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35화 (3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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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올가를 올가미로 옭아

수현이 하교하고 돌아온 곳은 오피스텔이 아니다.

부자들이 살 것 같은 복층 저택이었다. 대문을 열면 작은 정원이 보인다. 멋대로 자란 나무와 들풀들 사이에 허리 높이까지 오는 돌기둥이 푸른 구슬을 떠받치고 있는데, 귀한 아티팩트라고 했다. 마법적인 힘으로 저택을 보호하고 좋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는 아티팩트라며 예브게냐가 사왔다.

이 집도 예브게냐가 넘치는 재력으로 구매한 것이다.

"저 왔어요."

현관을 열었다.

"……."

거실이 난장판이다.

뭘 시켜 먹었는지 피자 박스에 식은 피자 한 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커다란 텔레비전이 틀어진 채 드라마를 내보내고 있고 침대라고 해도 모자람 없을 쇼파는 흐트러져 벽 한 구석에 비스듬히 자리했다.

발에 뭐가 걸려서 내려다봤더니 예브게냐의 것이 확실한 옷(취향을 보면 알 수 있다.)이 널부러져 있었다. 정하의 속옷(자주 벗겨서 알 수 있다.)도 탁자에 내버려져 있다.

"……."

입구를 벌린 채 여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저 우유곽의 내용물은 분명 상했으리라.

정하와 예브게냐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여인들이라 스스로 정리를 하지 않는다. 정하와 둘이서 살 땐 그래도 수현이 감당할 수 있었는데, 예브게냐와 함께 살고, 집을 옮기자 그녀들의 난장질은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수현의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주인의 자격으로 그녀들에게 이에 합당한 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말았다.

정하와 예브게냐가 착실하고 부지런하게 청소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건 절대 꼴리지 않아……."

자기 멋대로 구는 게 그녀들의 매력포인트다.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정하의 방에 들어갔다. 정하는 또 게임하고 있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목이 타는지 옆에 둔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인다. 팀을 짜서 플레이한다며 헤드셋으로 게임톡인지 뭔지 대화하는 중이었다.

정하와의 잠자리 도중, 그녀가 게임에서 남자들이 집적거린다며 수현을 자극시키고, 덧붙여, 심심한데 한 번 만나볼까라고 약올리듯 말했던 날, 정하는 후유증으로 이튿날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했었다. 수현의 정력에 다시금 감명 받은 정하는 비슷한 방식으로 질투심을 일으키려고 곧잘 그런 말들을 하곤 했다.

확실히 정하의 목소리는 섹시하다.

수현이 뒤로 다가가 정하의 뒷덜미를 살짝 깨물며 그녀의 가슴을 애무했다. 정하에게서 새어나온 미세한 신음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졌을 것이다.

"읏…… 아, 갑자기."

"집적거린다면서요? 누나 목소리 더 들려줘요."

"아. 흐…… 그만…… 흐응……."

수현의 체취가 정하의 온몸을 휘감았다. 정하는 결국 컴퓨터를 꺼버리고 수현과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다.

처음, 수현을 희롱하며 자기 뜻대로 주도했던 정하는, 이제 수현에게 깔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신음소리만 내는 수준이었다. 수현이 애태우기라도 하면 빨리 해달라고 눈물 글썽이는 눈으로 매달렸다. 귀엽다.

오르가즘의 폭풍 속에서 축 늘어진 정하를 두고 방을 나왔다. 정하의 방을 나오는 순간 예브게냐와 마주친다.

"……."

예브게냐가 움찔했다.

지금 수현은 알몸이다.

"오, 옙 누나."

"내가 왜 옙이야!"

수현은 예브게냐를 줄여 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예브게냐는 질색했다.

수현을 흘끗 쳐다보고, 수현이 방금 나온 정하의 방문을 쳐다본다. 눈썹이 살짝 흔들리며 눈을 내리깔더니 다시 홱, 돌아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예브게냐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에 수현은 전율했다.

질투!

예브게냐를 종속했다고는 하지만 정하와 수현의 끈끈한 관계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예브게냐도 느끼고 있었기에 종종 질투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곤 했다. 수현은 예브게냐를 쫓아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브게냐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수현이 들어왔음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토라진 것처럼 입술이 살짝 내밀어져 있다.

이건 마치 일부러 귀엽게 굴어 수현을 유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현이 예브게냐를 덮쳤다.

"뭐야? 주인님이 좋아하는 정하한테나 가지."

"질투하는 거에요?"

"우, 웃기지 마."

수현이 예브게냐를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다.

정하와 예브게냐의 알몸을 볼 때마다 수현의 육봉은 의지를 벗어나 팽창하고 만다. 그만큼 완벽한 몸이었다. 손아귀에 쥐고 주무를 때마다 손길 따라 유연하게 파도치는 가슴을 감상하다가, 이빨로 깨물어 자국을 낸다. 자신의 것이라는 증명이다. 애무 끝에 예브게냐의 허벅지 안쪽, 꽃잎에 한없이 가까운 부분에 새겨진 종속의 낙인에 키스했다. 수현의 뺨에 그녀의 꿀물 닿는다.

결국 예브게냐도 쓰러뜨려 축 늘어질 때까지 박아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꽃잎이 살짝 벌어지며 수현이 주입한 정액이 울컥울컥 쏟아져나왔다. 수현은 자신이 쌌지만 참 많다고 생각하며 예브게냐의 곁에 누워 키스했다.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잠시나마 두 여인과 현실을 도피했을 뿐 여전히 난장판이다.

방금전까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두 여인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치민다.

그때 수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올가였다.

"여보세요."

[수현, 뭐해?]

"그러는 넌 뭐해?"

[알바. 진짜 최악이야!]

올가가 또 징징대기 시작했다.

퀸즈 네스트 클랜이 망한 이후로 올가와 클랜원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났다. 올가는 요새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연명하고 있었다. 그녀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정글에서 한몫할 수 있겠지만, 예브게냐에게 하도 당한 터라 정글에서 일하기 싫다고 했다.

"무슨 알바?"

[가정부. 한국에 사는 러시아 할머니 도와주는 일인데 성격이 아주 치사하다니까!]

"……!"

수현이 침을 삼켰다.

"너…… 일 잘 해?"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이래뵈도 클랜 들기 전에는 병든 노모를 모시고 어린 동생들 키우느라…….]

수현의 뇌 시냅스가 일제히 전류를 번뜩이며 계산을 시작했다. 퍼즐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진다.

지금 엉망진창인 집.

정하와 예브게냐의 오만한 매력.

그 사이에 끼인 자신의 처지.

올가의 아르바이트.

게다가 올가는 예쁘다. 잘 빠졌다. 나이를 자꾸 속여서 정확한 연령은 알 수 없지만 분명 어릴 것이다. 섹시하고 늘씬한 정하, 예브게냐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어린 외모에 비해 키가 큰 편인데, 마치 키의 성장을 채 육체가 따라오지 못해 가늘어진 듯한 여린 몸매였다. 가슴도 작다. 이 집에 오면 아마 키와 덩치가 제일 작을 것이다.

복장은 아마 메이드복 같은 걸 입히면 어울리겠지.

수현은 이미 머리와 가슴으로, 또한 아래로도 올가를 원하고 있다!

"일 그만 둬."

[응?]

"올가. 난 네가 그런 여자 밑에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어!"

[아, 아니 그렇게 나쁜 할머니는 아닌데…….]

"우리 지금 만나."

[응?]

"당장 만나."

[아…….]

*

수현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올가를 만났다. 올가는 평소대로 스키니진에 티셔츠,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워낙 가녀려서 커다란 햄버거를 배에 담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가가 햄버거를 입에 물고 수현을 흘끔흘끔 살폈다.

"숙식제공에 집만 깨끗하면 자유시간 완전 보장이야."

"조건은 너무 좋은데……."

올가가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손목 안쪽을 향해 걸어놓아 팔 뒤켠의 여린 살이 보였다.

"아는 사람 집에서 일하면 좀 그렇지…… 않나?"

"난 같이 지내고 싶은데. 내가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올가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으응…… 괜찮으려나……."

수현이 손을 뻗었다.

올가가 조금 움찔하다가, 수현의 손끝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뺨에 묻은 햄버거 소스를, 수현이 손끝으로 닦아 혀로 날름, 핥았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올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수, 수현. 뭐하는 거야."

"니가 우리집 치워야 되는데 이렇게 묻히고 다니면 어떡해?"

"……."

올가가 뺨에 손을 얹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오늘 가보고, 마음에 들면 바로 일하는 거야."

"너 말고 둘이 더 있다고?"

"응."

"가족이야?"

"응.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 누나들이야."

이렇게 올가는 수현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올가와 수현은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조금 가다보니, 올가가 졸면서 꾸벅꾸벅, 수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올가는 어리다. 생각보다 더 어릴지도 모르겠다. 수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올가가 기대오는 달콤한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수현이 피식 웃었다. 수현의 감각으로 판단하건데, 올가는 자고 있지 않았다. 자는 척하며 기대오는 것이다. 올가가 귀여워서 수현 또한 자는척하며 올가의 머리에 다시 자신의 머리를 얹는다. 올가의 얼굴이 빨개지는 걸 수현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은 버스에서 내려 수현의 저택에 이르렀다.

"이게 집이야? 근사하다."

"그치?"

대문을 지나는데 올가가 예의 구슬을 보고 감탄했다. 러시아 빛의 마법사 앤톤이 주기적으로 소량만 생산하는 한정판이라고 한다.

"들어가자."

수현이 올가의 팔꿈치를 건드렸다. 올가는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저택 한 켠의 주차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람보르기니가 두 대, 검은 세단이 한 대 주차되어 있다. 람보르기니를 본 올가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다. 차는 잘 모르지만 람보르기니의 모양새는 잊을 수가 없고, 색깔도 둘 다 어디서 많이 본 거다.

올가는 고개를 내젓고 설마, 하며 수현을 따른다. 수현이 현관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티비가 보인다. 그리고 쇼파에서 여자 두 명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외면하며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수현과 올가가 들어서자 둘이 동시에 돌아본다.

정하. 예브게냐.

"……."

올가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점차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새파랗게 질렸다.

퀸즈 네스트 클랜을 초토화시킨 악몽, 정하.

퀸즈 네스트 클랜의 마스터로 군림하던 성격파탄의 멘탈마스터, 예브게냐.

"저, 저 둘이 세트로……."

올가가 수현을 뿌리치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쟤는 뭐야?"

정하와 예브게냐는 티없이 맑은 표정으로 갸웃한다. 수현이 이마를 짚었다.

"그러게 둘이 착하게 좀 살지……!"

"우리 말하는 거야?"

"우리라니. 세트로 취급하지 마. 흡혈귀."

"하. 죽고 싶어?"

수현은 다시 티격태격하는 둘을 뒤로하고 올가를 따라 달렸다. 올가는 대문을 지나 저택을 벗어나려는 참이었다. 수현이 올가를 붙잡고 진정시켰다.

"이게 그러니까 사정이……."

"싫어! 안해! 절대 안해! 갈 거야!"

올가의 의사는 확고했다.

수현은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모색했다. 답이 없다.

"……에라이 씨발 모르겠다!"

수현은 그냥 올가의 목을 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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