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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 알의 씨앗이 죽지 않으면
예브게냐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귓전에서 느끼며, 수현이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다. 침대 맡의 시계를 확인하니 정오였다. 어제 날이 밝도록 해댔던 기억이 났다. 남근이 꿈틀, 하며 요동치는 감각에 내려다보니 아직도 결합한 채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꼭 껴안은 예브게냐의 팔 때문에 포기하고 다시 벌렁 누웠다.
눈앞에 눈감고 잠든 예브게냐의 조각처럼 흠 없이 완벽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새삼 이 성격 더러운 누나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자각하니 귀여워져서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그러자 예브게냐도 잠을 깼는지 졸린 눈을 열고는, 배시시 웃으며 수현을 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흉판에 느껴지는 예브게냐의 가슴이 보드라웠다.
예브게냐가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몇 시야……?"
수현이 어깨를 으쓱한다.
"흐으응……."
예브게나가 눈을 비비며 수현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들었다. 머리맡 탁자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기 전에, 수현이 예브게냐의 도톰한 입술에 키스한다. 킥킥 웃으며 장난스레 피하던 예브게냐도 결국은 혀를 내밀어 수현의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의 혀로 품었다.
"속이 더부룩해."
어젯밤 잔뜩 마신 거라면 뻔하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어이 없네. 주인님이 그런 소릴 해."
둘은 서로 코를 맞닿은 채 속삭였다.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서로의 입술 끝이 닿아 간지럽다. 수현은 예브게냐의 푸른 눈을 빤히 응시하며, 자신의 이마를 그녀에게 쿵, 밀어 건드렸다. 서로의 이마가 맞닿았다.
"뜨거워. 열 있어요?"
"주인님 곁에서는 늘……."
입술을 내밀어 살짝 츄, 맞추고는 예브게냐가 입을 맞댄 채로 속삭였다.
"열병이야."
수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어젯밤에 둘은, 서로의 육체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험해보았다. 예브게냐는 전보다도 더 매혹된 기색으로 이제는, 이렇게 달뜬 고백을 수현에게 속삭이고는 하는 것이다.
수현이 덮치면 어쩔 줄 몰라하며 앙앙대는 올가는 제쳐놓고, 정하만이 이렇게 달콤한 발언으로 수현을 쥐고 흔들며 매혹시켰다. 하지만 수현은 예브게냐 또한 새삼, 정하에 비할 수는 없어도 자신보다 훨씬 어른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예브게냐가 수현의 얼굴을 보며 웃더니, 수현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대단한 거유는 아니지만 적어도 수현 휘하의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가슴이 크다. 수현이 예브게냐의 보드라운 가슴에 코를 파묻고 얼굴을 비비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혀를 내밀어 젖꼭지를 건드린다.
"음……."
어째 맛이 이상하다.
수현은 포식자의 무한한 정력을 소유했다. 때문에 마음 먹으면 한없이 쏘아댈 수도 있다. 어젯밤에 예브게냐를 향해 뿌린 정액은 화려한 양이었다. 그녀의 가슴에 남은 정액이 허옇게 말라붙어 수현의 혀에 감겼다.
예브게냐가 다리를 뻗어, 수현의 허리를 감았다. 수현이 가슴을 핥다가 눈을 올려 예브게냐를 쳐다보았다.
예브게냐의 꽃잎과 터럭이 수현의 복부에 느껴졌다. 그녀의 음부털이 까슬하게 살갛을 비빈다. 부드러운 점막도 느껴졌다. 차츰 젖어들며, 그녀의 꽃잎이 토한 애액이 수현의 배를 적셨다.
수현의 남근이 벌떡 일어섰다.
"하자."
수현이 예브게냐를 눕히고 정상위로 그녀를 범했다. 예브게냐의 꽃잎을 뜨거운 살덩이가 꿰뚫고 정복한다. 예브게냐는 언제 당해도 적응할 수 없는 쾌락 속에서 허우적댔다.
수현에게 박히면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다. 표정을 바보처럼 풀어버리고 쾌락에 중독당한 이처럼 필사적으로 엉덩이를 흔들며 교태를 부렸다. 예브게냐도, 그녀의 라이벌 정하도, 이 점에서는 똑같다. 수현에게 당하면 백치가 된다.
"흐읏…… 하아앙……! 흐, 아흐응……!"
수현을 껴안고 매달렸다. 총살 당하는 죄수와도 같이, 그녀는 수현의 품 안에서 꼼짝할 수도 없이 온몸을 뒤흔드는 죽음 같은 쾌락을 감내했다. 남근이 그녀의 꽃잎을 꿰뚫어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버린 후 빠져나간 후의 작은 공백, 그녀의 온몸은 두려움과 기대로 경직한 채 수현의 육봉을 고대했다. 지독한 쾌락에, 자칫하다간 머리와 아래가 망가져버릴 것 같다는 공포로 허덕였다. 다시 한 번, 꽃잎을 짓이기고 들어오는 거대한 육봉에 의해 그녀는 반쯤 혼절해버린 머리로 천국을 거닐었다.
수현은 예브게냐를 쾌락으로 고문해버릴 생각으로 기계적으로 피스톤질했다. 애무도 필요 없다. 수현이 허리를 흔드는 동안,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예브게냐는 리미트를 초과해버린 쾌락에 의해 고문당하여 무방비한 얼굴로 체액을 흘릴 것이다. 예브게냐는 눈물을 글썽이며 쾌락으로 흐느꼈다. 힘이 풀린 입에서 침이 또르르 흐른다.
이후, 수현은 호텔에서 지낸 예브게냐와의 시간이 마음에 들어 이틀을 더 머무르며 하루종일 뒹굴었다. 포식자인 수현과, 극도로 허약한 예브게냐는 얼핏 상성이 맞지 않지만 포식자의 힘을 나누어 그녀 또한 지치고 싶어도 지치지 못하고 삼일 내내 수현에게 매달려 목이 쉬도록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
수현은 병원을 향했다.
"왔냐?"
그곳에는 정태가 있다. 팔에 깁스를 한 채로 정연의 곁에 서 있다.
정연의 병실이었다.
정연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수현을 흘끗 보고는 다시 눈을 돌렸다. 무감정한 눈이었다.
정태와 수현은 병원 밖으로 나왔다. 정태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정태가 수현 앞에서 담배 피는 일은 드물었다. 정태가 눈으로 양해를 구했다. 담배를 빨아들이는 정태의 눈동자는 지쳐보였다.
"실어증이래."
"……그래."
"정신적 충격이 커서 말을 못하고, 자폐증상도 조금 보이는 것 같아."
"넌 괜찮아?"
정태가 수현을 쳐다보았다. 픽 웃는다.
"당연하지."
정태와 정연은 악마와 관계된 일이 머리에서 지워져 있었다. 악마가 몸에서 뿜어대던 더러운 체액은 미약이자 환각제 같은 역할을 했으므로, 자연히 잊은 것 같았다. 양아치 무리에게 당했다는 것 정도가 공식적인 설명이었고, 그들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수현은 정태의 가라앉은 눈을 더 보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벌은 어떻게 한대?"
"몰라…… 부모가 어디 높은 윗분들이시라네. 고위 공무원에 기업 사장도 있고 그렇다네."
"화 안나?"
"난 정연이만 나으면 돼."
"……."
"잠깐만 정연이 좀 봐줄래?"
정태가 말했다. 병원 밖에서 형사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정연의 병실로 돌아갔다. 정연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병실에는 정연과 수현, 둘 뿐이다.
정연을 들여다보다가, 수현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손목……에는, 채 가시지 않은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를 범하던 이들이 새긴 상흔이다. 쓰린 상처를 내어놓은 채 멍하게 창밖만 들여다보는 정연의 어깨로 손을, 얹는다.
"내 말 들리니?"
정연은 대답이 없다. 듣고 있을 터였다. 인식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지상에 내려앉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종일 허공에서 허덕이는 상처 입은 작은 새. 수현이 한숨을 떨어뜨렸다. 그녀를 아프게 하는 지난 그날의 아픔을 잊게 하여줄까. 병실복에 감싸인 좁은 어깨가 애처로웠다. 수현이 속삭였다.
잊고 싶니?
대답이 없다. 수현이 다시 말했다.
잊고 싶니?
……그리고, 대답없는 그녀의 마음을 타고, 그녀의 심연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눈앞은 황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