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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어른들의 장난감
수현이 차에서 내렸다.
"내일 봐요."
"응. 잠깐만."
지윤이 수현의 옷깃을 잡고 다시 조수석에 앉힌다. 수현이 갸웃하며 돌아보자, 그대로 지윤이 키스했다. 서로의 입술이 맞부딪치고, 서로의 혀가 잠시 섞인다. 아쉽다는 듯 입술을 떼며 지윤이 웃었다.
"내일 봐."
수현이 지윤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는 뺨에 키스해주고 차에서 내렸다. 지윤이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수현은 멀어지는 그녀의 차를 바라보다가, 이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지윤이 내려준 곳은 수현의 집으로 알려진 오피스텔이다. 하지만 수현의 본거지는 이제 저택이다. 택시가 밤거리를 달렸다.
택시에서 내렸다. 밤이 깔린 주택가에는 길마다 고개 숙인 가로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잡다한 가게들과 떨어져 네온사인도 없이 조용한 곳이다. 수현이 저택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언제나처럼 일층과 이층, 모두 불이 켜졌다. 이따금 창가에서 여인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 집이다.
누군가 기다려주는 집을 가진 게 얼마만일까. 수현에게 집이란 쓸쓸한 곳이었다. 문 열면 드리우는 것은 언제나 창에서 새어든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를 기다리고, 그를 신경쓰는 여인들이 있다.
그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다.
수현이 저택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저벅.
대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강력한 마력이 콰쾅, 하고 거대한 벽이 되어 치솟는다.
힘이 타올라 열이 오를 정도로 강력한 역장이 저택에 펼쳐졌다. 정글의 주민들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면, 하늘 끝까지 치솟아오르는 까마득한 어둠의 기둥을 보았을 것이다. 이곳을 넘보지 말라는 선포를 운무시에 떨친다. 수현의 이 작업 때문일까, 근래 주택 주위로 정글의 주민들의 기척이 급격히 감소했다.
수현은 온몸에 지직거리는 마력을 갈무리하며 정원을 따라 본채로 걸어갔다.
안으로 네 여인의 기척이 느껴진다.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며 그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 밖에서 소희를 만나고 지윤을 만나며 외도해도, 결국 영원히 수현과 함께할 이들은 그 넷이다.
수현이 문을 열었다.
"저 왔어요."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올가가 무릎에 한 소년을 앉혀두고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현의 눈에 그 모습이 박힌다.
*
올가는 작은 수현을 무릎에 앉히고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눈 돌리자 수현이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수현의 눈동자가 일순 일렁인다 싶었다.
곧 미풍이 불어들어왔다.
올가의 시야가 암전했다. 허공 갈라지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몸이 멋대로 흔들렸다. 눈 떴을 때 보이는 건 목을 죄고 있는 수현의 손아귀와, 노려보는 그의 사나운 눈동자였다.
목을 휘감은 어둠은 차마 그녀의 목을 차츰 조여오며, 주가 내리는 탈명의 선고를 기다린다.
저 너머에는 수현의 다른 손에 붙들린 호문쿨루스가 찢어져가고 있다. 올가는 멍하니 수현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히 어두운 눈동자 속에서 무엇인가가 흔들린다. 올가는 죽음에 잇닿은 자리에서, 수현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목이 짓이겨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수현이 이를 드러낸다. 어금니를 까득 깨물고, 올가의 목을 붙잡은 손을 떨었다. 목을 죄는 힘은 빠지다가, 들어왔다가 하며 그녀의 명을 가늠한다.
올가는 희고 긴 목을 드러낸 채, 가만히 수현을 바라보았다.
뜻대로.
수현의 눈이 검게 가라앉는다.
그 순간, 흰 팔이 뒤에서부터 수현의 목을 감싸안는다.
"주인님. 착하지."
정하였다. 정하가 수현의 귀에 키스하며 속삭인다. 올가의 목을 붙잡은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알잖아. 우리 절대 주인님 안떠나. 응?"
"……."
올가가 풀려났다.
수현이 이마를 짚는다. 숨이 거칠다. 정하가 수현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달래주고 있었다.
올가는 주저앉아,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서 수현을 올려다본다. 자신을 향하던, 그 원망 가득한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았다.
수현이 손에 붙들렸던 호문쿨루스를 내팽개치고는, 올가에게 말했다.
"올가, 그…… 미안."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올가는 바닥에 주저앉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츳츳. 그러게 잠시 놓으라지 않았느냐. 다 때가 있는 것을."
이브린이 다가와 올가에게 손을 뻗었다. 그곳으로부터 따뜻한 초록색 빛이 흘러내렸다. 그 빛을 쪼이자 올가는 마음이 가라앉고 진정이 되었다. 올가가 한숨을 푹 쉬며 이브린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신 거죠?"
"네가 왠 낯선 놈이랑 엉겨서 시시덕거리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그냥 인형인데……."
"순간 인형인 걸 알면서도 손을 멈추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이 주인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이니, 앞으로는 자각하는 게 좋을 터."
올가가 아직 잘 모르겠다는 듯이 이브린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주인은, 기본적으로……."
이브린이 말을 이으려는 찰나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애정결핍이잖아. 몰랐어?"
예브게냐였다. 올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브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안보이는데……."
"그냥 딱 보이는데? 그러니까 매일 우리 찾고 혼자는 안자려 들고, 스킨쉽 좋아하고 매일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어하고 밖으로는 괜히 잔뜩 꼬리치고 그러지."
"우……."
"뭐 주인님 본인이 워낙 잘났으니까 티가 안나긴 해. 그래도 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왠 이상한 거랑 껴안고 실실 웃고 있는 거 보면 바로 나오는 거야. 속으로는 집착으로 뒤엉킨 괴물이 있으니까."
예브게냐가 머리에 대고 손가락을 휙 돌린다.
"아마 인형인 걸 알았을 텐데 여운 때문에 못멈췄을 거야. 내가 다 아팠어."
예브게냐는 종속의 낙인으로 연결된 데다 특히 그녀의 능력 때문에 수현의 심리상태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예브게냐가 허리를 숙여 올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미소짓는다. 올가도 마주 웃으려고 했지만 주인님의 속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낙담시킨 것 같아 가슴이 무겁다.
"웃어도 돼. 이건 좋은 소식이야."
예브게냐가 속삭였다.
"네가 다치든, 강간을 당하든, 어디 하나가 잘리든, 주인님은 널 결코 버리지 않는단 뜻이니까. 네가 먼저 주인님을 배신하지 않으면."
수현이 그녀들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다.
맹목적인 사랑이다.
그녀들이 수현을 사랑하고 따르는 이상, 수현은 그녀들이 어떠한 사람이어도 개의치 않는다.
올가는 생각했다.
그 말은 곧, 그녀가 먼저 수현을 배신하면.
아까의 그 원망에 찬 눈으로, 울면서 자신을 죽여버리겠지. 목을 비틀고 심장을 찢고, 시체를 범하고 전신을 씹어먹을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그에게 귀속될 것이다.
사랑, 아니면 죽음.
아랫배가 오싹 달아오른다.
"어때. 주인님 더 섹시하지?"
예브게냐가 상기한 얼굴로 속삭인다.
올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후 올가가 수현의 방으로 올라갔고, 둘은 뒤엉킨 채 계속해서 사랑을 속삭이는 끈적한 행위를 나누었다. 수현은 평소보다도 훨씬 다정해서, 서로 삽입만 한 채 껴안고 키스와 밀어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올가가 애가 타 허리를 흔들 정도였다. 이내 올가는 쾌락에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수현에게 매달렸다.
수현은 올가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미안하고도, 더 사랑스럽다.
수현의 침대에 늘어진 올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반듯한 이마에 키스했다.
오늘 밤은 올가를 껴안고 자겠지. 서로가 서로의 꿈을 꾸면서.
수현이 일층 거실로 내려오자, 왠 꼬마가 수현의 앞을 막는다.
"이 악당. 내가 용서치 않겠다! 올가를 내놔랏!"
수현이 리틀 수현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 대롱대롱 흔들었다.
"누나. 이거 뭐에요?"
"꺄. 조심해. 비싸 그거!"
거실의 커다란 쇼파에 정하와 예브게냐, 이브린이 앉아 있었다. 수현이 그녀들 가운데에 파고들어 앉아 정하와 예브게냐의 어깨를 안아 당겼다. 두 여인이 수현에게 안겨서는 부드러운 콧소리를 냈다.
수현의 마력에 사로잡힌 리틀 수현은 그들 앞에서 온갖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형이야."
"저에요?"
그제야 인형의 얼굴을 확인한 수현이 눈썹을 치켜 떴다.
수현이 기억하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다.
"진짜 같네."
수현이 마력을 떨쳐 호문쿨루스의 내부를 탐색한다. 마력기관에서부터 뻗은 힘의 연결이 온 사지로 이어져 있었고 목에는 소리를 만드는 기관도 존재했다. 그야말로 원하는 모든 움직임과 행동을 구현 가능한 꿈의 인형이다.
수현은 어떤 부분을 자극하고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건……?"
리틀 수현의 바지춤이 부풀어오른다.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정하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최고급형이라니깐…… 이런 기능도 충분히……."
리틀 수현이 발기한 하복부를 한 손으로 가리려 애쓰며 안절부절, 부끄러운 듯 다리를 모으고 그녀들을 흘끗거린다.
"지, 지금 움직인 거 누구야."
"우와 나 소름 돋았어."
"귀여운데?"
이브린이 음침하게 웃었다.
수현이 싱글거리며 속삭인다.
"우리, 저거 시험해볼까요?"
"뭐엇?"
"그냥 인형이잖아요. 평소에 쓰는 장난감들이랑 똑같은 거죠."
"그래도 사람 모양이라서 기분 나빠."
"싫어."
정하와 예브게냐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미 리틀 수현은 그녀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투명한 피부에 새까만 눈, 수려한 얼굴이 정말로 수현의 유년기를 그대로 잘라온 느낌이다. 수현이 후후 웃었다. 정하와 예브게냐, 이브린은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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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상 이틀 정도 연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쓸 수 있게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