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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승자의 권리
"미리 말하지만 이 방은 내 결계야."
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무실 자체가 케인의 바와 같이 이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다른 층과 차이가 없었다. 벽 너머, 이공간에 남아도는 드넓은 공간 태반을 진식으로 매운 것이다. 수현은 저 벽 너머를 둘러싼 복잡한 결계의 중첩에 질릴 지경이었다.
"조금만 어긋나면 정보는 없어. 그러니 내 말 들으렴. 꼬마."
유서희가 수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릎과 허벅지 부분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는 스키니진과 목이 늘어져 쇄골이 보이는 티셔츠 차림새다. 미인이라 매력적이다. 맨발에 스니커즈를 신어, 그녀의 흰 발목이 짧은 바지 아래로 드러나 보였다.
"무얼 해야 모욕적일까. 네가 화낼까. 응?"
발 뒤꿈치를 들어 수현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뒤에 선 예브게냐를 향해 웃었다. 예브게냐가 이를 악물었다.
"이 꼬마한테 푹 빠졌나보네. 이비."
"빨리 끝내."
유서희가 킥 웃더니, 왕, 하고 수현의 귀를 깨물었다. 민감한 수현이 몸을 움찔했다.
"어떡하니. 니 주인님은 나한테 느끼는 거 같은데."
"……."
유서희가 수현의 귀를 잘근잘근 씹으며 속삭였다.
"몇 살이야. 꼬마?"
"……."
"말 안해도 알아. 너 저 언니랑 최근에 섹스한 게 언제야?"
"……."
"빨리 말해. 앞으로 내 말은 모두 명령이야. 안그럼 저 언니도 괴롭힌다?"
그리고 네가 애타게 찾는 정하의 정보도 없어. 유서희가 속삭였다. 동시에 예브게냐의 무릎이 허물어지더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예브게냐 허둥지둥 몸을 놀렸지만 일어서질 못했다. 다리의 감각이 사라진 듯 상체만 허우적거렸다. 다리의 통제권을 빼앗긴 것이다.
"이게 내 결계야. 이 안에서 나는 신과 같지."
갑자기 예브게냐의 손이, 스스로의 따귀를 때렸다. 수현이 몸을 움찔했지만 수현을 끌어안은 유서희의 몸 때문에 돌아보지 못했다. 유서희가 낮게 큭큭거렸다.
"놀라지 마. 난 결계 안에선 드래곤도 두렵지 않다고?"
수현이 한숨쉬었다.
"어제요."
"응?"
"어제 섹스했어요."
"어머. 귀여워라. 어떻게? 어떤 체위로?"
예브게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은 눈을 감았다.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에서 초침 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정하는 어딨는지 알 수가 없다. 귓전에서 속삭이는 유서희의 목소리가 끈적거린다. 수현은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뒤로."
"우와. 동물 같아. 안에다 쌌어?"
"네."
"싼 건 어떻게 처리했어? 휴지로 닦아줬어? 같이 샤워?"
"그건……."
"거짓말하면 저 언니가 더 괴로워질 거야."
예브게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언제까지 장난칠 거야."
"아직 한참 멀었어."
유서희가 웃더니 수현에게 키스했다. 수현은 그녀의 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노골적으로 수현의 입 안을 구석구석 맛보려 혀를 길게 뻗어냈다. 둘의 혀가 얽힌다. 유서희는 키스를 몹시 잘했다. 수현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유서희의 끈적한 키스는 곧 가벼운 애무로 이어졌다.
"이비. 니 주인님 벌써 흥분해버렸어."
유서희가 바지춤 위로 수현의 남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현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금방금방 반응하네. 이래서 좋아하는 거야 이비? 어린애들은 늠름하니까?"
"닥쳐."
유서희가 깔깔거리며 수현의 바지 위로 남근을 쓰다듬는다. 유서희가 놀리는 것과는 달리 반응이 없다. 그녀가 심통난 얼굴로 수현을 올려다본다.
"흐흥. 긴장했니?"
예브게냐에게 들리지 않게 귀에 속삭인다.
"자, 발기시켜. 안그럼 예브게냐, 저 년부터 죽여버릴 거야."
"……."
그리고는 손을 바지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녀의 서늘한 손이 수현의 남근에 닿는다.
"어머. 엄청나네."
유서희가 손을 뻗어 남근을 쥐었다. 뜨겁다. 손으로 부드럽게 훑자, 수현의 몸이 살짝 떨렸다. 유서희가 수현의 육봉을 쥐고 주물렀다.
"하아……."
수현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유서희의 손길은 능숙해서, 수현을 금새 느끼게 만들었다. 테크닉만으로 따지자면, 정하나 예브게냐, 올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근이 서서히 발기하고 끄트머리에서 쿠퍼액이 새어나와 유서희의 손을 적셨다. 그녀가 피스톤질하자 남근 전체가 미끌해졌다.
"키힛. 귀여워. 이비! 니 주인님 진짜 귀엽다."
예브게냐는 입을 다물고 유서희를 쏘아볼 뿐이다.
"이름이 수현이랬나? 수현? 이 누나 입이 심심한데. 키스해. 그럼 누나가 더 기분 좋게 해줄게."
키스하라는 것은 명령이었다. 그러면서 멋대로 보상을 설정해, 보상을 바라고 수현이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처럼 매도했다.
"응…… 그래…… 누나를 껴안고 부드럽게 키스해…… 그럼 더 만져줄테니까……."
수현은 유서희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명령이지만, 그에 따라 그녀의 손놀림이 더 분주해져서 커다란 쾌락으로 보상해주는 건 사실이다.
순간 유서희의 손이 멈추었다. 수현은 계속해서 키스한다. 유서희의 손이 수현을 더듬었다.
"으응. 그만. 그만."
예브게냐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경계하며 유서희를 쳐다본다. 유서희는 뒤로 물러나 책상에 앉는다. 유서희가 책상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서는 턱을 괴고서 실쭉 웃는다.
"자위해."
"……."
"자위해서 싸봐."
유서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자위하기엔 그러니까…… 내가 재료를 줄까."
유서희가 스니커즈를 벗어 던지고는, 뒤로 누워 허리를 살짝 들더니, 스키니진을 끌어내렸다. 그녀의 늘씬한 다리가 드러난다.
유서희가 윙크하며 팬티도 벗는다. 그녀는 늘어진 티만 입은 차림새가 되었다. 그녀의 검은 수풀과 그 아래 붉은 속살이 수현의 눈에 보였다. 유서희가 책상에 앉아 살짝 다리를 벌려, 자신의 속살을 내보인다.
"날 보고 자위해. 나랑 하고 싶지?"
"……."
수현이 눈을 감았다가, 뜬다.
"시간 없는데. 빨리 말해주세요."
"성격 급하네. 수현."
유서희가 웃었다.
"그런데 우리 시간에 관한 계약은 안했잖아? 그건 내 마음 아냐?"
"……."
"너희는 내킬 때까지 장난감이야. 내 결계 안에서 예외는 없어."
그리고는 유서희가 수현의 이마를 두드렸다.
"또다른 애인이 어떻게 되건 간에, 네 목숨이 더 중요하겠지?"
낚아서 미안, 이라며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수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아, 씨발. 하고 속삭였다.
"어머, 입이 거치……."
그러다가 문득, 수현의 손아귀가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는 걸 느끼고는 잠깐 얼굴을 굳혔다가 웃는다.
"반항이야? 이곳은 나의 결계……."
순간, 수현의 손이 총맞은 듯 뒤로 튕겨났다.
손목이 잘렸다.
피가 솟았다. 예브게냐가 수현의 이름을 소리쳤다. 유서희가 핏자국 묻은 뺨을 혀로 핥으면서 생긋 웃는다. 눈에서 튼 광기가 반짝였다.
"누난 반항을 싫어해. 수현."
수현이 잘린 손목을 쳐다보았다. 유서희를 향해 남은 다른 한 손을 뻗는다.
우드득.
결계 안에 팽배한 미지의 힘이 수현의 팔을 역으로 꺾었다.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팔이 팔꿈치에서부터 축 늘어졌다.
"말했잖니? 이 안에선 드래곤도 무섭지 않아."
"내가 왜 드래곤 위치를 물으러 왔겠어."
수현이 속삭였다. 양팔이 부서진 와중에도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결계로 이루어진 사무실이, 바깥에서부터 어둠에 침식당한다. 부식하고 바스라지는 것처럼 배경이 바래어가며 어둠의 농도가 깊어졌다. 반면에 유서희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양팔에서는 세포가 뭉글거리듯 뻗어나와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수현이 연이어 으그극, 하고 핏줄이 서도록 힘을 발산했다.
결계에 금이 간다.
"뭐야. 뭐야뭐야. 너 뭐야……!"
어둠속에서, 수현의 손이 뻗어나와 다시금 유서희의 목을 잡았다. 유서희가 입을 벌렸다.
"나 지금 드래곤 죽이러 가는 거라니까."
수현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유서희는 그 눈을 마주하고서 사지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녀는 소변을 지리고 말았다. 죽음에 가까운 눈이다. 그녀의 운명은 지금, 죽음에 한없이 가까이 수렴하는 중이었다. 마녀로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운명을 뜻하는 패들이 모두 죽음을 표시한다.
죽는다.
살해당한다.
갈기갈기.
"힘이 있다고, 조금 유리하다고 멋대로 구는 건 도리가 아닌데."
수현이 속삭였다.
승자독식을 말하는 정글을 수현은 실감하지 않았다. 그래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힘으로 짓누르는 것은 패악질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다. 그렇게 안이하게 지금껏 살아남은 건, 그저 우연히, 수현 자신이 강했기 때문이다. 승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힘이 없었으면 지금 유서희에게 수현과 예브게냐는 어떤 꼴을 당했을까.
지금 그 힘 때문에 정하가 어찌될지 모른다.
수현의 힘이 강제로 유서희의 머리에서 정보를 빨아들인다. 유서희는 정신을 강간당하는 기분에 몸을 바들거렸다. 그녀의 일생이 온전히 수현에게 귀속된다. 모든 추억, 모든 기억, 그녀의 밑바닥까지 모두 수현에게 까발려진다.
정하의 정보만 빼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강자로서 유서희를 욕보이는 강제집행이다. 유서희가 눈물 흘리며 바둥거렸지만 수현의 손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야 여기가 얼마나 썩은 곳인지 알겠어."
수현은 유서희를 통해 대강의 일을, 이브린을, 그리고 그녀를 조종한 김상호를, 유서희가 아는 정글의 역사를, 그녀의 얼룩진 생을 모두 알았다.
승자, 그들의 권리?
농담하지 마라.
수현은 모든 아름다운 단어가 농담거리인 정글에 자신이 섰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눈을 감는다.
수현은 자신의 사고를 다시 조립했다.
그가 알던 세계관을 버린다. 인륜과 도덕과 천리는 애초에 없었다. 정글이라는 단어는 틀렸다. 짐승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다. 욕망뿐인 강자존의 규칙을 자신에게 똑똑히 새겼다.
이곳은 그냥 아귀지옥, 아수라장이다.
수현은 유서희에게 죽음을 선고하려 힘을 뿜었다.
"수현."
그 순간. 예브게냐가 속삭였다.
그녀의 몸이 뒤에서 수현을 껴안고 있었다.
"누나?"
"그만해."
"하지만."
"여기가 지옥이라고 네가 악마가 될 필요는 없어."
예브게냐가 말했다. 수현이 유서희의 목을 쥔 손을 머뭇거렸다. 예브게냐는 계속해서 수현을 달래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쉬. 착하지."
예브게냐가 속삭였다.
수현이 유서희를 노려보았다. 유서희는 두려움에 질려 실금한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수현이 툭, 유서희를 내려놓는다. 예브게냐가 수현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주인님은 그냥 주인님으로 있으면 돼. 굳이 악당인 척 할 필요도 없어."
"누나."
수현이 예브게냐를 쳐다보았다. 시리도록 파란 눈이 수현을 또렷이 응시했다. 유서희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유서희는 온몸이 떨려 진정할 수가 없었다. 저 소년의 기운은 누그러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죽음을 확신했다. 모든 운명이 죽음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녀였다.
결계를 부수는 저 어둠. 속이 공허한 무한정의 어둠. 저 힘. 유서희가 입을 벌렸다. 죽음이라는, 운명의 가장 강력한 선언을 부리는, 그녀로서는 잣대 잴 수 없는 암흑. 유서희는 수현을 쳐다보았다.
예브게냐가 수현의 품에서 고혹적으로 웃는다.
"그리고 그냥 죽이는 건 아깝잖아."
진짜 악당이 이미 주인님의 것이니까.
유서희의 손이 저절로 책상 위의 커터칼을 줍는다.
저항할 수 없이, 그녀는 스스로 칼날을 뽑는다.
느린 동선으로 스스로를 향한다.
눈으로 다가온다. 온몸이 벌벌 떨리지만, 커터칼을 든 손만은 평온하게 동공을 향해 접근했다. 날이 다 상한 커터칼의 끄트머리가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유서희는 비명을 내질렀다. 칼날은 멈추지 않는다. 한쪽 시야가 붉게 암전하는 것을 보았다.
푸우욱. 찌익. 몸의 울림통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
예브게냐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고통에 바닥을 뒹굴고 싶은데, 몸은 차분하게 무릎을 꿇고서 남은 형을 집행한다. 커터칼은 다시금, 남은 반대편 눈동자를 찌르고, 휘젓는다. 유서희의 비명이 찢어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핏물이 온통, 세계에 가득,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통각만 살아 날뛴다. 두 눈에서 붉은 빛줄기가 사방으로 명멸하고 피가 줄줄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유서희는 허공으로 혀를 길게 내밀었다. 왼손이 혀를 붙잡는다. 왼손도 오른손도 벌벌 떠는데, 칼날만은 흔들림이 없다.
내려앉는 칼날.
두 눈이 타들어가는 통증 속에서, 커터칼은 앞뒤로 슥삭, 슥삭, 움직인다.
게에에엑, 으게에에엑, 하는 처참한 비명.
"남자친구는 뇌를 잃고 운전만 하는 기계가 되었고, 너는 나한테 불구가 되는구나?"
혀는 지혈된다. 질긴 생은 이어질 것이다.
남은 형벌이 까마득하므로.
커터칼은, 발목의 아킬레스건을 향해 떨어져내린다.
예브게냐가 참을 수 없이 키득거렸다.
"억울해 마. 승자의 권리니까."
수현은 그 모습을, 어깨를 떨며 웃는 예브게냐를 본다.
─아아, 정글은 지옥이다.
수현이 예브게냐의 두 뺨을 감싸쥐고, 자신을 마주하게 했다.
푸른 눈동자가 수현을 빤히 응시한다.
피비린내 나는 형벌을 배경으로 미소 짓는, 선이 도드라지는 아름다운 얼굴. 푸른 눈동자에 절절히 배어나오는 잔혹한 빛. 후회도 망설임도 없는 악의에 찬 웃음.
─그 지옥이 나의 영토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수현은 저항할 수 없이 키스하고 만다.
============================ 작품 후기 ============================
엥?! 자각몽?! 그거 완전 개념 챕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