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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더블 드래곤
학과 전체에 파문이 번졌다.
잘나빠진 외모로 유명하고 얼음 같은 성격으로 더 알려진 아싸 아닌 아싸 이소희가 울면서 남자애에게 안겼다고 했다.
그냥도 아니고 영화 같은 멱살 키스였다.
그 장면을 본 이들에 의하면 주변 일대가 수산물 시장으로 화해 머나먼 남녘 바다의 소금 내음이 흘렀다고도 말했다. 그날을 놓친 이들은 숱한 사람들의 증언에 마음이 달았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정인지 추측뿐인 가쉽들이 퍼져나갔다. 소문에 따르면 남자의 외모는 심지어 이소희가 꿇릴만하다고 했으나 대부분은 과장된 것이라고, 현실성이 없다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 게시판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성자 : 사진학과 김철수
제목 : 경영학과 주막에서 찍은 아름다운 장면.
내용 :
축제 날 우연히 찍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올립니다. 본인들 요청이 있으면 삭제하겠습니다. 얼굴은 가렸는데 둘 다 미남미녀 커플입니다. 커플 맞겠죠?
게시물에는 그 날의 장면이 사진에 찍혀 올라와 있었다.
"와, 대박이다. 이거 진짜 이소희야?"
"뭐지? 몰래 사귀던 남친 영장 나와서 울었나?"
"오빠 컴퓨터 잘하잖아요. 모자이크 못지워요?"
상과대학 컴퓨터실에서 학생들이 몰려 떠들어댔다. 눈가가 검게 칠해져 얼굴 전체는 잘 알아볼 수 없었으나 그녀 특유의 늘씬한 몸, 턱선과 입매로 판단할 수 있었다. 게다가 뺨을 타고 발갛게 흘러내린 눈물이 오렌지색 나트륨등에 물들어 빛나, 누군가가 연출한 것처럼 애잔한 장면이었다. 그들의 뒤에 서 있다가 불의의 촬영으로 해산물 된 인물들은 아웃포커싱 효과로 흐린 배경에 번져들었고, 그래서 둘의 존재감이 사진 전체를 휘어잡았다.
"남자 얼굴 보고 싶다."
"얼굴 보이면 뭐 꼬시게?"
"그냥 궁금해서 그런거에요!"
"어, 지워졌다."
문득 게시물은 삭제되었다.
"둘이 이거 보고 지워달라고 했나봐."
"난 저장했지롱."
"오빠 변태에요, 왜 남의 키스 장면 저장하고 그래요."
"그냥 보기 좋아서 했는데 몰아가지 마 이년아."
"와, 대박. 오빠 첨엔 안 이랬는데 이제 좀 친해졌다고 막말해!"
그리고, 그 모든 사태를 일으킨 소희는 이제 막 캠퍼스에 도착한 참이었다. 평소에 차갑던 소희의 얼굴은 반쯤 풀려 있고, 배어나오는 웃음기가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태진의 카톡으로 그녀의 사진이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걸 알았다. 창피해서 곧바로 지워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래도 너무 예쁜 그림이라, 제대로 된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학과 김철수는 기꺼이 그녀에게 사진을 내주었고, 대신 올해에 있을 사진 공모전에 이것을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소희는 온전한 그 날의 사진을 얻어 폰으로 계속 그걸 들여다보며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의동에 도착했다. 그녀를 아는 이들이 흘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따갑다. 그녀는 평소 쌓은 이미지가 있어서 갑자기 풀어진 얼굴을 내보이기 부끄러워 억지로 표정을 굳혔다.
강의실에 들어갔다. 일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가, 하나, 둘 흩어졌다. 수군거림이 다 들려왔다. 소희는 알 수 없는 뿌듯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맨 뒷자리에 앉았다.
수현의 품에 안겨 이틀 내내 함께 시시덕거렸다. 긴 시간 끝에 다시 같이 한 잠자리는 그녀를 몇 번이고 실신하게 했고, 서로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는 건 더 황홀했다. 그 검은 눈이 자신을 들여다볼 때는 아랫배가 저릿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사진학과 김철수에게 받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다시금 그 기분이 되살아나며 다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학우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그녀는 교수가 출석할 때 한 번, 네 하고 대답한 후로 오늘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늘, 마음에 담아둘 것이 없어서 그녀는 강의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그 녀석을 생각하느라 교수의 판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리들이 멀다. 소희는 그저 고개를 기울여 백지를 들여다보며 다시 되찾은 그와 함께인 삶에 미소지었다. 교수의 고저 없는 목소리, 펜이 백지를 긁는 소음들, 그리고 머릿속에 되감는 그 녀석의 낮은 숨소리,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문득 그림자가 그녀 곁에 다가왔다.
소희는 알 수가 있어서,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그림자, 기척,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달콤한 체취는 그 녀석의 것이다. 소희가 고개를 들었다. 쉿,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얹고서 수현이 조용히 그녀 곁에 앉았다. 교수는 등돌린 채 분필을 긋고 있었다. 수현이 손으로 뺨을 받치고 그녀를 향해 가만히 웃었다.
미소가 눈부셔서 괜히 가슴이 간질거린다.
소희도 피식, 마주 보며 웃고 말았다. 눈을 계속 마주하고 있자니 부끄러워 다시 강의에 집중하는 척, 노트에 교수의 그래프를 따라 그리다가 결국 눈에 들어오지 않아 펜을 내팽개치고 다시 눈을 돌렸다. 수현은 그 자세 그대로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희가 책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수현과 손을 잡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웃음이 자꾸만 배어나와 표정을 굳히려는데 되지를 않아 책상만 바라보았다.
둘이 함께 했던 주말, 수현은 해명하지 않았다. 그저 사정이 있어서 떠났고, 지금 돌아왔다고 했다. 소희 또한 더 묻지 못한 것은, 그녀는 이미 자신이 그에게 속한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정이었던 것은 이제 상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요구했다.
다시는 말 없이 사라지지 말라고. 불가피하면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하다.
소희가 고개를 들었다. 수현이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그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소희가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녀에게만 닿는 낮은 웃음소리가 멋있다.
수현은 많이 달라졌다. 그 유려한 미모는 그대로지만 키가 크고, 분위기도 다 가라앉았고, 위험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름다운 소년이 퇴폐적인 미청년에 이르려는 듯한 그 사이에 있는 것만 같았다. 서로의 몸을 겹칠 때 느껴지는 체위부터 달라졌고, 그건 상상 속에서 미화되던 그때의 기쁨보다도 더 큰 것이었다. 수현에게 처음 안겼고, 수현에게 길들여진 몸은 이제 그와 닿을 때마다 떨려왔다.
결국 아무 것도 필기하지 못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교수가 조용히 선언하고 처음 들어왔던 것처럼 되돌아 나갔다. 그리고 학우들은, 뒷자리에서 피시식 웃고 있는 이소희를 발견한다.
한 남자애가 뺨을 괸 채 가만히 이소희를 바라보고 있고, 그녀는 생전 처음 보이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의 뺨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누구도 상상한 적 없는 장면이었다. 저게 이소희 남자친구야, 하고 누군가가 낮게 속삭였다. 둘이 시시덕대는 그 모습이 아름다와 그들은 좀처럼 분위기를 깨지 못하고 그저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수현과 소희가 캠퍼스 내 카페에 마주 앉았다.
주위의 시선들이 모였다. 그저 거리에서들 지나치는 예쁜 얼굴들이 아니라, 보고 나서는 한 마디 뱉지 않을 수 없는 수려한 얼굴들이므로, 주위에서는 다들 그들을 주제로 소근거리고 있었다. 소희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은 경영 여신이라는 말을 주워 섬기고, 몰랐던 이들은 학교에 연예인 입학 전형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어둑해지는 시간이다. 시간표도 막바지에 이르러 학생들은 대개 집을 향하거나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기고,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소희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배시시 웃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진이 심장을 부여잡았다.
"조, 존나 예쁘다. 웃으니까 장난 아니다."
"흠…… 저런 커플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구나."
태진이 동기와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더 보고 있다간 삶의 회의를 느낄 것 같아 애써 외면했다.
아직 강의가 남은 동행과 헤어지고, 도서관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와중이었다.
위태로운 뒷모습을 발견한다.
등은 굽었고, 걸음은 불규칙하다. 휘청, 휘청거리다가도 이내 곧게 서 뚜벅뚜벅 걸었다. 이따금 몸 어딘가가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태진은 그 비인간적은 몸짓에 왠지 척추가 서늘한 기분이었다. 인간을 흉내내는 괴물, 옛 도시괴담 속의 마스크 쓴 여인 같은 이미지가 겹쳐들었다.
주위에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오직 그였다. 옛 이야기처럼, 오직 그만 그 기괴한 행태에 홀린 듯이 눈을 떼지 못했다. 저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동이 불편한 이처럼 목을 비튼 채 앞을 잠시 응시하다가, 건물 입구로 빨려들어갔다. 불 꺼진 연구동이었다. 태진은 그녀가 모습을 감추기 직전 비춘 그 옆모습을 보고서 소름이 돋았다.
유경이다.
입술을 비튼 채 빌빌 걸어가던 그 이상한 것은 유경이었다.
그녀가 남긴 발자국마다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질질 흘렀다.
태진은 자리에 서 우두망찰했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태진은 지금 그가 선 땅이 현실의 경계를 벗어났음을 알았다. 그때도 그랬다.
군인으로서 완전히 무장하고 산하를 헤매던 때에, 무엇인가 그를 어둠 속에서 덮쳤던 짐승이 있었다. 소총은 순식간에 널부러졌고 그는 전투 조끼에서 날도 서지 않은 대검으로 그것을 찔렀다. 그것은 피흘리지 않았고 검은 연기만 흩날릴 뿐이었다. 태진은 미친 듯이 그것을 수십 차례 난자했고, 그것은 검은 연기로 화해 스러졌었다. 그는 그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널부러진 케이원 전투소총의 멜빵끈만이 반쯤 찢긴 채 그 흔적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때의 싸했던 기분.
태진은 갈등했다.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을이 내려앉은 그 건물은 왜인지 어두웠다.
그냥…… 발길을 돌리자. 별 일 아닐 것이다. 하고 위안하려고 했으나 발끝은 돌아가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가볍게 생각하자. 허무맹랑한 일은 없다. 그는 현실주의자다.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은 그저 이것이다. 지나가다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는 후배를 발견했다. 그 후배는 비틀거리며 낯선 건물로 위태롭게 걸어갔다. 그는 지금 도서관에서 복습하려던 참이다. 시간은 충분하고, 그녀는 아끼는 후배였으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녀를 도우려고 한다. 그래, 태진은 그런 사람이다. 굳이 저 이상한 예감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발걸음은 또한 그녀를 향하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무섭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그냥 지나칠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그것을 결정할 어떤 근거를 태진은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태진은 한 걸음을 내딛는다.
다시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이내 태진은 뚜벅뚜벅 유경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예전 알 수 없는 괴물과 싸웠던 때처럼, 수색대원으로 복무할 때처럼 강인한 육체는 아니다.
이미 근육은 죽고 살이 오르고 마음도 타성에 젖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못한다.
한 번 맹호는 영원한 맹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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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을 쓸 여건이 안돼 연재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