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0화 마법사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 (1-5)
“싫은데?”
“….”
나는 웃는 얼굴로 시원스럽게 거절했다.
그것도 반말로.
덕분에 분위기는 시원한 여름 해변을 넘어서 칼날 바람이 몰아치는 북극 해변으로 돌변했다.
루나는 아까 보였던 미세한웃음은 사라지고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루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던 여자들조차도 당황해서 나를 토끼 눈으로 보고 있었다.
헤실헤실 웃으며 루나를 보는 나와 경직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루나의 눈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실례되는 행동 아닌가요?”
결국 루이스가 중재했다.
“아, 미안해요. 나도 모르는 사람이랑 밥을 못 먹어서요.”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할 건 없잖아요.”
중재보다는 일방적으로 내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런 식으로 반말을 하는 건 어느 나라의 예의 법이죠?”
“아…. 나는 어제저녁에 별말 없길래 괜찮은 줄 알았네요. 주의할게요.”
“뭐? 저녁?”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 발언을 들은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루나를 봤다.
하지만 루나는 내 도발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쪽의 말투는 어떻게 하셔도 신경 안 쓰지만,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씀은 삼가도록 해주세요.”
“아….”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말은 놔도 된다는 거네?”
“무슨….”
루나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미묘하게 바뀐 레벨이 아니다.
정말 당황하고 있었다.
‘켈켈켈, 저 표정을 보고 싶었다고!’
[수호님, 너무 강하게 가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하긴 이 정도에서 멈춰야겠다.’
나는 얼굴에 웃음끼 싹 빼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숙였다.
“후… 죄송합니다. 무시당한 것을 참지 못해서 제가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했네요.”
“읏….”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내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루이스와 루나.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갑자기 생뚱맞게 사과를 하니, 상황 파악이 안 될 것이다.
나는 루나를 향해서 고개 숙여서 사과했다.
“루나씨, 죄송합니다.”
“그… 괜찮아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루나는 내가갑자기 저 자세로 나오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충분히 인식했겠지, 지 잘못으로 이 모양이 됐다는 걸.’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거 같습니다.]
‘괜찮아. 루나, 저 여자 속에만 알고 있으면 충분해.’
일단 기질에 책임감이 있으니, 한번 자리 잡은 죄책감이 살살 피어오를 것이다.
거기다 성장에대한 갈망 덕분에 접근하지 않을 수도 없을 거고.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분위기를 망쳤네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무리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
나는 어제처럼 야외 테라스에 나와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석양이 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캬, 이쁘다.”
[루나 슈타트펠트가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어쩔 수 없지.”
너무 낙관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기질에 적혀있는 것을 믿고 밀고나가는수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상충하는 기질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안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좀 해볼까나….”
[수호님, 누가 옵니다.]
‘음?’
멀리서 낮은 구두 굽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내 등 뒤에서 멈췄다.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봤다.
루나 슈타트펠트.
그녀가 다소곳하게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단정한 정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아까 보여줬던 당황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또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시하고 다시 석양을 바라봤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죄송해요.”
나는 다시 옆으로 힐끗 쳐다봤다.
석양에 비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 저도 잘한 건 없으니…. 서로 퉁쳐서 없던 일로 하죠.”
“….”
일부러 존댓말로 바꿨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뭔가 고민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루나의 침묵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어느덧 석양빛을 내던 태양은 사라져 버렸다.
주위에 랜턴들이 자동으로 켜지면서 학교를 밝게 빛내기 시작했다.
“그럼 이만.”
“….”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루나를 뒤로 하고 걸어갔다.
내가 테라스 문을 열기위해 문에손을 댄 순간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화가 풀리실 때까지 이곳에 올게요. …안 오셔도 기다릴게요.”
“….”
나는 대답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와 루나가 싸웠던 일은 다음 날반에순식간에 퍼져서 유명인이 됐다.
그런데 싸운 이유가 알려지지 않아서 나만 나쁜 놈이 되었다.
남자들한테는 루나에게 이상한 짓을 한놈으로 찍히고, 여자들한테는 루이스에게 이상한 짓을 한 놈으로 찍혔다.
덕분에 아무도나에게 관심을 안 가져줘서 조용하게 지낼 수 있었다.
교수가 단상에서 오늘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말했다.
“오늘부로 너희도 정식으로 슈트라 마법 학원의 학생이 됐다. 내일부터는 수업이 대폭 늘어날 것이니, 조교에게 시간표를 받을 수 있도록.”
교수는 기타 짜잘 자잘한 이야기들을 마무리 짓고 나갔다.
그동안 오전 수업만 있었지만, 이제는 오후 수업도 받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일주일 내내 받았던 마법진 구사 수업은 이제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어들었다.
‘진짜 개 지겨웠다….’
[새로운 수업도 마냥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과목이 대폭 늘어날 거라고 생각됩니다.]
‘?x….’
공부는 언제나 힘들다….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한탄하면서 옆자리를 슬쩍 봤다.
루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고 있었다.
일어나면서 나를 힐끗 쳐다봤다.
수 초간 (나 혼자만의) 눈싸움 후에 루나는 뒤돌아서 교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루이스는 나를 노려보고는 루나를 따라갔다.
나가는 루이스를 보면서 콧방귀를 꼈다.
‘저 새끼 계속 저러네.’
[아직도 말을 거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루이스 이놈은 그 사건 이후로도매일 헤실거리면서 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사건 덕분에 동아리 안 들어도 될 줄 알았는데, 계속 같이 동아리 가자고 달라붙었다.
그러다 이렇게 아무도 없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장소에서는 저렇게 적의를 드러냈다.
‘미친놈…. 저렇게 사는 거 귀찮지도 않나….’
[그래도 남의 눈치는 보는 인물이라 다행입니다.]
확실히 용사랑 다른 점이 있긴 하지.
용사, 걔는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날 죽였을 거 같거든….
아르모니아가 주제를 바꿨다.
[성전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장난 아니더라, 전에 개판으로 그리던 마법진을 나만큼 그리던데?’
루이스는 단 일주일만에 마법진을 어느정도 잘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나와 거의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우리들은 성전의 대리자가 에넬을 퍼부어서 능력을 올린 것으로 판단했다.
나는 갑자기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그런데 아르모니아. 왜 조디악은 저렇게 못 하는 거야?’
[현재 조디악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엥? 그럼 성공 보수금은 받을수 있는 거야?’
재정난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들었다.
힘들게 가루로 만들어줬더니, 못 주겠다고 배 째라고 하면….
[지금 이 행성은 조디악의 몇 되지 않는 우위를 점한행성입니다. 이곳을 빼앗기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헐….’
천만 에넬을 줘서라도 막고 싶을 정도로 진짜 중요한 곳이라는 거다.
그 정도면 충분히 줄 만한 거 같다.
[그리고 제일 문제는….]
‘?’
[원래 조디악은 그동안 주인공들을 키우는 데 에넬을 사용하는 것을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그게 뭔 소리야? 그럼 어떻게 키워?’
[환생 시스템을 이용해서 능력치를 계승하는 식으로 키웠습니다.]
‘그럼 성전은?’
[성전은과거부터 한 번에 많은 에넬을 소모해서 주인공들을 키우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 잠깐 나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무과금 유저와 과금 유저 아냐?
‘아니, 그럼 무과금 하다가 이 꼴 난 거라고?’
[한가지 이유만을 댈 수는 없지만, 제일 큰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아니, 과금하면 에넬을 더 모을 수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자존심이 상한다면서 안 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에라이….’
지금 와서 안 하는 이유는 재정난 때문에 못 하는 것이라고 한다.
빈익빈 부익부.
나도 과금을 싫어하기에 이해는 됐다.
사실 과금 요소가 들어간 야겜이 없어서 할 일도 없었지만.
그런데 슬프다… 무과금의 말로가 재정난이라니….
‘대리자들도 결국 인간이랑 다를 건 없는 거구나….’
[그들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응? 처음에는 어땠는데?’
[신에게 권한을 받은 존재들은 감정이라는게 없었습니다.]
처음 그들이 신에게 창조될 때까지만 해도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두 개의 단체로 나뉘지도 않았고.
하지만 우주에 있는 주인공들을 조작하고 성장시키면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들의 감정이 흘러들어오고, 그걸 느끼게 되었다.
그로 인해 감정이 생기고, 다툼이 생겨서 이런 상황에 도달한 것이라고 한다.
‘아, 그냥 무작정 조작하는 게 아니구나?’
[네. 모든 감정을 느끼거나 체험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흘러들어온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애정이 생기는 거고….
나랑 비슷하네?
야겜할 때 주인공한테 빙의된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하니까.
아르모니아에게 한창 설명을 듣는 중에 뒤에서 힘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학생? 무슨 일 있나요?”
“네?”
뒤돌아보니 눈 밑에 다크서클 고드름을 달고 온 남자가 서 있었다.
까만 분장을 한 조커인 줄 알았다.
그는 이곳의 조교였다.
“이제 강의실 문을 닫아야 해서요.”
“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하하…. 괜찮아요. 이거 시간표 받으세요.”
조교는 나에게 시간표를 주면서 힘없는 미소를 지어줬다.
‘와, 이렇게 기운 떨어지는 미소는 처음이다.’
[안색만 봐도 이곳의 업무강도가 높다는 게 느껴집니다.]
나는 시간표를 받으면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요.”
나는 검은 조커를 뒤로 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
오늘도 테라스 쪽을 지나가면서 살펴봤다.
오늘도 루나는 내가 앉아 있던 의자 근처에서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오올, 일주일 동안 매일 와서 잘도 기다리네.’
[언제까지 방치하실 예정이십니까?]
‘음…. 되도록 오래?’
[그러다가 포기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도 일리가 있다.
루나가 아무리 성장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해도 나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포기하는쪽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 신경 쓰이게 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 그래서 일부러 수업 시간 끝날 때마다 눈 마주치는 거니까.’
나는 너를 신경 쓰고 있다.
라는 신호를 계속 주고 있었다.
그야 몇 달씩 그럴 생각은 없고, 한 일주일 정도 더 여유를 보고 다가갈 계획이다.
‘너무 조급할 필요 없어. 오히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나야 좋지.’
[어째서입니까?]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잡생각이 나기 마련이니까.’
악연도 인연이라고.
나는 꿈속에 싫어했던 캐릭터가 자주 나오면 갑자기 그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분명 매력도 없고, 게임도 재미가 없는데 말이지.
그리고 싫어했던 감정이 갑자기 뒤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
루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일단 나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면 가득할수록 좋다.
어차피 지금 나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자, 돌아가자.”
나는 루나를 뒤로 하고기숙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