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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아주 어릴적부터였다.
수현은 언제나 어둠을 보고 있었다.
언제나 시선에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빛은 어디에나 있었으나, 자그마한 골들, 모든 존재의 구석, 광원을 마주한 모든 것들의 뒤켠에는 언제나 어둠이 자리하고 있다. 빛을 제하면 최초는 언제나 어둠이다. 주먹을 쥐면, 그 안에 가득한 암흑이 수현에게는 선명했다. 누가 웃으면 주름 사이의 어둠, 누가 말을 하면 입 속의 어둠, 눈꺼풀 너머에 언제나 자리한 그 어둠이었다.
홀로 어둠 속에 있으면 안온해서, 수현은 곧잘 불 꺼진 곳으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고 가만히 자신의 호흡과 맥박을 되짚고는 했다.
계속해서 어둠을 인식해온 시간들.
그 까마득한 풍경들을 넘기면, 그 이외의 첫 기억은 동물원이다.
수현은 부모님과 동물원에 있었다.
맹수들의 우리였다. 먹이사슬의 정점이라는 맹수들은, 터럭을 흐트러뜨린 채 이따금 사육사들이 넘긴 먹이들을 짓씹으면서, 흘끗, 인간들을 쳐다보고 그들의 살점을 가늠하듯 고기를 잘근거렸다. 어떤 녀석은 우리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수현은 울타리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변했다.
수현이 울타리에 다가간 순간에, 맹수들은 일제히 털을 곤두세우더니 뒤로 물러났다. 관람객들을 매혹시킨 야성은 사라지고, 일부는 등을 보이고 뒤돌아 뛰었다. 길든 개처럼 꼬리를 말았다.
수현은 아까와 같은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맹수들은 저만치서 수현을 흘끗거릴 뿐이었다.
"다들 널 두려워하고 있구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수현이 갸웃하자, 여인은 무릎을 꿇어 수현과 눈높이를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눈으로는 수현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우와.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나?"
수현을 위아래로 관찰하다가,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현은 그녀가 말하는 바를 알 수 없었으나 다만, 어린 마음에도 그녀가 몹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건 처음인데."
수현은 그녀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으응…… 넌 아주 특별해. 뭐라고 할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포식자구나."
"포식자?"
"상대가 누구든 먹어치우고 빼앗는 정글의 왕."
수현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무슨 소리인지 알게 될 거야. 모르고 사는게 더 좋겠지만."
여인은 무언가 생각하더니,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었다. 까맣고 가느다란 목줄이, 붉은 돌멩이를 그물처럼 얽어 묶고는 다시 빠져나와 동그랗게 원을 이루었다. 어린 수현에게는 조금 커 보였다.
하지만 여인이 수현의 목에 걸어주자, 거짓말처럼 딱 맞았다.
"널 숨겨줄 거야. 잘 간수해야 돼."
"고맙습니다."
수현과 조금 떨어져 있던 부모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은 웃으면서 수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일어섰다.
"만약에, 혹여나 다시 만나면, 그때 날 도와주겠니?"
수현은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목걸이에 매달린 돌멩이를 만지작거렸다. 머리 위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안녕. 정글의 임금님."
수현이 고개 들었을 때,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맹수들은 여전히 멀찌감지 떨어져 관람객들을 실망시켰다.
부모님이 수현의 손을 잡았다…….
아니, 이것은 꿈이다.
수현은 어느새 어른이었다.
부모님의 손인 줄 알았는데. 낯선 남자들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눈 앞에, 사악한 괴물이 수현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다.
정글이었다. 모두가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가 않다. 다만, 생각나는 건 그 목소리.
─ 너는 포식자구나.
수현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