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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 번째 겨울
할딱이는 올가를 내려다보며 수현이 휴대폰을 껐다.
"하아…… 하으…… 주인님…… 나가세요?"
"응. 왜, 더 하고 싶어?"
"힛, 저…… 죽어요옷……."
올가의 가랑이에서부터 진한 정액이 흘러내렸다. 아직도 쾌감의 잔향이 남았는지 간헐적으로 허벅지를 경련했다. 수현이 그녀의 아랫배에 손을 올리자, 올가가 표정을 풀어헤치며 허리를 들썩였다. 그녀의 얼굴이 무방비로 수현을 향했다. 빤히 올려다보며 헤헤 웃는데, 그 얼굴이 예뻐서 수현은 다시 한 번 키스했다. 그녀가 수현을 끌어안았다.
둘 다 알몸이라 수현의 나신이 올가의 몸에 안겨들었다. 올가는 이렇게 발가벗고 껴안는 것을 좋아했다. 수현의 심장 고동을 느끼며 어린 아이처럼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가기 전에 더 해버릴까보다."
"흥…… 또 여자애 꼬시러 가요?"
수현이 올가의 귀를 깨물었다.
"응. 되게 속물인 여자앤데, 그게 귀여워서 같이 놀아주고 있어."
올가가 그 낭창한 다리로 수현의 허리를 감으며 달콤한 소리를 냈다.
"치…… 나쁜 남자."
"몰랐어?"
이제 수현이 이성을 유혹하는 것은 습관적이다. 정하도 예브게냐도 올가도 이브린도 안다. 예전에 이브린이 심리학을 들먹이며 수현의 행동을 분석하려 했으나 올가는 잘 이해는 못했고, 그저 그게 수현의 유희라는 것은 알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네 여인들과 애정을 확인하며 섹스하고 뒹구는 것, 다음으로는 낯선 여자들의 마음을 빼앗아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끔은 아기처럼 파고드는 집요한 수현의 섹스 스타일을 생각하면, 마치 블랙홀과 같이 타인의 마음을 갈구하는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
수현이 올가를 안아올려 욕실로 향했다. 둘은 걸으면서도 계속해서 키스한다.
수현이 욕실에 앉자 올가는 올바른 메이드의 자세로 수현의 몸을 자신의 육체로 씻겨주었다.
"앗……?"
수현이 일어나 올가를 무릎에 앉힌다. 다시 성이 난 그의 남성이 올가의 여린 살을 꿰뚫었다. 올가는 수현에게 매달리며 마주 허리를 흔들었다. 수현과 질리도록 얽혔던 그녀는 이제 마치 닳은 창녀처럼 허리를 흔들 줄도 알았다. 그 열정적인 허리 놀림에 수현이 올가의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올가가 다시 늘어지고, 그녀의 아래에서 정액이 흘러내렸다. 둘은 잠시 서로를 껴안고 있다가 다시 목욕을 재개했다.
목욕이 끝나고, 올가가 수현의 몸에서 물기를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마법을 쓰기도 하였으나 올가는 직접 하는 걸 더 좋아한다.
주인의 옷차림을 정하는 것도 올가이다. 그녀는 남성 패션 잡지를 항상 정독하여 수현을 위해 의상 트렌드에 촉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남성복은 결국은 클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데님에 가을 코트를 매치해주었다.
나가려던 수현이 올가의 허리를 안아 당긴다. 올가가 발꿈치를 들어올려 수현에게 키스했다. 마치 신혼부부 같은 모습이지만, 현관에서의 둘의 입맞춤은 그저 입술을 맞대는 게 아니라 혀를 뒤섞어대는 음탕한 행위라는 점이 다르다.
한참을 키스하다가, 올가가 이내 항복하여 수현의 목에 팔을 감은 채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골랐다. 수현이 그녀의 머리를 쓸어넘기고 고개를 들려, 가볍게 입술에 입맞추었다. 올가가 헤헤 웃었다.
***
주막은 전에 없이 잘 되었다. 학과 재학생들 대부분이 들렀고,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빈바닥에서 주문을 받는 수준이었다. 졸업생들이 크게 돈을 쾌척하고 떠나 수입도 기대 이상이다. 소희는 지쳐서 잠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 일로 인해 그녀는 경영학과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상과대학 너머 다른 계열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렸던 게 얼마만일까. 부서진 채 잔해만 남아 삶을 부유하며 지난 궤적만 응시하고 있었다. 태반의 관심이 자신의 반반한 몸뚱이에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건 아주 오래 전에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은 즐겼었지. 그 녀석과 만나기 전에, 그러한 관심들이 자신의 기쁨이었다.
눈이 피곤해 눈꺼풀을 감았다. 상념은 다시금 그를 향한다. 그 얼굴은 여직 그대로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있었다. 죽어버리기라도 했을까. 그렇진 않을 거다. 그녀는 그냥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은……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키도 그대로고, 몸무게는 오히려 조금 더 빠졌다. 남자애들은 늦게까지 크니까 지금은…… 예전보다 커서, 자신이 훌쩍 올려다보아야 할까. 아니면 실은 그대로 남아 유년처럼 아름답던 소년 그대로일까.
씨발 새끼. 나쁜 새끼. 나는 아직도 너랑 섹스하는 상상하면서 매일 자위해. 알아? 나를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사라져버린 개새끼야. 그리고 혼자 절정에 이르지도 못하고서 지쳐,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는 걸 절감하면서 추억으로써 잠시나마 달콤한 꿈에 취하고, 깨어나면 현실은 구역질나게 써.
소희는 눈을 치뜨며 상념들을 떨쳤다. 현실을 보자. 눈앞을 보자. 저기서 술 마시고 떠드는 학생들이 지금 나의 현실이다. 꿈 속 왕자님 같은 그 녀석은 예전에 떠났다. 자신의 삶에서 특별했던 시절은 가버렸다. 녀석과 함께. 그 녀석으로만 나는 빛날 수 있었나. 아무 것도 아니다.
"소희야. 와서 술 한 잔 해!"
평소엔 말도 못 걸던 동기들이 취기에 자신에게 술을 권했다. 소희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그 녀석을 생각해서, 기분이 저조해서, 술 같은 거 마시고 싶지 않다.
곁에 유경이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한 잔 하자. 다른 애들이 일하니까 좀 쉬면서. 축제잖아."
생글거렸다. 소희는 그녀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기분이 되게 좋아보였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떼어 일어났다. 그녀가 다가가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좁은 탁자는 꽉 차서 앉을 곳도 없었다. 태진이 일어나서 소희에게 손짓했다.
"소희야, 여기 앉어. 오빤 많이 마셔서 담배나 피고 올란다. 거기 새로 젓가락이랑 잔 갖다줘!"
소희가 자리에 앉았다. 유경도 맞은 편에 앉아서 무언가 폰을 만지작거렸다. 아, 남자친구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걸까. 나도 예전엔 저렇게 메세지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행복했었지.
아, 또다. 짜증난다. 다같이 잔을 들어올렸다. 소희도 단숨에 들이켰다. 너 같은 거 잊으려고 왔으니까. 난 마셔야겠다.
"오. 소희 생각보다 좀 마시네? 그간 주량을 숨겼어. 자 계속 해야지."
얼굴 벌건 선배가 술을 따라주었다. 다시금 빈 잔들이 소주가 차오른다. 반 잔만 마신 이들은 눈치를 받고 넘어갔다.
"선배 너무 조금 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 별로 사랑 안하시네요?"
"어. 미안. 유경이 너 괜찮아?"
"네."
평소 그녀의 주량을 배려했는지 조금만 따랐었는데, 그녀가 오히려 더 달라고 했다. 확실히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소희는 웃었다. 좋겠다. 행복해서.
다시 분위기가 달아올라 술이 오가고, 주변의 이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는 술게임 같은 걸 했다. 소희는 걸리지 않았고, 몇 취한 학생들과 유경이 걸렸다. 다들 한 잔씩 마셨다.
랜덤 게-임 랜덤 게임! 유경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소희는 문득 눈을 들었다. 밤이었다. 별 하나 없이, 달만 떠올라 내려다보는 적막한 밤의 하늘. 그 녀석을 닮았다. 소희에게 그 녀석의 메타포는 이 적막한 밤하늘이었다. 그 검은 머리카락과 두 눈이 선연하다. 다시 눈을 내렸다. 주황색 싸구려 조명 아래에 대학생들의 즐거운 술판이다.
그 녀석과 함께 대학에 왔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곁에서 여자친구를 챙기는 남자애가 보였다. 술에 취했는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남자애는 괜찮아, 하고 속삭이며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달콤하네.
딴 생각을 하다가 걸렸다.
소희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른다. 그녀가 게임을 선택할 턴이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표시한 숫자와 입으로 말하는 숫자를 다르게 하는 게임을 시작했다. 다들 이 게임 어렵다고 불평했다. 턴은 계속 돌아가고, 다들 긴장한 얼굴이다. 그들의 모습에 소희도 웃고 말았다.
취한 것,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그랬다.
취해서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저 사람, 저 분위기. 그 몸짓은 소희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거였다.
아무리 혼잡한 곳에 있어서 그녀가 놓칠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손으로 눈을 비볐다. 안구가 짓눌리며 압박감에, 문득 눈물이 날 것 같다. 소희는 입술을 깨물면서 다시 눈을 치뜨고 그곳을 보았다.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소희는 눈물이, 그리고 웃음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욕이 나올 것 같았다.
씨발 새끼.
나쁜 새끼…….
그러면서도, 어쩌면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냐고, 안에서 무엇인가가 속삭여왔다. 그런 거 모르겠다. 소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소희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한 걸음 움직였다. 어느새 그는 주막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나날이 피폐해져서, 힘이 점점 더 빠져서, 나날이 위태로웠거든. 말했잖아. 이제 남은 건 너 따귀 때려줄 힘뿐이라고. 딱, 그만큼만 남았거든. 더 지나면 그럴 수도 없었을 텐데.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 수현, 이수현이 멈추었다.
고요한 눈이었다.
소희가 걸어갔다.
왁자지껄한 주막이 일순 술렁였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구경들 났어,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고서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치, 씨발, 쪽팔리게. 나 그래도, 얼음 같은 여자라고 불렸는데.
그간 키가 컸구나.
소희가 수현의 앞에 섰다.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다. 세상에 누구도 이럴 수 없겠지. 오직 너만이. 예전보다 더, 섹시해졌네.
수현의 눈이 흔들렸다.
소희가 수현의 멱살을 붙잡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소희가 수현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왜 말을 안해, 나쁜 새끼야.
나 아직.
너 따귀 때려줄 힘은 있으니까.
그러니까.
소희는 눈가가 뜨거웠다. 눈앞이, 녀석의 얼굴이 흐리다. 얼굴이 멋대로 일그러졌다. 아, 나 제대로 우는구나. 소희는 눈물을 닦으며 녀석의 두 눈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눈물 젖은 손바닥을 들었다.
그러니까…….
따귀는 때리지 못한다.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 남은 일말의 힘으로.
녀석을 끌어당겨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