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 / 0180 ----------------------------------------------
1. 부서진 세계
정하가 요한의 곁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못본 사이 더 예뻐졌구만."
"요새 깨끗한 피를 좀 먹었거든."
정하가 속삭이듯 말했다.
"예뻐진만큼 힘도 세졌다?"
요한이 난감하다는 듯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포라이터를 꺼내 담배 끄트머리에 불빛을 올리려는 찰나, 정하가 손가락을 얹어 심지를 비벼 불을 껐다.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티없이 희다. 요한이 생담배를 입에 문채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담배 필 시간 없을 거니까 아껴두란 뜻이야."
"뭐?"
"밖에 클랜원 꼬마들 두고 들어왔지?"
요한이 입에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너."
"아직 이 아이들은 클랜원이 아니잖아? 클랜원이 더 중요하겠지?"
세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클랜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철십자와 같이 정도를 걷는 클랜은 대개 클랜원의 보호가 우선순위였다. 때문에 능력자들이 그들을 믿고 클랜에 몸을 맡기고, 때로는 불합리한 임무에도 투입되는 것이다. 정하는 영리한 수를 사용했다.
하지만 철십자 클랜은 강력한 조직이다. 아무리 세연을 원해도, 이들과 이렇게 충돌하면서까지 좇아오는 것을 세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마음을 먹으면 정하는 흔적도 없이 제거할 수 있다.
"간이 커졌군. 후회할 텐데."
"나 걱정해주는 거야? 그 꼬마들이나 걱정해."
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세연이 손을 뻗어 요한의 소매를 붙잡았다. 가지 말라는 눈짓이었다. 슬레이브들이 이미 주점 밖을 포위하고 있을 테다. 요한을 믿고 이곳으로 왔다. 이게 틀어지면 방법이 없었다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지금 클랜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
세연이 요한을 간절히 쳐다보았지만 요한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정하는 후일 대가를 치를 거야. 너희 둘 잊지 않겠다."
요한이 처음과 같이 주점 밖으로 사라졌다. 주점 문이 닫히는 동시에 정하가 웃었다.
"이제 다시 우리끼리 놀까?"
수현이 세연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선배,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돼요? 아무도 못건든다면서요."
세연이 한숨을 쉬었다.
"여기가 무슨 편의점이니? 영업 끝나면 나가야 돼."
수현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영업 끝나면 우린 죽었어.
정하가 미소지었다.
"시간 다 돼 가. 그동안 우리 술이라도 마실까?"
수현이 떨떠름하게 정하를 보았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질 않다. 특히 수현을 향해 고혹적이지만 살기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얼굴을 보며 수현은 문득 궁금해졌다. 팬티 입었을까? 수현은 햇살 아래 드러났던 그녀의 분홍색 음부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 수현을 빤히 쳐다보던 정하가 흐음, 하고 살짝 턱끝을 비틀었다. 아까처럼 죽일 듯한 눈이 아니라, 묘한 분위기로 수현을 빤히 쳐다본다. 그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수현이 몸을 움츠리자, 정하가 다시 흐음, 하고 살짝 미소를 짓는다.
세연은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였지만, 수현은 내심으로는 실감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하가 죽이기야 하겠는가. 세연의 마력이 강하다니까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눈앞의 이 아름다운 여인이 그렇게까지 잔혹하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후에 이런 생각, 후회하게 되겠지만.
"정하 씨?"
"누나라 불러도 돼. 꼬맹아."
"누나는 몇 살이신데 제가 꼬맹이에요?"
"난 육이오 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목격했지."
"그거 완전 할머……."
"……."
살짝 부드러워졌던 정하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는다.
"그, 그런데 왜 그렇게 예뻐요, 누나. 우와 굉장하다. 나이를 거꾸로 드셨나. 나이 들수록 예뻐지는 타입? 끝없이 아름다워지겠네요."
수현이 황급히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였다. 효과가 있는지 정하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어진다.
"너 제법 귀엽게 생겼구나."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남자한테 칭찬이 아닌데요."
"지금 바로 내 노예 할래? 예쁘게 물어줄테니까. 나중에 귀여워해줄게."
"아, 아니요."
정하 같은 미녀가 귀여워해준다는 말에 수현은 엄청나게 혹했지만 곁에 앉은 세연의 싸늘한 분위기에 손을 내저었다. 흐름이 좋다. 수현이 내친 김에 말했다.
"누나, 그냥 저희 친하게 지내요. 서로 싸우지 말고. 하하하. 노예 그런 거 안해도 잘 지내면 되잖아요. 안그래요?"
"안그래."
정하가 바로 대답했다.
"난 너희들 내 슬레이브로 만들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하가 씽긋 웃었다. 송곳니가 드러난다. 수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정하가 이렇게 구는 것도, 확실한 힘의 우위에서 나오는 여유일 것이다. 헤헤거린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녀는 사악한 흡혈귀, 세연과 수현의 적이다.
"나 잠깐 화장실."
세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정하가 세연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발버둥쳐봤자지."
"네?"
"아니야."
정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세연이 앉던 자리, 수현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넌 어떤 능력을 가졌니?"
수현에게 바짝 몸을 기대고 속삭인다. 그녀의 숨결, 향수 냄새가 끼쳐왔다. 수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몰라요. 전 능력인지 뭔지 오늘 처음 안 걸요."
"흐응. 내 결계를 뚫었으니 보통은 아닐 텐데."
왜 말할 때마다 귓가에 속삭이는지, 수현이 움찔움찔거렸다. 이 누님, 대놓고 날 희롱하잖아. 수현은 정하의 손끝이 자신의 허벅지 위로 올라오자,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나른하게 쿡쿡거렸다.
"참기 힘드네. 여기 영업은 언제 끝나는 거야."
그녀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보통이 넘는 그녀의 가슴이 수현의 팔에 짓눌렸다. 그녀가 입은 미니 드레스는 생각 이상으로 얇아서,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이 그대로 팔에 느껴졌다. 우왓, 명백히 비비고 있다. 수현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저, 저기……."
"날 봐. 꼬맹아."
수현이 흘끗 정하를 보았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가 붉게 달아오른다 싶었다. 그 눈을 마주하자 수현은 머리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몽롱하다. 그녀가 수현의 귀에 대고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야릇한 입김과,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살짝살짝 귓불을 스치자, 동정소년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고 말았다. 하복부에 피가 몰린다.
"그만 해요……."
이상하다. 정하에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흡혈귀 특유의 매혹이야. 누나한테 오면 매일 귀여워해준다니까."
정하가 수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었다. 수현은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와 알 수 없는 매혹의 기운에 취해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수현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끝이 허벅지를 타고 사타구니를 천천히 훑는다.
"흐읏……으……."
신음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키스해왔다. 단순한 입맞춤인 줄 알았는데, 혀가 밀려든다.
이 흡혈귀 누나, 완전 야하잖아.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밀어 그녀와 호응했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키스였다. 입 속 점막이 얽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쾌감이었다. 서로의 타액이 뒤섞인 채 둘의 입 안을 오갔다.
정하가 입술을 살짝 떼고, 수현의 아랫입술을 혀로 핥다가 천천히 내려와, 수현의 목덜미에 키스했다. 수현은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옷 너머로, 손등으로 쓸어내리자 수현은 그대로 사정할 것 같았다. 동정소년에게는 너무 과도한 자극이다. 수현의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저, 저기요……."
"여기, 물어주고 싶네. 흡혈귀한테 물리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르지?"
그녀가 혀로 수현의 목덜미를 핥았다. 송곳니가 수현의 살갛에 닿는다. 물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송곳니를 수현의 목덜미에 비비며 위치를 확인하듯 살짝 힘을 준다. 정하가 수현의 목덜미에 키스하고는 입술을 뗐다.
"곧 끝날 시간이네."
세연 선배는 언제 오는 거야. 수현은 몽롱해진 채 저항할 힘을 잃어, 그녀가 이끄는 대로 희롱당하며 생각했다.
*
세연은 정하의 눈을 피해 주점의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케인의 펍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머리는 필사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다.
수현, 그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른다.
수현의 예쁘장한 외모에 정하가 솔깃한 것 같지만, 결국은 슬레이브가 될 뿐이다. 이 세계에서 패배한다는 것, 강자에게 굴복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수현은 모른다. 특히나 정하라면 최악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수현이 여기 휘말린 데에는 자신도 연관되어 있으니, 일말의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자신도 한치 앞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현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자조했다. 하지만 자신은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 필사적으로 발버둥칠 뿐이다. 우연이든 무엇이든 수현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고, 이렇게 돌이키지 못할 곳에 이르렀다. 세연은 머리를 흔들며 불필요한 감상을 잊으려고 애썼다.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든 이번 위기를 벗어낼 방도를 짜내야 한다. 이번에 정하를 따돌리면 어떻게든 클랜의 보호에 들어갈 수 있다. 정하를 막아주는 대가로 꽤나 혹사 당하겠지만 그녀에게 종속되는 데 비할 바는 아니다.
"여, 같이 한 잔 할까, 아가씨?"
남자 몇이 거는 수작을 무시했다.
케인의 펍에는 정말 별별 존재가 다 모여든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세연의 눈동자가 파랗게 물들더니, 주점에 있는 이들을 훑었다.
낮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러다가 한 무리에게 눈길이 닿았다.
남자 넷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투기가 배어나왔다. 확연히 수준이 높다. 무공을 익힌 이들 같다. 정하의 타입상 재빠른 몸놀림의 무인들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들이 가진 무기들도 아티팩트 같았다. 그러고보니, 저 붉은 빛이 맴도는 칼은, 작년 헬게이트 참사 때 홀로 악마들과 추종자들을 몰살시키고 게이트를 닫아 흉명을 떨친 홍염, 김이삭의 특징이었다.
세연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용무지?"
"당신들을 고용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남자가 픽 웃고는 손을 휘저었다.
세연은 그들이 아니라 혼자 잔을 내려다보며 흥얼거리고 있는 김이삭을 가리켰다.
"당신, 홍염이죠?"
그제야 김이삭이 고개를 든다. 눈가에서부터 뺨까지 흉터가 나 있다. 숱 많은 머리는 대충 쳐서 멋대로 휘날리지만, 이목구비가 단정해 인상은 나쁘지 않다. 취한 와중에도 눈이 맑았다.
"나 알아?"
"알죠. 혼자 악마 군단을 저지하고 게이트를 찍어 닫은 사람인데."
김이삭이 흐흣, 하고 웃었다. 할 말 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뱀파이어가 저와 일행을 노리고 있어요."
"누군데?"
"정하에요."
그녀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남자들의 얼굴이 굳었다. 김이삭은 그저 눈을 감았다.
"정하가 여기 왔다고 다들 떠들어대던데."
"맞아요. 영업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죠."
김이삭이 말했다.
"재미있네."
남자들이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씨익 웃었다. 호승심이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정하라면 우리 대화를 잡아낼 수 있어."
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 정하와 수현이 앉아 있을 방향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라면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다. 세연은 다시 남자들을 훑었다. 김이삭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와 엇비슷한 경지의 남자들이었다. 함께라면 정하를 저지할 수 있다.
그들은 주점의 구석진 곳 문을 열어 들어갔다. 케인의 펍에는 메인홀을 중심으로 곁가지를 내듯 몇 개의 비밀공간이 펼쳐져 있다. 물론 어디에도 케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은 실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김이삭이 익숙하게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둑했는데, 그가 벽을 더듬자 어스름한 전구가 깜빡이더니 불빛을 올렸다. 낡은 탁자 하나에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서 심문실을 연상케 한다. 이따금 벽에는 핏자국이 있다.
세연이 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정하가 갑자기 노리기 시작한 것과 한 소년이 말려든 것, 그리고 한 번만 정하를 따돌리게 도와준다면 다른 클랜과 접촉하여 보호를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이삭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고맙습니다!"
"형님. 위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언제 위험을 피해다녔다고."
남자들이 킥킥 웃었다.
"그리고 흡혈귀 따위가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 싫거든."
김이삭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세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보수는 어떻게 해줄 거야?"
세연의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김이삭은 이런 대화에는 끼지 않겠다는 듯 칼을 빼내 전등불에 비춰보고 있다. 시린 은색 검날은 붉은 빛을 머금어, 발그레한 분홍빛으로 보였다.
"보수는…… 나중에 어떻게든 갚을게요. 얼마를 원하죠?"
그 남자가 웃었다.
"돈은 필요 없어 아가씨."
"그럼……."
"우리를 만족시켜주라고."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가 자신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문지르며 웃었다. 세연이 한 걸음 뒷걸음질친다. 이들이 외진 곳으로 이끈 이유는 따로 있었던 거다. 세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정하에게 물려 노예로 전락하고 싶다면, 가. 우리는 손해볼 것 없으니까."
"……."
"혹시 처녀인가?"
"너무 겁먹지 마. 우리가 악당인 것 같잖아."
세연이 눈을 내리 깔고 머뭇거렸다. 지옥 같다. 온통 못되어쳐먹은 이쪽 세계 인간들에 진절머리가 난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 이대로 가버린다면 정하에게 붙잡힌다는 결말 뿐이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 케인의 펍이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연은 울 것 같은 얼굴을 억지로 굳히고, 메이는 목을 풀려 헛기침했다.
"불쌍하니까 아래 말고, 손이든 뭐든, 만족시켜주면 돕는 걸로 하지. 이정도면 오케이?"
"……."
"우리가 어찌 할까봐 그래? 케인의 펍이야. 억지로는 할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거절할 수 없다. 고민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고 싶은 거였다.
그들 중 한 명은 세연이 요구를 들어줄 것을 확신하는지 바지를 내렸다. 그의 검붉은 물건이 튀어나왔다. 세연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시간이 가고 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김이삭을 쳐다보았다. 그는 뒤켠에 홀로 기대어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세연은 체념했다.
세연이 다가가서 조심스레 손을 뻗는다.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뇌전의 마녀가 내 물건을 만져주다니. 영광이야."
세연의 손이 닿는 순간 그의 물건이 부풀었다. 뜨겁다. 세연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대로 조금씩 물건을 앞뒤로 훑는다.
뒤에서 누군가가 세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흠칫 놀라 쳐다보니 다른 남자가 히죽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다.
"시간 없잖아. 동시에 하자고. 동시에."
그들 모두 바지를 내리고 남근을 꺼내놓은 채였다.
세연이 양손으로 하나씩 물건을 쥐었다. 크고 두텁고, 뜨겁다. 세연이 힘주어 쥐고 흔들었지만 그들의 물건은 부풀어올라 단단해졌을 뿐 변화가 없었다. 세연이 필사적으로 앞뒤로 흔들었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런 것 뿐이다.
세연은 엉거주춤 서서 하던 것을 바꾸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자세를 바꾸었을 뿐인데도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눈높이에 그들의 물건이 세 개, 튀어나온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연이 두 개를 양손으로 쥐었다.
"조금 벗는 게 어때. 흥분이 안되는데."
세연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의 서툰 손놀림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영업시간 끝나간다고."
세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결국 새하얀 상체를 남자들에게 드러내인 채, 그들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의 덜 여문 젖가슴이 남자들 앞에 드러나자 그들의 물건이 꺼떡거렸다. 세연의 손길에 조금씩 반응하며 투명한 액을 흘리기도 했다.
남자들의 물건 하나씩을 쥐고 흔들었다. 조금씩 그들의 표정이 변하더니, 움찔거렸다.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온 힘을 다해 쥐고 짜내어대는데 버틸 재간은 없을 터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가 남아 있었고, 이후에 홀로 앉아 있는 김이삭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세연이 마녀라고는 해도 육체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팔힘이 달리는지 차츰 느려졌다. 그녀의 숨이 거칠어진다. 시간은 점점 흘러 초조하다.
세연의 손놀림으로는 부족한지 남근을 맡긴 남자들이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성감을 높였다. 그들의 물건에서 쿠퍼액이 흘러나와 미끌미끌해지자, 더 수월해졌다. 세연이 팔을 흔들 때마다 그녀의 유두가 흔들렸다.
"아직 한참 남았어."
"하아, 흐으, 하……."
"입을 사용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지."
물건을 스스로 주무르며 차례를 기다리던 남자 하나가, 끼어들더니 물건을 세연의 입술에 갖다대었다. 세연이 고개를 피했지만 남자가 허리를 내밀어 그녀의 뺨에 물건을 비볐다. 오랫동안 팔을 흔든 탓에 지쳐 숨이 거칠어진 상태라, 입이 저절로 열렸다. 그 사이로 남자의 물건이 비집고 들어왔다.
"우읍."
아직 남자 둘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세연은 눈을 질끈 감고 남자의 물건을 입에 머금었다. 어떻게 할지 몰라, 손에 쥔 것은 몹시 흔들고 비비며 입으로 물건을 빨았다.
역한 맛이 올라온다.
거부감 때문에 입으로 강하게 자극할 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혀로 날름거릴 뿐이었다.
누군가가 세연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남자의 물건에 둘러싸인 세연은 눈에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애무했다. 자신 뿐 아니라 수현의 운명도 달려 있다. 절박하게 남자들을 자극한다.
세연의 입을 범하던 남자가 세연의 머리를 붙잡고는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그녀의 입을 범했다. 목구멍까지 치고 들어오자 구역질이 났지만 남자는 가차 없었다. 세연은 그 와중에도 손아귀에 힘을 주어 남자들의 물건을 쥐어짜냈다.
쿠퍼액에 젖은 남자들의 물건을 손으로 훑는 질척한 소리와, 억눌린 세연의 숨소리만 실내를 메웠다.
"아아, 윽, 윽……!"
결국 남자 하나가 사정했다. 세연의 머리카락과 뺨, 새하얀 가슴에 흰 정액이 흩뿌려진다. 세연은 뜨거운 액체가 몸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힘이 풀린 팔을 늘어뜨리며, 나머지 두 개의 물건을 애무했다.
입으로 남자의 정액이 밀려든다. 뜨겁고 역한 액체가 울컥거리며 목을 메웠다. 거부하려했지만 남자가 물건을 뽑지 않아 그대로 식도를 통과했다. 물건은 몇 번이고 정액을 짜내며 세연의 입에 백탁액을 흘려보냈다.
나머지 한 남자도 정액을 뿌렸다.
"하아, 하아……."
세 명을 끝냈다. 세연이 김이삭을 돌아보려는 찰나.
"영업시간 끝났네."
남자 하나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웃었다.
"네?"
"넌 아직 이삭 형님을 만족시키지 못했지. 아깝네.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겠어."
"잠깐만요!"
그들은 이미 바지를 올려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세연이 뒤돌아 리더인 김이삭을 쳐다보았다. 그는 탁자에 비스듬히 엉덩이를 걸친 채, 그저 웃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툭툭 치고는, 어깨를 으쓱한다. 어떤 유감도 없이 재미있다는 듯한 그 웃음에 세연은 망연자실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다. 절박함을 이용해 자신을 유린하고는 그냥 가버리려 했다. 세연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끓어오른다.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어?"
그들이 세연에게서 피어오르는 살기에 움찔했다. 세연의 손아귀에서 강력한 뇌전의 기운이 서렸다. 그녀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온다.
정하가 기다리고 있겠지. 세연은 이들 중 하나라도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그만."
낮고, 저음이다.
공간을 제압하는 목소리였다.
모두가, 소리가 들려온 구석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키가 크고 탄력 있는 몸매의, 마치 흑표범같은 분위기의 흑인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는 스킨헤드에 가까웠고, 마법진과 같은 문신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얼굴까지 이어져, 얼굴의 반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뒤덮여 있다. 복장은 그린 듯이 들어맞는 수트 차림.
그리고 무엇보다, 마치 눈이 멀어버린 사람처럼 반투명한 은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나이.
"케인."
이 자가 바로 중립을 추구하며 그의 공간에선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남자, 케인이다. 그가 등장하자 공기 밀도가 달라진 듯 숨이 막혀왔다.
"시간이다. 떠나라."
세 남자들이 후다닥 방을 나갔다. 김이삭이 세연의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정글에서 순진하게 굴지 말라는, 뭐, 레슨이야. 앞으로 정하가 돌봐줄 테니 들을 필요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키득거리며 그녀를 지나갔다.
세연은 그들의 등을 망연자실 쳐다보았다. 케인이 등장하자마자 산소를 잃은 불씨마냥, 그녀의 뇌전도 스러진 상태였다.
"너도 떠나라."
그 감정 없는 목소리에 세연은 이 남자에게 부탁해도 절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세연이 고개를 떨구었다. 케인은 세연에게 다가와 손수건을 머리에 얹어주었다.
세연이 고개를 들자 케인은 이미 메인홀로 나간 후였다. 그의 휘하에 있는 직원들이 바를 정리하고 있었다.
세연은 손수건으로 주섬주섬 정액을 닦아내고, 브래지어와 교복을 입었다.
메인홀로 걸어나오자, 입구에서 정하와 수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렸잖아. 꼬마 마녀씨."
세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수현에겐 미안하지만, 노예가 되느니 죽겠다. 죽더라도, 정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