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86화 영웅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6)
교실을 나오고 성수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리저리 궁리하며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같이밥 먹자고 하기도 쉽지 않고….’
성수아에게 같이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하면 승낙할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그냥 이유 없이 먹자고 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신중하게 진행하더라도 뭔가 방법이 필요하긴 할 것 같습니다.]
장기 임무니까, 언젠가 될 거라는 마인드로 임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가끔 게임에서도 초기에 어떤선택지를 골랐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뭔가 가까이 붙을… 개연성이 오진 껀덕지가 필요한데…. 아!’
[무슨 방법이 생각나셨습니까?]
‘서지은.’
마과 7반 서지은.
성수아는 현재 서지은이라는 생도를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일단 서지은에 관한 이야기로 물꼬를 트고, 계속 대화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성수아는 왠지 업무시간 외에도 열심히 일할 거 같지 않아?’
[초서현은 몰라도, 성수아의 성격이면 충분히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있으려나? 일단교실로 가볼까….’
나는 다시 뒤돌아서 교실로 향했다.
서지은에 관한 대화를 핑계로 같이 밥이나 먹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마과 7반 앞에 도착했다.
‘설마 벌써 갔으려나….”
내가 교실 문을 열고 보니 다행히 성수아는 아직 있었다.
다만… 아까와 다르게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성수아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응? 성수아 교관님 아직 안 가셨어요?”
“성수호 교관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녀는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비비며 억지로 웃었다.
성수아의 표정을 보니, 뭔가 물어보기 굉장히 껄끄러워졌다.
뭐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수아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까 더욱더 심각해 보였다.
“아… 그게 여쭤볼 게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내일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럼 마침 배고픈 참이었는데, 같이 식사나 하면서 들어볼까요?”
..
..
“아… 지은이에 대해서요?”
“네, 제가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걸까요?”
“아니에요!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는걸요?”
성수아는 웃으면서 서지은에 관해서 설명해줬다.
마과 생도로처음 입학할 당시에 마과 수석 입학.
기량만 따지면 당시에 기과에서도 따라올 생도가 없었다고 한다.
현재 기과 원탑인 송아라도 당시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갖췄었다고 한다.
하지만 1학년 중순쯤 들어서면서 마나 제어가 잘 안 되기 시작했고, 2학년 초에는 아예 마나를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법사 최고의 길드 ‘탑’에서도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성수아는서지은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한 숟갈도 들지않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마나의 흐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패턴으로 난잡하게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난잡하게 흐르는 마나는….
“서지은 생도… 본인을 공격했어요.”
“본인을 공격했다고요?”
“네, 서지은 생도의 특기는 그림자 마법이에요.”
“…?”
“아마 생소할 거예요.”
우리가 소위 알고 있는 화, 수, 지, 풍, 뇌 같은 속성이 아닌, 유기체의그림자를 조종할 수 있는 특수 마법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생소한 정도를 넘어서 그냥 처음 들어봤다.
일단 슈트라에는 없었으니까.
“탑에서도 서지은 생도의 문제에 발을 벗고 나선 이유가 그것 때문이에요.”
“…희귀한 친구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였군요?”
“네. 누가 봐도 탑에 어울리는 인재였어요….”
능력에 대한 설명을 요약하자면 인간이나 동물의 그림자를 형상화 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형상화된 그림자는 자신의 마력과 상대방의 능력을 베이스 삼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그림자로 싸우게 하고, 또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해서 서포트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대충 듣기만 해도 사기에 가까운데요?”
“다만 마나 고갈이 심하다고 해요.”
그림자의 능력에 따라서 마나의 고갈이 뻥튀기된다고 한다.
괜히 되지도 않는 상대의 그림자를 훔쳐 오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서지은의 능력이 좋은 만큼, 머리도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한다.
거기다 마법사이면서 임기응변에도 강했다고 설명해 줬다.
“상황 판단이 좋은 아이였어요.”
“…안타깝네요. 다음 주에 등교한다고 했나요?”
“네, 원래는 이번 주에 하려고 했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 어떤 문제인가요?”
“다리 쪽이 상태가 다시 안 좋아졌다고 해요. 작년에 소환한 그림자가 서지은 생도 본인의 다리를공격했어요.’
현재 서지은의 치명적인 문제는 그림자를 형상화하면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을공격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마지막 사건 당시 시전된 그림자는 서지은 본인이 소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즉,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그림자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든 것이다.
‘…미친. 듣기만 해도 무서운데?’
[신기합니다. 그렇게 재능이 있었는데, 갑자기 제어가 안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나 싶습니다.]
‘그러게….’
처음부터 못 한 것도 아니고, 잘 써오다가 갑자기 안 된다니….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개꿀 능력같아서 서지은 만나면 바로 배우려고 했는데. 불안하네….’
[배워서 효율적으로 사용만 할 수 있다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응, 배워서 효율적으로 입이랑 보지에 하나씩 박으려고 했지.’
[……….]
긴 침묵.
역시 아르모니아의 말문이 막히게 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아르모니아의 긴 침묵이 마음에 들어서 눈을 감고 여흥에 잠겨 있을 때, 앞에서 성수아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저…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어떤 생각을…?”
실수했다.
‘망할, 변명을 잘못했다….’
[………….]
여전히 침묵 중인 우리의 CEO님. 해답을 주실 거 같지 않군요.
나는 대충 둘러댔다.
“저도 예전에 다리를 다쳐서요. 동병상련이랄까….”
“아…. 어쩌다….”
성수아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꺼냈다.
“예전에 동료 때문에 크게 다쳤어요. 제가 워낙 부족한 탓이었죠.”
“아! 죄, 죄송해요.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성수아는 입을 가리고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휴…, 저정도면 더는 묻지는 않겠지.’
[…다리를 다치셨었습니까?]
침묵하던 아르모니아가 물어왔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고, 예전 생각을 하면서 통신했다.
‘예전에 계주할 때, 바통 넘겨주면서 넘어졌거든.’
[….]
‘흥, 내가 건네주던 놈도 넘어졌지. 쌤통이더라. 크크크….’
당시에 내 편이든 뭐든 간에 나만 넘어지니까 억울했는데, 건네준 놈도 바로 넘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참고로 넘어진 이유는 내가 바통을 잘못 넘겨줘서 휘청거리다가넘어진 거다.
나란 인간….
‘그때, 넘어지면서 무릎을 땅에 제대로 박았어. 한동안 제대로걷지도 못했어.’
[지금은 괜찮으십니까?]
‘후유증은 없는데, 당시에 제대로 쓸려서 무릎에 동전만 한 흉터가 남아 있어.’
사실 이제 그 흉터조차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말하니까 기억이 날 정도라서 별 의미는 두고 있지 않았다.
그 이후 성수아는 서지은에 관한 이야기는 접고 오늘 있었던 수업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
“후우….”
어두운 방에 한숨과 함께 밝은 불빛이 내리꽂아 졌다.
성수호가 지내는 곳과 같은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개인실.
이 기숙사의 펜트하우스였다.
성수아처럼 상급 영웅으로 활동하는 자들에게 들어가는 혜택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혜택을 성수아는 처음도, 지금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녀는 영사관 재학 당시에도 좋은 기숙사를 반납하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개인실을 선호했었다.
하지만 이곳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들어온 것이었다.
“…정작 한 번도 방문해주지 않았네.”
한 사람의 방문을 기대했지만, 2년 내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수아는 가지고 온 파일들을 식탁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번에는 진짜 괜찮은 분 같아서….”
그녀는 아까 생도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채운 성수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교관도 사람이고, 직업이다 보니 자신에게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특히 보조 교관들은 입장상 이해가 갔다.
처음엔 성수아도 그가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묻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성수아가 그를 좋게 본 이유였다.
대부분 교관은 방지하는 게 아닌, 방치해서 다음 사람에게폭탄을 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 대화에서 성수아가 느낀 건 그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묻는 느낌이 아니었다.
정말 서지은에 대해서 알려고 한 것처럼 보였다.
“…진짜 교관으로서 알고 싶어 하는 거 같았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파일은 서지은에 정보가 담긴 파일이었다.
다음날이 되면 성수호에게 주기 위해서 챙겨온 것이었다.
성수아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도 영사관에 근무하면서 정식 교관뿐만 아니라, 보조 교관과도 많은 친분을 쌓아왔다.
하지만 성수아는 그런 교관들의 책임감 없는 행동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입장은 이해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영웅이라는 자리에 올랐는데, 갑자기 애들을 가르치라고 하니 분노가 차오르는 것에 이해가 갔다.
3년이라는 시간.
20대라는 전성기를 허투루 날리게 되는 건 성수아도 마냥 반길 수 없었다.
하지만 성수아는 모든 미래를 이 학교에 맡긴 학생들을 못 본척할 수는 없었다.
2년간 같이 일한 보조 교관은 6명.
그리고 그 보조 교관 중에 먼저 생도에 관해서 물어본 사람은 0명.
성수아는 첫날 성수호에게 생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
거기까지는 다른 교관과 어느 정도 같았다.
하지만 오늘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봐왔던 교관들과 다른 점이 보였다.
그는 적극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다리를 다치셨다고….”
그녀는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성수호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전날 그에 대한 프로필을 간략하게 보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던 게 떠올랐다.
성수아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창피한 나머지 주위에 아무도 없지만, 속으로 웅얼거렸다.
‘하아…. 정작 내가 그분한테 실례를 저지르고 있었네.’
워낙 정신없는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보조 교관에 관한 관심을 뒤에 빼버린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내가 그랬구나 하고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성수아는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도 안 보는 시골 한복판 도로에서도 신호를 지키는 여자였다.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확실하게 알아보자.”
성수아는 책상에 있는 파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나서 커다란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가 바라보는 창밖에는 남자 기숙사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바라보는 건너편의 펜트하우스.
어차피 시야 방지 유리로 외부에서 누군가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창밖에 비치는 건너편 펜트하우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아래쪽이 신경 쓰였다.
성수아는 문뜩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그분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게 말하며 기숙사 아래쪽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
성수호는 침대에 누운 채창밖을 보면서 속으로 외쳤다.
‘시방!! 성수아 빨리 따먹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