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글의 게임-32화 (3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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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달콤한 독

예브게냐가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저도 진 주제에…… 망할 년……."

그들 중 한 명이 자그맣게 속삭였다.

유감스럽게도 예브게냐가 들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예브게냐가 우뚝 멈추어 섰다. 홱 몸을 돌려 훑어보았다. 몸을 비칠비칠 일으키던 클랜원 한 명이 움찔했다. 저 놈이다. 예브게냐가 이를 드러내며 조소한다. 막 정신지배에서 벗어났던 클랜원들이 다시금 바닥에 무릎 꿇려지고 바닥에 머리가 쳐박혔다.

"죄, 죄송……."

"너희 때문에 내가 성질 나쁜 여자처럼 보이잖아."

예브게냐가 힐을 또각거리며 다가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

학교를 마친 수현이 예브게냐에게 전화를 했다. 수현이 다니는 운무 고등학교는 자율적 기풍의 사립 고등학교라 야자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평선이 발갛게 물드는 나른한 시각에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뭐야?]

"저 수현인데요."

[알아.]

"음…… 오늘 오피스텔로 돌아올 거에요?"

[응?]

"오실 거면 예브게냐 씨 몫까지 밥 만들어야 되거든요."

앗, 말해놓고 보니 귀찮다는 듯한 느낌이다. 수현이 덧붙였다.

"전 개인적으로 예브게냐 씨가 며칠 더 머무르면서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그, 그럼 뭐어…… 그렇게 할까.]

"언제 올 거에요?"

[일 끝나면 갈 거야.]

"무슨 일? 언제 끝나는데요?"

[클랜 한국지부. 정리할 게 있어서.]

"네에. 그럼 나중에 봐요."

[……그래.]

수현이 휴대폰을 끊었다.

오늘 저녁은 뭘 해야 하나. 배달해 먹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던 수현이 문득 멈추었다.

클랜 한국지부라면, 퀸즈 네스트 클랜 한국지부다. 올가가 있는 곳, 정하에게 초토화되어 상부의 처벌을 기다리라는 지령이 내려왔던 곳이다.

성격 나쁜 예브게냐가 갔다면…….

다 죽여버리는 거 아냐?

수현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예브게냐는 받지 않았다. 올가도 마찬가지다.

수현이 뛰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수현의 몸이 어스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나의 그림자가 된 수현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빌딩들이 뒤로 스쳐지나가고, 한 줄 바람이 된 수현이 올가에게 들었던 한국지부 건물로 향했다. 건물 뒤쪽 골목에서 튀어나온 수현이 후다닥 빌딩을 올라갔다. 각종 사무실이 모인 곳이라 경비들도 있었다. 그들이 수현을 막았지만 정신지배를 사용하자 그들이 순순히 길을 터주었다.

회사원들이 수현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여사원들이 수현을 눈여겨본다. 수현은 시선들을 무시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18층이다. 예브게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받지 않는다.

수현이 내렸다. 사무실은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막혀 있었다. 철문 하나 달랑이다. 저 너머에 예브게냐가 있을 것이다.

수현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드러난 광경에, 수현이 멈추었다.

살짝 열었을 때 틈으로 보인 것은, 정신을 잃은 올가의 모습이다. 머리에서 피가 조금 흘렀지만 심한 상처는 아닌 것 같다.

문을 조금 더 열자, 예브게냐의 늘씬한 뒷모습이 보인다.

초미니스커트라 그녀의 하얀 다리가 눈부시게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바닥에 엎드린 한 남성을 짓밟는다.

그의 몸에서 튄 핏자국이 예브게냐의 다리에 붉은 얼룩을 드리웠다.

예브게냐가 지치는 듯 잠깐 이마를 짚고 숨을 고르다가, 꿈틀거리는 남자의 손바닥을 그대로 힐로 밟아 우그러뜨렸다.

"피 튀었잖아!"

그녀의 땀에 젖은 금발이 흔들린다.

짜증난다는 듯 남자를 걷어차는 그녀의 몸짓은 어설프면서도, 잔혹하다.

점점이 붉은 피가 튄 그녀의 유려한 다리선, 그 아찔한 실루엣에 수현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남자를 밟다가, 스스로가 지쳐 숨을 고르는 예브게냐의 뒷모습.

찡그린, 아름다운 얼굴.

피로 얼룩진 그녀의 긴 다리.

"수현?"

예브게냐가 돌아보았다. 굽 때문에 무릎이 살짝 접힌 자세로 서서, 수현을 바라보았다. 뭐 불만 있냐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수현과 눈을 마주쳐왔다. 새치름하지만 조금은 수현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다.

수현이 예브게냐에게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땀에 젖은 그녀의 몸과, 지친 듯 위아래로 흔들리는 가슴이 확연히 보였다.

수현이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주었다.

이 성격 나쁜 여자가, 왜 이렇게 섹시한 걸까.

특히 핏방울이 튀어 있는 그녀의 늘씬한 다리에서 형언할 수 없는 욕망이 치밀었다.

수현은 충동적으로 예브게냐에게 키스했다. 땀에 젖은 입술이 끈끈히 들러붙어왔다. 혀를 얽어 타액과 설육을 엉겨붙였다. 예브게냐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수현의 목을 끌어안고 호응해왔다.

수현은 키스를 나누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짧은 미니스커트 아래로 쭉 뻗은 새하얀 다리, 꽃잎처럼 번진 핏자국이 수현의 머리에 가득 차올랐다. 다리를 매만지는 것뿐인데도 예브게냐는 달콤한 숨을 흘렸다.

"갑자기 뭐하는 거야……."

"누나가 너무 섹시해서."

수현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빨리 끝내고 집에나 가요."

그리고 그녀가 다 하지 못한 처벌이 떨어져내렸다. 수현의 정신지배가 올가를 제외한 모두의 머리에 내려꽂힌다.

*

그렇게 얼렁뚱땅 퀸즈 네스트 클랜은 해체되었다.

예브게냐의 람보르기니에는 꾸벅꾸벅 조는 수현과, 다리를 꼰 채 창밖에 시선을 둔 예브게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꾸만 곁에 있는 수현이 의식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어이가 없네. 예브게냐가 머리를 짚고 흔들었다. 천하의 자신이, 이 꼬마 하나 때문에 이렇게 정신 못차리고, 자꾸만 이 꼬마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있다. 괘씸하면서도……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말도 안돼. 난 예브게냐 울야키나. 멘탈마스터라고. 예브게냐는 얼굴을 휙휙 저으며 입술을 깨문다.

게다가, 말로만 들었지만 정말 자신의 정신지배를 흉내내서 사용하다니.

마음도, 능력도 져버린 느낌이다. 이 꼬마한테 푹 빠져버렸고, 능력도 훔쳐갔다.

말도 안돼. 짜증나.

이 녀석은 정체가 뭐야.

예브게냐는 미간을 모으고 수현을 내려다보다가, 정신지배의 힘을 사용했다.

그녀가 정신지배의 힘으로 수현의 머리를 열어보려고 힘을 침투시켰지만, 먹물에 떨어진 물 한 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빨려들었다.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힘을 증폭시켜서 수현에게 정신지배를 걸었다.

수현은 무방비로 자고 있지만, 그럼에도 머리로 침투할 수가 없었다.

예브게냐가 이를 악물고 몸에서 힘을 폭사시켰다. 그 여파로 람보르기니 주변의 행인들이 두통을 호소할 것이다. 예브게냐는 개의치 않고 수현의 머리를 헤집고 파고들었다. 그녀의 모든 힘이 수현의 머리를 향해 돌격한다.

보고 말겠어.

예브게냐가 희미한 틈을 향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때.

문득, 예브게냐는 어둠 속에 있었다.

여긴 어디야.

예브게냐가 두리번거렸다.

어둡고, 방향감각이 멋대로다. 위와 아래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예브게냐는 한기를 느꼈다. 팔뚝을 감싸쥐었다. 어둠, 어둠, 어둠. 발을 움직였지만 걷는 것 같지가 않았다. 챗바퀴 속에서 홀로 발을 놀리는 듯한 무력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심장을 긋고 지나가는 시선.

예브게냐가 몸을 뒤돌렸다. 아무 것도 없다. 다시금 뒤에서부터 그녀를 들여다보는 소름끼치는 눈동자가 느껴진다. 예브게냐가 주위를 돌며 황급히 몸을 움츠렸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해칠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문득, 예브게냐가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새빨간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 눈은 맹수의, 파충류의, 맹금류의, 짐승의, 악몽의, 온갖 두려운 것들을 그러모아 빚은 사악한, 심령이 뒤흔들릴 정도로 음습한, 그런 눈동자였다. 예브게냐는 다리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눈은 차츰 움직여, 예브게냐의 정면에서 빛난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아주 커다란 거인의 눈동자 같기도, 혹은 사나운 늑대 크기의 짐승 눈동자인 것 같기도 했다. 예브게냐의 심상 속의 많은 것들이 흩어졌다. 남은 것은 단지, 저 눈동자.

그녀는 어느새 알몸이었다.

예브게냐의 몸이 덜덜 떨렸다. 온몸에서 공포가 치민다.

저건 뭐야. 이 꼬마는 속에 뭘 품고 있는 거야.

두려워서 몸에 감각이 마비되어갔다. 오줌을 지릴 것 같다. 그 짐승은 가만히 예브게냐를 들여다보며 이따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웃는 듯이 가늘어지기도 했다. 그녀를 두른 까마득한 어둠 속에 가득한 것은, 공포.

점차, 예브게냐의 몸과 마음이 마비되어갔다. 취기가 오른 것처럼 암흑에 질식해, 뇌가 고양되었다. 오싹오싹하다. 쾌락과도 같은 무언가가 아랫배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다리 사이가 끈적해지는 게 느껴졌다. 예브게냐가 몸을 웅크렸다.

처음에는 공포,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굴종의 마음.

오싹오싹하다. 짐승 앞에 엎드리고 그에게 경배하고 싶다. 마땅히 그래야할 존재이므로.

예브게냐는 깨달았다.

저것은 수현의 마음 속에 똬리 튼 미지의 괴물 따위가 아니었다.

수현이었다.

예브게냐는 순간 전율하며, 입을 벌렸다. 짐승이 이제야 나를 알아보았느냐는 듯이, 눈을 휘며 웃었다. 저것이 실체다. 약탈자이자 무법자, 군림자이며 포식자다. 사악하고 더러운 존재, 음습하며 비열한 자, 포악하여 힘으로 찍어 누르는 폭군이면서 암컷을 거느리고 정액을 뿌리는 음탕한 악마.

어둠이, 짐승이 예브게냐의 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엎드려진 채, 동물이 짝짓기하는 자세로 짐승에게, 수현에게 범해졌다.

지독한 쾌감이었다. 영혼이 갈가리 찢겨 흩어지는 듯한 쾌락에 예브게냐는 비명을 질렀다. 눈의 검은자가 넘어가고, 온몸을 결박당한 채 그녀의 비처가 통째로 들리는 듯한 삽입이었다. 정액이 끝없이 그녀의 자궁을 채운다. 예브게냐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짐승의 혀와 얽힌다. 그녀는 끝없이…….

"자요?"

눈을 떴다.

수현이 말끄러미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예브게냐가 입을 다물었다. 람보르기니의 안이다. 곁에서 웃는 수현의 예쁘장한 얼굴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흠이라고는 없이 단정하게 자리한, 아름다운 얼굴이다. 수현이 숨을 내쉴 때마다 퍼지는 숨결조차 달콤하다.

예브게냐가 문득, 수현의 눈을 보았다.

새까맣다.

그 안에서 예브게냐는.

짐승의 눈동자를 본다.

"다…… 왔어."

"그러네요."

람보르기니가 멈추었다. 수현이 문을 열고 내렸다. 예브게냐는 내리지 않고 멈추어 서 있었다. 수현이 뭐하냐는 듯 쳐다보았다.

예브게냐가 입술을 깨물었다.

수현과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짐승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젖어버렸다. 몸은 이미 수현에게 중독되어, 그의 정액을 갈망하며 발정한다. 그에게 깔려서 흠씬 범해지고 싶다. 그의 정액 투성이가 되어 굴종하고 싶다…… 스커트 아래는 이미 흥건할 것이다. 일어나면 들킨다. 예브게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두망찰했다.

이러면…… 음탕한 여자로 볼 텐데.

수현의 눈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박혔다.

수현이 웃었다.

"웃지 마…… 망할 꼬마……."

예브게냐가 수치심에 울먹거린다.

수현이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보니까, 안이 안보이네요."

수현이 예브게냐의 턱을 붙잡고 키스했다. 예브게냐가 수현의 목을 휘감으며 열렬히 호응했다. 정하가, 수현이, 그 둘이 왜 그렇게 자주 키스했는지 알겠다. 수현과의 키스는…… 너무나 황홀하다. 수현의 타액을 잔뜩 마시며 예브게냐가 매달렸다. 혀, 혀를 줘. 수현의 혀와 얽힐 때마다 아랫도리가 화끈거리며 꿀물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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