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2화 엑스트라(?)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1)
“야, 레나 드 페르온, 진짜 수면약 먹고 자는 거 맞지?”
“….”
이대로 지나칠 수 없는 대사가 내 귀로 들어왔다.
궁금증이 생긴 덕분에 나는 조용히 대화를 들었다.
“분명 베리우스가 그렇게 말했어.”
“아, 그 꼴통?”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물었다.
‘베리우스가 누구야?’
[어제 봤던 그 왕자의 이름입니다.]
‘아하.’
들었던 기억은 있는데, 별 관심이 없어서 까먹었다.
꼴통이라는 단어를 쓴 녀석은 후작의 후계자라고 했던 녀석이었다.
자기 나라의 왕자를 저런 식으로 이야기할 정도라는 건그 왕자가 정말 꼴통이라는 소리였다.
확실히 처음 봤을 때, 사리 분별을 못 하는 거 같기는 했다만.
“그거 어디서 나는 거래?”
“정확히는 몰라.”
“그런데 수면약 먹어도 문은 잠그고 잘 거 아냐? 여기 문 딸 수 있는 녀석 있어?”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하찮은 기술을 배웠을 거 같아?”
뭔, 개소리죠? 이미 하려는 짓이 쓰레기 양아치도 안 하는 짓인데?
“베리우스가 열쇠를 맡아 놓고 있대, 혹시라도 급한 일 있으면 깨우라고.”
“아, 그럼 열쇠를 뺏으면 되겠네.”
“그런데 수면약이 약해서 깰 수도 있다고 하더라, 밧줄이랑 천이 좀 필요해.”
“전쟁에서 구른 무식한 여자인데, 안 묶고는 힘들겠네.”
“그래서 언제 할래?”
“여기 놀러 온 녀석들 돌아가면 하자.”
나는 뒷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창고를 나갔다.
‘가자.’
[더 안 들어 보십니까?]
‘됐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해는 간다.
공녀가 존나 예쁘긴 하니까.
그리고 내가 가고 나서 한다고 했으면 의미 없다.
나는 창고를 나와서 거대 괴수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정원으로 돌아갔다.
정원에 도착하니, 공녀는 이미 음식을 담은 카트를 가지고 온 상태였다.
“…혹시 일행분을 찾으러 가셨던 겁니까?”
“아냐, 잠깐 어디 들렀다 왔어.”
나는 가제보에 있는 화려한 식탁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눈치 빠른 공녀는 바로 식탁에 음식을 올려다 놓기 시작했다.
딱 일 인분이었다.
카트에는 아직 일 인분이 더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일행분이 오시면….”
“아냐, 아무도 안 와. 그것도 올려”
“…?”
나는 의문을 띤 표정을 한 공녀를 보면서 말했다.
“앉아, 먹자.”
***
“…여긴?”
레나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건 어스름한 노을빛이비치는 복도였다.
“맞아, 일과를 끝내고 방으로 향하는 중이었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도를 걷다 보니, 중간에 한 무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레나와 엇비슷한 나이의 남자들이었다.
“….”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대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레나 드 페르온, 처녀겠지?”
“아닐걸? 전쟁에서 몇 번 따였겠지.”
“전쟁 나가서 병사들이랑 존나 했겠지.”
레나는 그들의 저열한 대화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럴 때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들의 대화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참에 책임을 물어서 해볼까?”
“그래, 한번 찔러보자.”
“씨발, 그년 때문에 우리가 이 모양이 됐는데, 뭐든 해줘야 하지 않겠어?”
레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쓰러질 뻔했다.
앞에서는 격려와 응원을 하면서 은근슬쩍 자기에게 일감을 맡기는 남자들의 대화.
그들의 대화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가슴을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이미 남자들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 나 때문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 귀족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녀들은 레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대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남자들 요새 레나 드 페르온에게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알아?”
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기둥 뒤로 숨어서 쭈그려 앉았다.
“이거 알려야 하는 거 아냐?”
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내 편이 있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자 귀족들은 언제나 뭔가 실수를 하면 자신에게 떠넘기기 바빠했다.
그렇게 잘못을 대신 추궁받고, 채찍질 당하고, 밥을 굶었다.
그런 그녀들이지만 레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 자신을 생각해주는 그녀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렇게 붕 떠올랐던 마음은 한순간에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 여자 잘못되면 뒤집어씌울 사람이 없잖아!”
“그러게, 멍청한 남자들 그 여자가 얼마나 쓸모 있는데.”
“아아! 짜증나! 차라리 마족들이 여자 얼굴이라도 보면 그년 팔고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레나의 귓속에는 더이상 여자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소매로 떨어지는 눈물만 보일 뿐이었다.
레나는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나서 벌벌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가… 가야돼. 자면… 다 해결돼….”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상황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지옥이 펼쳐져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할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복도를 걷는 레나에게 어린 남자가 달려왔다.
“공녀님!”
“하아…하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뛰어온 꼬마는 베리우스였다.
레나는 그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몸을 진정시키고, 식은땀을훔치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베리우스님.”
“그게….”
지금 하는 베리우스의 행동은 무슨 일을 저질렀을 때의 행동이었다.
우물쭈물하는 베리우스를 향해서 레나는 꾹 참고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창고 정리를 하라고 하잖아요! 저는 베텔의 왕자라구요!”
“아….”
레나는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베리우스가 트러블을 일으켜서 왔을 때는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된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어린 베리우스가 너무 딱해서 그가 적응할 때까지 모든것을 도맡아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의 철없는 행동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일으킬 때면 자신이 받게 되는 벌은 하나였다.
취침 없이 마왕성을 돌아다니며 수명이 다한 마나석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사흘 밤낮을 자지 않고 전투를 했을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피폐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베리우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공녀님!”
“…네?”
베리우스의 마지막 말이 자신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잠이 안 오신다면서요? 심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아…아…!”
레나의 시야는 갑자기 깨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며 손수건을 건네주는 남자가 있었다.
“괜찮아?”
***
“…죄송합니다.”
공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목소리를 바로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건네준 수건으로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닦았다.
그런 공녀를 보고 있는데, 아르모니아에게서 통신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무슨 조작을 하셨기에 저렇게 우는 겁니까?]
‘…안 했어.’
[네?]
‘단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어.’
나와 같이 테이블에 앉는 것을 거절한 공녀에게 가르디아를 들먹이며 강제로 앉혀서 같이 식사했다.
다 먹고 나서 나른해지자, 그녀가 식기를 치우기 전에 수면을 걸고 침몽으로 꿈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은 나머지, 꿈을 조작하지 않고 몰래 그녀의 뒤를 따라가 봤다.
그런데 가관이었다.
전쟁과 전투에 특화된 공녀는 기척을 잘 숨기는 편이었고, 평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내는 인간들의 뒷이야기를 듣기 싫어도 듣게 되었다.
그 뒷담화의 내용은 나조차도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대화 내용이었다.
‘개쓰레기 같은 새끼들….’
[화나셨습니까?]
‘아니, 그냥 짜증 나는 거지. 이 여자도 바보 같고.’
보아하니, 남자들의 계획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왕자 새끼한테 왜 열쇠를 맡기는 거지?’
그녀석을 고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쥐새끼지.
쥐새끼한테 생선을 맡긴 거다.
제일 어처구니없던 건 왕자 새끼였다.
‘그 새끼 공녀 좋다고 뒤 따라다니면서 이 꼬락서니를 만든 원흉이더라.’
공녀가 이 모양이 되게 만든 만악의 근원은 꼬맹이였다.
매일 사고치고, 모든 걸 공녀가 뒤집어써서 점점 정신을 갉아먹은 것이었다.
‘그 새끼 저번에 가르디아한테 죽을 뻔하고 나서 변한 거더라.’
[확실히 그 전에 태도와 후의 태도가 많이바뀌긴 했습니다.]
비올라를 껴안으며 으르렁대던 녀석과 객실에서 내게 벌벌 떨던 녀석이 같은 녀석이라는 게 신기하긴 했다.
그런데 공녀의 꿈속에서 봤던 녀석은 확실히 처음 만난 녀석과 같았다.
꼬맹이의 마지막 말은 나조차도 기겁해서 입을 벌리게 했으니까.
나도 내가 조작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황당한 대사였다.
즉, 공녀가 좋다고 방방 뛰는 건 그녀가 진짜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냥 자기의 보호막 같은 존재라서 좋아하는 것도 있던 것이었다.
공녀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에게 손수건을 돌려줬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 사람이 잠도 잘 수 있는 거지.”
“저는 그럼 식기를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공녀가 테이블에 있는 식기들을 카트에 싣기 시작했다.
나는 한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물었다.
“아, 물어볼 거 있는데.”
“…네, 어떤 것이십니까?”
“좋아하는 거 있어?”
“…없습니다.”
구라쟁이구만….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알았어, 그것들 놓고 다시 와. 좀 더 있다 가자.”
“…네, 알겠습니다.”
공녀가 식기를 반납하고 온 후에는 따로 수면과 침몽을 걸지 않고 조용히 정원을 구경했다.
내 죄책감 때문인지, 그녀를 향한 안쓰러움 때문인지 모르지만, 조용히 정원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게 해줬다.
***
“걔, 정말 좋아하네.”
“후후, 귀엽지 않나요?”
“흐으…. 힘들다냥….”
저녁이 되어서 객실로 돌아왔을 때, 비올라는 침대에서 베아트리체를 껴안고 있었다.
막상 이렇게 보니까, 두 사람 다 덮치고 싶어졌다.
‘한 명은 서큐버스, 한 명은 성에 대한 ‘조금’ 무지. 3P각 아닐까?’
[….]
두 사람이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을 보니, 베아트리체도 데리고 가면 어떨까 싶었다.
‘베아트리체는 등록 비용 얼마 정도 들어?’
[3만5천 에넬 들어갑니다.]
‘능력이 어중간해서 그런가….’
나쁘지 않은 비용이었다.
사실 공녀는 영입이된다면 한동안 함선 복도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었다.
생활실은 비올라의 생활실이 전부이고, 구입하는데 10만 에넬이 들어가기 때문에 좀 부족했다.
사실 복도라고 해도, 드럽게 넓고 길어서 이불 깔고 자라고 하면 나도 잘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이니까, 불만은 없겠지.
“베아트리체.”
“으으… 왜 부르냐냥.”
“그런데 너는 또 왜 왔어?”
“…응앍! 그만해라냥~”
갑자기 말을 돌렸다.
비올라를 무서워하면서 이곳에는 매일 잘 찾아왔다.
‘비올라가 그렇게 좋은가?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아직 무서워하는 거 같은데.’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수호님을 찾아오시는 게아닌가 싶습니다.]
‘나?’
생뚱맞은 소리에 의문을 표했다.
딱히 접점이 없는데.
[첫날, 수호님을 찾아왔을 때 반응도 그렇고. 제가 볼 때는 수호님의 페로몬의 영향이 미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큐버스 …묘족 …일리 있는데?’
베아트리체는 처음, 날 만났을 때부터 적극적이긴 했다.
나는 그냥 개냥이 같은 건 줄 알았지만….
냄새 잘 맡는 묘족과 음란한 서큐버스.
일리는 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말끝마다 냥냥거려서 도통 잘 모르겠네.’
[직접 여쭤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 너 좋아하냐? 이런 거?’
[…? 수호님 잘못된 문법입니다.]
‘…이런 거 좋아하는 곳이 있어.’
구식 유행어를 이해 못 하는 아르모니아를 두고, 침대에 누워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신경쓰고 보니, 베아트리체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비올라,미안한데. 베아트리체랑 잠깐만 얘기해도될까?”
“그럼요! 갔다 와요, 베라베라체.”
“으으…. 베아트리체다냥”
베라베라체는 무슨 체입니까….
나는 베아트리체를 객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꼬리와 귀가 엉망이 된 베아트리체는 힘이 쭉 빠져서 간신히 나를 올려다봤다.
“으으…. 무슨 일이냐냥.”
나는 베아트리체를 내리깔고 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야, 너 나 좋아하냐?”
베아트리체가 놀란 눈과 함께 경직된 상태로 올려다보며 나에게 말했다.
“…미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