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134화 (13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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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더블 드래곤

피보라가 지옥땅을 뒤덮었다. 붉은 땅은 피에 젖어 한층 희번뜩였다. 그들의 전투는 한 합과 한 합, 일격과 일격의 교환이 아니라 참살과 학살 속에 언젠가 적이 지치리라는 무력한 발버둥의 교환에 다름 아니다.

서로의 상황이 뒤바뀌었다. 여유롭게 용호와 태진을 조롱하던 지옥의 피조물들은 이제 지옥의 비료가 되어 흩뿌려진다. 악마들은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핏물과 조각난 살더미들을 흠뻑 맞으면서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걸음 걸음은 태진과 용호의 거대한 그림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악귀처럼 웃고 있었다.

적에게는 악귀와 같이 잔혹하고 두려운 존재.

그들은 맹호이고 백골이다.

태진이 울부짖었다. 성난 범과 같은 우렁찬 포효가 지옥땅을 울려 지평선이 벌벌 흔들렸다. 심약한 이들은 제 자리에 주저앉아 엎드려 그저 강자의 자비를 구걸한다. 그들의 조아린 머리 위에 내리꽂히는 태진의 군용 대검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그들의 정수리를 찢어발기고 그 뇌수를 흩뿌렸다.

용호가 스산하게 웃었다. 그는 지옥에 가장 걸맞는 염라의 화신, 백골을 뒤집어쓰고 목숨을 거두는 사자였다. 그에게서 쏟아지는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악마들은 혼비백산, 그 자리에 허물어진다. 사악, 사악, 마치 붓으로 백지에 선을 그리듯이, 그들의 목숨을 거두어 한줌 재로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 발로크의 기수이자 그들의 화신이다.

가장 원초적인 악마, 투귀들이다. 그들은 적의 시체 위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자신의 갈라진 배에서 삐져나온 내장을 내려다보며 폭소한다. 그 가공할만한 투쟁심과 폭력성이 지금, 태진과 용호라는 사나이들에게 왔다.

그들이 만나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었다. 종이와 펜이 만나 그저 사물이 아닌 하나의 스토리를 빚어내듯이, 그들이 만나자 그들은 전혀 새로운 종이 되었다.

그들의 끝없는 투쟁심과 증오는 불의를 향한다.

호국의 요람 신병훈련소에서 그들이 배운 뜨거운 심장!

국토방위의 선봉 육군의 뼈를 깎는 고통과 자부심!

조국과 가족에 칼을 겨눈 적들에게는 기꺼이 악마가 되어 불벼락을!

그들의 걸음마다 피보라가 일었다.

태진과 용호 앞에 한 사나이가 나타나 섰다. 그의 눈길은 음험하고 혀는 간교하다. 바알의 세 부대장 중 하나이자 이간질과 불화의 악마, 자리엘이다. 그의 바랜 회색 눈동자가 태진과 용호를 기묘하게 들여다보았다. 그의 동공이 빙글빙글 돌며 메쓰거운 광경을 연출했다. 이윽고 무엇인가 알겠다는 듯 그가 빙그레 웃었다.

"허용호."

"네깟 놈이 부를 이름이 아니다."

"나이 스물 다섯. 가족관계는 부모에 외동. 삼사단 소총수 출신. 연애경험 전무."

"이, 이 자식……."

"그리고……."

그가 비수를 들이대듯 속삭였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

"……!"

"하지만 네 모습을 보라. 지금 너는 무엇인가? 인간이냐? 신을 섬기는 자의 바른 모습이던가? 그 꼴을 보란 말이다!"

허공에 거대한 거울이 드리웠다. 그곳에 용호와 태진의 몰골이 되비쳐졌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흉악한 악마들, 악을 말살하려 악이 되었으나 결국 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악마들, 그것이 지금 태진과 용호였다.

용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두눈이 떨렸다.

"네가 그토록 찾아대던 신은 이제 버린 것이냐? 신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오줌을 갈기는 우리 악마들과 하나가 되고서 우쭐대는 꼬락서니라니. 코메디가 따로 없구나. 크카카카칵!"

그가 허리를 떨며 웃었다. 용호는 입술을 깨물고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진 또한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저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그가 나설 싸움이 아니었다. 용호 그 스스로 극복해야할 사나이의 시련이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는 게 어떠냐? 악마와 합체해서 칼을 휘두르는 놈이 어찌 야훼를 논할 수 있겠느냐? 크라이스트가 너를 어여삐 여기겠느냐? 너는 고작 그뿐인 놈이다. 네가 우리 악마와 다를 게 무엇이냐? 더 추악하지! 우리는 위선자는 아니니까!"

다시금 크카카 웃었다.

용호가 눈을 감았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자리엘은 마치 용호를 잘 아는 사람처럼 그를 추궁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거냐, 허용호. 잊었나? 네 어미가 죽어갈 때 병상에 엎드려 신을 찾던 어린 시절의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그날 분명 무엇인가를 느꼈다. 저 하늘에서 내려온 따뜻한 손이 너의 기도에 응답해 네 머리를, 어미의 배를, 병상을 쓰다듬고 지나갔었다. 너는 신의 존재를 느끼고 눈물 흘리며 그에게 감사했다. 신의 사랑이야말로 네 삶의 의미였다. 그리고 너는 지금 무엇이냐. 악마이냐, 인간이냐. 어느 쪽이든 신을 버린 네 손에는 핏물이 얼룩덜룩하구나!"

용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크카카캇! 무릎을 꿇었느냐! 허용호! 크카카캈! 회개하라!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그때였다.

총탄이 허공을 꿰뚫고 지나가 그의 성대를 터뜨렸다.

"쿠웨에에엑!"

타앙!

타앙!

타앙!

"크웨에엑! 에에엑!"

피가 뿜어져나왔다. 자리엘은 허물어지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용호를 보았다.

그는 분명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패배의 제스쳐일진대…….

죽어가는 자리엘의 귀에 태진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멍청한 놈!

"멍청하구나. 대한육군이 무릎을 꿇는 것은 단 하나를 의미할 뿐이다."

── 육군 사격술의 정수.

"서서쏴도, 앉아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 최고의 정밀도. 최고의 냉혹함."

── 적을 침묵시키기 직전의 짧은 부복.

"그것은 다름 아닌 엎드려쏴의 준비자세일 뿐이지."

── 엎! 드! 려! 쏴!

"그, 그러언…… 크엑…… 네 믿음은…… 신앙은……!"

"들을 가치도 없군."

용호가 천천히 일어났다. 자리엘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용호를 보라. 믿음이 흔들리던 그의 눈은 온데간데 없고, 차가운 예비역 육군 병장으로서 기계적인 눈짓으로 적들을 훑을 뿐이다. 그는 아직도 매캐한 연기가 타오르는 케이투 돌격소총을 견착시키고 적들을 향하며 중얼거렸다.

나의 총끝은 빛나고

방아쇠는 심판을 내린다

기꺼이 적에게 복수하고

증오엔 증오로 되갚으니

오 신이시여

나를 당신 곁에 두시고

성인들 중에 세우소서

남의 피를 쏟게 하는 자

자기 피도 쏟게 하리라

그것이 신의 뜻이라…….

태진이 용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팍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군종 마크가 선연했다. 인간의 믿음이 흔들리는 전쟁터에서 신앙은 그들의 가장 큰 무기이자 죽어가는 이들에게 내리는 최후의 자비가 될 수 있다. 인간이 헛되지 않다는 그 믿음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태진은 피묻은 손으로 전우를 위해 박수를 쳤다. 용호의 등에서 하얀 날개를 본 것만 같았다.

***

바알의 눈이 흔들렸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그는 유경의 자궁을 제물로 이용해 헬게이트를 열고 현세에 지옥을 강림시켜 수현이라는 새로운 먹잇감을 씹어 삼키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정글의 괴물 이수현도 아닌, 한낱 두 인간에게 군세가 전멸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하에 갇혔던 고대의 악마 발로크가 깨어나 그들을 나이트라이더로 각성시켰다. 이미 지옥의 동쪽땅을 관리하는 디아블로와 북쪽의 메피스토에게서 조롱의 메세지가 날아오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위기였다.

그리고 바알은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었다. 아주 긴 시간을 무료함 속에 지내왔었다. 모든 쾌락과 모든 방탕과 모든 죄들을 숨쉬듯 행하며 그의 모든 감각들은 무뎌졌다. 이제 무엇으로도 즐거울 수가 없었다. 허나 지금 그는 가슴이 뛰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적, 뜻밖의 사태, 그의 모두를 잃을 수 있는 지금 이 위기 상황이 그를 폭소케 했다.

"재미있군."

그가 그들이 전진하는 쪽 방향을 보았다. 그가 사로잡은 유경이 빛기둥 안에서 정신을 잃고 떠올라 있었다. 그들은 이곳으로 온다.

와라.

바알이 주먹을 펼쳤다가, 다시 천천히 쥐었다. 악쥔 손에서 열기가 배어나왔다.

"발로크를 탄 백골과 맹호라…… 재미있군."

바알, 그는 처음부터 악마였던 것은 아니다.

악행을 저지르고 지옥에 떨어져 그곳에서 제 손으로 힘을 얻어 땅을 일구고 고급 악마로, 더 장군으로, 그리고 이제는 마왕으로 각성한 자수성가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인간이었을 때 그는 하나의 살인병기였다.

바알이 정장을 찢어발기고 맨몸으로 섰다. 안에 숨겨졌던 근육이 공기를 빨아들이며 거대하게 부풀었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그의 타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칼을 품은 독수리, 그리고 검신에 새겨진 레터링.

RANGER!

바알, 국적 아메리카, 그는 국방비가 천조에 이르는 초군사국가의 레인저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땅개들과 놀아볼까?"

그가 웃었다.

이것은 이미 전쟁이다.

***

시체의 강을 지나 그들이 도달한 빛의 기둥 앞에는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는 벌거벗은 상체의 우람한 근육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입은 전투화와 위장무늬 군복 하의만이 그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따름이다.

바알.

인간으로서 지옥에 떨어져 본인의 능력으로 지옥의 군단장이 된 자수성가의 대명사.

"왔는가, 발로크의 상속자들이여."

두 사나이가 스산한 바람을 몰고 바알 앞에 선다.

태진과 용호. 광활한 지옥 평야와 온통 거대한 괴물들의 시체 아래에 선 그들의 몸뚱이는 작고 볼품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자는, 그들 뒤에 선 거대한 그림자는 왜소한 인간의 것이 아니다.

날개를 펼친 최강 괴물의 모습!

드래곤!

그들은 지금 하나이자 둘, 둘이자 하나인 그야말로 더블 드래곤이다.

사자와 같은 서늘한 눈동자에 바알은 엷은 전율을 느끼며 억지로 미소지었다.

"발로크의 힘을 계승한 이들아. 너희는 아는가. 진정 바른 사회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개소리는 집어쳐라, 악마."

"너희 따위가 어찌 개를 논할 수 있을까!"

바알이 일갈했다. 그의 우렁우렁한 외침에 지옥이 뒤흔들렸다. 태진과 용호 또한 거대한 압력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바알의 눈이 충혈되었다. 그의 온몸에 핏줄이 섰다. 극도로 육체를 단련시켜 지옥의 패자가 된 바알의 몸은 흉기 그 자체다. 그의 투기가 산과 같이 일어섰다.

"개를 하찮게 취급하는 놈들아! 너희는 개처럼 바닥을 기고 쓰레기를 핥으며 연명해보았느냐! 낮이나 밤이나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나는 이곳에 왔다. 굴욕을 눌러 삼키고 분노를 허공에 짖었다. 너희처럼 운좋게 남의 힘을 물려 받아 강해진 벼락 강자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씨발 갈-!!"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초음속, 아니 초광속, 아니 우리가 아는 그 무엇보다 빠른 엄청난 펀치는 허공을 폭발시키는 소리를 내며 공간을 압축시켜 그들에게 믿을 수 없는 에너지를 분사했다. 태진과 용호가 마네킹처럼 허공을 날았다.

"크허어억!"

"쿨럭! 쿨럭!"

바닥에 나뒹굴며 그들이 피를 토했다.

바알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말이다."

그가 입술을 비틀며 널부러진 태진의 어깨를 콰직, 밟았다. 천천히 체중을 실어 그의 어깨뼈를 짓눌러 으스러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크흐으으악!"

"아무리 가진 것 없는 놈도,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 지옥의 상류층에 편입될 수 있다는 그 증거 말이다."

"이 자식, 그만하지 못할까!"

용호가 뒤에서 튀어나와 군용 대검을 휘둘렀으나 바알은 표홀하게 움직여 그의 공격 동선을 피해내고는 그의 힘의 방향에 역행하는 카운터 펀치를 명치에 존나 쎄게 때렸다. 용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며 허물어졌다.

"지옥에는 수많은 강자들이 있다. 메피스토, 디아블로, 아스모데우스, 안다리엘, 그러나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나야말로 진정한 마왕이 되어 지옥을 통합할 남자다."

바알이 어깨를 펴고 저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내가 정점이다."

"……!"

태진과 용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그들 각자의 사연이 있고, 누구 하나 남과 같은 삶이, 남과 같은 사람이 없다.

그들은…… 바알이 짊어진 무게를 얕본 것이다.

"김태진 병장…… 함께여서 즐거웠네."

"허용호 병장, 나야말로 영광이었다."

둘이 나란히 눈을 감았다. 바알, 누구보다 등이 넓은 사나이의 그림자가 그들 위에 드리웠다. 더블 드래곤은 이렇게 죽는 것인가…… 이것이 그들의 최후인가…….

바알의 눈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태진과 용호가 미소지었다.

"흥, 너같은 남자에게라면…… 죽는 것도 아쉬울 것 없지."

"흥, 죽지 말라고. 우릴 죽인 남자가 다른 녀석에게 죽는 것따위, 우리에 대한 모욕이니까."

"흥, 녀석들……."

바알과 용호와 태진이 동시에 코밑을 쓱 훑었다.

그리고 두 사나이, 더블 드래곤이 눈을 감는다.

저 멀리에서 지옥의 붉은 석양이 그들의 풍경을 물들이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이 흔들렸다.

바람이 길게 꼬리를 끌며 그들의 땀투성이 몸뚱이를 식혔다.

…….

……이윽고 시간이 흘러.

눈을 감은 태진과 용호가 이내 눈을 떴다.

"왜 우릴 죽이지 않는 거냐."

"나와 함께 하자."

바알이 말했다. 용호와 태진의 눈이 커졌다.

"나는 지옥을 개혁하고 싶다. 지옥에는 힘이 있고 투쟁이 있지만 중요한 것이 없다."

"그게 무엇이냐."

"뜨거운 가슴……."

"……!"

"명예를, 남자의 숙명을, 지켜야 할 것을 모른다. 사람도 악마도 언젠가 죽는 법, 나는 모두가 죽음 앞에 떳떳한 그런 바른 지옥을 만들고 싶다."

"……!"

크다.

이 사나이는…… 크다.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나이였다.

"나는 정한새와 협력하여 이수현이라는 또다른 강자의 힘을 취해 더 강해지려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지옥을 통합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대의를 위해 나는 기꺼이 손을 더럽히려고 했다."

"……."

누가 모를까, 대의를 위해 진흙탕을 구르는 사나이의 마음을.

"하지만…… 하늘이 내게 준 기회일까. 거짓말처럼 너희 용사들, 더블 드래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너희들은 나만큼…… 아니, 나보다도 가슴이 뜨거운 남자들이다."

"……훗."

태진이 코밑을 쓱 훑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을 빌려서 지옥을 바꾸고 싶다…… 이 말이냐?"

"그렇다."

"가능성은?"

바알이 허리를 펴고, 가슴을 펴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일 퍼센트."

"……!"

"단 일 퍼센트의 가능성이다."

"뭐야, 그거……."

용호가 몸을 일으켰다. 백골의 화신이 된 그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아주…… 멋지잖아?"

"하하. 이 녀석. 아주 터무니 없는 녀석이었구만. 하하. 하하하!"

태진이 웃기 시작했고, 용호도 바알도 함께 폭소했다. 세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지옥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를 도와주겠나?"

"……."

"나와…… 같은 꿈을 꾸겠는가?"

태진과 용호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다. 이보다 재밌을 수는 없다는 그 어린 소년들의 미소였다.

둘이 벌떡 일어나 바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물론."

"그렇다."

"……고맙다."

바알이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가슴이 훈훈했던 적이.

그때 바알의 턱을 태진이 후려쳤다. 바알이 비틀거리다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분노보다는 의아함을 담아 태진을 올려다보았다. 태진이 말했다.

"바보 같은 녀석. 명심해라. 친구한테는…… 고맙다고 하는 게 아니다."

"……친구. 그런가."

바알이 웃었다. 친구였나.

그의 마지막 친구는 누구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이클. 함께 비밀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반군들의 총탄에 산화하여 하늘의 별이 되었던 마이클. 그는 친구였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는…… 이 낯선 두 동방의 가슴 뜨거운 사나이들과 다시금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마이클…… 보고 있나?

나는 지금…… 멋진, 아주 멋진.

빌어먹을 정도로 멋진 또라이 새끼들을 만나버렸다네.

바알이 일어섰다. 셋이 손을 모았다. 뜨거웠다.

"난 더블 드래곤이란 별명이 싫어."

태진이 말했다.

"짝퉁 클리셰 같잖아. 그러니까…… 더블 드래곤보다는……."

태진의 뒷말을 바알이, 용호가 함께 이었다.

"""트리플 드래곤."""

목소리가 겹쳤고, 세 사나이가 멋쩍게 웃었다.

세 사나이는 저 멀리 저무는 석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크하하! 하하하하핫!"

"크크큭! 크크크크큭!"

하나보단 둘, 둘보다는 셋.

지옥의 새바람, 트리플 드래곤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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