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174화 (17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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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Abyss, Aquarium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에요."

최화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였다.

"굉장한 미인이네."

"어머, 정말요? 그냥 하는 소리 아니죠?"

"응. 이름이?"

"최화영이에요. 최. 화. 영.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그럼 화낼 거에요."

최화영이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풍만한 가슴을 남자의 팔에 밀착했다. 남자가 낮게 웃었다. 최화영은 자신의 나른하고 교묘한 태도에 교태를 얹어 마치 여우처럼 굴 줄 알았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동자가 이제는 샐쭉히 휘며 남자에게 눈웃음을 쳤다.

둘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붉은방으로 들어섰다. 최화영이 재잘대는 소리가 붉은방 안에서부터 새어나왔다.

그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최화영과 팔짱을 끼고 붉은방으로 걸어들어가자 유예린은 무엇인가가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바보처럼 무슨 생각을. 유예린이 고개 들었다. 여인들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속삭이는 최화영과 남자를 보았고, 붉은방의 문이 닫힌 후에는 유예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예린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웃었다. 쥬피 썬더 클랜원들 걸어가며 말했다.

"이제 편하게 지내겠네."

그녀의 눈치를 보던 임예정이 말했다.

"응, 그동안 언니 고생 많았어."

"언니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쥬피 썬더 클랜원들이 다들 임예정을 따라 유예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빵도 하염 없이 쌓여 있겠다, 당분간 우리 퍼질러 쉴까?"

"좋아요."

"쉬는 거 좋지!"

유예린이 쥬피 썬더를 이끌고 자연스레 침실을 향하면서 흘끗, 뒤를 보았다. 붉은방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그녀들에게 들었던 대로 방음이 형편 없었다. 내용은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최화영과 남자가 화기애애하게 재잘대는 소리가 계속 새어나왔으니까.

내 경우에는 별 대화도 없이 바로 섹스였는데. 유예린이 애써 신경을 돌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모르겠다. 머리는 패닉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침실로 들어가 클랜원들과 빵을 나누어 먹고 시시껄렁한 이야기, 게임 같은 걸 했다. 최화영을 애써 잊으려 다른 일에 몰두했다. 낮잠을 자면서 시간과 스트레스를 죽였다.

눈 뜨니 임예정이 곁에 서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언니. 목 말라. 물 마시러 갈까?"

"그러자."

유예린이 임예정과 방을 나섰다. 혹시 최화영이 재수 없는 얼굴로 서 있을까봐 주위를 살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안심되었다. 그 여자가 마력석을 얻은 건 아니겠지. 강한 친구들 클랜의 방문으로 흘낏 눈길 주면서 식수대로 다가갔다.

강한 친구들도, 아프로겐도 보이지 않았다. 운무 신세기의 셋만 조용히 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묘하게 목가적이다.

그때였다.

붉은방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직도 있나봐요. 언니."

"어……?"

자신들은 제법 오래 방에 있었다. 게임만으로 두어 시간은 지났고, 낮잠까지 잤다. 정확한 시간의 흐름은 알 수 없지만 통상적으로 유예린이 남자와 머무르던 시간을 넘겼다. 그런데 아직도 붉은방에서 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최화영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유예린은 입을 다물고 식수로 걸어갔다. 식수대는 붉은방과도 멀지 않아서 그들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 왔다. 이제는 그들의 대화마저도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후후, 거긴 부끄럽단 말이야. 아, 짖궂어. 앗, 창피하다니까안?

부끄럽긴. 귀여운데?

앗, 흣, 얄미워. 자꾸 그러면 다음에 나 말고 다른 애 보낼 거에요.

협박하는 거야? 알았어. 자, 키스.

응, 키스.

최화영이 낮게 교태 부리듯 웃음을 흘리고, 이내 둘이 입술을 부딪치고 혀 얽는 소리가 났다. 쯉쯉, 쪽쪽, 할짝할짝, 하는 소리들이 유예린의 귀를 어지럽혔다. 이윽고 다시 행위를 이어가는 것인지 최화영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본래 비음 섞인 요염한 목소리가, 행위 중에는 녹아내릴 것처럼 간드러진다. 임예정이 무어라 했지만 유예린은 무시하고 식수를 꼴깍거렸다. 미지근하고 물줄기가 약해 갈증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둘은 다시 침실로 되돌아 걸었다. 등뒤의 붉은 방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한층 격하게 할딱거린다. 그 와중에도 서로 무슨 말을 나누는 것인지 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유예린이 침실 문을 여는 순간 일제히 불이 꺼졌다. 지하 18층의 밤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희미한 마력등 너머 붉은방의 소음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예린은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풀썩 누웠다. 잠은 오지 않지만 억지로 눈을 감았다. 마력석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을 청한다.

그날 밤엔 바깥 시절의 꾸었다.

*

최화영은 눈을 떴다. 매일 보던 이층 침대의 천장이 아니라, 화려하게 꾸며진 반투명 커튼이 눈을 어지럽혔다. 샹들리에 불빛이 부서져 내리며 피혁의 틈새로 그녀의 눈동자를 간질인다. 눈을 깜빡였다. 여기가 어디지, 하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어젯밤의 마지막 기억은 그 남자에게 후배위로 당하며 절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머리의 어딘가 퓨즈가 나가는 느낌을 끝으로 기억이 암전했다. 그때 까무룩 정신을 놓은 것 같다.

그리고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리자, 자신을 꼬옥 끌어안고 있는 아름다운 소년이 보였다. 최화영은 아, 하고 자신의 몸을 가둔 소년의 팔다리를 깨달았다.

……역시 잘 생겼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젯밤은 지독했다. 그녀는 경험이 제법 있었지만 이성을 잃은 건 처음이었다. 그런 훌륭한 물건도 처음이었고, 한 번 찌를 때마다 뇌가 녹아버리는 듯한 쾌감, 어딘가 먼 곳으로 의식이 떨어져 내릴까봐 공포까지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그걸 되새기자 다시금 허벅지가 찌르르 경련했다.

이렇게까지 황홀한 남자는 처음인데. 최화영은 후후 웃으며 남자의 코끝을 건드렸다. 조각 같다. 그녀는 강한 남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압도적인 힘을 가진 데다가 이렇게 잘 생기고, 귀엽고, 훌륭한 물건에 섹스까지 황홀하다면 완벽한 취향이다. 정말 반해버렸을지도.

최화영은 다시금 아랫배가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웃고 말았다. 그의 곁에 살을 붙이고 있기만 해도 피부가 찌릿거리며 이상한 기분이 된다. 아마 유예린 그 멍청한 계집애도 이걸 느끼고 그렇게 된 거겠지. 존재 자체가 여자를 거느리는 강력한 수컷이다. 이 소년이 가진 칠흑 같은 힘의 잔상은 암컷으로 하여금 강렬하게 그의 씨앗을 바라게 만들었다. 완전 가랑이가 찌릿찌릿.

그때 소년의 눈이 열리고, 그 까마득한 눈동자가 자신을 향했다.

…….

최화영은 소년과 눈을 마주하다가, 이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혀가 얽혔다.

모닝 키스. 기분 좋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서로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침이기에 그의 물건은 절로 발기해 있었다. 그가 자신의 몸을 뒤집으려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어젯밤 이 소년에게 머리채 잡힌 채로 뒤에서 한참이나 당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애액이 배어나왔다.

그녀는 기승위를 좋아한다. 강한 남자를 자신의 미모와 교태로 굴복시키는 듯한 행위를 즐긴다. 그녀의 취향은 사디스트에 가깝다. 하지만 어젯밤, 이 남자에게 철저하게 당하면서 또다른 쾌락을 알게 되었다.

소년의 억센 손길이 최화영을 침대에 엎드리게 하고 등을 짓눌렀다. 엉덩이를 치켜올리게 했다. 철저하게 뒤에서 굴복시키는 자세,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엉덩이를 내미는 것뿐이다.

"손가락으로 직접 벌려봐."

짖궂다니깐. 최화영은 어젯밤 난생 처음으로 남자 앞에서 자신의 비처를 손으로 벌려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금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최화영은 엎드려 남자에게 자신의 구멍을 내보인 채로, 스스로 그것을 벌렸다.

아.

주르륵.

하고 꽃잎이 침을 흘렸다. 인정하자. 지금 벌렁거리고 있다. 빨리 넣어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녀는 애교를 부렸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에요……?"

"귀여워."

"그럼 빨리 귀여워해줘."

그녀가 구멍을 한껏 불린 채 엉덩이를 살랑거렸다. 이내 붉은방에서 신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

붉은방의 문이 흔들렸다.

둘은 밤새 사랑을 나누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사랑을 나누었다. 공동의 여인들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얼핏 함께 샤워하는 듯한 소리나, 둘이 대화하면서 재잘대는 소리, 웃음 소리 따위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문이 덜컹하더니 쭙쭙거리고 키스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영 언니는 아주 팜므파탈이라니깐."

도수진의 말에 강한 친구들의 여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른방에서 빵을 돌리던 유예린은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바퀴에 집중했다.

최화영과 남자는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패배감이 들었다.

최화영은 예쁘다. 몸매도 좋고, 남자들이 혹할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예린 자신도 못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는 겨우 첫만남으로 여우 같은 계집애에게 혹해버린 것인가. 얼마나 엉덩이를 흔들었으면 그 남자가 하루를 같이 보냈을까.

후후, 이젠 나가야지, 언제까지…… 흡, 츄웁, 쪽. 아흑, 씻었는데에……?

최화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어디를 건드린 것인지 다시 최화영이 할딱거렸다. 그 잘난 척 하는 여자도 남자 앞에선 어쩔 수 없네. 유예린은 생각하면서 마력석을 쥐었다.

이내 문이 열렸다.

유예린이 붉은방에서 나올 때면 늘 그랬듯, 최화영 또한 깨끗하게 샤워하고 화장품으로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전보다도 화려하게 고혹적인 본모습을 드러냈다. 피부는 맨들맨들하고, 탄력 있는 몸매에, 남자의 기운을 빨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만만한 색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몇 여인들은 한숨을 쉬었다. 최화영은 그녀들이 알던 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유예린 또한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최화영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유예린에게 그랬던 것처럼 곁에서 엉덩이를 주무른다. 그럴 때마다 짐짓 최화영이 눈을 흘겼다. 남자는 웃으면서 귀엽다는 듯 그녀의 뺨에 입 맞춘다.

"자기, 밤새도록 나 괴롭힌 걸로 모자라나봐?"

"화영이가 귀여우니까."

"말만. 얄밉다니깐."

둘은 부쩍 가까워 보였다. 이야기할 때도 서로 입술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재잘거린다.

"자기야 빨리 말해요. 애들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래."

최화영의 도톰한 입술에서 자기라는 호칭이 나올 때마다 여인들이 술렁거렸다. 남자가 최화영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화영이가 매일 같은 거 먹는 거 지겨웠다고 하더라. 새로운 맛 추가해줄게."

강한 친구들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다. 쥬피 썬더와 아프로겐, 운무 신세기도 티는 안 내도 내심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최화영이 가볍게 브이를 그리며 찡긋, 환호성에 화답했다.

"됐지?"

"응. 고마워."

최화영이 남자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만 닿았던 접촉이 이내 키스로 나아갔다. 한동안 혀를 나누던 딥키스는, 남자가 최화영의 가슴을 더듬기 시작하면서 끝났다.

"웃, 간다면서. 그만."

"다시 방에 갈까?"

"후후, 그냥 다음에 와."

둘은 그렇게 속삭이다가, 남자는 지하 18층을 떠났다. 그 어느 때보다 오래 머무른 미궁의 왕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왕의 애첩, 최화영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빙글, 몸을 돌렸다. 그 어느 때보다 생기에 찬 얼굴이었다.

강한 친구들 클랜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예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화영의 손에는, 유예린의 것과 같은 마력석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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