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3 / 0180 ----------------------------------------------
2-4. 적과 흑
했다.
유나가 손으로 뺨을 감싸쥐었다.
저 둘은 기어코 카섹스를 하고 말았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였다. 호화스러운 리무진 조명을 받으며 저 금발 여인의 하얀 살결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옆자리에 외투와 스타킹, 팬티를 벗어 놓고, 남자의 허벅지 위로 올라타 교미했다. 그녀의 옷자락이 출렁이면서 아래로 남자의 거대한 물건이 창과 같이 여인의 뱃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꿰뚫린 여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며 부들거렸다.
그리고 지금도 끝나지는 않았다.
그에게 매달려 덜덜 떠는 여인, 그 어깨 너머로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나는 그냥 고개 숙였다. 정글의 일원으로서 온갖 꼴을 다 봤지만 그냥 더럽고 추잡했을 뿐, 이처럼 야릇하지는 않았다. 보고 있는 본인이 떨렸다.
"난 아직인데."
"다 와 가는데…… 한 바퀴 더 돌까……?"
"두 바퀴 돌자."
그리고 둘이 다시 입을 맞추었다. 유나는 한숨을 쉬었다. 목적지에 이르렀는데 굳이 차를 돌리며 차 안에서 몸을 섞겠다는 말 같았다.
"부러우면 같이 해. 올래?"
수현이 예브게냐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웃었다. 수현에게 올라탄 예브게냐가 책망하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둘의 결합부위에 원피스 자락이 내려앉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트 아래로, 그리고 시트와 맞닿은 원피스 끄트머리로 애액이 젖어들어 음행의 흔적이 적나라했고, 성교의 냄새가 진동했다. 찔걱거리는 소리와 여인의 교성이 계속해서 귀를 괴롭혔다.
"내가 있는데. 또 꼬리쳐?"
"반대지. 저 여자가 날 뜨겁게 보는데 어떡해."
"흐응. 바보로 만들어버린다고 해. 하아……."
"쟤네 클랜마스터가 화낼 걸."
"마스터나 클랜원이나 똑같애. 마스터는 주인님이랑 자달라고 추파 던지질 않나……."
둘의 말소리를 듣던 유나가 그 둘을 쳐다보았다. 부끄러워 다시 고개를 숙였으나 클랜 마스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고한 마스터가 그럴 리 없지. 그녀는 흥, 하고 코웃음쳤다.
"클랜 마스터를 욕보이는 것만은 참지 않을 것이다."
"어머. 쟤 좀 봐."
수현이 푸흐흐 웃으며 허리를 살짝 튕겨 올리자 예브게냐가 꺄읏, 신음하며 수현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스스로 위아래로 요분질을 쳤다. 찔걱거리는 소리, 여자의 신음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수현이 그녀의 옷자락으로 손을 밀어 넣어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척추를 타고 올랐다. 원피스가 말려 올라가며 둘의 결합부위와 예브게냐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거대한 물건이 여인의 구멍을 찢을 듯 확장시키며 안을 관통하고 있었다. 율동을 따라 드러났다, 사라지는 남근의 존재감에 유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몸에 저렇게 큰 게 들어간다는 말이야.
물건이 한 번 들어찰 때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몸을 비틀며 신음하는 모습이 이해갈 것만 같았다.
"나중에 직접 보면 알겠지."
그리고 다시 둘은 둘만의 세계로 들어갔다. 자세를 바꾸어 뒤로 행위를 이어간다. 실제 눈으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남녀가 섹스하는 광경은 비현실적이었으나, 둘의 신음소리와 음란한 냄새, 찔걱거리는 소리, 깊게 삽입할 때마다 철썩거리는 살소리가 그녀의 오감을 잡아 끌었다. 현실이다.
남자의 물건이 강하게 들어갔다가, 천천히 되돌아올 때,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육중한 남근의 귀두 부분이 여인의 질벽을 꿰어 바깥으로 물고 나올 때, 찰싹 남근에 달라붙은 여인의 속살에서 애액이 질질 흘렀다. 이미 이성이 나갔는지 여인은 목이 쉬어라 신음하고 있었다. 방음 마법으로 처리한 차량인 것은 알고 있으나, 자신의 귀는 손으로 막아도 차음되지가 않았다.
"아흣! 하아, 하으응! 하아앙……! 하으윽…… 으흐응……!"
유나는 눈을 감았다. 커져오는 신음에 이를 악물었다.
들킬까봐 다리를 오무렸다.
……젖었어.
정글의 괴물인 주제에, 둘은 마치 평범한 연인들인 것처럼 사랑해, 사랑해, 소리치며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도 여자도 몸을 굳혔다. 여자가 주기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남자가 사정한 정액이 자궁을 때릴 때마다 몸을 삐끗거리며 경련하는 여인을 유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행위 끝에 여인의 몸에서, 칼집에서 칼을 꺼내듯, 굵고 긴 물건이 스르르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남자가 물건을 여인의 엉덩이에 걸쳤고, 채 다 내지 못한 정액이 그녀의 엉덩이 위로 뿌려졌다. 그녀는 절정에 취해 정신을 놓은 듯 늘어진 와중에도 엉덩이를 흔들어 교태를 부렸다.
*
수현과 예브게냐는 곧바로 샤워실로 들어갔고, 샤워실에서 다시 응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았다. 곁에는 인형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티비 채널을 돌리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손을 부르르 떠는 게 제대로 몰입했다.
한 소녀는 흥칫핏하는 표정으로 유나를 쳐다보며 경계하고 있다. 메이드 복장이다. 괜히 유나가 앉은 자리로 와서 먼지를 털고 쓸어 그녀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뻗은 날씬한 다리가 되게 예쁘다. 같은 여자지만 끌어안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리고 한 여자는 식탁에 다리를 걸치고 의자에 길게 앉아 있다. 흑발에 흑안, 흰 피부, 세상에서 가장 고혹적이라고 표현해도 충분할 만치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유나가 들어섰을 때도 흘끗 보고 눈썹을 잠깐 치켜올렸다가 다시 제가 읽던 책에 집중했다.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고 싶다.
그러니까 여자 모두 미친듯이 예뻤다. 느껴지는 힘 또한 모두 자신보다 강하다.
그 남자의 정체가 뭘까. 하렘을 꾸미고 살고 있다. 정글의 주민이라고 한들 이정도로 미모에 힘까지 갖춘 여인들을 두른 자는 처음 보았다. 그 금발 여인은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매달리지 않았던가. 지금도 욕실에선 그녀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유나는 티비나 보았다. 악녀 하나가 여주인공에게 컵에 든 물을 뿌렸다.
"……!"
곁에 앉은 소녀가 손을 부르르 떨었다.
마력이 진동하며 옆에 앉은 그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나가 한 발짝 떨어져 앉았다.
이윽고 드라마가 끝나고 다음회 예고가 나올 때 즈음, 그 남자, 수현과 예브게냐가 나왔다. 둘 다 가운만 두른 채라 머리에 물기가 채 가시지 않았다. 여인은 샤워하여 말끔한 맨 얼굴인데도 화장했을 때와 다를 바가, 아니 더 맑고 예뻐진 것 같다. 집안에서도 팔짱을 끼고 옆에 붙어 있다.
"유나라고 했지?"
수현이 쇼파로 와 이브린의 곁에 앉았다.
다른 쪽 옆에는 여전히 예브게냐가 앉아 수현의 팔에 달라붙어 있다. 그녀가 다리를 꼬우며 늘씬한 허벅지가 다 드러났다. 수현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예브게냐는 수현의 귓불에 키스한다.
이브린이 고개를 들어 수현과 눈이 마주쳤고, 둘은 가볍게 츄, 입을 맞췄다. 한 번 입 맞추고 부족했는지 두어 번 더 가볍게 쪽쪽거리고는 이브린의 어깨를 감쌌다. 이브린 또한 자연스럽게 수현에게 기대며 그의 몸을 안는다.
양 쪽으로 미모의 여인과 소녀를 거느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현에게, 유나는 퇴폐적인 하렘의 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때려서 미안하고. 니네 마스터 불렀으니까 곧 올 거야."
"……정말인가?"
"그쪽 클랜 마스터가 한국 온 것도 나 때문이니까.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만나서 이야기 좀 해. 뭐 먹을래?"
"필요 없다."
유나가 완강히 거절했다. 여전히 부서진 검 듀랜달을 끌어안은 채였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저는 먹구 시퍼요."
"……?"
수현이 고개를 내렸다. 이브린이 붉고 커다란 눈망울로 수현을 올려다보며, 그 분홍색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브린이 배고파요. 같이 먹어요. 주인님이랑 먹구 시퍼요. 주인님 기다리느라 안 먹었쩌. 기다리면서 브린이 코하다 기싱 꿍꼬또."
"……."
"꿍꼬또 기싱 꿍…… 별로인 것이냐?"
"……."
"내 치명적인 애교가 통하지 않다니…… 역시 내 주인이 될 만한 그릇이군. 또 한 번 감탄했느니라."
"또 인터넷에서 배웠지."
"흠, 흠. 거기 인간 여자. 배고프니 치킨이라도 시켜보거라."
이브린이 딴청을 피우자 수현이 웃으면서 이브린을 꽉 껴안아 품에 가두고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이브린이 앓는 소리를 냈다. 수현이 이브린의 이마에 입 맞추고는 풀어주었다.
"귀여웠어. 더 해봐."
"끝이다."
"해보라니깐. 귀여웠다고. 졸귀."
"흥. 다신 볼 일 없을 것이니라."
"삐졌구나?"
둘이 꽁냥거리는 모습에 유나의 표정이 썩었다. 뭐 CG급 미소년 미소녀가 저러고 있어서 눈은 호강하는데 그 내용물은 차마 솔로로서 더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수화기를 들었다.
"거기 치킨집이죠!"
"그거 장난……."
"네 여기 넷이니까 두 마리, 간장이랑 양념으로, 여기 주소가 뭐냐?"
저 멀리서 식탁에 앉아 있던 정하가, "나 치킨 싫어!"하고 소리쳤지만 올가가 전화기를 넘겨 받아 주소까지 술술 말했다.
사태가 진정되고, 유나의 부서진 검에 대해 수현이 입을 열었다.
"저 칼 말인데……."
"듀랜달을 고치려면 정글넷 공인 1급 이상의 장인이 필요하다."
역시 이브린은 다 안다. 듀랜달이란 것도 벌써 파악하고 있었다.
"비용이 많이 들겠지. 십이기사회의 눈도 피해야 하고. 대체 어떤 무식한 자가 저걸 부숴버린 것이냐?"
"그게 나야. 이 애늙은이 꼬마야."
수현이 다시 이브린을 품에 가두고 괴롭혔다.
"으으…… 난 주인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위대한……."
"시끄러."
수현이 이브린의 양뺨을 쥐고 주욱 늘이다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입술에 키스했다. 혀가 잠시 오가다가 떨어졌다.
"뭐. 그렇다네. 고칠 수 있다니까 걱정 마."
"마스터 볼 낯이 없다."
"곧 올 건데 볼 낯 없으면 어떡해? 내가 다 설명할게."
저택의 대문 벨이 울렸다.
"치킨? 치킨이다. 치킨!"
올가가 쪼르르 달려가 문을 열어주고 현관에 섰다. 현관이 열렸다.
나타난 것은 치킨배달부가 아니라 키시노였다. 스키니진에 겨울 코트를 코디한 쉬크한 차림새에, 머리카락까지 함께 머플러를 둘렀다. 눈을 휘며 웃었다.
"안녕. 또 보네요?"
올가가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가보세요."
"응?"
키시노가 거실로 걸어갔다. 예상 못 한 이상한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