메뉴예요.”
“오예, 개꿀… 어?”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가 뒤를 돌아왔다.
성수아가 웃으면서 식판을 들고 있었다.
..
..
“그건 너무 죄송한데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혹시 싫어하시나요?”
나는 성수아에게 설명을 들었다.
전날 있었던 일도 있고, 자신이 쓰지 않는 VR 헤드기어가 있기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성수아의 심성이 어떤 지 짐작이 갔다.
‘죄 짓고 못 사는 스타일 같네….’
[다만 그건 남자친구에게도 적용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같이 가상현실 게임을 하고 싶긴 한건데.’
어제의 성수아를 보면 왠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곳이라면 눈치를 보지 않고 점점 마음을 열 것 같았다.
그래서 VR 기기를 구하고싶었던 거고….
“설마요. 돈만 있었으면 진작에 사고 싶었죠.”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 저녁에 기숙사 쪽에 부탁해서 보내드릴게요.”
“아… 그래도 너무 비싼 기기라 좀….”
사실 거절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진짜 가지고 싶었는데, 알아서 주겠다는 걸 막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VR 기기를 가지고 싶은 이유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성수아와 이어질 매개체가 필요할 뿐이었다.
이대로 덥석 받기만 하면 그냥 좋은 게임기 하나 얻는 것 뿐이다.
성수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실망하고 있었다.
“부담 안 가시셔도 되는데….”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고심해서 선물로 골랐더니, 상대방이 껄끄러워하는 것만큼 실망스러운 게 없을 것이다.
성수아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나는 철벽 수비를 했다.
나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성수아를 설득했다.
“그게… 받아도 어차피 혼자 해야 하니까요.”
“아….”
원래는 온라인 모드도 가능해야 하지만 현재는 영사관 서버 문제로 기본적인 통신망을 제외하고는 외부로부터의인터넷망을 전부 차단한 상태였다.
VR 헤드기어도 사용은 가능하지만, 내부망만 이용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영사관 내부 사람들끼리는 사용할 수 있지만, 애초에 VR 헤드기어는 정식 교관을 제외하고 갖춘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교관과 친분이 없는 나는 있어도 혼자 즐기는 용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수아는 한동안 눈을 감더니,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랑 해보는 건 어때요?”
***
“휴우… 설치 다 된 걸까?”
성수아는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방에 설치되어있던 VR 헤드기어를 성수호의 방에 전달을 부탁하고, 오늘 받은 기기를 새로 설치했다.
그녀는 성수호의 거절하는 이유를 듣고 다른 선물을 고려해보려는 중에 예전에 영사관을 들어올 때, 들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영사관 교관 분들께는 VR헤드기어를 교관직을 이수하는 동안 무료로 대여해드리고 있습니다. 뭐, 대부분 이미 가지고 계셔서 빌려달라는 분들은 없지만요.)
성수아는 그 말을 기억해내고 바로 성수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성수호는 환하게 웃으며 흔쾌히 오케이를 해줬다.
성수아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비품 부실로 향해서 헤드기어를 대여해 왔다.
헤드기어형은 설치가 어렵지 않아서 성수아도 손쉽게 설치할 수 있었다.
“설마 나도 같이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나랑 하다가 질릴 때쯤에는 다시 온라인도 사용할 수 있겠지?”
그녀는 딱히 게임에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 체험했던 가상현실 속의 느낌은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서 조금 더 해보고 싶긴 했다.
“일단 기기에 휴대폰 정보를 연동하고….”
이 VR 기기는 캡슐형과 다르게 생체 등록이 아닌, 개인정보로 등록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녀는 휴대폰에 있는 정보와 연락처가 기기와 연동이 완료되었다는 문구를 보고 헤드기어를 쓴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 버튼을 누르면…. 아! 된다!”
기기에 있는 버튼을누르니,앞에 화면이 출력되면서 경고 사항과 중요 문구가 출력되었다.
-15초 뒤에 접속합니다.-
-접속하시기 전에는 집 안에 화재위험이 있는 기기들을 전부 작동을 멈춰주시고…-
성수아는 경고사항을 꼼꼼히 읽는 중에 시야가 암전되었다.
..
..
“들어왔네, 잠깐 옷이… 휴…이번에는 정상이네.”
성수아는 접속하자마자 자신의 복장을 꼼꼼히 체크했다.
어제처럼 문제가 생긴다면 또 그를 볼 낯이 없었다.
“일단 연락처에 성수호 씨를 찾아서….”
성수아는 연락처 리스트를 홀로그램으로 띄운 뒤에 단박에 성수호를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연락처를 저장하자마자 꼼꼼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많은 인물이 등록되어 있지만 필요한 사람을 금방 찾고,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잠깐! 일단… 접속 비공개로 하자….”
성수아가 VR 헤드기어를 갖춰놓고 있으면서도 잘 이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하나 있었다.
초강현과 만나고 싶어서 구입한 이 기기를 이용할 때면 엉뚱한 사람들이 계속 연락해왔기 때문이다.
부탁을 거절 못 했던 성수아를 남자들이 게임을 좋아한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덕분에 RPG 게임이라든지 대전 게임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지만, 전혀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결국 헤드기어는 방구석 한켠에 있는 상자에 고이 모셔놓은 신줏단지의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때는 오빠가 들어올까 봐 비공개로 안 했지만… 지금은 성수호 씨랑 있으면 오히려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비공개로 하자.”
성수아는 접속을 비공개로 설정하고는 성수호에게 음성 채팅을 신청했다.
“들리시나요?”
(으어! 깜짝이야!)
“푸웃…놀라셨어요?”
성수아는 웃으면서 생각했다.
‘이분이랑 있으면 신기하게 웃음이많아지네.’
그런 성수아의 미소를 보지 못하는 성수호는 허둥지둥하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아… 성수아 교관님? 처음이라 헷갈려서….)
“괜찮아요. 제가 차근차근 알려드릴게요.”
성수아도 접속한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일단 게임을 정한 다음 접속하기로 했다.
“일단 직접 만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설명도 같이 옆에 있으면서 하면 편하겠죠?”
(네, 그렇겠네요.)
“일단 그 화면에 게임 리스트 누르신 다음에 하고 싶은게임 말씀해주세요.”
(아… 저는….)
성수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남자라면 대전 게임이나 FPS 게임 좋아하려나?’
온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적인 환경이었지만, 웬만한 게임은 헤드기어 안에 들어있었다.
다만 대부분 체험판 식으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정식으로 하고 싶다면 외부에서 칩을 사 오거나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매해서 다운받아야 했다.
‘어차피 대전 형식이나 RPG 같은 거면 1~2주일은 무리 없이 즐기시겠지.’
나름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성수호는 성수아에게 하고 싶은게임의 제목을 말했다.
“이 동물의 마을? 이거 괜찮겠네요.”
“…동물의 마을이요?”
성수아도 그 게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농촌 마을에 거주하면서 슬로우라이프를 즐기며 그곳을 꾸미는 게임이였다.
성수아도 잠깐 그 게임을 한 적이 있었고, 나름 즐기기도 했던기억이 있었다.
이 게임의 방향성은 원래 슬로우라이프 게임이지만 다른 쪽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원거리의 연인들끼리 만남을 가져서 즐기는 게임 중 하나로 자리 잡기도 했다.
다만 비싼 VR 기기값과 시기가 많이 지난 덕분에 지금은 이용자도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이때 오빠한테 같이 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했지…. 일단 해볼까….’
성수아는 침체한 마음을 감추고 성수호에게 음성채팅으로 말했다.
“그럼 그거 해보죠. 일단 제가 호스트로 접속할게요. 바로 접속해보세요.”
(네.)
성수아는 게임을 실행시키자마자 그녀의 시야에는 광활한 평지와 주위를 둘러싼 산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때도 이런 기분 참 좋았는데.’
성수아는 자연의 풍경에 취한 채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보던 성수아는 정신을 차리고 성수호를 찾았다.
“아! 성수호 교관님은… 어머!”
“….”
성수아의 눈앞에 갑자기 웬 초등학생 정도의 꼬마가 서 있었다.
“이런 아이가 NPC로 있었나? 어떡해… 너무 귀여워라!”
성수아는 NPC로 보이는 꼬마를 껴안고 한껏 부비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성수아도 평소에는 무작정 아이를 껴안지는 않지만, 게임 속이라는 환경 덕분에 거리낌 없이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껴안고 부비부비하는 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성수아 교관님….”
“아! 죄, 죄송해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응? 어디계세요?”
성수아는 성수호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성수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품 안에 꼬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