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37화 (3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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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짐승의 유년

수현은 몸을 숙여 러닝화 끈을 조여맸다.

열대야의 습도가 가쁜 숨에 섞여들었다. 풀어진 끈을 몇 번 당겨 조이고는 다시 땅을 박차고 뛰었다. 고정된 리듬으로, 숨을 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내쉰다. 귀를 막은 이어폰이 저음을 토해내며 웅웅거렸다. 멜로디가 마음을 고조시키고, 가사는 시처럼 이어졌다. 다리를 내지를 때마다 양옆의 가로수가 시야에서 물러나고 멀리에서부터 새로운 것들이 떠올랐다. 지친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다. 달을 향해 숨을 내쉬었다.

땀을 흘리면 답답한 마음이 사그라졌다.

이제는 저벅저벅 걸었다. 점점이 자리한 가로등이 고개를 숙인 채 공원로를 밝혔다. 이따금 사람들이 걷거나 뛰며 나타났고, 자전거가 달려오기도 했다. 시간은 밤 열 시 가량, 사람들이 많았다. 수현이 이윽고 보행로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파란 가로등 하나와 자판기, 그리고 난간이 있다. 난간 너머에는 아래쪽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셀 수 없는 불빛들이 정열하여 저마다의 빛을 밝혔다. 수현이 난간에 몸을 기대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세계다.

조금은, 심심한 세계다.

수현의 눈동자가 유독 새까맣게 잠들었다. 포식자의 눈이다. 운무시의 불빛 사이로 아지랑이 같은 색색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도시에 사는 능력자들의 힘이 배어나와 이루는 잔상이다. 제법 많은 흔적들이 반짝거리며 빛나자, 도시의 풍경과 뒤섞여 더없이 몽환적이었다. 하늘을 채운 밤의 흐름, 세계를 관통하는 힘의 법칙들, 수현의 눈에 모두 보였다. 아름답다.

누군가가 지금 운무시를 바라본다면 저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소름끼치는 암흑이 수현이 자리한 공원에서 진동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현?"

목소리에 고개 돌리자 희미한 조명 아래에 새하얀 얼굴이 보였다. 갸름한 얼굴에 살짝 치켜떠올려진 도발적인 눈동자와 귀여운 콧망울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여자애다.

운동하러 나온 옷차림인데도 멋을 부려서, 하얀 다리를 노출하는 트레이닝용 핫팬츠에 러닝화를 신고 있었다. 흰색 티셔츠가 제법 커서 핫팬츠가 이따금 가려 하의를 입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공원이지만 저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수현은 생각했다.

소희였다.

"너도 운동해?"

"어."

"원래 이 시간에 뛰어? 너 본 적 없는데."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 넌?"

"난 매일 뛰어."

그래서 몸매가 쩌는구나, 수현은 생각했다.

"열심히 하는 거 보기 좋다."

수현의 말에 소희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희는 충분히 날씬하다. 운동으로 살을 뺀 건강한 몸이라기보다, 본래가 마른 체격이라 젓가락 같아서 근육도 살도 없는 몸매였다. 운동을 해도 안해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수현은 소희의 눈을 마주 쳐다보았다.

"뛸래?"

소희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덕분에 수현은 그녀의 시선을 피해 그녀의 다리를 훑어볼 수 있었다. 고등학생의 풋풋한 매력이 물씬하다.

둘은 함께 뛰었다. 수현은 자꾸만 처지는 소희와 맞춰 뛰었다. 소희의 가녀린 숨소리가 차츰 거칠어졌다.

"자주 뛴다더니 되게 약하다."

"니가, 하아, 잘 뛰는…… 흐으, 거야."

결국 소희가 멈추었다. 수현이 곁에 서자, 상체를 숙이는 대신 수현의 어깨에 팔을 올려 몸무게를 실었다. 그래도 수현에게는 너무 가볍다. 소희가 수현에게 기대어 숨을 고르며 눈을 치켜뜨고는 땀을 닦았다.

"하아. 이수현. 생긴 거랑 다르게 제법 한다?"

내가 생긴 게 어때서. 수현이 대꾸했지만 소희는 눈꺼풀을 내리 깔고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어. 좀 걷자."

소희의 그 목소리는 조금 젖어 있다.

둘은 가로등이 밝힌 긴 공원로를 함께 걷는다. 수현은 앞을, 혹은 옆 풍경을 쳐다보았지만 곁에 선 소녀의 여린 존재감이 자꾸만 신경쓰였다. 소희도 딱히 말이 없었다. 함께 걷는 둘의 발걸음은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 왼발, 오른발. 수현과 소희의 팔이 가까워지고, 살갛이 닿았다.

둘은 조용히 함께 걸으며 서로의 살갛이 스치는 감촉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걸었다. 수현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땀도 식어 덥지만은 않다. 때문에, 서로의 맨살이 닿을 때마다 희미한 온기를 느낀다.

"내일도, 이 시간에 나올 거야?"

"그래."

"같이 뛰자."

공원로 옆 가벼운 운동기구들이 늘어선 자리에 이르렀다. 수현이 팔굽혀펴기용의 낮은 철봉에 다가갔다.

"나 이거 할 건데. 넌 안해?"

"안좋아해. 보기만 할게."

수현이 숨을 고르고는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굳이 능력을 끌어올리지 않아서 에너자이저처럼 해내지는 못해도, 몸이 가벼워 조금 무리하면 백 개도 한다. 수현의 팔근육이 부풀었다가 이완하는 그 모습을 소희가 빤히 쳐다본다.

"하아, 하아."

수현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푸쉬업했다. 붉어진 수현의 얼굴과 배어나오는 땀, 약동하는 근육 같은 것들이 소희의 마음을 두드렸다. 소희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었다.

"안힘들어?"

"안힘들겠냐."

"그럼 좀 쉬어. 여자 앞이라고 무리하는 거 아냐?"

"시끄러."

수현이 몇 번 더 위아래로 몸을 끌어올리고는 멈추었다. 힘이 드는지 팔을 부르르 떨다가 결국 일어났다. 팔을 몇 번 휘두르며 근육을 풀어주었다. 곁에 쪼그리고 앉은 소희가 그 모습을 빤히 올려다본다.

"나도 해볼까?"

소희가 도전했지만 몇 번 못하고 포기했다. 수현이 웃었다.

둘이 기구를 바꾸어 윗몸 일으키기를 하려고 했는데 발걸이가 부서져 있었다. 누웠던 수현이 다시 다리를 바닥에 내렸다.

"왜?"

"이거 부서졌어."

"음…… 내가 잡아줄까?"

"그럴래? 땡큐."

소희가 수현의 다리를 잡아주기로 했다. 수현의 러닝화 위로 소희가 당돌하게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순간 수현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아, 여자의 몸이란. 포식자가 되고 세 명의 아름다운 노예와 질리도록 뒹굴고 핥고 빨고 박고 비비고 했지만 그래도 처음처럼 소년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수현은 가벼웠지만 소희도 그만큼 가벼워서, 수현이 조금 체중을 실어보니 그녀가 제대로 잡고 있질 못했다. 소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수현의 다리에 찰싹 붙어 꼭꼭 매달렸다.

수현은 짧은 반바지 트레이닝복이고, 소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서로의 종아리와 종아리가 비벼지고 다리를 옭아맨 그녀의 맨팔이 닿았다. 그녀의 무게감이 수현의 발목에 그대로 느껴졌다. 발목을 꼼지락거리니 그녀의 엉덩이살이 눌리며 감촉이 느껴졌다. 제법 에로틱한 자세였다.

소희도 그것을 인식하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다. 수현은 모른척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난관, 소희의 얼굴이 내밀어져 있어서, 수현이 위로 올라올 때마다 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수현은 눈을 피하지 않고 아래에서부터 가까이 갈 때까지 빤히 쳐다보며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소희가 숫자를 입으로 조그맣게 세어주었다.

구십, 구십 일, 구십 이…….

제법 오래 이러고 있었던 거 같다.

눈동자는 마음의 창이다. 사실이었다. 서로가 오래도록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분명, 무엇인가가 이어지게 된다.

구십구…… 백.

수현이 팔꿈치를 무릎에 찍으며 멈추었다. 서로의 얼굴은 너무나 가깝다. 눈앞의 소희는 너무나 작은 얼굴에, 밤하늘처럼 영롱한 눈의 소녀였다. 저 작은 콧망울을 입에 머금고 싶다. 발에, 종아리에 느껴지는 그녀의 육체는 작은 새처럼 숨쉬고 있었다.

서로가 동시에 움직였다.

수현과 소희의 입술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나아갔다. 입술이 맞닿는다. 첫키스처럼 두근거렸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 작품 후기 ============================

????? 로리라니 저 그런 거 모릅니다 여러분의 불건전한 취향에 제 손이 다 떨리네요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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