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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게임-139화 (13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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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적과 흑

어이가 없는 발언이라고 올가가 코웃음을 치려는 찰나였다.

"……."

지금 주인님. 이 제안에 몹시 끌리고 있다. 갑자기 수현이 진지하게 고민하자 올가는 주인님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와. 주인님 그게 지금 끌려요?"

"좀……."

아니, 지금 여자는 질릴대로 얻으면서 또? 게다가 저 여자는 자기가 무슨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건방지게 구는데? 올가의 심기가 아주 불편해졌다. 아니, 좀 예쁘장해도 저정도면 정하나 예브게냐 이브린이나, 아님 자신보다 뭐 낫지도 않은데. 분위기는 딱 정하 언니 닮은 게 주인님 취향이긴 하지만 겨우 그거 때문에 귀찮은 짓을 떠맡을 이유는 없다. 차라리.

올가가 수현에게 귓속말했다. 차라리.

지금 강간해버려요. 차라리. 저 여자 건방지게 굴잖아요.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그냥 억지로 범해버리고 버려요.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약한 몸뚱이, 주제에 대단한 대가라도 가져온 것처럼 구는 여자에게 정글의 방식으로 처리하고 싶다. 올가의 악의 섞인 제안에 수현이 다시 올가에게 귓속말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좀 끌리잖아.

"……."

수현은 강하다. 이룰 것을 이루었다. 아름다운 네 연인이 있다. 그리고 이게 문제다. 배부른 포식자는 이제 세세한 설정과 디테일에 집중하게 된다. 같은 섹스라도 색다른 방식과 환경을 원하는 것이다.

"즐겁게 해줄 수 있는데. 그쪽들보다 훨씬."

키시노가 싱긋 웃었다. 눈웃음치는 모양새가 비할 바 없이 관능적이다.

정하가 수현의 옆구리를 꼬집었으나 수현은 개의치 않았다.

"선수금?"

"그런 건 조금 곤란……."

키시노가 웃으며 수현의 제안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그녀의 몸이 굳었다.

"갑을, 착각하지는 말고."

어둠은 이미 그녀를 휩싸고 있다. 키시노가 침을 꿀꺽 삼키려고 했으나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수현이 팔을 뻗어 그녀의 쇄골이 패인 셔츠를 붙잡아 당겼다. 엷은 셔츠는 부욱 실밥 터지는 소리를 내며 수현에게로 이끌렸다. 수현에게 끌려가면서, 키시노는 달큰한 향을 맡았다. 소년의 눈동자에서 나는 냄새일까, 그처럼 칠흑 같은 냄새였다.

수현이 키시노에게 키스했다.

입술이 맞부딪치고, 곧이어 혀가 밀려들었다. 입술이 열리고 설육이 새어드는 순간, 그녀는 단단한 외피가 젖혀지고 안의 내밀한 속살이 열리는 듯한 감각에 현기증을 느꼈다. 혀가 얽히는데, 도리어 저려오는 것은 아랫도리였다.

"별로 못하는데?"

키시노의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수현이 흐흣 웃었다. 눈을 감고 있던 키시노의 눈꺼풀이 열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현의 눈웃음, 그 안에 스민 어두운 심해의 빛에 전율하면서 수현의 소매자락을 붙잡았다.

"아……."

키시노가 수현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다.

수현이 키시노를 물고 있던 이를 살짝 거두고서, 그녀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훑었다. 그 선이 쨍하게 키시노의 육체를 데우고, 아래로 떨어져내려 다시금 아랫배를 달구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지 않아도 아래에서부터 느껴지는 소년의 부푼 열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어질거린다.

수현이 가볍게 츄, 입맞추고는 손으로 그녀의 뒷덜미를 감쌌다. 손아귀가 그녀를 아래로 부드럽게 밀었다.

입으로…….

그때 그녀의 몸이 젖혀졌다.

"그만."

정하였다. 정하가 수현을 흘겨보며 말했다.

"선수금이라며?"

"뭐…… 그렇지?"

"그럼 여기까지 하지?"

"뭐…… 그럴게."

수현이 웃으면서 몸을 물렸다. 키시노는 멍한 상태로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머리를 살짝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이렇게 연약한 약자로서 희롱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엘리제의 직계로 처음부터 강했다. 유희거리로 다루어지느니 자신이 칼을 박고 조롱하던 위치였다. 수현의 눈이 그녀를 훑었다. 노골적으로 가슴과 다리 사이를 훑는다. 자신의 몸뚱이를 견적 내듯이 훑는다. 그가 원한다면 자신은 거미줄에 사로잡힌 사냥감처럼 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냥 지금 해버릴까? 하고 정하에게 속삭이며 키득거리는 소년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순진한 애인…… 혹은, 강하지만 물들지 않는 소년…… 따위가 아니라, 이 복마전의 주인이었다. 그를 둘러싼 이브린과 정하, 그리고 악명 높은 멘탈마스터까지 애첩으로 거느리는 존재였다.

"알겠어. 어떤 식으로? 죽여줘?"

"……어떤 식으로든."

키시노는 게으른 이브린을 움직일 수 있다고는 기대치 않았다. 다만 아브락사스를 제공한 자로서, 그 힘의 근원인 이브린에게 그의 힘을 약화시킨다던가, 비스트, 김상호가 행한 진화를 다시 되돌린다던가 하는 정도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 알았고, 실은 정글의 누구도 몰랐다. 일본을 뒤흔드는 비스트를 저 소년은 벌레처럼 밟아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브린조차 노예로 부릴 수 있었다.

저렇게. 수현은 이브린에게 어깨동무한 손을 원피스 목깃으로 넣어 소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이브린은 살짝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뺨을 붉힌 채 가만히 수현의 애무를 즐기고 있었다. 어딜 건드렸는지 이브린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놈이 여자가 됐다고?"

수현이 거북한 표정으로 이브린을 쳐다보았다.

"원래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어 생각하지 못했구나."

"어떻게 됐는데? 보기 흉하겠다."

키시노가 스마트폰을 꺼내 조작했다. 그리고 수현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비스트가 피묻은 주먹을 혀로 핥는 장면이었다. 먼 곳에서 확대해서 찍었는지 주변 시야가 흐릿했으나 그 소녀만큼은 선명했다. 카메라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렌즈를 향해 씨익 웃고 있었다.

"어?"

"……."

"이거……."

수현이 이브린을 쳐다보았다. 이브린이 딴청을 부렸다.

뒤에서 수현의 머리에 코를 묻고 있던 정하도 이브린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브린 너랑 닮았는데?"

머리도, 눈도 붉었으나 얼굴은 이브린의 자매라고 해도 될 만치 비슷했다.

"이게 김상호야? 그 쓰레기 새끼가 이브린 너 비슷한 얼굴 한 기분이 어때?"

안좋은 기억이 남은 정하가 이브린의 양 볼을 꼬집으며 이죽거렸다. 이브린이 헛기침했다.

"더럽지?"

"뭐…… 그렇지도 않느니라."

"나라면 당장 샤워라도 하고 싶겠다."

"그게 꼭 김상호겠느냐?"

"무슨 소리야?"

나머지 모두의 시선이 이브린에게 모였다.

계단을 타고 예브게냐가 내려오고 있었다. 하품하면서, 아직도 안 끝났냐는 듯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이브린이 입을 열었다.

"아브락사스의 진화라는 것은 실은……."

*

"아, 좋다. 좋아 좋아. 좋다 여기 공기. 한국 공기."

비스트가 씨익 웃었다.

그녀는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한 차림이었다. 추위는 아랑곳 않고 성큼성큼 걷는다. 여린 소녀의 외양이나, 이죽거리는 자신만만한 표정은 힘을 어떻게 휘두를까 즐기는 약탈자의 것이다.

"기모찌기모찌 말고 한국어로 신음하는 게 그립더라고."

응? 하고 곁에 선 남자의 어깨를 쳤다.

남자는 고개를 조아렸다. 소녀의 외양에 쾌활한 듯 말을 던지지만 조금만 심사가 뒤틀려도 피를 보고야 마는 괴물 비스트이다.

둘은 고급 호텔의 내부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층을 전세내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클랜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온통 정장에 일본식 문신이 비쳐 야쿠자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자, 일단 즐기고 싶은데. 데려와. 한국 여자. 김치년이라고들 하더라고?"

그녀가 그들을 지나치며 말했다. 한 남자가 그녀를 스위트룸으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자,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 묶여 널부러진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눈물을 글썽거리며 읍읍거리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광경이다. 비스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내 취향을 잘 아네. 아가씨들 안녕?"

소녀가 웃으며 걸어오자 그들의 눈에 희망의 빛이 어렸다. 비스트가 다가가 한 여자의 입에서 재갈을 벗겼다. 드러난 미모는 아름다웠다.

"살려주세요……."

"안 죽어, 안 죽어."

"마스터를 만난다고 했는데……."

비스트는 한국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작은 클랜을 하나 만들어 유지하고 있었다. 슬래터 클랜과의 연결고리는 극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지역의 클랜 정도로 보였으나, 실은 만약을 대비한 슬래터 클랜의 교두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클랜원들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가족같은 분위기에, 일상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치는 가족적인 클랜이었다. 이름도 화목 클랜이었다. 강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정글보다 일상의 비중이 높은 능력자들이었고, 자수성가 출신의 제법 강력한 능력자가 정글에 지쳐 만년에 좋은 뜻으로 만든 클랜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규모에 비해서 지원도 빵빵해 늘 주위에 자랑하곤 했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그들을 지켜주던 마스터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자리, 클랜에서도 예쁘장한 외모로 인기가 있었던 두 여인은 기쁜 마음으로 이곳에 왔고, 이러한 꼴이 된 것이다.

"화목 클랜의 마스터가 나야. 하하. 화목 클랜 이름 좋다."

"무슨……."

비스트는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에 걸맞지 않는 탐욕과 육욕 뒤섞인 눈으로 여인을 내려다보다가, 팬티부터 찢어 벗겼다. 그녀의 다리를 억지로 벌렸다. 겁에 질려 오무린 둔부가 드러나자 키득거리며 손가락 하나를 비집고 쑤셔넣었다. 그녀가 고통에 신음했다.

"아흑……! 아악……!"

"남자친구 있어? 있겠지?"

비스트가 비실비실 웃었다. 한 손으론 여인을 희롱하고 한 손은 자신의 둔부에 닿았다. 이미 젖어들었다.

"어이. 오늘 두 년으론 부족할 거 같은데. 더 불러내."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남자는,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화목 클랜에서도 과묵하지만 문제를 해결해주는 든든한 남자였다. 다들 실장 오빠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악마처럼 웃으며 두 여인의 치태를 바라보고 있다.

"예쁜 애들로."

"저년들이랑 언니동생하는 여자애가 있습니다. 힘은 보잘 것 없지만 꽤 발랄합니다."

"발랄한 애들 좋아. 발랄한 애들 질질 싸게 하는 게 내 특기지."

그가 휴대폰을 열었다.

응, 수영아. 여기 미혜랑 유나 있는데. 마스터께서 너도 뵙고 싶다는데. 너가 우리 클랜의 분위기 메이커잖아. 하하. 그렇지. 멋진 분이신데. 화목 클랜이잖아. 응. 거기서 보자. 근사한 데서 식사도 하고. 응. 나와.

그렇게 한 명의 희생자를 더 꼬이는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웁…… 웁……."

소녀의 둔부가 입에 쳐박혀 있기 때문이다. 비스트는 혀를 움직이라며 보챘다.

남자가 비스트 곁에 유희의 도구들을 내려놓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들만의 시간이다. 비스트 여인들의 속박을 풀었다. 겁에 질린 여인들에게 비스트는, 입 벌려, 라고 알약을 내보이면서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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