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50화 (5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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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정태 랩소디

어둠이 아지트 전체를 덮었다.

인간계에 나타난 악마, 정욕의 갈라그는 아무리 마력을 뿜어도 그대로 삼켜버리는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

다른 악마가 자신을 잡아먹으러 온 것일까.

이 근방에 그런 존재는 없었다.

인간들이 정글이라 칭하는, 어둠의 룰을 따르는 놈들이 온 것인가.

인간이라기에 너무나 강하다. 인간계에도 이따금 악마보다 강한 존재가 있지만, 이토록 짙은 어둠을 두른 존재는 없다. 이건 지옥에 어울리는, 아니, 지옥에서조차 없을 까마득한 칠흑의 장막이었다. 갈라그가 어둠속으로 촉수를 뻗는다.

크아아앗!

잘려나갔다. 비명조차 어둠에 삼켜진다.

사지에서 녹색 체액을 뿜으며 갈라그가 주저앉았다.

또박또박,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에 악마는 고개를 들었다.

소년이다. 악마적인 미색을 두른 소년이었다. 관능적이고, 음험한 색기를 머금은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새까맣게 빛난다. 지옥에나 어울릴 법한 퇴폐적인 미모였다. 갈라그는 마치 지옥의 귀족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누, 누구신지…… 전 갈라그라는 조무래기입니다요…… 헤헤. 어, 심연의 귀족이십니까……?"

갈라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둠이 갈라그의 머리를 휘감아 땅에 쳐박았다. 길게 찢어진 입 안으로 날카로운 이들이 부서져나갔다.

수현은 악마를 처음 보았다.

정하에게 들은 바 있었다.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악마들이 이따금 인간계를 어지럽힌다고 했다. 정글의 룰조차 따르지 않는 족속이 태반이라, 능력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 우선적으로 주살한다.

지옥이 있으면 천국도 있는 건가, 그걸 물어보다가 정하가 천국을 느끼게 해달라며 엉키는 바람에 대답은 듣지 못했었다. 천사도 있을까. 그럼, 신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수현은 웃고 말았다. 신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이런 비극을 내버려두지는 않았겠지.

정태와 정연을 어둠 속에 갈무리하며, 수현은 악마를 내려보았다.

"왜 이런 짓을 했어?"

"……."

갈라그는 쳐박힌 채 부들부들 떨다가, 눈동자를 들었다. 쳐박힌 얼굴에서 눈알만 튀어나와 빙글 굴러, 그 추잡한 눈으로 수현을 바라본다.

"인간……? 인간이냐?"

"……."

"인간! 인간 주제에 날!"

처박힌 육체가 요동쳤다. 수현은 갈라그의 눈을 짓밟아 터뜨렸다. 악마는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꿈틀거린다.

"내 뒤엔 바알 대공이 있다! 날 죽이면 지옥의 군세가 널 찾을 거다!"

"……."

수현은 악마에 대해 모른다.

이 악마의 말이 사실인지, 바알이란 악마가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수현은 포식자다. 미증유의 짐승이다. 그의 본능이, 웃고 있었다. 이 하찮은 존재의 조잘거림이 우스워서, 낄낄거리고 있다.

수현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이성으로 관조하며 생각했다. 나는 실은 악마들과 바알이란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은 혹 어떤 존재의 환생 같은 것일까. 처음부터 그랬다. 정글의 잔혹한 룰도, 이 기괴한 악마도, 바알이란 이름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전신으로 기시감을 느낀다.

기시감은 곧 조소로 이어졌다. 기억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아주 오래된 경멸이다.

"오라고 해."

수현의 조소에, 갈라그가 비명을 내지르며 마력을 터뜨렸다. 갈라그는 순간 드러난 어둠의 틈을 향해 제 몸을 내던져 도망쳤다.

아지트 벽이 허물어지고, 드러난 바깥을 향해 악마가 뛰어나갔다. 수현이 그 뒤를 따랐다. 악마는 아지트 곁의 야산을 향해 기어가서는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수현의 등에서 어둠의 날개가 치솟아서는 유유히 날아 그 뒤를 쫒았다. 악마는 온몸에서 튀어나온 촉수로 땅을 내짚고 순식간에 정상에 올랐다.

악마는, 하늘에 뜬 만월을 바라보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이해할 수도 없는 악마의 언어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수현은 그 뜻을 이해했다.

[지옥문을 열어라! 지옥문을 열어라!]

달과 악마 사이, 허공에 공간의 틈이 열리기 시작했다.

뱀의 혓바닥처럼 지옥의 마기가 인간계로 배어나와 몸부림쳤다. 갈라그는 지옥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수현의 어둠이 그 뒤를 따른다.

지옥문 너머로 갈라그의 몸뚱이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이어, 그 너머에서 끔찍한 비명이 새어나온다. 수현에게서 시작된 어둠은  저 차원 너머로 이어진다. 닫히던 지옥문은 다시 억지로 뜯겨 열리고, 그 안은 부수어지고, 어둠은 갈라그를 끄집어낸다. 암흑은 모든 것을 구축하고, 방해물을 부수고 열어, 도망자를 무릎 꿇린다.

"크악! 으아아악! 문! 열려라 문!"

갈라그가 어둠에 끌려가면서도 비명처럼 지옥문을 불렀다. 갈라그의 부름을 받은 지옥문은 다시금 환히 열린다. 그 안으로 활활 타는 지옥불이 비쳤다. 안으로 온통 끔찍한 것들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갈라그는 그곳을 향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수현의 몸에서 자라난 어둠이, 지옥문을 붙잡고 찌그려뜨리기 시작했다.

"……!"

갈라그는 눈을 흡뜬다. 지옥문이, 일개 인간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닫히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지옥문은 마침내 구겨지고 축소되며, 저항하듯 일렁거렸다. 구멍의 윤곽이 불길처럼 타오르며 어둠을 버텨내려 애쓴다. 하지만 이내 한 줌 구멍이 되더니, 결국은 애초에 없던 것처럼 스러졌다.

이제, 갈라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황홀한 만월이다.

"잘 봐. 마지막이니까."

그리고 수현의 몸에서 줄기줄기 뻗은 어둠이 갈라그를 삼켰다. 악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스러졌다. 수현은 갈라그가 사라진 허공을 잠깐 바라보며, 지상으로 착지했다.

"……."

수현은 잠깐 자신의 팔을 쳐다보았다.

뭉글뭉글.

팔이 갈라지며 기괴한 촉수의 형태로 변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며, 촉수는 특유의 체액을 뿜어내기도 했다. 그 모습에 수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씨발, 괜한 호기심에……."

수현은 재빨리 팔을 복구시켰다. 갈라그의 힘은 절대 봉인하기로 결심한다.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서 수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

수현이 신음했다.

어느새 멀게 보이는 아지트에서 불빛이 번쩍거렸다.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아지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과 구조원들이 부지런히 오가며 정신을 잃은 사람들을 운반했다. 수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정태와 정연은 괜찮을까.

입술을 잠깐 깨물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악마는 없앴다. 정태와 정연의 일은 천천히 생각하자…… 그들을 위해 기억을 지워주는 것은 쉽다.

특히, 정연의 갈가리 찢어진 마음, 그 상처를 없애줄 테다. 그것이 그녀에게도 좋을 거였다. 이토록 아픈 기억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세연에게 했듯이, 그녀의 마음도 씻어줄 것이다.

수현은 만월을 바라보았다. 수현의 상상 속에서, 정태의 실없이 웃던 얼굴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다. 입술을 깨물고, 한숨을 내쉰다.

수현은 내일을 기약하며, 예브게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야산에서, 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난 아니네, 저 새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다.

정하의 휘하에 있던 그 소년이다. 수현과 세연이 정하에게 말려들었을 때, 정하의 아래에서 앞장 서서 그들을 사로잡고 세연을 범했던 그였다. 최후에도 홀로 살아남은 정하의 종속자였다.

나이트워커 정한새.

"정체가 뭐야?"

한새는 크로스백에서 낡은 책을 꺼낸다. 고서였다. 표지 위에는 역오망성과 역십자가, 그리고 이름 모를 문자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내 불이 붙어 타오르고는,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

수현은 예브게냐 근처에 도달했다. 그들은 운무시를 떠나 번화하고 화려한, 서울의 밤을 함께 즐기기로 한 터였다. 눈에 띄지 않게 근처 골목의 그늘을 통해 나타난 수현이 예브게냐의 냄새가 나는 곳으로 뛰어갔다.

예브게냐는 람보르기니 에스토크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마다, 다리를 꼬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금발벽안의 미녀를 흘낏거렸다.

수현이 예브게냐를 부르려는 찰나.

예브게냐의 에스토크 뒤로 페라리 한 대가 멈춰섰다. 차창이 열리고, 운전석의 남자가 예브게냐에게 말을 걸었다.

"헬로. 뷰리풀 레이디."

예브게냐가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차에서 남자가 내려섰다.

명품 정장과 시계를 두른 청년이었다. 제법 준수한 얼굴이다. 청년은 예브게냐 곁으로 다가가갔다. 가까이 보이는 예브게냐의 미모에 더 놀랐는지, 듯 동공이 확장된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청년이 예브게냐에게 말을 걸었다.

"유 룩 쏘 로뉠리."

"……."

"엄…… 아임……."

"외국인은 다 미국인이냐?"

"하, 한국말 잘하시네요. 대단하시다."

청년이 놀란 듯하다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혼자에요? 그럼 저랑……."

수현은 예브게냐가 눈썹을 살짝 치켜뜨는 것을 보았다. 서둘러 달려갔다. 자칫하다간 저 남자 머리에 구멍 생긴다. 그 구멍 크기는 예브게냐의 힐 사이즈와 딱 들어맞겠지. 예브게냐의 하이힐은 살 떨리게 섹시하지만, 저걸로 밟으면 살 떨리게 위험하다.

"……짜증나게……."

예브게냐가 속삭였다. 그녀의 정신지배가 청년에게 막 작용하려는 찰나, 수현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 누나는 저랑 선약이 있어서."

"어, 이 꼬마는 뭐야."

예브게냐가 수현을 보며 화사하게 웃음을 띄우다가, 남자의 말에 급격히 눈꼬리가 가늘어진다. 수현이 예브게냐의 팔뚝을 잡았다.

"가요."

남자는 미련을 못떨치고 계속 말을 붙였다.

"둘이 뭐야?"

"여자친구요."

"거짓말. 남매 아냐? 키도 작은데?"

수현의 미간이 꿈틀했다.

가파른 힐을 신어서 예브게냐는 지금 수현보다 키가 크다. 성장기라 더 클테지만, 현재는 정하보다 조금 작고, 예브게냐보다 조금 큰 수현이다. 남매냐는 말에 예브게냐를 올려다봐야 하는 지금 처지가 생각나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예브게냐는 도리어 큭큭거리며,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지. 착하지."

"……."

남자는 그 행동에 짐작하기를, 남자애도 머리는 까맣지만 그냥 한국인 비쥬얼이 아니다. 둘의 미모 레벨로 보아 아마 저 백인녀와 친척 정도 되겠구나, 하고 결론지었다.

그 순간, 소년이 갑자기 미모의 백인 여성을 끌어안아 몸을 밀착시키더니 거칠게 머리채를 붙잡고 키스해버렸다.

남자가 입을 벌렸다.

소년은 금발 미녀의 머리채를 붙잡아 목을 젖혀,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녀는 그 우악스런 손길에 무릎을 굽히며 아래로 눈높이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여인을 굴복시키듯 아래로 낮추고는, 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키스했다.

하지만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순종적으로 소년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가느다란 팔을 뻗어 소년의 목을 휘감았다. 둘의 혀가 노골적으로 오가는 음탕한 키스에, 남자는 전율했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저열하게 키스하는 광경에 하체가 요동칠 것 같다.

소년은 키스하면서, 자유로운 손을 아래로 뻗어 여인의 치마 안으로 집어넣는다.

남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허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여인의 입술 틈으로 타액이 새어나와 턱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렸다. 여인은 혀를 내민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년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소년이 그녀의 설육을 범하는 대로 얌전히 유린당할 뿐이었다.

이윽고 소년이 입술과 머리채를 놓아주었다. 소년이 허리를 폈지만 여인은 몽롱한 얼굴로 소년의 뺨을 할짝인다. 소년이 여인의 다리사이에서 손가락을 꺼내었다.

"남매라고?"

소년의 손은 끈적한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남자는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한다.

"가요. 누나."

"네, 주인님."

소년과 여인은 람보르기니 에스토크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쇼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뒷좌석 차창이 스르르 내려갔다.

"거기 형."

소년의 목소리에 남자가 쳐다보았다.

다시금 눈이 커졌다.

뒷좌석에서, 여신처럼 아름답고 섹시하던 그 백인 여인이, 소년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얼굴을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쩝쩝거리는 질척한 소리가 남자의 귀에까지 똑똑히 들렸다.

"부러워요?"

"……."

남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엇다.

람보르기니가 출발했다.

남자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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