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97화 (9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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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어른들의 장난감

수현이 자리를 비운 저택은 평화롭다.

수현이 하교하거나 여자친구들과 놀다 올 때까지, 저택의 여인들은 자기만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재력에 있어서는 무한정한 이들이라 생계를 위한 노동 따위의 것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들은 하고 싶은 것만 한다.

신이 내린 백수들이다.

올가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메이드로서 저택을 관리할 책임이 있지만, 마법의 대가로서 모든 공정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녀 또한 수현이 자리를 비운 시간의 태반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녀의 취미 중 하나는 정원 꾸미기다.

그리고 저택 뒤편에는, 그녀가 심은 천사가 이제 눈 뜨려 하고 있었다.

*

정하의 취미는 컴퓨터 게임이다. 물론 그녀의 방에는 온갖 콘솔 게임도 갖춰져 있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니터 너머의 다른 사람과 직접 승부하는 실시간 온라인 게임이다. 지고는 못배기는 승부 근성이 그녀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영생에 가까운 뱀파이어라, 생을 낭비하나는 개념도 없어서 죄책감 없이 게임에만 몰두할 수 있다.

근래 그녀의 일과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수현. 게임. 식사(흡혈), 잠. 수현과 뒹굴거나 게임을 하거나 잔다. 뱀파이어도 평범한 식사는 가능하지만 불필요하므로, 수현과 함께가 아니면 굳이 식탁에 앉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수현이 집을 비우면 사실상 하나, 게임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게임을 한다. 팀원과 소통하는 능력은 최악이지만, 뱀파이어 특유의 반응속도와 동시정보처리능력으로 개인기는 뛰어나서 이제 계급도 올랐다. 수현의 조언을 따랐을 뿐인데 연전연승이었다.(수현의 조언, 채팅창 끄고 채팅하지 하세요.)

그리고 방금 그녀는 수현과 같은 등급이 되었다.

그녀는 승리라는 두 글자가 뜨고 마지막 전투정보처리창에서 계급이 상승했다는 메세지를 확인하고 하늘로 두 손을 뻗었다.

"카하하하핫!"

정하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광소한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보통이면 쉴틈 없이 다음 게임을 눌렀겠지만 기념비적인 대승을 거두고서 흥이 오른 그녀는 술이 당겼다. 컴퓨터 책상에서 벌떡 일어난다.

검은 속옷 차림이던 그녀는 침대에 널부러져 있던 수현의 티셔츠만 대충 꿰어 입고 방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는 이브린이 있었다.

"뭐 봐?"

"조, 조용. 중요한 대목이니라."

정하가 와인 셀러에서 병 하나를 꺼내 코르크를 뽑아냈다. 도구 없이 마력으로 뜯어 내고는, 손가락에 와인잔 하나를 걸치고 이브린 곁에 앉았다. 그리고 와인을 콸콸 따른다. 화면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하가 와인잔을 기울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저히 그녀의 감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막장 시나리오인데, 수현이 몇 번 이런 걸 이브린에게 보여주고나자 그녀는 이제 마니아가 되어 지나간 드라마까지 다시보기로 섭렵하고 있었다. 정하는 입안 가득 퍼지는 와인향에 몸을 떨면서 몸을 기댔다.

너무 게임만 했나, 이런 것도 좋네.

화면에 빨려들어갈 듯 몰입하는 이브린을 보고 정하가 피식 웃는데, 어느새 예브게냐가 뒤에 서 있었다. 정하가 쇼파 등받이 뒤로 목을 넘기고 예브게냐를 쳐다보았다.

트레이닝복 핫팬츠에 무지 티셔츠. 예브게냐로서는 보기 드문 러프한 차림새다.

"오늘은 일 안해?"

"이번 달 목표 달성해서 쉴 거야. 너야말로 폐인짓 안해?"

"나도 목표 달성해서 자축."

예브게냐는 일을 한다. 주식이나 각종 부동산, 여기저기에 투자하고 무슨 회사까지 운용하는 것 같은데 방구석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그녀는 그저 방에서 모니터링하다가 전화를 돌리면 일제히 돌아가는 시스템인 것 같다. 재산은 눈덩이가 커지듯 불어나고 있다. 쓸 데도 없으면서 일하는 이유는, 그냥 심심하니까.

예브게냐가 정하의 반대쪽, 이브린의 옆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나 이거 주인님이랑 봤는데. 저 여자가 사실 배후잖아. 주인공 엄마 죽인 것도 저 여자야."

"……!"

이브린이 고개를 팩 돌린다.

예브게냐가 움찔했다. 이브린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인형 같은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의 표정이 떠올라 있다.

"어, 어떻게…… 스포일러를……!"

이브린이 벌떡 쇼파 위로 일어났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나라 잃은 얼굴이다.

예브게냐가 싱긋 웃는다.

"주인공 마지막에 복수하고 같이 죽지롱."

"……!"

예브게냐가 깔깔 웃으며 자리를 떠난다. 정하가 이브린의 머리를 토닥였다.

"괜찮아. 막장 드라마는 아직 많아."

"막장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정하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브린은 부들부들거리며 리모콘으로 다시보기 메뉴에서 다른 드라마를 찾는다.

정하가 문득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항상 메이드복을 입고 종종 걸어다니는 올가가 보이지 않는다. 근래에 수현 없이도 정하를 식탁에 앉혀보겠다고 각종 요리에 도전하여 정하를 쫓아다니던 올가였다. 맛은 느끼지만 식욕이 적어 식사시간이란 그저 수현과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인 정하는 늘 올가의 기대를 배신했지만.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여느 때처럼 야시시한 메이드복을 날씬하게 차려 입은 올가다. 그녀의 얼굴이 생글생글하다. 기분이 좋아보여서 정하가 말을 걸었다.

"기분 좋은 일 있어?"

"후후후. 언니.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올가의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자 정하는 불안해졌다. 매일 괴롭힘 당하는 위치의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땐 무언가 저질렀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관문 틈으로 빼꼼, 올가의 손을 잡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보자 더 불안해졌다.

"짠!"

올가가 그 손을 잡아당기자, 올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소년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끌려와 올가의 품에 안긴다. 올가가 소년을 끌어안고 생글생글 머리를 쓰다듬는다.

정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

올가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저택 뒤편에는 그녀가 마법으로 진을 친 정원이 있다. 그곳에는 각종 묘한 식물들을 기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올가가 공들이는 것은 각종 마법 아이템들을 들이부어 만든 특별한 작품이다.

호문쿨루스!

그리고 그녀의 가장 주요한 재료는 수현의 정액이다.

그리고 오늘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녀가 손에 마력을 담아 땅을 헤치자, 안에서부터 불그레한 빛이 새어나온다.

루비의 빛깔이다. 루비가 거대해진 듯한 모양새의 표면은 빛을 반사하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비친다.

올가가 웃으면서 그것을 뽑아냈다.

동그란 공과 같은 루비 안에는 웅크린 소년의 모습이 있다.

"때가 되었다. 네 주가 명하니 이제 눈을 떠라."

언령을 부려 마력을 전한다. 그러자 루비의 표면이 차츰 스러지고, 알몸의 소년이 정원에 웅크려 있다. 올가가 웅크린 소년의 뒷덜미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흘려보낸다. 방전된 배터리에 전류가 차오르듯이, 소년의 몸에 힘이 충전되기 시작했다.

소년이 눈을 뜨고는 기계적으로 말한다.

"첫 기동을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피노키오 공방의 호문쿨루스 최고급 에디션 H6626을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 호문쿨루스는 고객님의 충실한 벗이 될 것이며 사후 수리 및 점검은 일년동안 무료로 지원됩니다. 고객님의 과실에 의한 파손은 금액이 청구되오니 유의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궁금한 점은 정글넷 홈페이지에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고객 감동, 그 이상을 추구하는 피노키오 공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문다. 올가의 마력에 완전히 동기화하더니, 올가가 뜻하는 대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호문쿨루스 제작툴의 최선두를 달리는 피노키오 공방의 호문쿨루스 최신 H6626 버전이다.

생명 창조는 신의 영역이므로 실제로 생명인 것은 아니다. 내부 구조 또한 인간이 아닌,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인형에 불과하다.

마법공학의 힘으로 탄생시킨 전대미문의 리얼돌!

그것이 바로 피노키오 공방의 호문쿨루스 시리즈다. 정액에 담긴 DNA 정보가 흘러들어가 그 주인과 똑같은 형상으로 자라나며, 그 성장의 정도는 시술자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게다가 내부에 장착된 마력회로에 마력을 채워 동기화시키면, 주인의 뜻대로 호문쿨루스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수현, 아니 올가에 의해 움직이는 리틀 수현인 것이다.

올가가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호문쿨루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올가 주인님!"

수현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의 모습인 호문쿨루스가 생글 웃으며 올가에게 말했다.

올가가 감동해서 이마를 짚는다.

"귀여워……!"

"우웅, 수현이 귀여워요?"

호문쿨루스가 순수한 얼굴로 갸웃하며 묻는다. 이것 또한 마력을 뿌린 올가가 스스로 조종하는 것이다.

"귀여워!"

"헤헤. 감사합니다. 올가 주인님도 예뻐요."

작은 수현이 올가에게 안긴다. 올가가 부들부들 떨었다.

실상을 안다면, 인형을 가지고 혼자 일인이역하여 자문자답하는 가엾은 모습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소년과 올가의 다정한 모습이다.

"올가 주인님. 제 이름은 뭔가요?"

"넌 작은 수현이야. 그냥 수현이라고 부를게."

"네!"

"누나라고 불러."

"앗, 그, 그건……."

곤란해하며 우물쭈물하던 작은 수현이 부끄러운 듯 작게 속삭인다.

"오, 올가 누나……."

"착하지."

인형극에 빠진 올가는 혼자 온갖 상황을 연출하며 작은 수현을 갖고 놀았다.

그리고 이 업적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다는 공명심에 수현의 손을 잡고 저택을 향했다. 호문쿨루스가 알몸이라 외투를 걸쳐주었다.

그리고 현관을 열었다.

정하가 보인다.

올가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수현을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짠!"

"……!"

생명의 기운이 없으나, 사람과 똑같이 생긴, 그것도 수현을 빼닮은 존재. 올가가 그간 정원으로 나설 때마다 콧노래 부르던 기억.

정하는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올가 너……!"

정하의 마력이 올가를 향해 쏘아져나간다. 올가가 반응하기도 전에 작은 수현의 마력회로를 장악하여 올가의 마력을 밀어낸다. 작은 수현이 올가의 품을 떨쳐내고 정하에게 안긴다.

"정하 누나가 더 좋아요."

"후후후."

"이, 이런 지조 없는 녀석……!"

"언제 이런 재밌는 걸 만든 거야?"

"예전에 심었었는데 오늘 완성했어요. 언니들 놀래켜주려고 비밀로 했어요!"

"주인님이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나."

정하가 품에 안겨 있는 호문쿨루스의 양뺨을 꼬집고 주욱 늘려본다. 피부의 감촉이 정말 사람 피부와 똑같다. 정하가 마력을 움직였다. 호문쿨루스가 마력에 반응했다.

"우에에에. 아파요 누나."

작은 수현이 울상을 짓는다. 정하의 심장이 쿵한다.

"이건…… 완벽해."

"제가 얼마나 공들였다구요. 똑같은 키트여도 시술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진다는 말씀. 이건 그야말로 완벽!"

어느새 이브린이 쇼파에서부터 둥실 떠올라 정하의 곁에 착지한다. 둘의 눈높이가 비슷하다. 이브린이 감탄한 표정을 짓는다.

"호오. 이건 가히 제작자의 집념이 느껴지는 퀄리티로구나."

"매일매일 관리했죠."

이브린의 마력이 정하의 마력을 부드럽게 밀어내고는 작은 수현을 차지한다.

작은 수현이 갑자기 이브린 앞에 무릎을 꿇고 부복한다.

"위대한 드래곤의 후예, 이브린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뻗어서는 이브린의 발등에 키스했다.

이브린이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

예브게냐가 소란을 감지하고 나타났다.

"어, 그거 뭐야. 혹시 호문쿨루스?"

"네. 언니도 움직여보세요!"

"……."

예브게냐가 멈추었다. 이브린이 작은 수현을 움직여, 자신만만한(귀여운) 얼굴로 예브게냐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어디 한 번 나를 지배해보시지."

나머지는 그 귀여움에 몸을 떨었지만 예브게냐는 분한 얼굴로 호문쿨루스를 노려본다.

"그러고보니……."

예브게냐는 마력이 없다.

정신지배능력은 마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이능력을 타고났으나 마력을 수련한 적은 없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호문쿨루스를 움직일 수 없는 인물이다. 호문쿨루스가 생물도 아니라 뇌도 없으므로 지배할 수도 없다.

"기다려. 마법 배우고 올 테니까."

"어, 언니!?"

예브게냐가 방으로 올라갔다.

호문쿨루스 조종에 큰 마력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법을 바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냅둬. 저 기집애는 진짜 마법 배워올 애야."

"일주일에 걸겠느니라."

"그건 너무 심하지? 난 한달."

작은 수현이 팔짱을 끼며 훗, 웃었다.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꺄, 귀여워. 방금 누구야. 누가 움직였어."

"언니 아니에요!?"

"난 안움직였느니라."

"그만, 간지러! 지금 누구야!"

"꺅! 풉, 그만!"

============================ 작품 후기 ============================

로또 1등 당첨 후기 검색해보니 전화 온대서 넣었는데 아닌가여?? 로또 해본 적이 없어서....ㅠㅠ 봐주세염

그리고 곧 100회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100회 특집 외전을 준비중입니다.

예고편!!

[100회 기념 외전 예고]

눈꺼풀을 찌르는 햇살에 눈을 떴다.

누구도 깨라고 강요하지 않고, 때 되어 쪼이는 햇빛에 못이겨 눈을 뜨는 이런 주말 아침을, 수현은 가장 좋아한다.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여느 때처럼 그의 동거인들이 잠투정을 부리며 더욱 품으로 파고든다. 서로가 알몸으로 껴안고 맨살을 비비는 느낌이 좋다. 수현이 미소지으며 곁의 흑발을 쓰다듬었다.

"흐응."

정하가 기분 좋은 얼굴로 신음한다.

섹시한 저음이다.

…….

아니, 너무 저음인데. 수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정하를 빤히 쳐다본다. 머리카락이 짧아졌다. 눈 감은 얼굴선이 샤프하다. 예전에는 살떨리게 고혹적인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제법 남자다운 느낌이 난다.

수현이 소스라쳐서 벌떡 일어났다.

정하가 덜 깬 얼굴로 미소짓는다.

"으응…… 주인님 일어났어……?"

나른하게 속삭이는 낮은 울림이 귀를 건드린다.

엄청나게 섹시한 목소리다.

……다만 여자에게만.

수현이 놀라서 침대 밖으로 뛰쳐나온다. 너무 놀라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아는 정하는 여자다. 세상에서 제일로 고혹적인 여자다. 그런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저 사람은.

여자라면 누구나 홀릴 것 같은 섹시한 얼굴의 미청년이다. 무슨 장난을 치냐는 듯 웃고 있는 표정에도 색기가 묻어나온다. 알몸은 말랐지만 단단해서, 유연한 표범을 연상케 한다. 그가 이불에서 벗어나 바닥을 딛었다.

알몸이라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한 커다란 물건이 눈에 밟힌다.

"아침부터 나 유혹하는 거야?"

그 남자가 키득 웃는다. 그 모양새는 분명 정하를 닮았는데, 정하가 남자라면 딱 저 모습일 거 같은데, 정하는 여자다. 수현의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소리쳐서 예브게냐나 올가, 이브린을 불러야 한다. 수현이 문고리를 잡았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주인님! 아침 드세요!"

누군가가 활기차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치 집사처럼 차려 입은 미소년이다. 반바지 아래로 뻗은 날씬한 다리가 하얘서 눈을 사로잡는다. 피가 섞였는지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운 부분만 정제해서 내놓은 듯한 생김새로, 엉거주춤 서 있는 수현을 발견하고서 생긋 웃는데 꽃이 피는 것만 같다.

……말하자면 올가가 소년이었다면 딱 이런 생김새일 것이다.

"앗. 주인님. 모닝 키스 해주세요."

이게 무슨…….

당황해서 눈을 피하다가, 벽에 붙은 전신거울에 눈이 이르렀다.

순간 마주친 것은 지독하게 새까만 눈동자.

소녀였다. 신이 고심하여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빚어낸 듯한 아름다운 소녀다. 커다란 눈에 콧날은 곧고, 입술은 발그레하다. 피부는 새까만 머리카락에 대비되어 한층 하얗게 빛난다. 가슴은 크지 않았으나 모양새가 잘 잡혀 있고, 유두는 봄을 올린 듯한 분홍색이다. 한줌도 안될 듯이 가냘픈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곡선이 유려하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가느다래서 너무 말랐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손 닿으면 녹아버릴 듯 매끈해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그리고 다리 사이 희미한 터럭 아래에 비치는 것은 남성기가 아니라, 여성기다.

꽃 같은 분홍빛이었다.

"……어어."

수현이 입을 열자, 거울 속 소녀도 입을 벌린다.

미의 여신과도 같은 외모가 무색하게 상당히 얼빠진 표정이다.

"이게 무슨……."

거울 속 소녀가 말한다.

"이게 뭐야……?"

수현의 귀에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는, 악기를 연주하는 듯 황홀한 소프라노였다.

정글의 게임 100회 기념 외전, 이상한 나라의 수현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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