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나의 공격이 통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피하고, 베고, 찢고, 자른다.
푸화아악!
나를 노리던 대가리에 칼날을 박아넣으며 비튼다.
동시에 목 잘린 장어처럼 날뛰는 대가리를 바닥에 처박는다.
철푸덕!
피가 철철 흐르는 단면을 늪지대에 처박는다.
히드라는 급히 대가리를 들지만, 상처에 진흙이 묻어나온다.
원래 히드라의 머리는 재생되는 걸로 알고 있다.
당장 내가 상대하고 있는 이 히드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잘라냈던 대가리가 어느덧 다시 복구되었다.
재생 시간은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더디게나마 머리가 부활해서 나를 노리고 있다.
키샤아아앗!!
대가리들이 동시에 내 사지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아직 잘리지 않은 머리도, 잘렸다가 복구된 머리도, 자르지는 못했지만 크게 상처를 입은 머리도 동시에 나를 노린다.
"어딜!"
나는 히드라가 나를 노리기 전에 앞으로 굴러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칼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놈은 그래도 학습 능력이 있는 건지 공격을 가볍게 피했고, 나의 칼날은 허공을 갈랐다.
뭔가 참격이라도 날리는 게 있었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검은 날카롭기만 할 뿐 그런 특별한 힘은 없다.
그저 날카롭기만 할 뿐.
'딜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
나는 앞으로 뛰어올랐다.
히드라의 아홉 개 머리가 달린 몸통을 향해 달려간 다음, 놈의 배에 칼을 찔러넣었다.
키이이이익!!
여태까지 목이 잘리다가 처음으로 몸통이 공격당하자, 놈은 기겁을 하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오직 머리 말고는 공격할 수단이 없기에, 꼬리를 휘두르기에는 내가 앞에 있어 아가리만 내밀 뿐이었다.
"흐흐흐...!"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하나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쏘아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공격하지 않은 채 관망하던 머리가 몸통이 공격당하자마자 바로 반응한다?
"네가 본체구나."
서걱!
나는 놈의 머리 옆으로 몸을 비틀어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본체는 좀 더 질긴 듯, 한 번에 전부 베이지 않고 턱 아래에 칼날이 스치듯 지나갔다.
키이이익!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진다.
죽어가는 비명이 늪 전체에 울려 퍼진다.
안에 있을 암컷 히드라가 괜히 수컷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마음이 약해질까, 그래서 오히려 나를 공격할까 살짝 걱정되었다.
"우오오오오오ㅡㅡㅡㅡㅡㅡㅡ!!"
아홉 개의 머리에서 나오는 비명보다 더 큰 포효를 내지르며, 놈의 머리가 돋아나오는 뿌리를 향해 검을 내지른다.
푹, 푸욱, 푹!
몸통 위로 뛰어올라, 목을 자르는 게 아니라 몸통에서 직접 목 부분을 도려내고 뽑아낸다.
쿵!
메인인 머리가 아닌 다른 머리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줄기가 돋아난 고구마의 싹을 칼로 도려내듯 잘라내자, 놈은 자기 머리 하나가 통째로 바닥에 떨어진 건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 당황하기 시작했다.
키야아앙!!
"크윽?!"
몸통에 올라탔기 때문일까.
옆구리에 뭔가 망치 같은 것이 휘둘러지는 충격과 함께 나는 놈에게서 날아갔다.
허공을 날아가며,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검이 내 몸을 찌르지 않도록 팔을 위로 뻗는다.
철푸덕!
"크하악...!"
늪에 처박혔다.
도대체 뭐로 나를 때렸나 싶더니, 뒤로 뻗어나와있던 꼬리 끝에 머리가 달려있었다.
"젠장,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꼬리마저도 머리로 바꾼 채 채찍처럼 휘두르다니.
몸통 위에 올라타서 머리의 뿌리를 도려내려고 했더니, 바로 대처하는 게 확실히 기간테스답다면 답다.
"근데 어쩌나. 흐흐. 이제는 내가 확실히 우위인 것 같은데."
운명일까.
마침, 내 옆에는 네메아의 사자 가죽이 떨어져 있었다.
"정비하려고? 그게 네 실수다."
히드라가 멀리서 체력을 회복하며 머리들을 부활시키는 사이, 나는 네메아의 가죽을 다시 전신에 둘렀다.
촤륵.
가죽 전체를 뒤집어쓰며, 동시에 모자처럼 쓰고 있던 사자의 머리 부분을 앞으로 크게 당겼다.
아래에서 앞으로 목 부분을 당기며, 나는 사자탈의 목 아래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건 몰랐지. 흐흐."
사자의 아래턱을 당기며 나는 얼굴을 꺼냈다.
놈은 모르겠지만, 안쪽에 투구처럼 쓸 수 있는 머리 받침을 달아뒀다.
평소에는 짐승 재상과 같이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지만, 머리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사자 투구로 써먹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히, 머리 부분 또한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를 부활시킬 게 아니라, 와서 목에 이빨을 박아넣었어야지!"
나는 앞으로 달렸다.
아직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 중 고작 다섯 개만 재생시켰을 뿐이고, 내가 가죽을 뒤집어쓰자 멀리서 독액만 뿌려댈 뿐이었다.
촤르륵!
사자 가죽의 겉에 독액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미 독액이 사자 가죽에 영향을 직접 주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만큼, 나는 독액을 최소한으로 맞으며 계속 앞으로 달렸다.
캬아아악!
대가리 하나가 나를 향해 다시 아가리를 뻗는다.
나는 어깨를 비틀었고, 놈의 이빨이 내 어깨를 스쳤다.
끼이이익!!
칼날이 내 피부 위를 쓸고 지나가듯 화끈거린다.
네메아의 가죽이 몸을 보호하고 있지만, 이빨이 가죽에 눌려 피부가 쓸린다.
하지만 살을 내어주고, 나는 놈의 대가리를 취한다.
푸화아아악!!
아가리 옆으로 역수로 밀어 넣은 검을 그대로 앞으로 당긴다.
앞으로 쭉 뻗어있던 모가지를 옆에서 잘라 펼치듯, 검을 계속 앞으로 밀며 달린다.
검붉은 피가 사방에 튀고, 다른 머리들은 옆이 반으로 갈라지며 포가 떠지듯 펼쳐지는 머리에 기겁하며 공격을 순간 멈췄다.
"어이."
푸화악!
뿌리까지 달려 몸통 위로 뛰어올라, 나는 두 손으로 검을 역수로 움켜쥐고 머리를 몸통에서 도려냈다.
"대가리 아홉 개 다 뽑아내면, 그때도 부활할 수 있냐?"
만약 그때도 부활한다면, 부활하는 곳마다 계속 살점을 도려내면 된다.
콰득!!
나를 제압하려는 듯, 다른 대가리 하나가 내 허벅지를 물었다.
그러나 이빨은 내 허벅지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너는 독이 통하지 않은 순간부터, 끝난 거다."
푹, 푹푹, 푹푹푹.
또다른 머리를 도려낸다.
대가리들이 목을 꺾으며 나를 물어뜯으려, 아니 몸통에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승기를 잡은 이상, 놓칠 수는 없는 법.
푹, 푹푹, 푹푹푹!!
재생속도보다 더 빨리, 모가지를 도려낸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부활하거나, 재생하거나, 그런 놈이 있으면 죽이는 방법을.
-죽을 때까지 죽이면 그만이다.
불로 태워죽이든.
아니면 새로운 머리가 돋아날 때마다 머리를 도려내든.
내가 죽기 전에, 히드라를 먼저 죽이면 그만이다.
크르르...!
목이 이빨에 눌린다.
히드라의 머리가 내 머리를 사자탈과 함께 통째로 씹어댄다.
만약 사자 가죽이 뚫린다면 이대로 히드라에게 목이 뜯겨서 잡아먹히게 되겠지만....
"네 이빨이 더 강할까, 아니면 내 힘이 더 강할까?"
나조차도 뜯어내는데 개고생했던 네메아의 사자다.
고작 독 하나만 믿고 모든 생물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던 놈이, 덩치 좀 크고 이빨 좀 강하다고 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디, 끝까지 부활해봐."
부활하기 싫을 때까지, 죽고 죽여줄 테니.
* * *
미친놈이다.
라고, 히드라는 생각했다.
체구로 이기려고 했더니, 작디작은 인간 주제에 체급에서 오히려 히드라 본인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화가 난다.
자신의 독으로는 모두 다 녹여 내리고 죽게 할 수 있는데, 그 극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그리고 이 수컷의 몸에 가득한 자기 암컷의 냄새가 가득한 것에, 이 수컷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 한들, 독액을 쏟아부어도 죽지 않는 자를 상대로 분노로 죽일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빨로 인간을 물어뜯지만, 인간은 도저히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인간인가.
사실은 짐승이 아닐까.
인간의 탈을 쓴 기간테스가 혹시 배신을 하고 기간테스를 죽이러 온 게 아닐까.
기간테스는 인간을 죽여야 한다.
기간테스가 인간에게 복종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저 암컷은, 지금 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건가.
왜 혼자 땅에 처박힌 채, 밖으로 나와서 자신과 함께 싸우지 않는 건가.
히드라라는 종은 수컷과 암컷, 자신과 여자 둘뿐인데.
자신이 죽으면 히드라라는 종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데.
왜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왜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단 말인가.
구구구구.
늪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머리는 이제 두 개 남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래.
부활할 때까지 시간만 벌어준다면-
"......."
암컷 히드라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등 뒤로 달린 여덟 개의 머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냥 뱀의 꼬리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마치, 히드라의 정체성을 지우듯이.
인간의 모습이 되고자 하는 듯이.
!!
그리고 히드라는 보았다.
인간 수컷이 압도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암컷의 모습을.
완전히 인간 수컷에게 굴복하여, 인간의 것이 되어버린 암컷의 모습을.
히드라는 직감했다.
기간테스이기 이전에.
인간과 괴물이기 이전에.
이 수컷에게, 수컷으로서 패배했다는 것을.
그리고.
푸화아악!
칼날이 모가지의 뿌리를 파고든 순간, 히드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컷으로서, 더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