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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정태 랩소디
< 정태의 이야기 2 >
내가 웅크리고 있었던 동안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다.
요한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가냘픈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뚜뚜거리는 모니터가 주기적으로 선을 일그러뜨리며 심장박동을 표시했다. 눈꺼풀은 닫힌 채, 티 없이 빛나던 갈색 눈동자를 가두고 내어놓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과, 붕대 사이로 짓이겨진 몸뚱이를 나는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어떻데 된 건데."
옆에 서있던 녀석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박초공고 알지."
"어."
"그 새끼들이 지나가다가 소영 누나한테 자꾸 추근거리니까 요한이가 못참고……."
요한이가 그 일당을 팼고, 이후 그 패거리가 요한이를 찾아 이잡듯이 뒤져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조직 폭력배와도 연관된 악질들이 잔뜩 모였다고 했다. 그냥 박초고 패거리라고만 불리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껄렁한 양아치들을 모은 커다란 폭력 집단이었다. 경찰들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요한이도 진짜 위험해지니까 경찰에 신고했었는데……."
"누나는?"
"그게…… 몰라……."
"경찰은."
"오고 있겠지. 개새끼들."
손을 뻗어, 요한의 뺨에 손끝을 얹으려다가 살짝 뒤로 물렸다.
휴대폰에 남은 부재중 전화 세 통, 요한에게서 온 것이었다. 빚지기 싫어하는 요한이 나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했다. 내가 나태하게 웅크려 주변에게서 눈 돌렸을 때에 요한은 가슴 졸이며 쫓기고 있었다. 이렇게 엉망이 되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악의와 야만으로 가득한, 진짜 악행이었다.
온도가 높아 늘 더운 녀석이었는데, 혹여 닿으면 체온이 식어 있을까봐, 두려워서 손댈 수가 없다. 혹여라도 요한이가 잘못되어 예전처럼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없게 될까, 생각하면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다.
나는 몸을 돌려 병실 바깥을 향했다. 문쪽으로 걸어가는데, 바깥에서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눈앞에서 병실문이 벌컥 열렸다.
"김요한, 김요한 어딨어?"
처음 보는 사나이였다. 지금, 내 심장은 발작할 것처럼 쿵쾅거리는데, 머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저 사나이가 형사일 것이리라 홀로 짐작한다. 서늘해진만큼 몸도 마음도 식어서, 병실로 들어서는 형사에게 몸을 비켜주지 않았다. 들어오는 남자와 나가는 나의 어깨가 부딪쳤다. 충격에 남자가 잠깐 인상을 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지 않았다면 형사 얼굴에 주먹을 꽂을 뻔 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너희는 뭐 했어.
나는 말없이 병실을 나왔다. 뒤에서 형사가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젠장. 씨팔…… 하필이면. 그 사이……"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다. 말아쥔 주먹 옆면으로 병원 복도를 때렸다. 콘크리트 벽은 충격을 되돌려, 내 주먹이 찌르르 울었다. 지나가던 간호사와 환자들이 나를 주목했다. 내리깐 눈을 드는 순간에, 정면에서 걸어오던 환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 환자가 흠칫, 몸을 마주치지 않으려 옆으로 피했다.
내 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분노인가. 악의인가. 누구든 짓밟아버리고 싶은 방향 잃은 분노가 내 눈동자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을까.
주먹은 아직도 파르르 떨린다.
내 곁을 피했던 환자가 문득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가 내게 말했다.
"힘내세요……."
두 번 어깨를 두드리고는, 나를 지나갔다. 나는 그제서야 두 볼에서 화끈거리는 물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꾸만 눈물이 차올라 눈앞이 흐리다. 얼굴을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새어나와 얼굴이 흥건하다. 멋대로 울음이 타올라, 참고 참았다.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병원을 나왔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병원 밖 벤치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울음은 잦아들었다. 한 번 울고 나니, 도리어 전신이 메말라 눈이 뻑뻑하고 혀끝이 껄끄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선에 흐린 시선을 두고 한참을, 생각했다. 오랫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아 흐려진 시야 속에서 불빛을 받은 사람들의 윤곽이 희미하게 오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 앞에 섰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떨어져나갈 것 같은 눈알을 적셔 확인하니 요한이 곁에 있던 친구 성훈이었다. 녀석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져 있다. 어떤 예감이, 지독하게 말라붙은 나뭇조각이 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정태야……."
녀석이 흐느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심장에 격통이 일었다.
분노와 슬픔은 뒤섞여, 수면에 떨어진 먹물처럼 전신에 번져들었다.
성훈이와 함께, 얼굴에 흰 천을 드리운 요한이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나는 울지 못했다. 대신, 아직 체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손을 들어 손등에 입 맞추었다.
나는 홀로 뒤돌아 나가며 다시금 생각했다. 생각을 계속했다. 생각은 처음의 생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생각의 반복일 뿐이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본다.
표정 없는 얼굴.
초췌하다.
어디 이게 사람의 얼굴이야. 요한아.
나는 오래도록 학교를 쉬며 치워두었던 교복을 꺼내 입었다.
싸울 때엔 늘상 교복이었다. 요한과 함께 시시덕거리며 시답잖게 놀아나던 때를 생각한다. 우리는 늘 교복이었다. 넥타이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다. 멋진 스니커즈 하나를 두고, 같은 걸 신을 수는 없다며 싸우다가 결국 내가 차지한 신발이었다. 녀석이 몇 번이고 밟으며 분풀이했다. 주먹을 말아쥐고, 뼈마디를 들여다본다. 흉터가 있다. 요한과 내가 둘이서 넷을 상대하다가 이빨을 잘못 때려 찢어졌었다. 붕대 감은 내게 요한이 던져주었던 장갑을 내려다본다. 영화 너무 많이 봤다고 녀석을 놀렸지만 싸울 때는 늘 사용했다.
문자메세지가 왔다.
[정연 : 오빠 왜 안와?]
오늘은 못갈 거 같아. 내일 갈게.
답장하고는 집을 나섰다.
아까부터 계속하던 하나의 생각.
"어. 호일아. 난데…… 물어볼 게 있어서."
복수.
나는 복수를 생각했다. 전신으로 갈망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몇이고 죽여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저기요…… 요한이 친구 정태라고 있거든요. 걔가 짱인데…… 아지트 물어보길래 알려줬는데 아무래도 걔 혼자 쳐들어 갈 거 같아서…… 형사님 빨리 가보세요…….]
김영진 형사가 자동차 엑셀을 밟았다. 지원요청을 했지만 언제 도착할 지는 알 수 없었다. 고등학생 조직이라기엔 수도 많고 난폭하기 짝이 없어서 형사인 그도 긴장되었다.
"뭐하는 놈인데 혼자 덤벼? 아이고……."
맡았던 녀석이 죽어버려서 기분도 다운되었는데 왠 놈이 혼자 쳐들어가다니, 자살행위였다. 기분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해하는 경솔한 짓이다. 영진은 짜증이 났다. 가슴 안짝의 권총을 매만져보았다. 이걸 써야할지도 모른다.
녀석들의 아지트는 회사가 부도나 건설이 중단된 공사현장이다.
김영진이 차에서 내렸다. 눈앞의 헐벗은 콘크리트 위로 달빛이 떨어져내렸다. 달은 시리도록 차다. 어슴푸레한 어둠과 희미한 달빛 사이에서 영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소리를 죽여 건물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무언가가 발치에 걸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이었다. 죽었나 싶어 확인하니 숨은 쉬고 있었다. 불량 써클의 일원이다. 정태라는 녀석이 짱이랍시고 싸움을 제법 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김영진이 고개를 들었다.
구름에 잠겼던 달이, 환하게 드러나며 농도 깊은 달빛을 지상에 떨어뜨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수많은 불량아들을 발견하고, 영진은 입을 벌렸다.
까강,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건물 안에서 새어나왔다. 영진이 달려갔다.
구석에서 웅크리고 떠는 소녀가 보였다. 몹쓸 일을 당한 모양이었다. 죽은 녀석의 여자친구라고, 본 기억이 났다. 영진은 소녀에게 외투를 감싸주었다. 소녀는 흐느껴 운다.
영진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서 있는 몇몇의 인영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사이에서 홀로, 양떼 무리에 뛰어든 범처럼 주위를 찢어발기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운 폭력이었다.
여럿이 아무리 달려들어 주먹과 발을 휘둘러도 녀석은 표홀하게 사이를 파고들어 급소를 부서뜨렸다. 틈이 생기면 녀석은 잔인하게, 하나를 붙잡아 때리고 또 때렸다. 일방적 구타 속에서 적들은 하나하나 짓이겨지며 쓰러졌다. 소년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채 얼굴을 쉴 새 없이 얻어맞아 안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망가진 불량아 하나가, 툭, 쓰러졌다.
질렸다는 듯이 불량아들은 뒷걸음질친다.
소년은 쫓아가 낭심을 걷어찼다. 목을 찔렀다.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고개 숙인 녀석의 안면을 다시금 무릎으로 올려 망가뜨렸다. 비틀대는 표적의 귓가를 발로 까버리자 고막이 터졌는지 귀에서 피가 샘솟았다.
"그만…… 멈춰라!"
영진이 소리쳤다.
소년이 문득 뒤돌아보았다.
콘크리트 틈으로 새어든 달빛 아래에 드러난 소년의 얼굴은 창백하고, 표정이라고는 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영진을 바라보며 발치의 불량아를 걷어찬다.
소년의, 그 눈.
영진은 그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살려주세요!"
불량아 하나가 소리쳤다. 소년은 그 녀석을 향해 바닥의 콘크리트 조각을 집어던졌다. 가격당해 비틀거리는 불량아에게 소년이 뛰어들어 공격했다. 영진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현실인가.
주위에 무너진 불량아들의 수는 셀 수가 없다.
멀리에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영진은 소년에게 다가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멈춰라."
"놔요."
"빨리 여길 떠. 경찰들 오고 있다."
"……."
정태가 영진을 쳐다보았다.
"너도 싸잡아 넣을 순 없잖아 새끼야!"
"……."
정태는 서넛 남은 잔당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주먹을 들었다.
천천히 장갑을 벗는다. 검은 장갑이 벗겨지며 드러난 손은, 달 아래 희다.
장갑을 그 자리에 떨어뜨린다.
홀로 불량 서클을 없애버린 소년은 오랜 짐을 내려놓은 듯 장갑을 그 자리에 떨구고, 저벅저벅 걸어 그 자리를 벗어낫다. 영진도 불량아들도 그 뒷모습을 우두망찰 바라볼 뿐이었다. 콘크리트를 또각거리는, 지독하게도 씁쓸한 발걸음 소리였다.
*
나는 녀석들을 없애고, 형사의 호의로 그 자리를 벗어나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따금 전화로 그는 내 안부를 확인했다.
정연이 말을 되찾았을 때, 정연과 약속했다.
"난 이제 오빠밖에 없으니까. 잘못되면 어떡해. 다시는 싸우지 마."
"먼저 때리면?"
"도망 가."
"에이. 자존심이 있지."
"음…… 그럼 일대 일만. 두 명 이상이랑은 안돼!"
"셋까지도 무리 없어."
"안돼. 절대 안돼. 알았지."
"……그래."
"약속 어기면, 오빠랑 다시는 말도 안할 거야."
"……그래."
"그리고 오빤 싸움 잘하니까 심하게 패도 안돼. 폭행으로 잡혀가면 어떡해."
"조건도 많다."
"음…… 상대가 코피 나면 그만 때리는 거야."
"그게 뭐야. 초등학생이냐?"
"시끄러. 오빠 이거 꼭 약속이다?"
그렇게 나는 동생과 약속했다.
나와 동생은 수도권의 신도시로 전학갔다. 태평한 곳이었다. 나는 평온하게 생활하며, 이따금 시비를 걸어오면 적당히 맞추어주며 싸우고, 정연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녀석을 만났다.
이수현.
요한이 죽은 이후로 다시 뛰지 않은 내 심장을 이따금 두드리는, 못말리게 예쁘장한 남자애. 두 번이나 남자에게 두근거리는 걸 보면 나는 어쩌면 정말 그쪽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적당한 여자애와 사귀는 흉내를 내며 잔 적도 있으니 바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녀석을 어떻게 할 생각은 이미 버렸다. 수현과 함께 지내며 일상을 누리는 것으로도 난 행복했다. 녀석은 소희라고 유명한 여자애랑 사귀는 중이다.
정연이 사춘기에 들어서며 날라리들과 어울려 방탕해지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쯤이야 누구나 겪는 열병일 테였다.
나는 내 삶이 충분히 행복했다.
그랬는데.
정연이가 무슨 일이 있는지 말수가 줄었다. 우울해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도 덩달아 마음이 심란했다. 때문에, 충동을 참지 못하고 괜히 시비를 걸어 성현이란 놈을 때렸다. 내 행동이 과했다고 스스로 반성했다.
그런데 지금.
내 휴대폰으로 전송된 이 동영상.
[니가 박정태냐? 와서 같이 놀래? 흐흐흣.]
어디야.
[진짜 오게? 빨리 와!]
대답을 듣고 난 후에, 내 악력을 견디지 못한 휴대폰이 부서졌다.
요한을 죽인 녀석들과 싸울 때에도 나는 일말의 가책으로 선을 넘기지 않고 적당히 부수어 기절시켰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명백히, 살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람은 죽이는 일은 쉽다…….
나는 오늘 놈들을, 최소한 주동자를 죽여버릴 거다.
나는 놈들의 아지트를 향하며 생각했다.
─오빠. 이거 꼭 약속이다?
미안, 정연아. 약속은 지킬 수가 없겠다.
오빠 용서해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