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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자각몽
수현의 분노가 강제를 이겨냈다. 손으로 머금은 한 줌 어둠을 김상호를 향해서 쏘았다.
힘은 이브린을 지나치지 못하고 가로막힌다. 더 강한 압력이 수현을 무릎 꿇렸다. 고개가 바닥에 쳐박힌다. 김상호의 음탕한 조롱과 정하의 신음소리가 멀리에서 윙윙거렸다. 저벅저벅, 다가온 이브린의 구두가 수현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무력하도다. 네 암컷이 희롱당해도 고작 그뿐이더냐?"
"……이익……."
"저들의 흉폭한 심성을 보니 네 씨앗도 유산되겠구나."
수현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브린의 발이 수현의 뺨을 짓밟았다. 그녀의 의지대로, 수현의 얼굴이 정하의 처참한 모습을 향했다.
김상호가 정하의 음부에 채찍 손잡이를 피스톤질했다. 채찍질의 여파로 구멍에서 핏물이 질질 배어나왔다. 김상호는 멋대로 손잡이를 쑤시고 돌려 상처를 벌렸다. 하혈이 심해졌다. 김상호가 채찍을 꺼내자 벌어진 질입구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재미없군. 난 좀 더 뜨거운 걸 원한다고. 정하."
김상호가 히죽거리며 정하의 턱을 잡더니, 입을 벌려 손가락을 쑤셔넣었다. 정하가 반항했지만 무기력했다.
김상호가 손가락을 송곳니에 그었다.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가 정하의 목을 적셨다. 피에 주린 흡혈귀에게는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정하는 입을 벌린 채, 김상호의 피가 식도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핥아. 배고프지?"
김상호의 손가락을 정하가 빨아댔다. 피를 많이 흘려서 온몸이 피를 원하고 있었다.
김상호가 손가락을 입에서 빼냈다. 이미 맛을 봐버린 이상 정하는 피에 저항할 수 없다. 김상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내밀어서는 혀를 내밀었다. 김상호가 그녀의 혀에 닿을 듯 말 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장난쳤다.
"흐응. 나만 피를 주면 손해잖아?"
김상호가 히죽 웃었다.
"나한테 키스해봐. 그럼 피를 더 주지."
정하가 갈증으로 허덕이며, 초췌한 눈으로 김상호를 노려봤다. 그나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미쳤군."
"건방진 계집."
김상호가 씩 웃더니, 손톱을 세웠다. 손가락만 수인화하며 짐승의 손톱이 자라올랐다. 그것으로 정하의 손목을 베어버렸다.
"하윽!"
동맥이 베였는지 피가 샘솟아 흘러내렸다. 정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 피가 필요하지 않아?"
"웃기지…… 마. 개새끼야."
"너무하네. 난 다정한 키스 한 번 받고 싶을 뿐인데."
김상호가 조롱하듯 웃었다.
"이건 어때?"
이빨로 우직, 혀를 씹었다. 김상호의 입술로 피가 흘러내린다.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낮추어 정하와 눈높이를 같이 했다. 김상호가 입을 벌렸다. 피가, 농도 깊은 라이칸스로프의 진득한 혈향이 정하에게 가득 끼쳤다. 생명력으로 가득한 피다. 정하의 눈이 희미해지며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
할짝.
본능에 저항할 수 없다.
정하는 김상호를 향해 혀를 밀어넣고 그의 타액을, 피를 핥고 빨아댔다. 김상호가 혀를 놀릴 때마다 뒤좇아 설육을 놀리므로, 둘은 키스하듯 혀를 얽고 입술을 비비는 모양새가 되었다. 김상호가 끈적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을 탐하는 정하의 젖가슴을 손으로 주물렀다.
"그 꼬맹이는 이렇게 음탕한 네 몸을 매일 갖고 놀았겠지."
김상호가 일어나 정하의 입이 닿지 않는 곳에서, 피섞인 타액을 주르륵 흘려내리자 정하가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다시 김상호가 정하에게 입을 벌려 혀를 밀어넣자 정하가 연인과 키스하듯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이었다. 피에 대한 갈증 이상의 정욕이 느껴지는 키스였다. 그녀의 몸은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이제 김상호의 손가락이 그녀의 꽃잎을 쑤시자, 피 아닌 다른 물기가 배어나왔다.
"내 피에는 마약이 흐른다고. 여기가 벌렁벌렁 거려?"
김상호가 손가락으로 정하의 음부를 벌렸다. 두 부하가 정하의 발목을 쥐어서는 양쪽으로 벌렸다. 그녀의 음부가 노골적으로 노출되었다.
"이제 피 말고 다른 걸 먹고 싶지?"
김상호가 능글능글 웃으며 손가락을 음부에 피스톤질했다. 찔걱거리며 애액이 질벽에 마찰하며 질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아…… 하, 흑…… 그만…… 흐읏…… 하……."
"그만?"
김상호가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러자 정하가 미간을 찡그리며 젖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제 스스로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상호가 손가락을 뽑아버렸다.
"하으……."
"원하는 걸 말해."
"……흣……."
김상호의 피에 밴 마약 기운이 오르는지, 정하의 음부가 움찔거리며 애액을 토해냈다. 정하의 표정이 녹아버릴듯 애달파졌다. 눈꼬리에 샐쭉히 물기를 매달고는, 젖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기를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욕망과 싸웠다.
김상호가 물건을 꺼내어 정하의 음부에 비볐다.
"흣! 그, 그거, 그것……."
"이걸 뭐?"
"너…… 넣어. 흐윽……."
김상호가 정하를 비웃으며, 단숨에 물건을 삽입했다.
"하아아앙……!"
김상호가 정하의 엉덩이를 쥐어 들어올리자 부하들이 양다리를 놓았다. 양 손목이 쇠사슬에 묶여 위에 매달린 형태로, 김상호에게 들어올려진 정하는 김상호에게 삽입당하며 쾌락에 젖은 신음소리를 뱉었다.
"핫, 하앙……! 하윽! 하아앙……!"
김상호가 허리를 쳐올렸다. 정하가 눈가를 일그러뜨리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녀의 늘씬한 다리가 김상호의 허리를 휘감는다.
김상호가 정하의 손목 쇠사슬을 끊었다. 손이 자유로워진 정하가 김상호의 목을 휘감고 그에게 매달린다. 김상호가 허리를 멈추었다.
"네가 움직여봐."
"흣, 하…… 하악…… 흐윽……!"
정하가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제 스스로 요분질치며 김상호의 물건을 받아들인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수현의 귀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김상호가 바닥에 걸터앉았고, 그의 머리를 감싸안은 정하가 허리를 미친 듯 흔들며 교성을 질렀다.
"하읏…… 아앙……!"
김상호의 정액이 정하의 질내에 흩뿌려졌다. 그녀의 꽃잎에서 정액이 새어나왔다. 정하가 몸을 경련하며 절정의 여파에 떨었다. 김상호가 그녀에게서 남근을 빼내며 그녀를 눕혔다. 그녀의 정액 줄줄 흐르는 헤벌어진 꽃잎을 노리는 것은, 부하의 남근이었다.
"이젠 내 차례야……!"
그리곤 부하가 쑤셔박는다. 그 훌륭한 조임에 감탄했는지 황홀한 표정이 되었다. 정하 또한 침범하는 육봉에 반응하며 허리가 휘었다.
*
꿈을 꿈이라 알게 만드는 신호들이 있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꿈의 일들을 자각한다면 꿈의 현실은 곧 자각몽으로 변한다. 뒤죽박죽의 숫자관념, 관절을 무시하고 멋대로 구부러지는 손가락 따위의 것들이다. 확고한 진리가 흔들린다면 꿈이라도, 당신은 그 균열을 눈치챌 수가 있다. 인셉션의 팽이는 멈추지 않고 무한히 회전했다.
꿈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수현은 생각한다. 왜 꿈인지, 되뇌었다. 무엇이 이상하길래 지금을 나는 꿈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저 내가 약한 것뿐.
도피하지 마라. 저 참상을 두 눈으로 보라.
정하는 범해지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무엇인가가 이상하다. 하지만 알 수가 없다. 뒤흔들리는 모서리? 결계의 파편이다. 숫자가 뒤죽박죽인 시계? 그런 건 없다. 쳐박힌 채 벌레처럼 뒹구는 자신의 모습이 씁쓸할 뿐, 드래곤을 이길 수는 없었던 거다. 수현은 굴욕감에 심장이 추락하듯 덜컹거렸다.
하지만 일말의 의심.
모든 이상한 일들은 정글의 세계에서 충분히 납득 가능했다.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불변의 진리라 믿을 수가 있나. 드래곤조차 실재했다. 지금 이 상황을 꿈이라 믿는 것은 가엾은 자기위안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온몸을 휘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약육강식. 승자독식. 모든 것은 순리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
수현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 너머 어둠 속에서, 수현은 다시금 짐승을 보았다.
짐승을 보았다. 아니, 짐승 안에 있었다. 공간 전체가 짐승이었다. 짐승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따라, 어둠 전체가 진동한다. 하지만 수현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우리조차 없는 곳에서 짐승은 붉은 눈동자로 수현을 들여다본다. 그 붉은 눈이 어둠 속에 선연하다.
─ 꿈에서 깨라.
"나도 꿈이었으면 좋겠어."
─ 꿈이다.
"꿈이면, 깨게 해줘."
─ 네 스스로 꿈이라고 자각하지 못하면, 영원히 깰 수 없겠지.
수현이 짐승을 쳐다보았다. 꿈이라. 눈꺼풀을 든다. 참상을 보지 못하고, 수현은 다시근 눈을 감는다. 몸이 떨렸다.
현실을 도피하려 머리가 만든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대체 뭐가 꿈인데. 개같은 현실이지."
짐승이 크게 웃었다. 전신이 뒤흔들린다. 짐승의 혀가 내밀어져 뺨을 핥았다. 수현은 눈꺼풀 너머 현실 속의, 정하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이를 깨물었다. 피가 배어나온다. 어둠 속의 짐승은 수현을 비웃으며 눈을 휘었다.
"그러니까 제발 꿈이라면, 알려줘."
─ 어리석구나.
짐승이 웃는다.
수현은 짐승을 본다. 그의 붉은 눈동자를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을 본다. 그가 내릴 선고를 기다리며 일말의 희망을 품는다.
─ 잘 들어라.
짐승의 입이 벌어졌다. 입꼬리가 갈라지고 올라가, 악마처럼 기괴하게 웃는다. 지독한 조소였다.
─ 세상에 우리보다 강한 존재가 있어서, 네가 무릎을 꿇고 있다고?
어?
수현의 심장이 덜컥, 하고 튀었다. 아아. 아아아.
짐승이 속삭였다.
─ 이 무슨 웃기는 농담인가.
수현이 눈을 떴다. 어둠의 뒤켠에서 짐승의 속삭임이 멀어진다.
─ 기억해라.
웃기는 일이다.
꿈이었다. 안도감이 온몸에 퍼진다. 헐레벌떡 쫒기다가도 눈 뜨면 참 말도 안되는 꿈이네, 하고 웃고 마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진다고.
정말로 웃긴다.
내가 지나친 꿈 표식(Dream sign)은, 바로 그것이다.
수현이 눈을 떴다. 이브린이 움찔, 수현을 돌아보았다.
"너 짐승이여……."
수현이 그녀를 지운다. 저 멀리, 김상호와 정하가 보였다. 김상호를 지운다. 벽을 지운다. 천장을 지운다.
정하 몸의 오물을 지운다.
하늘이 환히 보이는 저택에서, 달빛 쏟아지는 밤에 수현은 정하의 곁에 있었다.
"아무리 꿈이라도. 심했잖아."
"미안해. 주인님."
싱긋 웃는 정하를 지웠다.
세상을 지웠다.
오로지 밤, 하늘, 저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별과 달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수현은 웃었다. 이렇게 긴 꿈을 꾼 것도 오랜만이었다.
포식자가 된 이후 꿈을 꾸지 못했다. 잠은 늘 죽음처럼 적막했다.
이제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잘 잤다.
"잘 잤어."
수현의 목소리가, 적막을 지나 눈앞의 의자에 앉은 이브린에게로 나아갔다. 수현이 눈을 떴다. 이브린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정하는 이브린 곁에서, 두터운 천을 온몸에 두른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재미있는 꿈이었어."
수현이 이브린에게 속삭였다.
"이 씨발년아."
"꿈과 현실이 무엇이 다른가, 짐승아. 모든 건 다 물결이 이고 지듯 덧없이 앉았다 스러지는 것일진대. 고작 백년을 사는 너희의 인식이 가엾도다."
"시끄럽고 이리 와."
수현이 말했다. 그의 몸에서 새까만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래 다 꿈이라 생각해라. 영원히 재워줄 테니까."
"건방진."
이브린이 일어났다. 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