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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게임-70화 (7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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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여름 휴가

화장실에서의 격렬한 행위로 정하와 수현은 옷을 갈아입어야했다.

수현과 정하의 옷이 서로의 애액과 정액, 소변으로 더러웠다. 근처 수풀에서 마법으로 시야를 가리고 수현과 정하가 옷을 벗어 알몸이 되었다. 정하가 짐에서 핫팬츠를 꺼냈다. 하지만 수현이 제지했다.

"지금부터 규칙을 정할게요."

그러면서 수현이 정하에게 건낸 것은 얇은 재질의 팔락거리는 꽃무늬 미니스커트였다. 정하는 그간 화사한 색을 잘 입지 않았고 수현 또한 각자의 패션 취향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곁에 있던 올가와 예브게냐가 갸웃했다.

"짧은 치마. 노팬티. 이게 이번 휴가 규칙!"

"……변태."

수현의 음흉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발언이었다. 정하는 눈을 흘기면서도, 손에 든 팬티를 다시 집어넣고 발가벗은 하체에 곧바로 치마를 걸쳤다. 바람만 불어도 둔부가 드러날 듯 위태롭다. 수현이 눈을 빛냈다.

"바라던 바야."

예브게냐는 붉은 계열의 화려한 여름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가 치마를 걷더니 드러난 팬티에 손끝을 걸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팬티를 내리기 시작했다. 팬티가 벗겨지며 잠시 드러난 그녀의 꽃잎에 수현의 시선이 모이자, 예브게냐가 잠깐 멈추어서는 고혹적으로 웃는다. 그녀의 머리색과 같은 금빛 터럭 사이에서 분홍빛 꽃잎이 비쳤다.

예브게냐가 팬티를 완전히 벗었다.

"전 원래 못입어요……."

올가는 휴가를 맞이하여 메이드복을 면제받았으나 노팬티 규정은 여전했다. 그녀는 언제나 노팬티다. 수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주인의 취미는 참으로 고약하구나."

이브린이 새하얀 얼굴을 살짝 상기시키며 투덜댔다.

"방금 마법으로 벗었느니라."

수현은 믿지 않았다.

"거짓말."

"나, 난 드래곤이다. 거짓말을 할 것 같으냐?"

"직접 확인해야겠어."

이브린이 뒤돌아 도망쳤으나 결국 수현이 그녀를 붙잡았다. 무릎에 앉혀서는 그녀의 치마를 걷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수현은 이브린의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찰싹, 때렸다.

"주인님이 보겠다는데 도망치다니."

"으으……."

찰싹찰싹.

"꺅. 잘못했으니 그만 치거라……!"

"나한테 사과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수현이, 아직도 적응 안되는 이브린의 인형같은 얼굴에 양 손을 얹어, 장난감처럼 쥐고 주무르며 말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하고 다가와서 키스하면 돼."

이브린은 망설였으나 수현이 엉덩이를 쓰다듬자 움찔하더니, 그 아름다운 얼굴을 수현에게 갖다대며 속삭였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수현의 어깨를 짚고 키스했다.

"흐읏?"

합류한지 얼마 안되어 내성이 적은 이브린은 키스만으로도 헤롱헤롱해져서 애액을 지리고 말았다. 그녀의 치맛자락 아래로 투명한 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수치심에 이브린이 얼굴을 붉혔다.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다리를 타고 애액이 흐른다. 수현이 웃으면서 예브게냐가 벗은 팬티를 집어, 그것으로 이브린의 애액을 닦았다. 무릎에서 허벅지를 닦고, 치마를 걷어서는 드러난 꽃잎을 꾹꾹 눌러 닦았다.

"……으으."

부끄러워하는 이브린이 귀여워서, 수현이 꽃잎을 다 닦아주고는 꽃잎에 가볍게 키스했다.

"으앗……."

하지만 그 자극 때문에 다시 애액을 흘리고 말았다. 이브린에게 수현의 접촉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결국 정하가 수현을 밀어내고 대신 뒤처리를 해주었다. 이브린은 정하와의 하룻밤 이후 묘하게 정하를 어려워했다.

"고, 고맙다."

"별 말씀을."

어쨌거나, 이렇게 네 여인은 짧은 치마에 노팬티 차림으로, 그녀들의 주인님에게 정조를 위협당하며, 배에 올라타 섬으로 떠나게 되었다.

*

요한이 눈을 떴다.

반사적으로 머리맡의 총을 쥐었다. 검지를 방아쇠에 걸어 인기척을 겨눈다. 그림자는 천천히, 양손을 들고 다가왔다. 요한이 총구를 떨어뜨렸다.

창가의 커튼 틈으로 햇살이 떨어져 눈을 들지 못했지만, 다가오는 발치의 모양새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스탠드 쪽으로 총을 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서늘한 손가락이 귓등에 얹혔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정신은 한층 나른하게 가라앉는다.

"왜 왔어."

"알잖아."

"몰라."

"안봤어?"

그 말에, 요한이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떼어내어, 흘끗 한쪽 눈을 들었다. 잿빛 눈동자가 그늘 속에서도 선명하다.

"왜 왔냐고."

"안봤구나."

요한이 엎드린 몸을 뒤돌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여자는 요한의 몸 위로 풀썩 쓰러졌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요한의 얼굴에 밤새 자란 수염이 가파르게 돋아나 있었다. 그녀가 수염에 손끝을 얹었다. 까칠한 감촉이 마음에 드는지 한동안 손끝으로 매만졌다. 요한의 눈에 웃음기가 서린다. 문득 그녀의 옷깃 안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정확히, 요한의 코앞에서 멈춘다.

십자가 목걸이였다.

요한의 웃음기가, 떠올랐을 때처럼 천천히 스러졌다.

"에스다……."

"응. 요한."

요한이 그녀의 십자가 목걸이를 손으로 쥐었다. 매끄럽다. 손에 익은 십자 모양의 촉감이다. 네 귀퉁이가 손아귀 안에서 살갗을 찔렀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다시 에스다의 옷깃 안으로 넣어두었다.

"난 안보는 게 아니야. 못 봐."

"거짓말. 너는 요한이야."

에스다가 몸을 낮추어 요한의 뺨에 키스했다.

"선지자(先知者) 요한."

요한이 품에 안겨드는 에스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잿빛 눈동자가 한층 탁하게 가라앉는다.

"왜 바티칸을 떠났어.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어?"

"뭘 봐버렸거든."

"아깐 못본다더니…… 이상해."

"설명은 안해."

"됐어. 기대도 않아."

에스다가 몸을 일으켰다. 문득 요한의 아랫배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잘래?"

"아니."

그녀가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요한이 그녀를 침대에서 쫒아내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에스다는 곁에서 요한의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요한이 말했다.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놀러온 거 아냐."

"그럼 자자는 건 뭐야?"

"할 땐 경계심이 물러지니까?"

요한이 피식 웃었다.

"밥 먹어도 물러져."

"그래, 그럼. 뭐 사줄 거야?"

"스파게티?"

"이왕 한국에 왔는데 한국음식으로 사줘야지."

요한이 알았다고 에스다의 어깨를 건드리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줄기를 맞으며 요한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에서 에스다가 요한의 살림을 부산하게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는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몸의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그 미지근한 촉감뿐이었다.

아니, 원래는 아니다. 그는 선지자였다. 신의 속필가였다.

눈 감으면 미래를 보았다. 유례 없이 강력한 예언의 힘을 타고났다. 미래는 필요하면 골라 찾을 수 있는 서고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요한은 원하는 것을 꺼내어 들여다보면 되는 일이었다. 참사들, 이적들, 수많은 싸움들을 요한은 예견했다. 바티칸에는 그러한 예언의 기록들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선지자 요한은 바티칸의 오랜 싸움을 승리로 가져올 신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아니지."

그게 아니지. 요하는 물줄기 속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잿빛 눈동자는 처참하게 식어 있다. 미래를 보던 눈은 다 타올라 재만 남았다.

요한은 그날을 생각했다.

답을 얻고 싶어서, 미래를 보았다.

오랜 훗날을 보았다. 훗날, 더 훗날의 훗날, 머나먼 훗날까지 보았다. 오랜 작업이었다. 며칠을 몇 주를 시야를 확장시키며, 요한은 최후의 최후를 향해 시선을 넓혔다.

목표는 신의 증명이었다.

우리는 정말로 그의 품안에서 헛되지 않은가.

수많은 우주의 풍경들이 피고 졌다. 지구가 없고, 태양도 없는 시기를 보았다. 더 멀리 나아갔다. 요한의 심상은 우주를 떠돌며 은하가 명멸하는 광경들을 스쳐지났다. 최후에는 그곳에서 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지."

요한의 손이 떨린다.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고 있었다.

영원히 팽창하고 있었다.

요한이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요한이 마주한 것은 끝없는 공포였다. 그는 우주의 최후를 보았다.

아무 것도.

그가 사랑한 사람, 그를 아는 사람, 그가 존경한 사람들, 최악의 위선자들, 범죄자, 성인, 모든 문명들, 죽은 문명들, 별들, 수많은 머나먼 태양들, 은하들, 생명과 지성들,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없이, 혹은 없었던 것과 같이, 우주는 곧 허무였다.

지금 그가 딛고 선 현재조차 그는 확신할 수가 없다.

요한은 떠오르는 해에서도 영원한 침묵을 볼 수 있었다. 거울 속 자신조차 결국은 없는 것이었다. 그 모든 웃음, 그 모든 슬픔, 실은 없는 것이었다.

요한은 자신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은 언제나 공포에 질려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 공허를 쐬인 이후, 요한은 미래를 보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까마득한 우주의 죽음이 담겼다. 그의 능력, 죽음의 시선 속에는 까마득한 우주의 최후가 담겨 있다.

요한은 결국 더 견디지 못하고 바티칸을 떠났다. 세계를 헤메던 끝에 철십자 클랜 마스터 기파랑에게 빚을 지고 그를 돕게 되었다.

요한이 씻고 나왔을 때, 에스다가 보이지 않았다. 요한이 에스다를 불렀다.

"에스다?"

에스다가 없다.

없다, 는 생각을 하다가 요한은 문득 소스라쳤다. 구분할 수가 없다. 영원한 어둠이 시야 바깥에서 몰려들었다.

"요한."

에스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둠은 밀려나간다.

그리고, 차가운 금속의 한기가 뒤통수에 닿았다.

"천천히, 돌아."

요한은 몸을 돌렸다. 총을 든 에스다가 곤란한 미소를 올리고 있다. 요한의 시선에, 에스다가 배시시 웃으며 갈색 머리카락을 꼬았다.

"미안. 명령이야. 네가 아직 예언할 수 있다면 숨만 붙여 회수하고, 아니면 제거하라고."

요한은 그녀를 본다. 잘 알았던 그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까마득해 분간할 수가 없다. 원근감이 멋대로다. 가까운 것들, 멀리 있는 것들, 알 수가 없다. 있는 것들, 없는 것들, 볼 수가 없다. 언제나처럼 이어지는 혼돈 속에서 요한은 눈을 감는다.

"자, 눈을 떠. 요한. 네 미래를 예언해봐. 너는 죽을까. 나와 함께 갈까?"

너의 그 눈을 보여줘.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총구가 이마를 누른다. 나의 죽음은 괘념치 않는다. 그보다도 저 하늘의 별들, 영원할 것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영원히 침몰하는 것을 심려한다. 총구의 한기는 그들의 최후보다도 뜨겁다. 요한은 에스다의 목소리를 들었다.

눈을 떠. 그녀의 목소리는 총구 곁에서 속삭인다.

요한이 눈을 떴다.

잿빛이다.

에스다가 묘한 웃음을 머금고 눈을 맞춰 온다. 그녀는…… 아직도 선지자 요한을 믿고 있다. 생기로 찬란한, 저 눈.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요한은 서글퍼졌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 자체로 너무 안타까워,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조여온다.

"미안해."

이 모든 것들은, 결국에 빛 바래는데.

이게 진실이라서, 미안해. 요한의 잿빛 눈은 곧 에스다의 눈과 이어진다. 우주의 최후를 담은 그 눈동자가 그녀를 공허로 가라앉힌다. 에스다는 요한의 잿빛 눈동자에서 모든 것들의 죽음을 보았다. 모든 것들이 무로, 최후의 죽음. 영원한 어둠.

죽음이 에스다에게 닿는다.

에스다는 그대로 허물어진다.

요한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옛 친구를 떨어뜨린 오늘, 날씨는 무더위다. 여름이라, 그런 때가 되었나. 요한은 에스다의 머리채 위로 담뱃재를 털어내고, 휴대폰을 열었다. 클랜에 휴가를 받아야겠다. 당분간 여행을 다닐 테다. 여름 휴가, 정처 없이 떠도는 것도 좋겠다.

============================ 작품 후기 ============================

여름 휴가는 일종의 외전 느낌으로 쉬어가는 챕터입니다. 스토리와 갈등관계는 잠시 제끼고 여름 특집으로 기획했던 부분이니 느긋하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 제 성적 취향의 건전성을 의심하는 코멘트가 달리는데 그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부들부들..... 전 순애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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