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105화 (1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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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VAMPIRE WEEKEND

예브게냐가 불로의 존재가 되었다.

챠오메이는 마법과 의학, 약학과 연금술 모두가 녹아 있는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기술로 예브게냐를 불로로 만들었다. 예브게냐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이십 대 초반의 지금 이 모습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정작 예브게냐는 별 감흥이 없었다.

몸에서 활력이 넘치고, 피부도 좋아진 느낌이다. 육체적 능력도 조금 좋아진다고 하는데 애초에 몸으로 하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는 그녀여서 별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예브게냐는 성격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야말로 가녀리다. 가끔 음료캔도 잘 따지 못해서 주위에 넘긴다.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에이에스 해줘?"

"물론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없을 거에요. 저도 그 방법으로 했는데 지금껏 멀쩡하답니다."

"……백 년이나 전의 구식 방법이 제일 비싸다고?"

"불로의 술은 모든 인간의 욕망. 예전에 그 끝을 보았으니 더 발전할 것도 없죠."

챠오메이가 생글 웃었다.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서 게임하는 수현을 흘끗 쳐다보았다. 챠오메이는 요새 검진과 예브게냐를 핑계로 저택에 와 수현을 구경했다. 처음엔 왠 여우인가 싶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흠모하는 연예인을 만나 수줍어하는 팬 같아서 무어라 하기도 떨떠름하다. 챠오메이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수현 씨."

"네?"

챠오메이가 곁으로 다가갔다. 수현의 정신이 흐트러진 틈을 타 올가가 맹렬히 게임패드를 두들겼다. 수현의 캐릭터 생명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진다.

"몸에 좋은 거니까 자기 전에 드세요. 헤헤."

"아, 고맙습니다."

수현이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하고는 현란하게 패드를 놀렸다. 올가의 캐릭터가 널부러졌다. 화면에 K.O가 떴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수현이 캐릭터를 움직여 죽은 올가의 캐릭터를 마구 발로 찼다. 올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시 해요."

"올가는 너무 시시해. 재미 없어."

"으으으…… 치사해. 꼼수로 이겼으면서."

"그게 무슨 꼼수야."

"정당한 방법으로 해욧. 그 캐릭터는 금지로 하구요."

"내 주캐릭터를 금지하면 안되지."

"치사해치사해. 비겁자."

"올가 건방져졌어. 예전엔 내 말이라면 순순히 다 따랐는데. 안놀아."

"앗. 주인님. 더 치사해."

수현이 올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곤 게임 패드를 놓았다. 그리고 곁에 앉아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챠오메이에게 물었다.

"이건 뭐에요?"

"네 여자분들과 지내려면 힘드실 텐데, 남성의 힘을 키워주는 물건이죠."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정력에 좋은 약인 것 같다.

올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아니 그런 걸 왜…… 그러니까 주인님은 이미……."

"감사합니다. 저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었어요."

"그렇죠? 아무리 젊어도 넷을 상대하려면 힘들죠."

"아니, 아닛. 사실상 지금도 넷이서 감당 못하고 있는데 이 무슨……!"

"저도 보답을 해드려야 하는데.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그럼 부탁 하나만 할게요."

챠오메이가 눈을 빛냈다.

수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챠오메이의 부탁은 함께 연인인 척 사진을 찍어달라는 거였다. 순간 올가가 발끈했지만 수현이 끌어안아 품에 가두어서 막았다.

챠오메이는 중국 정글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명문가의 후예로, 가문의 어른들, 물론 불로의 술로 젊음을 얻어 외양은 젊으나 실제로는 그녀보다도 나이 많은 어른들이 그녀에게 빨리 남자를 만나라고 재촉한다는 것이다. 특히 챠오메이의 언니는 그녀가 남자는 커녕 아이돌 팬클럽질이나 하고 있는 걸 보고 매일 놀리며 너한테 그런 미소년들이 가당키나 하냐고 비웃었다. 게다가 언니의 남자친구는 굉장한 미남이라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분을 삼켰다고 한다.

"수현 씨가 도와주면 전 가문의 어른들도 진정시키고, 제 언니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어요."

챠오메이의 간절한 부탁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챠오메이가 본색을 드러냈다.

둘은 뺨을 맞대고 셀카를 찍고, 챠오메이가 수현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도 찍었다. 각종 컨셉으로 사진 자세를 요구하던 챠오메이가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이제 침실샷!"

"……네?"

"부끄럽지만 확실한 방법이죠. 마치 침대에서 하루를 함께 보낸 후 아침에 잠이 덜깬 얼굴로 찰칵. 이런 컨셉이면……."

그래서 수현은 그렇게 해주었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킬지 알지 못한 채, 둘은 침대에서 정사를 벌였던 다정한 연인인 것처럼 이불에서 얼굴만 빼고 배시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챠오메이가 수현의 뺨에 입맞추며 사진을 찰칵 찍었다.

수현이 챠오메이를 쳐다보았다.

둘은 자세를 취한 후라 얼굴이 가까웠는데, 갑자기 수현이 고개를 돌리자 챠오메이가 당황했다. 서로의 숨결이 살갗에 느껴졌다. 조금만 더 턱을 기울이면 입술이 닿을 것 같다. 수현이 말했다.

"챠오메이 씨."

"네, 네……?"

"저랑 자고 싶어요?"

수현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챠오메이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물론 수현은 그녀가 본 중 최고의 미소년이다. 연예인을 동경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수현을 본 후 그녀에게 그녀가 팬클럽을 운영하던 아이돌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리 아름다운 소년이 곁에 누워서 추파를 던지자, 챠오메이는 온몸이 화끈거렸다.

"아, 그……."

챠오메이는 예뻤다. 수현은 여기서 자신이 키스를 하거나, 손을 뻗어 그녀를 더듬어도 거부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농담이에요."

수현이 예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챠오메이는 안도하면서도 아쉬운 그런 알쏭달쏭한 마음이 되었다.

수현은 손 뻗으면 얻을 수 있는 별식을 하나 추가한 데에 의의를 두었다. 넘치는 사랑에 둘러싸여서도 여전히 애정에 목마른 소년은 이렇게 아무에게나 꼬리를 친다. 어장에는 수많은 고기들이 소년을 기다리며 뻐끔거린다.

***

수현과 네 여인, 아니, 검진을 위해 초대된 챠오메이도 합류해서 다섯 여인의 프랑스행이 결정되었다. 뱀파이어들의 본거지는 루마니아지만, 엘리제는 취향상 프랑스에 본거지를 틀었다. 일주일 후였다.

예브게냐가 꿀리면 안된다며 백화점 명품관을 한 바퀴 크게 휩쓸었다. 그녀뿐 아니라 수현, 정하, 올가, 이브린의 옷까지 직접 골라서 가져왔다. 나머지는 명품에 취미가 없는 이들이라 예브게냐가 말도 않고 사서는 각자의 방에 던져주었다. 올가는 감격해서 그날 들러붙어 예브게냐를 귀찮게 했다.

그들이 갈 장소는 파리의 지하극장이다.

예브게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파리의 지하극장이라니, 참 누구의 소설 같네."

"앤 루이스가 실제로 뱀파이어를 인터뷰했다고도 하죠."

올가가 대답했다.

그녀는 예브게냐가 사준 명품을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힐은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다. 이 옷들이 왜 그리 비싼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보기에도 예쁜 것 같았다. 올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쉬크한 룩이었는데, 거울을 보며 입만 다물고 있으니 마치 차가운 모델 같았다. 넌 외모가 되니까 입 다물고 눈만 치뜨면 돼, 하고 예브게냐가 조언했다.

"어, 어울려요?"

"나한테 묻지 마. 주인님이 너 덥치고 싶어하는 건 알겠다."

수현은 올가의 색다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맞다. 내기는 오늘까지였죠? 어떻게 됐어요? 이미지 변신으로 쉬크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내가 승자인가?"

올가가 빙글 돌며 쉬크한 미소를 지었다. 예브게냐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 졌어."

"네?"

"주인님 아무도 선택 안했어. 그러니 일주일간 더 금욕이야."

"……."

올가가 입을 다물었다. 수현이 놀리듯 말했다.

"감히 주인님을 두고 내기를 한 대가야. 바늘 정도는 줄게."

"말도 안돼…… 주인님이 일주일을 더 참다니……."

"그정도는 당연히 참아. 날 뭘로 본 거야?"

"머리에 야한 것만 든 짐승?"

수현이 잡으러 오기 전에 올가는 도망쳤다.

올가의 빈자리를 이브린이 대신했다. 그녀는 신경쓴 듯한 복장이었다.

"어떠하냐?"

"……뭐야 그 복장은?"

"자고로 여행객은 여행객의 스타일이 있는 법이니라."

부니햇을 쓰고 카고 반바지와 검은 티셔츠, 그리고 커다란 배낭. 신발은 워커였다. 마치 탐험하러 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브린이 이 집에서 가장 패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예브게냐에게 평가해보라는 듯 당당히 섰다.

"자. 감탄했느냐?"

"아, 아니, 귀엽긴 한데…… 귀여운데…… 내가 사준 옷들은……."

"츳츠. 옷은 잘 골랐는데 센스가 없더구나. 패션이란 티피오를 신경써야 하는 법. 여행객답지 못했느니라."

"……."

예브게냐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의 연회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캐리어 큰 걸로 이브린 드레스도 넣어가면 되겠지…….

"주인님은 안입어봐?"

"누나가 산 건데 다 어울리겠죠. 고마워요."

아. 이래야 사준 보람이 있지. 예브게냐가 수현에게 다가가 뒤에서 목을 끌어안고 키스했다. 금발의 미녀와 소년은 혀로 섹스하는 듯한 끈적한 키스를 나눈다.

"아. 연회고 뭐고 주인님이랑 둘이 여행가고 싶다."

"좋아요. 가요. 언제든."

수현이 예브게냐의 원피스 아래로 손을 슬쩍 넣었다. 축축히 젖어든 그곳을 어루만지자 예브게냐가 곧바로 신음을 흘렸다.

"우린 시간 많잖아요."

예브게냐가 미소지었다. 예브게냐는 이제 영원을 손에 넣었다. 수현과 그녀들은 무한한 시간을 손에 넣은 정글의 괴물들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불로를 얻은 예브게냐는 새삼, 그녀 앞에 펼쳐져 있는 영원한 시간을 생각하고는 황홀해졌다. 그 시간들에는 언제나 이 아름다운 소년이 함께 하겠지.

"내기고 뭐고…… 지금 안기고 싶어……."

"참아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쉬운 듯 예브게냐가 다시 키스했다. 수현과 예브게냐가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정하가 내려왔다.

연회로 가는 것이 결정된 이후 정하는 수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올가와 예브게냐는 의아해했고, 이브린은 무언가 아는 것 같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수현은 확실히 뭔가 살짝 토라진 듯한 기색이었다.

"누나는 오랜만에 그 여자 만나는데 뭐, 준비 안해요? 예쁜 옷이라거나?"

"……으으으."

수현의 삐진 듯한 발언에 정하는 귀를 막고 도망쳤다.

예브게냐가 고개를 갸웃하며 수현의 아랫입술을 빨았다.

"주인님, 엘리제라는 여자랑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 없었지만."

수현이 싱긋 웃었다.

"볼 일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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