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101화 (10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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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요람을 흔드는 손

운무시에는 한 아름다운 저택이 있다.

그곳에는 끔찍한 것이 산다.

누구도 실체는 보지 못했다. 어느날 강력한 존재가 홀연 그곳에 자리 잡았고, 자신의 힘을 흩뿌리며 영역을 선포했다. 저택에서부터 주변 일정 반경까지 어떤 정글의 주민도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넓은 지역도 아니고 주변 동네 정도여서, 운무시에서 활동하는 클랜들도 암묵적으로 그 영역을 인정하고 굳이 그곳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 힘이 너무 강력했으니까.

이따금 정글의 주민들이 그곳을 드나들긴 했으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들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마녀가 그 주변의 가정집에 스며들어 재산을 갈취하려던 적이 있었다. 부촌이라 표적이 많았다.

이후 마녀는 백치가 되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몇 번이고 죽거나, 바보가 되거나, 사라진 이후 그 영역은 운무시의 새로운 룰이 되었다.

케인의 중립지대는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새로울 것이 없다.

운무고 괴담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괴물은 지금 태동하는 존재, 새로이 떠오르는 뜨거운 감자였다.

***

사람들은 그녀를 닥터 케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제목의 만화가 있는데, 그것은 실은 그녀를 모델로 한 것이다. 주인공을 마초적인 남자로 바꾸고, 배경을 정글에서 현대로 바꾸어 각색했을 뿐, 닥터 케이의 행적은 그녀의 것이다. 정글에 대해 알게 된 만화가가 그녀의 허락 하에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백 년이 넘도록 그녀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다녔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인 계기는 없다. 그녀는 본래 의사였고, 한때는 전쟁터의 군의관이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죽은 이들의 그 초점 잃은 눈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시체들을 보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녀의 등뒤에서 노려보는 사자들의 눈동자는, 한 생명을 구할 때야만이 하나씩 사라졌다. 한 죽음에 하나의 생명. 그녀는 그렇게 지나온 죽음들을 되갚으려 사람들을 살려왔다. 그러나 죽음은 곧 순리여서 그녀는 모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수천의 시선을 감내하고 있다.

그녀가 이 일을 끝내는 것은 아마, 저 등 뒤의 눈동자들이 사라지는 날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 평생.

나이가 든 지금은 예전처럼 필사적으로 환자들을 찾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는 반백수 비슷하게 놀고 먹으며 가끔 의뢰가 오면 그들을 치료해주는 스페셜리스트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

태어난 곳은 중국이지만 동아시아의 어지러운 근현대사를 따라 사람들을 구하다보니 한중일의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고 지금은 대한민국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빛나는 운무시에서 아이돌 팬클럽 회장직을 겸하며 가끔 의뢰나 받으며 놀고 먹는 중이었다.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어제 그녀에게 이메일이 왔다. 긴 내용은 아니었다.

닥터 케이. 당신이 필요하니 이 편지의 발신인 주소로 와주세요. 보수 확실. 착수금 입금 완료. 연락처 XXX-XXXX.

계좌를 확인하니 엄청난 금액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가 기쁜 마음으로 주소를 확인했는데.

운무시의 한 저택이었다.

그 저택이다.

괴물이 산다는 그곳이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오빠들(그녀는 백살이 넘었다) 조공도 보내야하고 앨범도 새로 나온다던데…… 곧 적금도 만기고 아프리카 상아왕(象牙王) 정기검진해주러 가야하는데…….

추신은 암담했다. PS - 안오면 찾아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다시 물었다. 손끝에서부터 불이 옮아가 담배 끄트머리가 타들어갔다.

나 어떡하지.

그녀는 정글넷을 검색해서 정보를 모았다. 별 의미는 없었다.

정글넷 현자포럼 Q&A

Q(익명) : 운무시 월희동 괴물 착한가요?

A(익명1) : 안건드리면 냅두는 걸로 보아 착할 걸로 생각됩니다.

A(익명2) : 동네 마킹한 기운을 보면 완전 사악합니다 개악당이니 조심하세요

정글넷 블로그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그 유명한 운무시 월희동을 가봤습니다!>ㅁ< 다들 위험하다고는 하는데 소란만 안피우면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겁없는 뇨자가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어요. 일단 들어가자마자 어두운 기운이 스물스물....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절대 선한 힘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먼발치에서 본 저택은 완전 부잣집...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생략)

별 가치 있는 정보는 없었지만 공통된 사항이 있었다.

그냥 동네 돌아다니는 건 내버려둔다. 아주 나쁜 놈은 아닌 듯.

동네에 마킹해둔 기운이 장난 아니게 어둡다는 것. 진짜 나쁜 놈일 수도…….

그리고 저택이 아주 크고 예쁘다.

고민 끝에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를 누르며 그녀가 긴장을 떨치려 생각했다. 별 거 아니다. 나는 유서 깊은 가문들의 문제를 해결했고 아프리카 상아왕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그녀 또한 이제는 하나의 전설이 된 존재다. 싸움은 못하지만 그녀의 환자였던 수많은 능력자들과 클랜의 비호를 등에 업고 있으며, 도주에 특화된 아티팩트 '구름을 타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닥터 케이, 본명 케이 챠오메이. 소심해서 쉽게 긴장하는 성격이지만 결코 무시당할 위치는 아니다.

그녀가 온갖 생각을 하는 동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 여, 여보세요? 거기 그 괴…… 아니, 저 닥터 케이인데요."

[아하, 안녕하세요. 바로 전화 주셨네요. 언제쯤 오실 수 있죠?]

"내일로 가능할까요……?"

[후후 물론이죠. 언제든 편할 때 들러주세요.]

"네…… 근데 무슨 증세로……."

[그건 내일 직접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챠오메이는 전화를 끊었다. 긴장했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게 본인인지, 아니면 부하나 동거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투가 온화해서 마음이 놓였다. 최소한 저런 분위기의 여성이 지낼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그녀가 백년 넘게 정글을 굴러먹으며 깨달은 것은, 정글은 정말 쓰레기 같은 놈들 천지라는 것이다.

그녀가 치료한 이들 중 하나는 유명한 마법사였는데, 자신이 패퇴시킨 여자들을 모두 노예로 삼았다. 전화 목소리로도 항상 그녀들은 움츠려 있어서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어쨌건 한동안 백수로 지낼 수 있는 수입원인 것 같다. 챠오메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

수현은 올가가 전화를 받는 모습에 감탄했다.

"올가 너 전화 받을 때 엄청 어른스럽다. 목소리 연습했어?"

"그럼요. 메이드로서 정중한 전화 예절은 기본이지요."

"아니, 방금 그 목소리로 말해봐."

올가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주인님. 어떤가요, 이 목소리 좋아요?"

착 가라앉은 우아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살짝 정하의 느낌이 나는데, 섹시함보다는 정중함이 묻어나왔다. 수현이 올가를 끌어안고 더 해보라고 부추겼다.

"엣헴. 키스 한 번에 한 번씩 들려드릴게요."

"키스 정도로? 난 더 좋은 것도 해줄 수 있는데."

"앗, 그, 그럼 저 더 못한단 말이예욧…… 꺄읏."

"그 목소리 또 들려줘."

"자꾸 그러면 못하잖아욧. 흐앗."

수현의 손장난에 올가가 바르르 떨었다. 수현은 장난이었지만 이미 길들여진 올가에게는 장난이 아니어서, 몇 번 괴롭힘당하자 금새 느끼고 절정해버렸다. 올가가 눈에 물기를 매달고 애액을 싸버리자 수현은 불끈 성욕이 일어나 그녀의 치마를 걷었다. 발그레한 꽃잎이 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가 또한 젖은 눈으로 수현을 유혹했다.

수현이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리는 순간.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주인님?"

다가온 에브게냐의 목소리에 수현이 굳어버렸다. 정하도 어느새 다가와서는 말했다.

"주인님 참을성이 정말 제로네. 설마했지만 바로 이럴 줄이야."

"아, 아직 하진 않았는데."

발기한 남근을 주섬주섬 갈무리했다.

이건 사소한 내기에서 비롯되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수현이 만약 한 명만 택해야 한다면 누굴 원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네 여인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시작된 내기는 간단하다.

수현이 일주일간 금욕을 한 후, 한 여인을 선택하고, 일주일간은 그 여인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수현을 굶주리게 한 후 일주일 동안 안을 수 있는 한 명만 고르게 되는 것이다. 성욕을 쌓아둔 후 욕구불만의 상태에서 가장 범하고 싶은 상대는 대체 누가 될 것인가. 승자는 자연히 수현을 일주일간 독점할 수 있으니 최고의 상이 된다. 그래서 수현은 현재 금욕중이었다.

"으으……."

포식자가 된 이후 말그대로, 단 하루도 금욕한 적 없이 미녀들과 뒹굴어온 수현에게 이 형벌은 너무 가혹했다. 무방비로 다리를 벌린 올가에게 곧바로 피스톤질하고 싶다. 저 여린 속살이 자신을 꽉 죄어줄 때 키스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싶다. 옆에서 뾰족하게 노려보는 정하를 안아올리고 울려주고 싶다. 저 자신만만한 얼굴이 흐느끼며 애원할 때까지 괴롭히고 싶고, 저 도도하고 잔혹한 예브게냐가 순한 양처럼 자신에게 복종하며 매달리게 하고 싶다. 떨어진 곳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이브린을 갑자기 덮쳐서 뒤에서부터 범해 드래곤의 자존심을 버리고 울게 만들고 싶다.

"으으."

더 힘든 것은, 내기의 승자가 되려는 그녀들이 정작 행위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수현을 자극하며 애태우는 것이다.

"후후. 주인님 조금만 참아. 그날 기쁘게 해줄테니까."

정하가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고는, 수현에게 키스하고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수현의 허벅지를 스윽 훑고 지나간다.

"주인님 때문에 매일 혼자 위로해."

예브게냐가 수현의 손을 잡고 그녀의 원피스 아래로 이끌었다. 축축한 꽃잎이 느껴지자 수현의 양물이 금새 타올랐다. 예브게냐는 푸른 눈으로 윙크하고는 지나갔다.

수현이 낙담하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벌렁 누워 생각했다.

내일 소문의 명의 닥터 케이를 초빙해서, 정하의 상태를 확인할 것이다.

이브린은 고개를 저었었다.

수현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

눈을 감았다. 선선한 바람이 새어들어와 열대야를 식힌다. 누군가가 침대를 흔들어주는 것처럼 정신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잠이 찾아온다. 혼곤한 가운데, 수현은 요람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끼익, 끼익. 그 일정한 움직임이 수현을 잠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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