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8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33)
이 세상모든 게이머가 집착하는게 무엇일까?
재미있는 스토리? 좋은 게임성? 매력적인 캐릭터? 낮은 확률의 가챠?
…마지막 건 빼자.
나는 단언컨대 하나를 말할 수 있다.
한방이 있는 게임이다.
주인공이 처한 위기의 순간 상황을 타파시켜주는 힌트.
보스와의 결전에서 위기의 상황에서 터지는 1% 확률의 크리티컬.
단 한방으로 모두 무찌르는 한방 사나이 같은 캐릭터.
0.0001%라는 나오지도 않을 확률의 카ㄷ….
…다시 말하지만, 마지막은 빼자.
이렇듯 한방이 있는 게임은 대박을 터트린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이머들은 언제나 한방에 중독되어서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죽을 위기에 몰렸음에도 터질지 모르는 한방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임은 죽으면 다시 하면그만이다.
하드코어 게임조차도 캐릭터가 삭제될지언정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게이머였다.
비록 NTL 장르의 야겜만 했지만….
한방의 가능성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
“….”
눈을 뜨니, 내 시야에 비치는 건 두 여성이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익히 보던 여성들임에도 누군지 기억해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두운 게 딱 봐도 밤이었다.
멍하니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입이 열리지 않고, 귓속에도 어떠한 내용도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을 계속 바라보다보니 어느 순간 내 시선을 눈치채고 한 사람은 후다닥 나가고 한 사람은 내게 달려들었다.
내 팔뚝에 얼굴을 파묻고는 뭔가 계속 입 밖으로 말했다.
“-_____—_.”
뭐라고 말하는데, 전혀 귓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서히귓속으로 소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흐으윽…. 히으윽….”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울면서 계속내 팔을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
입을 열어서 뭔가 말하고 싶어도 입술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반대 팔에 온 힘을 집중시켜서 들어 올린 뒤 그녀의 머리 위에 얹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끌어 올려서 입을 열었다.
“…괜찮냐?”
“흐아아아앙!”
처음 만났을 때, 눈물 같은 건 전혀 흘릴 것 같지 않은 여자.
냉혈한은 아니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존재.
그런 여자가 내 앞에서 목놓아 울고 있었다.
“고마워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흐으윽….”
힘들게 말했는데, 동문서답을 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내가 원하는 답은 애초에 그녀의 목소리였을 뿐이니까.
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소냐와 노파였다.
백발의 노파는 딱 봐도 이 학교에 교수로 보였다.
교수는 내게빠르게 다가와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세상 참…. 정말 깨어날 줄은 몰랐네.”
“괜찮은걸까요? 상태가….”
“일단 일어났으면 문제는 없을 거다.”
소냐와 노파는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노파는 내게 다시 다가와서 입안에 뭔가 쑤셔 넣었다.
“흡!”
“먹어 이놈아!”
“켁…켁…!”
목구멍이 막혀서 죽을 거 같았다.
‘아니, 시발 진짜 죽겠네!’
그냥 입에 넣어주면 알아서 먹을 텐데.
먹으라고 넣는 게 아니라, 쑤셔 넣고 있었다.
그렇게 쑤셔 넣어진 물체가 위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몸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일단 마나 순화용으로 만든 약이네. 아직 실험용이긴 한데, 일단 좀만 지나면 대화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네, 감사합니다. 마그타 교수님.”
백발의 교수가 나가자, 방은 다시 정적이 감싸고 돌았다.
루나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내 팔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적을 깬 것은 소냐였다.
내게 다가와서 손을 이마에 얹고는 말했다.
“괜찮아요?”
“……네.”
몸이 서서히 회복되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직 대답도 힘든 상태였다.
소냐는 고민하더니, 이야기를 진행했다.
“조금 있으면 학장님이 오실 거예요. 무조건 모른 척 잡아떼세요.”
“…? 뭐를요?”
소냐는 모든 상황을 설명해줬다.
마나 골렘의 파괴, 숲의 대련장 무단 침입… 그리고….
조교수의 죽음.
미이라처럼 말라붙어서 죽은 조교수는 사건 현장에 도착한 몇몇 사람들도 구토할 정도로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런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학장조차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마나 드레인으로 죽은 사례가 존재하지 않아서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듯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모르지만, 모른다고 잡아떼세요. 특히 조교수의 죽음은 기억도 안 난다고….”
“그렇지만 그놈은….”
“제 말 좀 들어요!”
소냐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만약 수호 학생이 조교수의 죽음에 1퍼센트라도 관여를 했다면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요!”
“….”
“슈트라 학교가 겉보기에나 휘광이 넘치고 대단해 보이는 곳이지 실상은 전혀 달라요!”
소냐는 학장이 어떤 사람인지 내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떠올렸다.
학장이 학생들을 향해서 했던 말을….
(이 학교에서 교수를 향해 칼날을 겨눈 학생이 있다면 제가 먼저 처단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저 말만큼은 절대 쉽게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인물이 생각났다.
‘아르모니아?’
[….]
‘아, 설마 통신에 문제 생겼나? 좆됐네.’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그렇게행동하셨습니까?]
‘어?’
분명 아르모니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무게감이 실려있었다.
‘어… 화났어?’
[왜, 제가 하신 말씀을 따르시지 않으신 겁니까.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면 지금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안 되지, 그럼 루나가….’
[루나 슈타트펠트가 죽는 건 단순 사고일 뿐입니다.]
‘뭐?’
아르모니아의 말에 처음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대답도 제대로 못 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내 생각을 뒤바꾸게 해줬다.
[만약 수호님이 돌아가시면 여기 있는 비올라 씨는 어쩌실생각이셨습니까?]
‘그….’
어떠한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
[수호님이 없는 이 함선은 어쩌실 생각이셨습니까?]
‘….’
초기에 아르모니아가 내게 말했었다.
나를 소환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고, 모든 것을 처분하기까지 했다고….
아르모니아는 순수하게 나의 존재의 가치를 인식시켜준 것이었다.
‘미안. 다음에는 조심할게.’
[그 말로는 안 됩니다.]
‘…다음부터는 신중하게 행동할게.’
[그 말로도 안 됩니다.]
아르모니아는 단호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상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에는 그만한 도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상황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수호님에게 비올라 씨와 함선… 그리고… 저의 무게는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겁니까?]
‘….’
아르모니아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아르모니아는 처음 만났을 때, 혼자였다.
처음부터 혼자였을까 생각하면, 그건 분명아니었을 것이다.
전에 누가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나라는 존재가있었다.
그녀가 나를 정확히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잘 뽑은 히든카드 같은 존재일 수도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 정도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그녀의 외침 속에는 분명 그런 보편적인 감정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미안, 이제 위험한 상황에서는 내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할게.’
[충분한 대답이 됐습니다.]
그제야 아르모니아는 분위기를 풀었다.
간신히 아르모니아를 진정시키고 나서 다시 소냐와 루나로 시선을 돌렸다.
소냐는 아까부터 나에게 같은 말을 다른 식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말의 요지는 간단했다.
조교수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사실만어떻게든 피하라고.
그 말은 나뿐만 아니라, 루나에게도 하고 있었다.
“알았죠? 루나 학생. 마나 골렘에 기절했다고 해명만 하면 돼요.”
“네….”
루나는 내 팔을 붙잡고 소냐와 비슷한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든, 저랑 같이 기절했다고 말해요.”
“…응,알았어.”
찰칵.
내가 대답하는 순간 누군가가 문을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학장이었다.
양옆에는 늙은 교수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아까 내 입에 약을 쑤셔넣은 교수, 나머지 한 교수는 남자인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학장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몸 상태는 괜찮습니까?”
“네…. 죄송합니다. 지금 일어날 수가….”
“허허허, 괜찮습니다. 앉아 계세요.”
학장은 평소처럼 소탈하게 웃으면서 침대로 걸어왔다.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있었던 일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합니다.”
“…네.”
“무슨 일로 숲의 대련장을 침입하신 거죠?”
처음부터 교칙을 어긴 걸 빌미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식당에 나오면서 루나에 관한 이야기를들었고, 바로 숲의 대련장으로 뛰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해준 여학생들에게 소냐 교수님에게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왜, 소냐 교수님이었죠?”
“…제일 믿음이 가는 교수님이셨습니다.”
“흐음….”
학장은 살며시 소냐를 바라보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라는 듯이 쳐다봤다.
그 후에 숲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어쩔 수없이 무단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들어간 후 골렘에 당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설명했다.
학장은 의문스러운 표정을지으며 나를 향해 쏘아봤다.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거죠?”
“…루나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것뿐입니다.”
“흐음….”
내 말에 루나는 쑥스러워서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말에도 학장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학장은 양옆에 있는 두 교수에게 물었다.
“오늘 사건에 대해서 파악하신 게 있으십니까?”
“후…. 죄송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마나 드레인의 흔적뿐이었습니다. 이상한 건 조교수가 골렘에 흡수당할 수준은 아닐텐데, 그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뇌속성 마나의 흔적도 보이긴 했지만, 골렘에게 쓴 흔적이었습니다.”
“흠….”
두 사람의 보고를 받은 학장은 눈을 감고 찬찬히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 초전도체 탄환은 한번 사용하면 소멸하게끔 되어 있었다.
하지만 분명 내가사용한 쇠구슬이 돌아다녔을 텐데, 그이야기는 따로 없었다.
‘작아서 별 관심이 없었나?’
[수호님이 기절하신 사이에 외부로 이동시켰습니다. 다행히 단순한 쇠구슬이라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오! 역시 우리 CEO님.’
내가 그렇게 감탄하는 사이에 학장은 나를 유심히 보더니,입을 열었다.
“그럼 골렘에 마법을 사용하신 건 맞군요?”
“네….”
…뭔가 불안했다.
‘꼬투리 잡힌 느낌인데….’
[그래도 분명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다만, 그가 순수하게 조디악의 인물은 아니니, 주의는 하셔야 합니다. 신의 대리자가 명령해도 거부하는 존재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자기의 편은 끔찍이 아끼는 인간이라고 했다.
기분이 상해서 막 나가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주인공은 자기일 테니까.
학장은 눈을 감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평소에 침착함을 잘 유지하던 소냐와 루나도 긴장되어서 그런지 땀을 슬며시 흘리고 있었다.
10분간 정적이 흐르던 방 안에는 미소를 띤 학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늘 일은 좀 더 조사해보겠지만, 넘어가겠습니다.”
소냐와 루나는 학장의 시선을 피해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하지만결국 학교 사유지를 마음대로 침범, 사유물인 골렘을 손상….”
학장의 말이 이어지는순간 소냐의 얼굴을 긴장감이 감돌았고 루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학장을 바라봤다.
마침내 학장은 나를 보면서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학생은 내일까지 기숙사를 비워주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