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69화 엑스트라(?)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8)
“….”
“….”
공녀… 아니, 레나와 불타는 밤을 보내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방안에 새벽녘의 이슬이 군데군데 맺혀 있었다.
내가 지내는 객실에 비해서 확연히 떨어지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런 서늘한 한기에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좁은 침대에서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장소는 충분히 매리트가 있었다.
하지만 레나는 나를 껴안은 상태로 나를 제대로 보지 않고 그저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뿐이었다.
‘음….내가 너무 심하게 말해서 상처 받았나?’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레나 드 페르온은 현재 수호님의 계획을 알고 있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그 부분이 훨씬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하….’
그렇다고 지금 와서 계획을 말하기도 애매한데….
레나는 불쌍한 여자지만, 한편으로는 잠시만 이렇게 지내고 싶었다.
어차피 이런 반응도 고작 해봐야 2일 정도밖에 못 볼 거 같으니까.
비올라, 소냐, 루나를 거치면서 느껴진 점이 있다면 모두가 각자의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레나는 겉으로보이는 강인함과 다르게 행위 후의 분위기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야한 느낌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좋아서 껴안는 레나는 이순간만큼은 어린아이 같았다.
하지만 이런 포근한 분위기를 깨는 존재가 있었다.
쾅!쾅!쾅!쾅!쾅!
“공녀님!!”
방문을 거침없이 두드리며 외치는 꼬마의 목소리에 레나의 움찔거리는 느낌이 내 피부로 전해졌다.
“…죄송합니다.”
레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면서도 나에게 굳은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맨날 죄송하데.”
“….”
내 빈정대는 말에도 레나는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지 같은 알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쾅!쾅!쾅!쾅!쾅!
“공녀님!!”
움직이기 싫고, 움직일 필요도 없는데 저 알람은 우리의 사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하아…. 여기서 누워 계시면 제가 처리하고 오겠….”
“아냐, 이런 장면 보여봤자 서로 좋을 게 없지.”
“….”
침대의 위치상 레나가 방문을 열게 되면 꼬맹이가 나를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옷장 뒤로 숨었다.
레나는 그런 나를 보면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원피스 파자마를 입고단추를 잠그며 문으로 다가갔다.
쾅! 쾅! 찰칵.
“어! 고, 공녀님! 그… 괘, 괘찮…으세요?”
“….”
옷장 뒤에 숨어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아까 박력 넘치던 꼬맹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수그러든 것이 느껴졌다.
옷장 건너편에서 레나의 노기가 서린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죠?”
“그… 고, 공녀님…. 걱정이 돼서….”
진짜 빡쳤나보네.
레나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나까지 느낄 수있을 정도의 살기가 풍겨져 왔다.
전장에서 마족의 시체를 산처럼 쌓던 여자다.
순수한 살기만 따지면 여기 있는 상급 마족들도 그 위용에 짓눌릴 것이다.
“공녀님! 혹시 안에….”
“들어오지 마세요.”
“어….”
꼬맹이가 방에 잠시 들어와서 뭔가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레나가 그것을 막고.
“일과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제 열쇠를 돌려주시려고 오신 겁니까?”
“그, 그게… 여, 열쇠가….”
아직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던져놓고 갔는데, 오늘 열쇠가 없으니 당황해서 레나의 방에뛰어온 것이었다.
레나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분실하신 겁니까?”
“아, 아니에요! 그게!”
“괜찮습니다.”
“…네?”
꼬맹이는 레나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열쇠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일과가 시작됩니다. 돌아가세요.”
“고, 공녀…”
탕.
레나는 꼬맹이의 말을 듣지 않고 마저 문을 닫아 버렸다.
문을 닫고 내 앞으로 온 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옷을 갈아입어도 되겠습니까?”
“아, 나가줄게.”
“그런 것이 아니라….”
“…?”
“제 몸을 보여드리는 게 죄송스러워서….”
레나는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와, 다른 여자들을 기만하는 거 아냐 저 정도면?’
[이곳의 발육도를 봤을 때, 레나 드 페르온은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의 인간들은 크렐마을과 마왕성에서만 봤지만, 레나 정도면 최장신에 속하는 편이었다.
…쉬헐크들 빼고.
그런 레나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남자들이 평생 여왕처럼 받들어 줬을 것이다.
나는 레나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움켜쥐었다.
“읏….”
“니 몸은 내 꺼야. 니 마음대로 평가하지 마.”
“죄, 죄송합니다.”
레나는 홍조를 띠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옷갈아입는 걸 보는 건 실례지. 나는 먼저 객실로 가볼게.”
“…네, 알겠습니다. 바로 식사를 챙겨 가겠습니다.”
“응, 혹시 모르니까. 3인분 챙겨오고.”
“네, 알겠습니다.”
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해줬다.
객실로 돌아가면서 몸에 힘이 빠진 게 느껴졌다.
‘와…. 진이 다 빠진다. 레나 체력이 장난 아니네.’
사실 더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었다.
레나 같은 여자랑 할 수 있다면 10번도 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과열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결국 레나 드 페르온도 함락되었습니다.]
‘뭐… 내가 한 게 있나.’
정말 내가 한 게 있나 싶었다.
애초에 너무 위태로운 여자였다.
나는 그냥 기댈 곳을 마련해 준 것뿐이고.
아르모니아는 나에게 말했다.
[수호님이 아니었다면 레나 드 페르온의 인생은 참담한 말로일 뿐이었을 겁니다. 수호님이야말로 자신을 가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오오! 역시 내 파트너.’
아르모니아의 칭찬을 들으며 숙식 건물을 나오는데,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한숨도 못 잤어….”
“남자들 진짜 레나 덮쳤더라.”
레나 이야기가 나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몰래 엿들었다.
아마 나와 레나의 성교 소리가 건물 전체에 퍼진 듯싶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아마도 남자들에게 엿들을 계획을 실행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꼬맹이 옆방에 있으면서도 안 깼다는 거 아냐?’
지금 생각해보니까, 진짜 징한 놈일세….
여자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너도 들었어? 완전 창녀 같더라….”
“진짜 덮칠 줄 누가 알았냐 만은…. 전쟁터에서 굴렀던 여자답긴 하더라.”
“우욱…. 앞서서 싸운다 뭐다 했는데, 그런 거 하러 간 거였어? 더러워….”
‘미친년들….’
[무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기분까지 늪지대로 번지점프 하는 느낌이었다.
여자들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남자 귀족들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뭐, 저렇게 하면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우리가 지들이랑 놀아줄 레벨인 줄 알더라.”
“맞아, 맞아. 여기 오고 나서 남자들 다 흙바닥 출신처럼 생겨지더라.”
“그 새끼들 오히려 레나한테 맛 들여서 우리도 덮치는 거 아냐?”
“아씨… 불안한데.”
진짜 웃긴 대화였다.
그들 모두 여기 오기 전에는 귀족처럼 잘 지내서 때깔이 고왔을지 몰라도 둘다 거기서 거기였다.
여자 귀족들도아직 좀 귀티가 남아있을 뿐이었지, 결국 허드렛일 하는 사람과 비슷해져 가고 있었다.
내 눈에는 남자나 여자나 끼리끼리 잘 어울리게 생겨가고 있었다.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늘 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크크…. 덕분에 오늘 밤 기대가 되는구만.’
그래도 베아트리체와 밤부터 작업을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상쾌해졌다.
여자들의 수다를 뒤로 하고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창고 쪽에서 남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저번에 레나 강간 공모하던 녀석들이었다.
“야! 누구냐?”
“난 아니야! 너냐?”
“나도 아냐! 하아… 혹시 이번에 방문한 녀석 아냐?”
방문한 녀석이라는 건 내 이야기 같았다.
“씨발, 덕분에 잠도 못 자서 죽겠어….”
“보니까, 남자 새끼한테 넘어간 거 같던데. 타이밍 거지 같네.”
“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해볼래?”
“생각을 좀 해봐…. 오늘도 하겠지, 바보야….”
“아씨…. 아님, 다른 애들이라도?”
“야,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마.”
“조급 안 하게 생겼냐. 몇 달 동안 이곳에서 풀지 못해서 죽을 맛이다.”
하는 말들만 들어보면 도대체 이런 녀석들이 어떻게 귀족 생활을 했는지 궁금했다.
귀족이라고 성욕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행동이 너무 저급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구나, 괜찮은 녀석들은 이미 전쟁터에 나가서 전사한 거겠지?’
[아마 레나 같은 특수한 케이스가 아닌 한 전쟁에 참여했던 귀족들은 대부분 전사했을 겁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쓰레기만 남았는지, 아니면 쓰레기만 있었는데 우연히 저놈들만 살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쓰레기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객실로 향했다.
객실에 도착하니, 비올라는 이미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었다.
“응? 비올라 또 나가게?”
“네! 나갔다 올게요~”
비올라는 후다닥 옷을 갈아 있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마음이 심란했다.
“…막상 이러니까, 좀 섭섭한데?”
나만 바라봐주던 여자가 다른 흥미가 생기니 내심 섭섭했다.
하지만 아르모니아의 설명을 듣고, 이해됐다.
[베아트리체는 이곳을 떠나면 못 만난다는 생각에 저렇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그렇겠네. 그렇다고 베아트리체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마왕 소속, 그것도 간부급인 베아트리체를 함부로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게 있다면 베아트리체와 할 수 없다는 거 정도?
‘성욕 조절이랑 성기술 면역은 도저히 답이 없겠다. 하아… 존나 귀여운데.’
[…수호님, 정 원하신다면 나중에 계획을 완수하고 조건을 더 달아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싫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베아트리체는 내 체취가 남아있는 옷을 받는 조건으로 이런저런 귀찮은 부탁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단순히 자고 싶다는 이유로 신뢰를깨고 싶지 않았다.
만약 베아트리체가 인간적으로 싫었으면 전혀 상관없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어. 나는 한 번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배신하지 않는 한 내 쪽에서 먼저 배신하지 않아.’
[하지만 서큐버스라면 성적인 부탁 정도는….]
‘…그것도 좀 별로야.’
애 같은 녀석이라 그런 게 아니라, 애정이 전혀 쌓이지 않은 상태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략하고 싶어도 이제 시간이 부족했다.
성기술 면역과 성욕 조절이 있어서 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섹스가 좋긴 해도 그런 식으로 하는건 내 타입이 아니야. 나중에 또 놀러 오면 그때는 진짜 진지하게 노려봐야지.’
[성과가 있다면 또 휴식은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요호~’
내가 환호하는 사이에 레나가 식사가 담긴 카트를 객실로 가지고 왔다.
레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비올라를 찾는 것 같았다.
“아, 또 놀러 나갔어.
“네, 알겠습니다.”
확실히 표정이 바뀌었다.
그동안 경직된 표정으로 일관했던 레나는 이제 차분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나는 레나가 카트에서 테이블로 음식을 옮기려고 하는 것을 제지하고 물어봤다.
“레나.”
“…네.”
이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도 꿈속에서 봤던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인간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마왕성에 큰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 않지?”
“네, 그렇습니다. 저희의 일과는 대부분 청소와 빨래, 기타 잡일입니다. 여유가 있어도 충원되는 인원이라 없어지더라도 일에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있어도, 없어도 문제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레나에게 물었다.
“여기 여자들 정확히 몇 명이야?”
“저까지 일곱… 명입니다.”
“좋아, 그럼 여자들 전부 여기로 데리고 와.”
“…여자들 …말씀이십니까?”
레나는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와 행위를 하려는 것으로 오해한 듯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었다.
“어, 전부 싹 다 데리고 와. 혹시라도 나 잠시 자리 비워도 여기에 무조건 대기 하고 있어. 식사는 다 데리고 오면 하겠어.”
“……네, 알겠습니다.”
레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객실을 나갔다.
“크크, 귀엽네. 일단 비올라랑 베아트리체 좀 찾으러 가볼까.”
[…? 무슨 이유로 여자를 부르신 겁니까.]
“아~ 별거 없어. 이따 밤에 계획을 수월하게 하려고.”
[…?]
아르모니아는내 말뜻을 이해 못 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비올라와 베아트리체를 찾기 위해 객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