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2/6)

첫 번째 이야기

사내가 제 위로 올라오자 소예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내의 손이 제 살갗에 닿자 소예의 등골에 간지러움을 빙자한 흥분이 번졌다.

이미 사내의 손에 익숙해진 다리가 저절로 벌어지며 축축하게 젖은 입구가 드러났다.

소예는 보지 못하지만 아마 사내의 눈에는 그녀의 젖은 분홍색 질구가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다.

질구의 갈라진 틈 위로 사내가 음경을 비벼댔다.

한 손으로 소예의 허리를 감싸고 앞뒤로 움직이며, 사내가 금방이라도 쑤셔 박을 것처럼 소예의 둔덕에 음경을 비벼댔다.

“흐읍, 읍… 읍…….”

그때마다 소예가 숨을 헐떡였다.

소리를 지르니 못하는 것은 소예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는 탓이다.

지금 소예는 눈과 입이 자유를 잃은 상태였다.

눈에는 검은 천이 둘러져 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저를 범하는 사내가 누군지 보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이런 밤이 벌써 보름째 이어지고 있었다.

“읍… 흡…….”

발발 떨리는 소예의 어깨에 사내의 거친 숨이 닿았다.

사내의 숨은 뜨겁고 사나웠다.

계속 소예의 질구를 꾹꾹 누르던 사내의 귀두가 기어이 그녀의 질구 안으로 박혀 들었다.

“흡……!”

묵직하고 뜨거운 감각이 소예의 아랫도리를 점령했다.

제 안쪽을 가득 채우는 뜨거운 살덩이의 감각에 소예가 허리를 덜덜 떨었다.

벌어진 다리의 안쪽이 그 버거움에 잔경련을 일으켰다.

퍽-!

소예의 안에 음경을 쑤셔 박은 사내가 사납게 허리를 쳐올렸다.

“읍……!”

퍽-!

그리고 다시 강하게 그녀의 안을 쑤셔 박았다.

“흡! 흐, 읍!”

퍽, 퍽, 퍽.

사내의 음경이 퍽퍽, 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박아 올 때마다 소예의 몸이 흔들렸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앞에서 하얗게 불꽃이 튀었다.

재갈이 물려 있는 입술 사이로 쾌감이 섞인 침이 질질 샜다.

누군지 모르는 사내에게 박히며 소예가 아찔한 쾌감을 느꼈다.

사내의 허리는 사나운 짐승처럼 움직였다.

그가 세차게 박아 올 때마다 소예는 다리를 벌린 채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사내의 음경에 쑤셔 박히는 질 안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소예의 몸은 사내를 원했다.

푹, 푹, 쑤셔질 때마다 소예는 제 몸이 황홀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알았다.

사내의 손이 소예의 허벅지를 잡고 더 맹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사정없이 꿰뚫리며 소예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거칠게 밀어붙이는 사내의 허리 짓에 그녀의 몸이 끓어올랐다.

사내의 손이 묶어 놓았던 소예의 손목 끈을 풀어 준 것은 그때였다.

묶였던 손목이 풀리자마자 소예가 기다렸다는 듯 사내의 목에 매달렸다.

“읍! 으, 읍!”

소예의 엉덩이를 꽉 잡은 채로 사내가 더 깊이 허리를 쳐올렸다.

더 깊게 박혀 오는 음경이 주는 쾌감에 소예의 머릿속이 열기로 녹아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흡!”

소예의 몸 안에 사내의 씨물이 뿌려진 것은 그때였다.

한차례 씨물을 뿌린 사내가 소예의 몸을 뒤집었다.

“흡! 읍, 읍!”

이불 위에 엎드려진 소예의 엉덩이를 잡아 벌린 사내가 그대로 음경을 쑤셔 넣었다.

푹, 푹, 쑤셔지는 생생한 날것의 감각에 소예가 입 밖으로 지르지 못하는 교성을 입 안으로 삼켰다.

사내는 그녀의 골반을 우악스럽게 잡고 거칠게 허리를 흔들었다.

한 번 사정한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여전히 거칠고 뜨겁게 파고드는 음경이 소예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사내의 음경은 무쇠처럼 뜨겁고 단단했다.

그것이 제 몸에 격렬하게 부딪칠 때마다 소예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내의 정이 다시 한번 소예의 몸 안에 울컥, 쏟아졌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쏟아낼 요량인 듯 사내는 끝까지 허리를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음경을 뽑아내며 사내가 그녀를 놓아주자, 소예의 지친 몸이 이불 위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사내가 입에 물렸던 재갈을 풀어 주자 소예가 참고 참았던 가쁜 숨을 토해놓았다.

아직 소예의 다리 사이에서는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사내의 손이 소예의 어깨와 등줄기를 쓰윽 훑었다.

손끝이 거칠다.

마치 허드렛일을 하는 사내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거친 일을 하는 사내처럼 손끝이 거칠었다.

까칠한 손끝이 제 등줄기를 훑자 소예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그 흠칫 떨리는 등줄기 위로 찬바람이 스쳤다.

사내가 밖으로 나가느라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소예가 제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었다.

제일 먼저 소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한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이 눈에 익자 소예가 고개를 돌려 제 방 안을 둘러봤다.

당연하지만 사내는 없었다.

“하아… 하아…….”

소예가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이런 밤이 벌써 보름째 이어지고 있다.

보름 동안 밤마다 제 방으로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소예는 그 사내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을 범하는 사내가 누구인지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고, 당연하지만 이름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거친 손끝뿐이다.

손가락의 끝이 거친 사내.

단단한 체격을 갖추고 있고 뒷목에 도드라진 작은 점이 있다.

사내의 목에 매달렸을 때 손끝에 점이 만져졌었다.

아주 작지만 약간 위로 솟은 점.

소예가 그 사내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누굴까…….”

옆으로 웅크려 누우며 소예가 중얼거렸다.

달아오른 몸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 * *

아침이 되자 소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 조반상을 받았다.

소예는 늘 혼자 조반상을 받고 아침밥을 먹는다.

차려진 음식은 항상 산해진미였지만 소예의 젓가락이 닿는 곳은 정해져 있다.

부드럽게 끓여진 죽과 꿀에 절인 복숭아 정도가 소예가 먹는 것의 전부였다.

흰 소복을 입은 소예의 단정한 모습에서 어젯밤의 음란한 모양새는 찾아볼 수가 없다.

소예가 소복을 입은 까닭은 지금 상중이기 때문이다.

소예는 보름 전에 남편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인 서권주가 혼인 직후 초야에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평소에 지병을 앓고 있지 않았던 서권주이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 말들이 분분했지만 어쩌겠는가.

그 사내는 죽었고, 소예는 혼인 당일에 과부가 되었다.

초야의 신방에 들기는 했지만 옷고름도 풀지 못하고 졸지에 생과부가 된 소예는 원래라면 초야를 치러야 하는 혼인 첫날밤에 곡하는 소리를 들으며 입관을 지켜봐야 했고, 그다음 날부터는 죽은 서권주의 위패가 마련된 사당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밤에, 그 사당에서, 죽은 서권주의 위패가 놓인 그 앞에서 소예는 모르는 사내에게 겁간을 당했다.

‘읍……!’

갑자기 뒤에서 커다란 손이 눈과 입을 틀어막았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검은 천이 눈을 가리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졌다.

그리고 입고 있던 소복이 강제로 벗겨지며 우악스럽게 사내가 그녀를 겁탈했다.

그때는 전희도 없었다.

거칠게 다리를 잡아 벌리고 흉포한 음경을 사납게 쑤셔 박으며 몇 번 안쪽을 꿰뚫은 사내는 쉽게 사정했고, 한 번 사정한 직후에는 오히려 느긋해졌다.

그 밤에 소예는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사내에게 범해졌고, 결국에는 가랑이 사이가 사내의 씨물로 범벅이 되고 난 후에야 그것은 끝이 났다.

사내가 사라진 후 소예는 구겨진 소복을 입으며 서러움에 대성통곡을 했다.

새벽이 밝은 후에 사당으로 들어온 하녀들은 과부가 된 처지를 비관하여 소예가 운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소예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서권주는 죽었지만 서권주의 재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서권주의 재산.

서권주가 급사하는 바람에 그는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국법에 따르면 아비가 유언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 그 아들들이 재산을 나누어 가지게 되어 있다.

장남이 전체 재산의 오 할을 가지고, 차남이 삼 할, 그리고 삼남이 이 할을 가지는 것이 국법으로 정해진 것이지만 만약 죽은 사내에게 아내가 살아 있다면 법은 다르게 적용이 된다.

유언이 없는 재산은 죽은 자의 미망인에게 자식이 있으면 재산의 전부를, 자식이 없는 미망인에겐 재산의 오 할을 주게 되어 있고, 나머지 오 할의 재산을 다른 자식들이 나눠 가지게 된다.

유언이 없는 재산의 일차적인 승계는 미망인에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지금 소예에게는 자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권주의 재산 중 절반은 소예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재산을 세 아들들이 나눠 가져야 하지만 문제는 서권주가 첫날밤 신방 안에서 급사했다는 사실이었다.

서권주가 소예와 합방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소예만 아는 진실이다.

물론 서권주는 소예의 옷고름도 풀지 못했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없다.

소예는 제 입으로 서권주가 저를 품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바보는 아니었다.

만약 서권주의 아들들이 초야를 치르지 않은 여자는 서권주의 아내로 볼 수 없다 주장하고 나서면 힘없는 자신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빚 때문에 팔려 와서 서권주의 아내가 되었지만 소예에게도 욕심은 있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저 세 아들들은 욕심이 많아 소예에게서 작은 트집거리라도 발견하면 단 몇 푼의 재산도 남겨주지 않으려 할 것이 뻔했다.

임자 없는 재산이라면 먼저 가로채는 것이 임자였다.

그런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소예는 자신이 서권주와 초야를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다.

입만 잘 다물고 있으면 그녀는 재산을 얻어서 불쌍한 가족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서권주의 상은 일 년 상으로 치르기로 결정이 되었다.

일 년 상이라고 하면 일 년 동안은 그의 처와 자식들이 상복을 벗지 않고 매일 그 빈소를 돌아가며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세 아들과 소예가 매일 하루씩 돌아가며 빈소를 지키는 것을 일 년을 해야 일 년 후에 비로소 재산이 완벽하게 승계가 된다.

그 전에 흠이 생기면 재산 상속에서 제외되고 만다.

흠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소예의 경우에는 다른 사내와 간통을 저지르는 것이 흠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소예도 짐작 가는 것이 있다.

절반의 재산이라는 것은 적은 분량이 아니다.

그것을 자신에게 빼앗기게 생겼으니 서권주의 세 아들 중에서 누군가가, 혹은 세 명이 작당해서 제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제게 흠을 만들어 제게 돌아올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세 아들이 작정하고 꾸미는 일이라면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당하고 만다.

하지만 소예에게는 저항할 방법이 없다.

자신의 방에 외간 사내가 들락거린다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그것은 그녀의 흠이 되어 스스스로에게 비수를 꽂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외간 사내가 들어왔을 때 비명을 지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현장에서 잡히면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 멍석말이를 당해 죽을 수도 있었다.

결국 그 세 명이 작당을 하면 자신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소예도 잘 알았다.

다만, 처음 범해진 날로부터 보름이나 지났다.

보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사내는 그녀를 범했다.

만약 서권주의 세 아들이 그 사내를 사주했다면 왜 보름씩이나 질질 끌어오고 있는 것일까.

벌써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어 자신을 이 집에서 쫓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다른 원하는 것이 있다든가, 아니면 그 세 사람의 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뭘 원하는지 확실하게 안다면 덜 불안할 것이다.

그 사내가 자신을 범하는 것이 그저 욕망을 채우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인지 그것만 알아도 좋겠다.

재산을 원한다면 재산을 나눠 줄 생각은 있다.

몇 사람과 나눠도 재산은 충분했다.

열 사람, 백 사람이 나눠도 모자라지 않을 재산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내가 원하는 것이 재산이 아니라면?

그 사내가 원하는 것이 재산이 아니라 만약 자신이라면?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서권주의 세 아들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서권주의 둘째 아들이 제 미모를 보고 저를 탐내어 이곳에 데려온 것을 서권주가 보고 가로챘다는 것을 소예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서권주의 둘째 아들이 그 사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서권주의 둘째 아들은 재산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내였다.

그 욕심 많은 사내가 괜히 저를 건드렸다가 다른 형제들에게 들통이 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재산까지 전부 잃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얼마 정도는 들어올 재산을 자신 때문에 걷어찰 사내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사내는…….’

무엇보다 밤마다 저를 범하는 사내는 저를 미워하거나 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고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소예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보름째 자신을 겁탈하고 있는 사내를 좋게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정사를 끝낸 후에 제 등과 어깨를 쓰윽 만지는 손길에서 묻어나는 정은 소예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 까슬한 손끝에서는 틀림없는 정이 묻어났다.

첫날에는 그 손이 머리를 어루만졌었고, 그다음 날부터는 어깨와 등줄기를 만졌었다.

‘차라리 나를 남몰래 사모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나을 것인데…….’

어떤 사내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자신을 남몰래 사모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차라리 얼굴을 보이고 이름을 밝혀주었으면 했지만, 보름 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고 말 한마디 걸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얼굴을 보이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언제까지 밤마다 자신을 겁탈하는 행동을 할까.

앞으로 보름 더?

아니면 한 달?

일 년?

상이 끝날 때까지?

상이 끝나고 재산을 물려받게 되면 소예는 이 집을 떠날 작정이었다.

이 집을 떠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새집을 짓고 이 집 사람들과 연을 끊고 살아갈 생각인데, 그때가 되면 더는 누군지 모르는 사내에게 겁탈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그 사내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이곳을 떠나게 되는 것일까.

‘누군지 알려준다고 해도 이제 새삼 원망할 생각도 없는데…….’

사람의 몸이 간사한 것이라, 소예는 밤마다 저를 범하는 사내에게 몸정이 들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어떤 사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내에게 다리가 벌려진 채로 꿰뚫릴 때마다 그 짓에 길들여진 제 몸이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보름 동안 매일 밤마다 그 사내의 아래에 깔렸다.

처음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녀의 몸은 쉽게 길들여졌다.

[너는 참 음란하게 생겼구나.]

소예를 이 집으로 데려온 서권주의 둘째 아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었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일부러 사내의 음욕을 부추기는 것이냐?]

그럴 리가 없다.

소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부러 사내에게 꼬리를 친 적이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스무 살이 되는 지금까지 사내들에게 유독 낭패를 당할 뻔한 적이 많았다.

소예는 또래의 처녀들보다 가슴과 엉덩이가 컸다.

가슴과 엉덩이는 크지만 허리는 잘록하고 얼굴은 주먹만 하게 작아서 걸을 때마다 의도하지 않게 엉덩이와 가슴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것을 보며 사내들은 그녀가 일부러 유혹을 하느라 엉덩이를 흔들었다고 자주 말하곤 했었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을 때면 뒤로 다가와 범하려는 사내들도 있었다.

소예는 수십 번이나 겁탈을 당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엉덩이를 흔들며 눈웃음을 살살 치는 것이 먹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뭐겠어.]

[누가 먼저 먹을지 모르겠지만 다리를 벌리면 꿀물이 줄줄 쏟아질 거야.]

[뒤에서 박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겠지.]

질 나쁜 사내들이 저를 두고 일부러 들으라는 듯 던지는 희롱 가득한 소리도 항상 들었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빨래터에서 빨래를 할 때마다, 그리고 부모님이 집을 비운 날이면 문고리를 꽉 잡고 잠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가장 무서웠던 때는 부모님이 집을 비운 날, 자꾸만 밖에서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문고리를 꽉 쥐고 비명을 질러대도 외딴 곳에 있는 집이라 도와주러 올 사람 하나 없어서 더 무서웠었다.

그때 문을 부술 것처럼 흔들어대던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조용해졌지만 새벽이 오고 아침이 밝은 후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문을 열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중에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문밖에서 핏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의 핏자국이었는지, 왜 핏자국이 거기 떨어져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런 일은 이후에도 무수히 많았다.

그때마다 사내들의 핑계는 ‘네가 먼저 음란한 몸을 가지고 유혹을 해댔다’였다.

그때는 그것이 지긋지긋하게 듣기 싫은 구구절절한 변명처럼 들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쩌면 자신이 정말 ‘음란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소예도 하고 있다.

음란한 몸.

대체 어떤 몸이 음란한 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내에게 눈이 가려진 채로 범해지며 쾌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음란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음란하지 않다면 그런 짓을 당하며 기쁨을 느끼고, 오늘 밤 해가 지면 그 사내가 다시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것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음란해서, 그런 것을 마음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목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어머님, 소자 정무이옵니다.”

밖에서 정중하게 고하는 목소리에 소예가 퍼뜩 생각에서 깨어났다.

서정무. 서권주의 첫째 아들이다.

나이는 서른다섯 살에 본부인과 두 명의 첩을 두고 있고, 어린 자식이 네 명인 사내다.

소예보다 열다섯 살이나 나이가 많은 사내로, 소예가 이 집에 온 그날부터 마땅찮은 눈으로 소예를 봐왔던 사내였었다.

서정무가 자신을 처음부터 눈엣가시로 여기고,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소예도 안다.

그런 것이 서권주가 죽은 후에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려보곤 했었다.

그에게 돌아갈 오 할의 재산을 빼앗은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니 자신이 미울 만도 할 것이다.

지금 저를 보고자 하는 것도 분명 좋은 이유는 아닐 터였다.

“들어오십시오.”

법도대로라면 자신은 이 집안의 안주인이자 죽은 서권주의 정식 아내로, 서정무에게는 계모가 된다.

하대를 한다 하더라도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내에게 하대가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 * *

“논 삼백 마지기와 비단 이백 필, 말 스무 마리와 소 서른 마리, 당나귀 오십 마리와 노새 마흔 마리, 그리고 돼지 백 마리를 드리겠습니다.”

소예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 서정무는 다짜고짜 그렇게 본론을 꺼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면 평생 밥 굶으실 걱정 없을 겁니다. 하인들도 몇 명 두고, 평생 마님 소리를 들으며 살기에 넉넉한 양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저더러, 그걸 가지고 떠나라는 겁니까?”

서정무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소예가 바로 알아차렸다.

오 할의 재산 따위를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받고 이 집을 떠나라는 것이다.

“저는 이 집에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

서정무가 코웃음을 쳤다.

“무슨 자격? 경고하는데, 주는 것을 받고 이 집을 나가지 않으면 창피한 꼴을 당하고 쫓겨나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마친 서정무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 소예는 잠시 동안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창피한 꼴을 당하고……. 설마 저자가 시킨 것일까?’

이유 없이 그저 ‘창피한 꼴’ 운운하며 협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내쫓을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논 삼백 마지기와 비단 이백 필… 그리고 가축들이라면…….’

서정무의 말대로 그 정도라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재산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이 집에서 나가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소예가 주먹을 꽉 쥐었다.

밤마다 저를 범하는 사내가 정말 서정무의 사주를 받은 자일까?

만약 서정무의 제안을 거절하면 오늘 밤에라도 그 사내와 자신이 같이 있는 꼴을 다른 이들에게 들통 나게 만들려는 것일까?

‘아직 몰라. 하지만…….’

소예의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이 집에 내 편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면…….’

딱 한 명.

세 아들 중에서 딱 한 명만 자신의 편이라면, 그러면 타협을 하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내 편을 만들어야 해…….’

하지만 누굴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소예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둘째 아들 서정주였다.

첫째인 서정무는 자신을 내쫓기로 이미 작정을 했다.

그러나 둘째 서정주는 자신을 이 집에 데려온 장본인이었다.

자신을 욕심내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줄지도 모른다.

셋째인 서정우는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다.

몸이 약해서 벼슬도 버리고 내려와 방 안에서 두문불출한다고 들었다.

서권주가 죽고 장례를 치를 때도 셋째 서정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심하게 고뿔이 들어 열이 오르내리는 바람에 아비의 장례식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그런 병약한 사내와는 중요한 일을 도모할 수가 없다.

그렇게 둘째 서정주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자고 소예가 결론을 내렸다.

“밖에 누가 있습니까?”

소예가 방문을 열며 주위에 있는 이를 불렀다.

소예는 아직 이 저택의 구조를 잘 모른다.

서정주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누가…….”

그때 발소리와 함께 집안 하인 한 명이 걸어왔다.

허리를 숙인 채로 성큼성큼 걸어온 하인이 소예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부르셨습니까, 마님.”

“둘째 도련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있나요?”

아직은 하인들에게 마음대로 하대가 되지 않는다.

집안의 하인들에게는 존대가 아니라 하대를 해야 하지만 소예는 그것이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았다.

“둘째 도련님을 모셔올까요, 마님?”

“아니요,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면 내가…….”

“소인이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인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소예가 조용히 뒤따라갔다.

그녀가 입은 하얀 소복이 차가운 겨울 날씨와 맞물려 무척이나 춥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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