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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게임-156화 (15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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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끝까지 밟아 졸라 세게 박아

그녀는 인후가 운무 징기스칸의 연무장에서 만났던 소녀, 혜경이었다. 자기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배시시 웃던 마녀, 그러나 지금 그녀는 수갑을 차고 마스터의 하사품이 된 채 줄지어 선 여인들 틈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너가 왜 여기에……?"

"그 녀석은 쥬피 썬더의 스파이였다."

"……!"

"우리의 전력과 멤버들의 능력, 세력 따위를 모조리 전달하고 있었다. 처벌은 당연히 하나겠지."

클랜 마스터가 말했다.

"너 또한 그녀의 계획 중 하나였지. 그녀가 쥬피 썬더에 보내려던 메세지를 알려주겠다."

그가 종이 하나를 꺼내 길수에게 건내주었다. 길수가 그것을 훑어보면서 픽 웃었다. 그리고 모두 들으라는 듯 읽기 시작했다.

"이름, 황인후. 능력 언령. 랩을 하면 강해지는 요상한 기술이지만 잠재력이 뛰어나며, 접근해 관찰한 결과 심성이 완전히 물들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 황인후를 설득해서 우리 측으로 끌어들이면 우수한 전력이 됨과 동시에 운무 징기스칸에게도 타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임. 상부 지시에 따라 이 단계, 진달래 작전으로 넘어가겠음."

"여기서 진달래 작전이란 널 유혹해서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거지. 미인계."

클랜 마스터가 비웃는 듯 클클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쇠로 긁는 듯해서, 듣는 이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쥬피 썬더는 이미 다른 중소 클랜들, 아프로겐 클랜, 운무 신세기 클랜, 강한 녀석들 클랜 등과 연합해서 우리와 대항하려 하고 있다. 아마 지금 여기 모인 인원 중에도 스파이가 있을지 모르지."

그가 말하고서 모여 있는 클랜원들을 훑었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속을 낯낯히 훌어내려는 듯 날카로웠다.

"뭐, 누가 스파이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듣고 있는 너희들 말이다."

"……!"

클랜 마스터가 웃었다.

"내가 너희를 살려두는 건 거짓 정보를 흘리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보낸 정보는 모조리 가짜이며 함정이지."

누가 스파이냐며 웅성거렸다. 클랜 마스터는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믿기 어려워도 괜찮다. 스파이로 들어왔겠지만, 결과적으로 너희들은 내 이득이며 자산이 되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도록. 나는 너희 쥐새끼들이 우리 클랜에 들어온 것에 감사하며, 때가 되면 이년처럼 우리의 유희거리가 될 것임을 알려주겠다. 버릴 곳 없는."

클랜 마스터가 장갑 낀 손으로 혜경의 머리채를 붙잡고 인후 앞에 내동댕이쳤다.

"꺄흑!"

"황인후, 이 계집을 원하나?"

"어……."

인후는 당황해서 눈을 굴렸다.

"나는 사람을 읽을 줄 알지. 황인후. 너는 우리 클랜에 아주 어울리는 녀석이다."

클랜 마스터가 다가가 인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원한다면 주지. 내 눈이 맞는지, 이 계집의 말이 맞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겠군."

"저는……."

"가져가라."

클랜 마스터가 손뼉을 치자 다시 여성들이 줄 묶인 가축들마냥 다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인후가 엉거주춤하자 클랜 마스터가 턱짓했다.

"데리고 들어가도록."

"네, 네."

"각인을 찍어놨으니 마법 따위는 이제 다신 쓸 수 없겠지."

인후가 그녀를 일으켰다.

힘없이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팔이 가늘다. 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후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강유종이 혜경을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으며 희희낙락했다.

"히야, 혜경이가 스파이일 줄은 몰랐네. 평소에 꼴렸는데."

"…….

"인후야 오늘 우리집으로 와. 콜? 넌 하나만 데리고 오면 돼. 이년들이랑, 다른 노예랑, 그년이랑. 크큭."

인후의 이성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가슴 한 켠은 절로 들뜨고 있었다. 김아현, 정혜리, 오혜경. 모두가 인후로서는 넘보지 못했던 미인들이다. 그의 곁에 고개 숙이고 엉거주춤한 이 소녀, 오혜경은 이제 완전히 그의 소유이다.

"괜찮아?"

하면서 혜경의 등을 쓸어내렸다. 옷을 입고 있지만 부드럽다. 티셔츠 안으로 브래지어 끈이 걸리는 것도 자극적이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아는 사이였다, 라고 하는 도덕적 선은 둘의 관계 변화 속에서 쉬이도 무너져내렸다. 이제 그녀는 인후의 자비에 기대야 하는 종속물인 것이다. 인후가 미소지었다.

"진정하고. 일단 가서 얘기하자."

"……."

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내가 뭐 너 어떻게 한대? 왜 이렇게 얼었어?"

"……."

"야야."

인후가 웃으면서 마치 그녀를 달래듯 어깨를 안아 당겼다. 갑작스런 행동에 혜경의 몸이 경직됐다.

좋은 냄새가 난다. 고개 숙인 혜경의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흰 목덜미가 비쳐보였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유종을 보라. 그는 곁의 두 여자를 건드리다 못해 희롱하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두 여인의 가슴을 주무르고, 폭력으로 위협해서 정혜리에게 억지로 키스를 강요한다. 그래도 난 그 정도로 악당은 아니지. 인후는 친근하게 혜경에게 어깨도움하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왜 말이 없어?"

그러면서 몸을 가까이 하자, 혜경이 몸을 흠칫하면서 인후를 밀치고 거리를 뒀다.

"……이게……."

가벼운 저항이었지만 인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뭐, 잡아먹는대?"

"인후야. 잘해주지 마. 잘해주면 그런다니깐? 얘네를 봐."

유종이 킬킬 웃으면서 곁에 선 김아현의 젖가슴을 강하게 쥐어짰다. 고통에 그녀가 신음을 흘렸지만 유종은 개의치 않고 일그러뜨렸다. 가슴이 벌겋게 물들고 김아현이 살짝 주저앉았다.

혜경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 떨고 있었다.

"짜증나게 하네."

"……."

"그래, 니 처우는 니 스스로 결정하는 거지. 두고 보자."

혜경은 말이 없었다.

클랜 마스터는 앞으로 있을 결전이나 싸움, 그런 것들에 대해 가볍게 브리핑했다. 어차피 자세한 것은 각자 메세지로 날아올 것이다. 운무 징기스칸 클랜이 해산을 선언했다. 클랜원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정글의 주민들인 만큼, 특히나 한 지역에서 강자의 역할에 선 자들답게 오늘 하루에 대한 약탈의 계획들, 강간과 폭력의 구상들을 늘어놓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강유종이 다가와 눈을 찡긋했다.

"올 거지?"

"어엉…… 뭐."

인후가 곁에 있는 혜경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래."

"적당히 즐기다 우리 집으로 와라. 처음은 니가 뚫어야지."

"알았어. 이다 보자."

"응. 카톡해."

강유종이란 놈은 그냥 욕망에 미친 나쁜 놈 같으면서도 자신과 같은 편이라 생각하면 이리 잘 대해주는 경향이 있었다. 인후도 씩 웃으며 유종의 어깨를 쳤다. 애가 성격이 좀 괴팍하면 어때.

이게 사나이들의 의리 아니겠냐.

"자, 따라와. 오혜경."

인후가 강하게 그녀의 팔을 붙잡오 끌어당겼다. 마법진이 타투로 새겨져 마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혜경은 평범한 여자애의 몸이었기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다들 똑같아……."

혜경이 중얼거렸다.

*

예지윤은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저놈이……?"

인후였다. 인후는 곁에 예쁘장한 여자애 한 명과 함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모텔들이 군집한 모텔촌이었다. 평소 인후에게 기대한 적 없는 광경이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 주말에는 선생님 아니다, 라는 철칙을 가진 그녀였기에 굳이 터치하지도, 아는 척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학생들도 자신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자기 학생이 웬 여자애와 함께 대낮부터 모텔 내부로 쏙, 들어가버리는 모습을 목격하니 어쩐지 속이 쓰리다.

"왜?"

"아니, 제자를 봐서."

"어디?"

"아냐, 지나갔어."

"그래. 오늘 발레는 어땠어?"

"좋았지. 언제나 좋지."

예지윤은 주말에 발레를 배우고, 또 가르친다. 예전에 하던 것을 다시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발레부 고문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미모를 갖춘 예지윤은 여전히 운무고에서 인기 최고이다. 얼짱 발레 선생님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레 교습역으로 출연 제의가 온 적도 있었으나 거절했다.

"영화 예매해놨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

"그럼 카페에 있다가 가자."

"그럴까?"

"아, 오래 있어서 갑갑하다."

예지윤이 벨트를 풀었다.

"운전 중에 벨트 풀면 안 되지."

"다 왔잖아. 답답해."

"가슴도 안 크면서."

"큰데? 죽을래?"

"나중에 확인해봐야지."

"아. 변태. 오늘 집에 갈 거야."

예지윤은 조수석 글로브박스에서 휴지를 꺼내 껌을 뱉고는 휴지 뭉치를 운전석으로 던졌다.

"사납다, 사나워."

"시끄러. 영화는 뭔데?"

"사바나의 게임이라고 요새 뜨는 공포 영화야."

"근데 오빤 공포영화 싫어하잖아."

"지윤이랑 보는 영화는 다 좋은데?"

"어이구."

차량이 기가박스 시네마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지윤은 운전하는 남자친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곳은 콧날 때문에 옆에서 보아도 입체적이다. 잘 생기고, 자수성가한 남자다. 재미있고.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흘러갔다. 학생들은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는 좋은 교사이고, 취미인 발레는 다른 사람들이 감탄하는 정도이며, 사귀는 남자는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여전히 미모는 시들 줄을 모른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이 생활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지윤은 인터넷에서 지금 볼 영화의 평점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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