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146화 (14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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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끝까지 밟아 졸라 세게 박아

정글에 발 들여놓는 자들을 아는가?

정글에 아무 연고도 없는 이들이 갑자기 힘을 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친족이 정글의 주민이거나 하는 경우로 힘을 이어받는다. 희귀하게 격세유전하여 난데 없이 튀어나온 능력자들이 있기는 하나, 힘이 강한 경우는 적다. 그러나 때로는 돌연변이가 존재한다.

대개의 능력은 일찍이 발현되어 클랜에 영입된다. 사춘기가 주된 각성의 시간이며, 클랜은 사춘기의 소년을 선호한다. 그들이 원하는 바가 명확하여 일찍이 자신들의 뜻대로 길들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찍 영입된 소년 중 재능이 충분하다면 클랜의 필요에 따라 커리큘럼을 따르고 능력을 발전시킨다. 한 예로서 한국 리버티 클랜의 행동대장인 김무호 역시 정글에 아무 연고도 없었으나 중학생일 때 능력을 발현하고 영입되어 지금은 강력한 능력자로 각성해 한국을 휘젓고 있다.

지금 또 한 명의 소년이 자신의 능력에 눈 뜨고 있었다.

이름은 황인후. 이제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며, 공부를 잘한다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다거나 잘생긴 것은 아니고,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인문계 청소년이다. 원래라면 이 소년이 정글의 주민이 된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닐 터였다. 누구나 그렇게 주민이 되고 음지에서 일반인은 모르는 세계의 비밀과 쾌락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영입하려 준비하던 클랜들조차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는…….

"야. 어제 깁미더머니 봤냐? 랩 졸라 쩔어. 씨발, 스웩! 난 이제 피자빵 외곽 빵은 안 먹고 버린다. 이게 나의 스웩!"

"병신 힙찔이 새끼."

"꺼져 아이돌덕후 새끼. 남자는 하렘소울의 힙합이지. 마이크로폰 첵."

중증 힙찔이였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며 활발한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과 키보드 배틀로 스놉 정신이 깃든 황인후의 친구, 장연태는 이미 정치적 중립과 똘레랑스를 견지하는 태도를 확립한 전도유망한 미래의 인터넷 논객이자 오타쿠였다. 그런 그가 거침없이 힙찔이라고 타인의 개인 취향을 깔아내리는 이유는 그가 정말로 힙찔이이기 때문이다.

"발라드 사랑노래 지겹지도 않냐? 아이돌 노래는? 락부심 십오지구요. 프콘이 형 앞에서 스웩 함 당하면 어버버하면서 오줌 지릴 걸."

인후가 연태 옆에서 깝죽대가가 확 차여서 밀려나 넘어졌다.

"비켜 이 힙찔이 새꺄."

나름대로 일진 행세를 하는 남학생이었다.

"병신새끼가 랩배틀 말고 나랑 주먹배틀 함 뜰까보다."

인후를 지나가면서 그가 비웃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축은 아니지만 싸움을 잘하지도 않는 인후는 그냥 씨발하고 옷을 툭툭 털었다.

기분이 나빠진 인후는 연태 옆에서 깝죽대는 걸 멈추고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썼다. 굳이 묘사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하겠지만 그의 헤드폰은 자랑스러운 닥터드레 헤드폰이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랩퍼의 음악을 켰다.

스윙스.

스웩의 대명사. 그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단연 불도저다. 앞으로만 가는 불도저 같은 정신으로 살고 싶다. 많은 논란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스윙스를 좋아했다.

─ 넌 딴 랩퍼들과 술집에서만 하는 말 네 음악에선 절대 못 해.

이렇게 거침 없는 랩을 쏟아낸다.

─ 너를 졸라 세게 찬다 그건 마치 세 대의 차가 나란히 달려가서 끝까지 밟아 졸라 세게 박아

멋지다. 이게 스웩이고 사나이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되는 가사가 그를 울렸다.

"어이 힙찔이."

음악에 열중하는 그를 누가 건드렸다.

닥터드레를 빼자 같은 반 학생인 김연지였다.

"죽고 싶냐."

"또 스윙스 노래 듣고 있지?"

"어."

"안 질리냐?"

"넌 밥이 질리냐?"

"어이구, 대단한 힙합 전도사 나셨네."

김연지는 예쁘장한 여학생으로, 고등학교 진학 후 서로를 경계할 때 힙합이라는 공통 분모를 찾아 친해지게 된 아이였다. 하지만 점차 황인후가 그저 힙합을 즐기는 것을 넘어 중증 힙합매니아라는 걸 알게 되고는 놀리기 시작했다. 인기도 많은 여자애와 가장 허물 없는 사이라는 게 황인후로서는 내심 즐거웠다. 짝사랑한 때도 있었지만 김연지가 그럴 틈을 주는 정도는 아니어서 이 관계로 만족하고 있었다.

"아, 일 학년인데도 방학에 학교 나와야 되고. 이 학년 삼 학년 되면 더 짜증나겠다."

"넌 고퇴하고 홍대가서 랩해. 혹시 아냐? 랩퍼 될 수도?"

"난 그냥 리스너일 뿐."

"아 졸라 웃기다. 리스너는 무슨."

인후의 단어선택에 연지가 깔깔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방학 보충학습은 하나마나인 수업 몇 번, 그리고 자습이 태반이다. 일 학년이라는 이유로 야간자율학습은 면제였으나 그게 특권이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후는 헤드폰을 끼고 스윙스의 노래를 크게 튼 채 책을 보는둥 마는둥 했다. 옆을 흘끗 쳐다보니 그처럼 이어폰을, 그러나 남과 다르게 귀 뒤로 넘기는 형태의 오디오 테크니카를 사용한다. 오타쿠답다.

그래도 연태는 공부를 잘해 항상 상위권을 유지한다.

그냥 랩이나 들으며 한 숨 자야겠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귀가 시간은 항상 석양이 물드는 오후 즈음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늘 반복되는 루틴, 그러나 그가 능력을 각성한 것은 이 루틴과 루틴의 사이 한 틈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 같은 교복들이 앞을 걷고 있었다.

"야, 김연지 예쁘지 않냐?"

"예쁘다기보단 몸매가 쩔지. 다리 봤냐?"

"젖탱이 커. 따먹고 싶다."

"미친 새끼."

같은 반은 아니지만 같은 학년이라 지나가며 얼굴은 몇 번 본 적 없는 남학생들이었다. 아는 사람 이름이 나와 귀를 기울였다가, 그저 그런 더러운 토크를 하는 것을 알고 기분이 나빠졌다.

저들의 귀에다가 스윙스 노래를 고막 찢어져라 들려주고 싶다.

─ 넌 딴 랩퍼들과 술집에서만 하는 말 네 음악에선 절대 못 해.

뒤에서 지네끼리만 낄낄거리는 저런 말들, 본인 앞에서는 절대 못할 말들 낄낄거리는 꼬라지가 역겹기 짝이 없다.

인후는 힙찔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말을 함부로, 본인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연태를 놀리는 것도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니까. 반장난 섞은 놀이이다. 그가 비록 잘난 것 없이 힙합 자부심만 가진 독선적인 음악 편식가라고 해도, 뒤에서만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스윙스 가사처럼 저들을 졸라 세게 차고 이빨 나갈 때까지 졸라 밟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힘이 없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싸움뿐 아니라, 돈이든, 학력이든, 권력이든, 저렇게 뒤에서 수근거리는 새끼들 졸라 세게 차고 세대의 차가 끝까지 밟아 세게 박아 이빨 서른 네 개 나갈 때까지 박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실력, 더 나은 자가 되어야 했다.

처음으로 인후는 힘을 갈망하게 되었다. 당장 저들을 때려눕히기 위한 힘처럼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마주할 수많은 WACK MC들을 비웃기 위한 더 높은 자리를 갈구하게 된 것이다.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인후는 무엇인가가 이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복부에서 무엇인가 타오르고 있었다. 인후가 중얼거렸다.

"다리 걸어 넘어뜨리고 싶다."

그러자 세 남학생 무리 중 연지를 따먹고 싶다고 한 녀석이 넘어졌다.

아, 쪽팔려, 병신, 따위 대화가 오간다. 그걸 보고 인후가 멈칫했다.

"……?"

인후는 설마했다. 그러나 인후는 분명 가슴의 어떤 열기를 느끼고 그걸 내뱉었었다. 그렇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있었다. 인후는 그 불길을 이어서 다시 속삭였다.

"넘어져서 코 깨져라."

넘어졌던 남학생이 일어서서 걷다 다시 넘어졌다. 앞으로 우당탕 넘어졌는데, 일어나니 코피가 흘렀다.

"어, 너 피! 코피! 병신!"

"아 씨발, 뭐야 쪽팔리게."

친구들이 비웃었고 그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다 인후와 눈이 마주치고, 쪽팔린지 에이, 하고 몸을 돌렸다. 인후는 우뚝 섰다.

진짜다.

인후는 다시 한 번 해보았다.

"너를 졸라 세게 찬다."

그 남학생이 갑자기 복부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어억……."

"왜 이래? 너 괜찮냐?"

"이 새끼 넘어져서 어디 잘못된 거 아냐?"

"배…… 누가 찼…… 어억……."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명치를 찬 듯한 고통에 남학생은 말도 못하고 꺽꺽거렸다. 인후는 환희했다.

인후는 뒤돌아 거리로 달려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고 있다. 차들이 움직인다.

인후는 차례차례 시험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일종의 염력이었다. 말로 행하는 능력이다. 물리적인 일에만 발동되었다. 특정 대상에게,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라거나 노래를 부른다 따위의 정신을 강하게 조종하는 일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세한 제스쳐나 몸짓 정도는 조종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본다, 따위의 작은 행동은 가능했다. 물리력이 몸을 돌린 것인지 정신이 조종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정신 쪽도 어느정도 가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았다.

"바람이 불어. 네 벨트가 풀어, 져서 팬티 보여 내 눈이 배불러!"

그가 개구린 라임을 시도했다.

그러자 세찬 바람이 불더니 지나가던 여성의 스커트가 스륵 풀어져서 아래로 떨어졌다. 검은 스타킹에 감싸여 있었으나 그 안에 자리한 흰 팬티는 분명 보였다. 비록 뒷모습이었으나 늘씬하고 멋진 엉덩이와 허벅지였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스커트를 다시 올려 입었다.

그렇다.

그의 말하는 대로 되는 능력은, 라임을 살리거나 펀치라인을 날리면 더 정교하고 강해졌다.

……스웩.

인후는 흥분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말하는 대로 되는 능력을 얻었다.

"황인후!"

그런데 갑자기 스커트를 풀려 팬티를 노출했던 여성이 뒤돌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황인후는 화들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봤지? 입 다물어라. 깜짝 놀랐네. 너 소문내면 나한테 죽는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녀가 다가왔다. 알고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어, 선생님. 쌤 여기 무슨 일이세요."

"못올 데라도 왔니? 친구 보러 왔는데."

황인후의 담임 예지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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