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봉산 황주 땅에 한 거부가 살았다.
서권주라는 이름의 거부는 막대한 부를 쌓은 인물로 유명했는데 그는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당대 최고의 부자의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아들만 다섯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재산을 위의 형들이 전부 물려받고 무일푼으로 집에서 나와 장사꾼의 심부름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그랬던 그가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라는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스무 해 동안 지루한 전쟁이 이어졌고, 눈치가 빨랐던 서권주는 그 전쟁을 기회로 삼았다.
처음에 서권주는 한바탕 전투가 끝난 곳으로 수레를 가지고 가서 죽은 자들의 갑옷과 칼, 활, 창 같은 것들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씻어 다시 장사꾼들에게 값을 받고 넘겼다.
전쟁은 길게 이어졌고, 물자는 항상 부족했다.
처음에는 혼자 그 일을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일꾼들까지 고용해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의 몸에서 갑옷을 벗겨냈다.
그리고 장사꾼들에게 그것을 파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황제의 군대에 직접 그것을 팔아넘겼다.
그렇게 몇 년을 갑옷과 무기를 파는 일을 한 끝에 그는 재산을 꽤 쌓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장사 수완을 타고난 서권주는 돈이 되는 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냈고, 그것으로 재산을 불려갔다.
그렇게 십 년, 이십 년이 지나자 그의 이름이 나라 전체에 알려졌다.
그는 장사 수완이 좋다는 소문과 더불어 황제보다 더한 부를 쌓았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가진 재산과 땅만 있어도 황제가 부럽지 않고, 오히려 황제가 서권주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고까지 했으니 이 사내가 쌓은 부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서권주는 세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그 세 명의 부인에게서 각각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어미가 각각 다른 세 명의 자식들은 다들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서권주가 그의 재산을 단 한 명의 자식에게만 물려주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서권주의 장남은 아비의 수완을 이어받아 장사에 재능을 보인 덕에 아비를 대신해서 중간 상인들을 만나 거래를 하는 일을 주로 했다.
서권주의 차남은 아비 대신 집안 재산을 관리했다.
집안의 창고에 있는 것들, 그리고 서권주가 사들인 넓고 방대한 땅과 그 땅에서 거둬들이는 소출까지 전부 차남이 관리했다.
마지막 삼남은 서권주의 세 아들 중에서 유일하게 과거를 치르고 벼슬에 올랐으나 몸이 약한 탓에 요양을 하기 위해 지금 본가에 내려와 있었다.
죽은 어미를 닮아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던 삼남은 바깥출입을 거의하지 않고 매년 봄과 겨울에는 기침을 달고 살아 다들 삼남이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서권주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장남이나 차남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변수가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소예였다.
소예는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작년과 올해 두 해를 이어 찾아든 가뭄에 논밭의 작물이 전부 말라 죽은 탓에 소작료를 내지 못한 아비의 빚 대신 끌려왔다.
원래는 하녀로 일하기 위해 끌려왔지만 소예의 미모를 눈여겨본 차남이 그녀를 눈독 들여 제 여자로 삼으려던 것을 그 아비인 서권주가 보고는 제 네 번째 부인으로 들어앉힌 것이다.
세 번째 부인이 죽은 후에 다른 부인을 얻지 않았던 서권주는 어리고 고운 소예를 보자마자 자신의 네 번째 부인으로 들어앉혔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 소예는 봉산 황주 땅에서 제일가는 부자 서권주의 네 번째 부인이 되었다.
소예의 나이, 그때 겨우 스무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