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4 / 0180 ----------------------------------------------
19. 보지 못한 것
둘은 침묵한다. 고요한 가운데, 캐비닛 너머로 놈이 걷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현은 그녀의 허벅지를 건드리는 자신의 물건에 신경이 곤두선다. 지윤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도 느끼고 있을 터이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서 수현의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준다.
녀석이 든 나이프에서부터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수현이 몇 번 힘을 움직여보았으나 그것이 방어하고 있었다. 더 힘을 쓰다간 지윤에게도 여파가 갈 것 같아서, 그저 수현은 어둠을 흩뿌려 그들을 숨긴다. 놈은 어리둥절하여, 허둥지던 달리던 두 사냥감이 어디에 있을까 골몰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위기감은 없어서, 품 안의 지윤에게 신경이 집중된다. 둘의 다리가 교차하여 수현의 다리 사이에 지윤의 허벅지가, 그리고 그녀의 가랑이에 수현의 허벅지가 자리하고 있다. 수현의 물건은 점점 더 커져서, 그녀의 허벅지와 골반뼈 주위에서 존재감을 불리고 있다. 피할 곳도 없이 그녀의 몸을 쿠욱, 찌른다.
지윤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엉거주춤, 조심스레 몸을 비틀어보지만, 수현의 물건이 그녀의 몸에 좌우로 비벼졌을 뿐이다. 갑작스런 자극에 수현의 물건이 더 성을 낸다.
타박. 타박. 타박.
캐비닛 앞을 서성이는 소리. 희미한 틈으로 수현은 그를 볼 수 있다. 추악한 욕망에 일그러진 그 얼굴은 이미 인간 같지 않다. 얼굴 가죽이 밀려들며 홀로 히죽거리는 괴물이다. 그의 손에 든 나이프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히히, 그가 웃으면서 캐비닛 앞을 한바퀴 돈다.
"어디에 있을까……?"
뱀처럼 속삭인다. 지윤의 몸이 굳는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려서, 수현은 그녀를 끌어안아 손끝을 움직여 토닥였다. 그녀의 몸이 이완된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수현은 참지 못하고 허벅지를 살짝 움직여 보았다.
잠깐 움직인 것으로 그녀의 가랑이에 닿는다. 타이트한 바지라, 직물 너머로 그녀의 둔부에 그대로 닿는다.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수현의 허벅지가 그녀의 비처에 접촉한다.
인간은 위험에 처할 때 성욕이 더 강해진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자손을 남기기 위한 본능이라고 했다.
수현이 그녀의 몸에 남근을 더 짓눌러, 그것을 그녀가 온통 느끼도록 하면서, 허벅지를 움직였다. 놈의 발걸음이 멀어진다. 그녀의 긴장이 풀리고, 지윤의 숨이 조금 더 길어진다. 그녀는 이제 다른 의미로 떨고 있다. 수현의 몸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그의 육중한 물건이 델 듯이 뜨겁게 몸을 찌른다.
가슴에 닿는 그녀의 유방으로부터, 그녀의 가빠지는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수현은 차츰 멀어지는 놈의 기척을 느끼면서 지윤의 허리를 안는다.
괜찮아요.
하고 속삭였다.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수현의 어깨에 파묻힌 그녀의 턱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놈이 보이지 않자 수현이 다시 속삭인다.
나갈까요?
그녀가 불안한 듯 고개를 젓는다. 조금 귀엽다.
귀여움이라고는 없는 샤프한 선생님이었는데, 자신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는 모습에 조금 들뜬다.
둘의 몸은 더 가까워지고 있다.
지윤의 숨이 조금 더 가빠지고, 심장은 빠르게 뛴다.
공포인가 그 무엇인가. 달 밝은 밤에, 칼에 홀린 살인마 거니는 학교에, 수현은 지윤을 포옹하며 안온함에 미소짓는다.
어둠은 본래 익숙하므로, 수현은 온 어둠으로 그녀를 느낀다.
공포로 온통 헝클어져 제대로 기능하던 지윤의 머리는,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차츰 돌아온다. 자신을 찔러드는 수현의 남성과 가랑이에 닿아오는 그의 허벅지를 느끼면서, 그녀는 내부의 열기를 깨닫는다.
성적 흥분은 죽음의 공포와 뒤섞여 분간할 수가 없다.
자신의 허벅지에 자리한 그 무거운 존재감에 지윤은 몸이 굳어버린다. 뜨거운 것이 닿아 있었다. 그녀는 지금의 자세를 인식하고서 합리화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예쁘다는 걸 안다. 그녀의 제자, 수현은 젊다. 이미 여자친구와 섹스……도 했을 것이다. 둘의 몸이 이리도 가까워 서로가 몸으로 몸을 느끼고 있으니, 수현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므로 그녀는 이해한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아래가 젖어드는 것도, 당연한 생리현상일까.
그녀는 온통 어두워 어차피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수현의 그것이 의식되어 견딜 수가 없다. 아랫배에서부터 열기가 깨어나고 있다. 자신이 안겨든 이 소년의 몸은 예상 외로 탄탄하다. 그의 물건은 그 이상으로 두텁다.
수현과의 섹스를 이야기하던 소희가 왜 생각나는지.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 소년은 분명 성행위에 능할 것이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부둥켜안고 남근을 키운 채, 자신을 안는 상상하고 있을까.
지윤은 자신의 가랑이로 더 파고드는 수현의 허벅지를 느낀다.
어떡해.
허벅지가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묘한 감각은 선연하게 피어오른다.
입술을 깨물었다.
저 바깥을 헤매는 살인마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지금, 지윤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
하고 수현이 문득 속삭이자, 그녀의 귓가에 숨이 닿는다. 그녀는 찌르르 울리는 감각에 허벅지를 젖히다가, 그 사이로 들어찬 수현의 허벅지에 다시금 가랑이가 비벼져, 쾌감 때문에 허리를 경직한다. 몸을 찌르는 남근의 존재감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그 범인이 나타난 이후 머릿속은 온통 흐리다.
왜……?
그놈 간 것 같죠. 제가 잠시 상황을 보고…….
…….
말하면서도 수현의 허벅지와 양물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고의일까. 그 미세한 진동이 지윤의 몸에 큰 파랑을 일렁인다. 지윤은 들뜬 몸을 억누르며 애써 생각했다. 이대로 있는 게 안전할까. 아니면 나가서 움직여야 할까. 만약에 나가야 한다면 교사인 자신이 나가야 하는데…… 무엇이 마땅한 행동인지, 그녀는 갈피 잡을 수가 없다.
수현은 계속해서 속삭인다.
지금 휴대폰도 안되잖아요. 제가 나가서 살펴보고, 가능하면 후문쪽 길로 나가서 도움을 청해볼게요.
그의 결계는 모든 소통을 차단시킨다. 지윤이 말했다.
위험해. 차라리 내가…….
남자인 제가 더 나아요.
지윤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눈을 든다. 어둠 속에서 수현의 눈을 찾을 수는 없었으나,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제가 달리기도 빨라요. 선생님 여기서 기다리세요.
지윤은 문득, 홀로 남게 될 생각에 소스라친다. 하지만 허리를 안은 수현의 손이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그 손짓에 그녀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돌아올테니까 기다리세요.
캐비닛이 열렸다. 둘이 소리를 죽이고 바깥으로 나온다. 달빛이 돌아와 둘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지윤은 수현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그저 어린 소년의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남자의 그것인 것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철렁인다.
수현은 늘 그랬던 마냥 지윤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그녀를 캐비닛으로 이끈다.
곧 올게요.
지윤은 그저 고개 끄덕인다.
수현이 생긋 웃는다. 지윤은 캐비닛이 닫힐 때까지 그 틈으로 수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현 또한 그녀를 끝까지 보고 있었다.
*
어둠을 헤매시라. 보이지 않는 곳을 떠도시라. 살인은 고독하고 선연한 달만 벗이라, 안으로 안으로 기어들어가야만이 진정으로 탐닉하는 자신의 그림자에 닿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 한자루 나이프가 그의 손에 쥐어진 순간 그는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 전의 자신을 기억해보라. 그는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며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명확히 이해하는 사회의 소시민이었고, 자기 자리에서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아는 현명한 사회의 동력원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뜻밖에도, 노점상에서 늘어놓고 파는 근본 없는 물건들 틈에서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친 중고 나이프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쥔 순간에, 그는 극소수만이 아는 가장 깊은 풍미와 향취를 이해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확고한 미의식과 안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지금 자신이 마주한 저 사나이를 그의 기준에 따라 재단해보고, 앞뒤양옆을 훑으며 그에 대해 판단하고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자신의 감식안을 총동원한다.
무엇인가가 떠오른다. 그것은 거의 완성되어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발언으로서, 결과는 명확히 도출된다.
"내가 싫어하는 놈들이 두 종류 있는데."
그 사나이가 든 것은 하나의 막대기다.
"하나는 분수를 잊은 놈."
── 그것은 회초리라기엔 너무 컸다.
"다른 하나는, 내가 선 이곳 배움의 전당을 더럽히는 놈."
가파른 달빛이 그의 서늘한 표정을 밝힌다.
"넌 그 둘 다에 해당한다."
퉁퉁한 몸,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팔자주름, 도수 높은 금태 안경. 그 사나이가 한 걸음 다가선다. 그의 몸이 이내 태산처럼 거대하게 그를 막아선다. 그의 손에 들린 나이프가 울기 시작했다.
나이프를 쥔 이래 처음으로 그는 뒷걸음친다.
사나이가 다가온다. 그의 기세는 태산이고 눈빛은 용암이다.
"내 제자들을 죽이려고 했나?"
뜻밖에,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누……구냐……."
오래 말하지 않아 쉬어버린 짐승의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사나이는 미소짓는다.
"널 죽이고 토막낼 남자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알려주지."
남자가 안경을 벗었다.
안경 너머에 걸렸던 그 흐린 눈은, 달 아래서 시리도록 날카롭다. 선명한 동공은 살기로 그득하여 피비린내가 풍긴다.
그의 모든 안목은, 상대가 괴물이라고 답한다.
그가 바라던 피의 축연도, 달빛을 받아 펄떡이는 심장의 디너쇼도 없을 것이다. 저 남자가 내놓을 하나의 아름다운 살육은 그 자신의 몸에 의할 것이다. 피에 흠뻑 젖을 주인공은 이제 자신이다. 온몸에 전율이 휘돈다. 나이프가 울며 뒤돌아 도망치라고 애원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가 체포를 피해 마지막 살육을 즐기려고 한 것처럼.
지금 그는 죽음을 미루어 마지막 달빛을 쬐고 싶으므로.
"나는 해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