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7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12)
루나는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남자기숙사로 향했다.
마법진 구사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조언도 구할 겸 핑계를 대고 만나볼 심산이었다.
어스름한 저녁 길을 걸어서 기숙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자기숙사 사감에게 들은 이야기는 전혀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외박을 신청하고, 나갔다고요?”
“네. 성수호 학생은 내일쯤 들어오지 않을까 싶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상점을 받으면 외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루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수호가 나갔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냐, 오히려 잘 됐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루나는 뒤돌아서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앞에서 남자기숙사로 다가오는 검은 인형이 보였다.
그리고 루나의 앞까지 다가온 사람은….
성수호였다.
“응? 여긴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나는 갑자기 성수호를 보자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루나는 혹시라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될까 봐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사감 덕분에 도망치는 건 물건너가 버렸다.
“아! 수호 학생. 거기 여학생이 찾으러 왔었어요. 마침 잘됐네요.”
“하아….”
루나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심정이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고개를 제대로 못 드는 루나에게 성수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데?”
“그….”
“일단 테라스로 가자.”
“네?”
“여기서 말하기 곤란한 거잖아.”
수호는 루나의 방문 목적을 대강 눈치채고 설렁설렁한 표정으로 앞장서서 테라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루나는 그의 모습을 보자 자기 자신이 너무 바보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아… 그냥 자연스럽게 대하면 되는데,왜 이러지….’
평소에 자신과 너무 괴리감이 느껴져진 루나는 심란한 마음을 안고 성수호를 따라갔다.
***
나는 루나를 데리고 테라스로 향하면서 통신했다.
‘…설마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네.’
[이 정도면 시작은 분명 좋아보입니다.]
나는 소냐와 몇 차례의 행위를 한 뒤, 기숙사로 돌아왔다.
소냐와 행위를 마치고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은 상인으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남편은 자상하기까지 해서 부부관계도 좋은 편이라고 했다.
문제는 아이.
소냐는 자기가 아이를 못 가지는 몸이라고 말하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질에 불임과 관련된 거… 없었지?’
[네, 확실합니다. 남편 쪽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학 발달이 미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아닌, 소냐가 아이를 못 가지는 몸이라고 착각하고 성행위를 안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소냐의 욕구 불만으로 쌓여온 것이고….
다만 남편이 성행위를 하지 않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거기다 나도 현자타임이 오자, 상황 파악이 좀 되기 시작했다.
그냥 집에 놀러 와서 좀 길게 있다가는 건 몰라도 다음날 나가는 내 모습을 출근한 가정부들이 보기라도 하면 그건 진짜 골치 아파진다.
나는 어떻게든 소냐를 설득하고 기숙사로 오기로 했다.
그리고 루나와 우연히 마주쳤다.
나와 루나는 테라스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완전히 사라져서 주위에 랜턴들이 드문드문 어두운 곳을 비출 뿐이었다.
이 시간에는 랜턴이 아무리 비춰도 테라스에 누가 있는지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나는 루나를 어제처럼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루나는 전혀 거부감 없이 그곳에같이 들어갔다.
나와 루나는 좁은 곳에서 밀착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그…너무 막막해서요. 뭔가…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왔었어요. 귀찮게 했다면 죄송해요.”
루나는 나를 제대로 못 쳐다보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주시는 건가요?”
“니가 대충했을 리는 없으니까.”
“보시지도 않으셨으면서….”
“계속 봐왔잖아.”
“?”
“옆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잖아. 대충 니가 어떤 애인지는 알겠어.”
“….”
내 눈에 루나의 미묘한 미소가 포착되었다.
‘오호! 괜찮은가 보네?’
[호감적인 부분이 많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사탕발림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조금이라도 호감이 없었다면 인상을 찌푸릴만한 대화니까.
싫어하는 사람에게 들으면 스토커같이 느껴질 수도 있는 대화 내용이었다.
“일단 좀 방향을 다르게 가보자.”
“말씀해주세요.”
“눈을 감아.”
“네.”
“절대 눈 뜨지 마.”
“…네.”
루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내 말을 기다렸다.
살짝 불안해 보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하지 않을까 싶은 거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30초 정도 지나고 나서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려봐.”
“네?”
“눈뜨지 말고. 그냥 아무나 한 사람만 떠올려봐.”
“네…떠올렸어요.”
누구를 떠올렸는지 내가 알 방도는 없었다.
“그럼 이제 그 사람의 눈, 코, 입 얼굴 형태를 최대한 디테일하게 떠올려봐.”
“…그… 잠깐….”
루나는 자기도 모르게 실눈을 뜨고 내 쪽으로 바라봤다.
다그치는 목소리로 루나에게 말했다.
“눈 뜨지 말고.”
“죄, 죄송해요.”
나는 웃으면서 루나를 바라봤다.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느낌이 왔다.
‘좋아. 다행히 나를 떠올렸나 보네.’
[어떻게 아신겁니까?]
‘일단 보고 있어 봐.’
나는 루나에게 나긋나긋하게 질문했다.
“어때? 눈 모양이나 입 모양, 머리 모양 같은 게 자세하게 떠올라?”
“…잘 안 돼요.”
“정상이야.”
“네?”
“이제 눈 떠도 돼.”
루나는 내 말을 듣고 눈을 떠서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내 얼굴을 조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루나 입장에서는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거 같은데, 당사자인 나는 너무 티가 나 보였다.
그냥 내 얼굴을 대놓고 관찰하는 거 같이 보였으니까.
확신할 수 있었다.
루나의 머릿속에는 내가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루나에게 설명해줬다.
“사람의 뇌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만들어져있어. 전체적인 틀은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만 모든 것을 넣기에 복잡하다고 느끼면 바로 디테일한 부분은 그동안 넣었던 기억으로 대충 채워버리는 거야. 그리고 완벽하게 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지.”
“아…. 분명 뭔가섞인 느낌이 들긴 했어요. 대단하시네요,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뭐, 예전에 들었던 거야.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거요? 오히려 마법진보다 복잡한거 아닌가요?”
“아냐, 오히려 복잡하니까 좋은 거야. 간단한 마법진 같은 건 의미 없어.”
“…네, 알았어요.”
그녀는 바로 내 말에 수긍했다.
그렇게 수긍하면서도 내 얼굴을 계속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관찰을 자연스럽게 받으며 이어서 말했다.
“이건 내가 내준 숙제라고 생각해.”
“숙제…인가요.”
“응, 평소에는 만나서 마법진 그리기를 연습하고, 방에서 혼자 있을 때는 마법진은 잊고, 내가 내준 숙제만 하면 돼.”
“네, 알았어요.”
“그리고 인물은 아까 생각했던 인물로 고정해.”
“…알았어요.”
일단 수긍은 하고 있지만 제대로 못을 박아 놔야 한다.
“혹시라도 다른 걸 생각하면 안 돼. 왜냐하면 생각하는 게 어렵다는 식으로 회피해서 쉬운 걸로 변경하면 의미 없어지는 거니까.”
“…네, 알았어요.”
“뭐, 노력하는 건 니가 할 일이야. 다른걸 생각한다고 내가 알 방도는 없잖아. 나는 최선을 다해서 가르칠 뿐이지.”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일부러 강조했다.
“…고마워요.”
루나는 무뚝뚝한 표정을 살며시 풀고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실 루나가 할만해졌다고 다른 녀석을 생각해버리면 왠지 기분 드러울 거 같아서 일부러 제약을 건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아르모니아의 통신이 들려왔다.
[굉장히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루나 슈타트펠트의 성격상고분고분 따를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흐흐, 좋아, 좋아!’
나는 통신으로 환호하면서 루나에게 말했다.
“자, 돌아가자.”
“네.”
우리는 테라스를 떠나 각자의 기숙사로 향했다.
***
주말이 지나고 첫 등교였다.
학생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루나, 진짜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 맞지?’
[네, 집중하느라 주위에 신경을 전혀 못 쓰는 거 같습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면서 아르모니아에게 상황을 계속 물어봤다.
무조건 못 본 척해야 했다.
최대한 나를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하루종일 방안에서 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방해꾼이 등장했다.
“루나, 무슨 일 있어?”
“어? 응?”
루이스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루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루이스가 루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저 녀석이 이상한 짓 했어?”
“…그런 거 아니야.”
놈팽이의 목소리가 대놓고 내 귀에 들려왔다.
‘아니,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저렇게 이야기하면 못 듣는 귀머거리만 사나…. 저런 이야기를 다 들리게 이야기하네.’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루이스가 대놓고 나를 노려보는 게 확실히 그런 것처럼 보였다.
루나는 루이스를 보며 말했다.
“이제 수업 시간 다 돼가니까 가서 앉는 게 좋을 거 같아.”
“…알았어.”
루이스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루나는 다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의실 문이 열렸다.
더러운 인상의 조교수가 입장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3일 후에 마법진 시험을 볼 것이다. 내가 칠판에 그려놓은 마법진을 똑같이 구사하는 게 목표이니, 열심히 하도록.”
“““네.”””
다들 대답하고 마법진 그리기에 매진했다.
몇 가지 룬문자들을 빼놓아서 실제로 발동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뻘짓이 또 시작됐다.
“학생은 출신이 어디지?”
“…레빈 왕국 출신입니다.”
“호… 그곳 궁정 마법사님과 내가 친분이 있어서 가본 적이 있지. 멋진 곳이더군.”
“…감사합니다.”
루나도 적당한 선에서 대답만 하고 넘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조교수는 루나의 어깨나 팔을 터치하면서 계속 불쾌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놈, 저런 게 즐겁나.’
[하물며 루이스조차 보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습니다.]
‘저 새끼 나 때랑은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빡쳐 보이는데?’
지금 루이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악귀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수석입학생이든 뭐든 간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조교수의 위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와, 이런 놈이 조교수를 하고 있다니 말세여~’
[이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응. 어차피… 아씨, 파리 새끼가 날라다녀….’
위이잉.
아르모니아와 통신하는데, 갑자기 내 귓가에 파리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강의실 위생상태 불량이구만.
나는 침착하게 다시 통신했다.
‘후우…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파리새끼일 뿐… 아오, 시바!’
[….]
위이잉~
적당히 귀찮게 하는 것을 넘어서서 귓가에 닿은 게 느껴졌다.
‘하아….’
[에넬로 파리를 없애겠습니까?]
‘…진짜 별게 다 가능하네. 됐어.’
그런 걸로 에넬을 쓰는 것도 웃기고….
파리 쪽이 짜증이 나서 옆을 보다 보니 루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교수 새끼는 앉아 있는 루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분 나쁘게주무르고 있었다.
루나는 나를 보더니, 눈을 피해서 정면을 보고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냥 보지 못한 척했다.
‘냅두자, 어차피 나도 조용히 해야 하는 처지니까.’
[현명한 판단입니다. 루나 쪽에서 호감도가 내려갈 수 있겠지만 본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거기다 이런 놈이면 약간만 기분 상하게 해도 감점을 왕창 먹일 거 같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왜? 무슨 일… 씨바아아아알!!!!’
파리 새끼가 귓가에 닿은 것을 넘어서 내 귓속에 들어왔다.
나는 교실에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씨바!! 좆갔네, 진짜!!!”
파리는 이미 내 귓속을 빠르게 헤집고 빠져나간 상태였다.
“하아…하아….”
정신을 차리니 주위에 모든 학생이 놀란 표정의 석고상이 되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루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는데, 놀란 걸 넘어서서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상급자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여쭈어보았다.
‘아르모니아 CEO님. 어떡하죠?’
[모르겠습니다.]
CEO님께서 모르시면 어떻해야하는 겁니까….
인상이 더러운…아니, 더러운 인상의 조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학생… 무슨 일이지?”
딱 봐도 화나 보였다.
일단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그게….”
“그게?”
나는 조교수의 화가 풀릴 수 있게 침착하게 해명했다.
“옆에 벌레 새끼가 시끄럽게 해서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