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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엑스 마키나-207화 (207/235)

테베를 떠난 지도 약 세 달.

이 세 달 동안 고작 네메아의 사자 하나를 처리했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지만, 아는 네메아의 사자를 들고 테베에 들어왔다.

"허어억!!"

그리고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 세 달 동안 혼자서 개고생을 하면서 네메아까지 가서 사자를 죽이고 테베로 돌아오는 과정은 분명 힘들었지만, 내가 죽인 사자를 보며 놀라는 이들을 볼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어떻게 저런 큰 사자를.... 내가 잘못보고 있는 건가?"

"저건 설마 네메아의 그 괴물...?! 설마, 진짜로 쓰러뜨린 건가?"

"말도 안 돼. 어떻게 죽인 거지? 믿기지 않아...!"

내가 어깨에 짊어진 사자의 머리를 보며 놀라고, 등 뒤로 끌고 있는 수레 위에 올려진 사자의 뼈를 보며 놀라고, 내가 몸에 두르고 있는 사자의 가죽옷을 보고 또 놀란다.

아무래도 살덩어리나 내장같은 불필요한 부위는 저기 좆간들이 해결해준 만큼 굳이 들고 올 필요는 없었다.

사자의 머리와 가죽, 그리고 그 크기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뼈만으로도 나의 전공을 과시하기에는 충분했다.

"문을 여시오.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린 사냥꾼, 헤라클레스가 돌아왔소."

"허, 허어...."

카드모스 대제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도 나를 보고는 기함하며 옆으로 비켜선다.

나는 당당히 대제전 회당의 정문으로 들어가, 접수처를 향해 수레를 내려놓았다.

"헤라클레스. A급 괴수,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렸소."

"이, 이게 진짜 네메아의 사자란 말입니까?"

"그렇소. 정 의심되면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보시오. 제우스 신께 맹세코, 일체의 거짓도 없으니."

"허어...!!"

한국에 앰창이 있고, 올림포스에 스틱스 강의 맹세가 있다면, 그리스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제우스 신에게 하는 맹세가 있다.

거짓이라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겠다는 각오를 내비치는 진실의 서약.

"추, 축하드립니다...!"

그 말에 접수원은 허둥지둥하며 급히 벽에 붙어있던 네메아의 사자 퇴치 수배서를 회수했다.

그냥 회수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 높이 올라가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수배서를 회수해야 할 정도의 높이였다.

웅성웅성.

이미 수레에 담긴 사자의 뼈만 보더라도 시선이 끌리는데, 붉은 수배서가 제거되었으니 다들 혀를 내두를 수밖에.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그 네메아의 사자를 물리치다니. 그, 혹시 함께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다면-"

"없소."

"...예?"

"나 혼자 사냥했고, 나 혼자 죽였소."

순간, 대제전 회랑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해한다.

이런 거대한 괴수를 혼자서 잡았다는 건 전혀 믿기지 않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저 거대한 놈이 자기 동료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기 혼자 저걸 사냥했다고 거짓말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나름.

"나의 이름에 있는 그분, 헤라께 내가 홀로 사냥한 사자의 뼈를 바치겠소. 그분께서 내게 영광을 내려주셨으니, 약소하나마 이 뼈를 바치겠소."

파ㅡㅡ앗!

회랑에 붉은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눈을 순간 멀게 할 정도로 붉은 불빛은 거대한 인영을 만들어냈고, 곧 회랑의 가운데 수 m에 이르는 불빛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헤, 헤라 여신이시여!!"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느긋하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고, 어깨에 짊어진 사자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강인한 전사여. 그대의 강함과 진실됨이 나를 감동시켰다. 네메아의 사자를 홀로 물리치다니. 굉장하구나. 나의 도움 없이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싸워 이기다니.]

사실은 아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남편이다.

뭔가 말이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그대의 '진정한 바람'을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아직 부족하다. 네메아의 사자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며, 그대의 위대한 행보의 시작일테니. 그 창대한 끝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마.]

파ㅡ앗.

붉은 빛무리는 사라졌다.

동시에 네메아의 사자가 담겨있던 뼈도 함께 사라졌고, 수레에는 헤라가 주고 떠난 것 같은 막대한 양의 보석이 원석으로 쌓여있었다.

"세, 세상에...! 헤라 여신께서 공물을 가져가시면서, 그 보답을 하시다니!"

"헤라 여신께서 보살피는 전사...! 하지만 헤라 여신께서는 당신께서도 도와주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그럼 진짜로 혼자서 싸워 이겼다는 말인가!"

"굉장하잖아...!"

사실상 상황은 종료.

헤라가 직접 나와서 내가 혼자 싸웠다는 걸 인증해준 만큼, 이제 나를 의심할 자는 없다.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나는 수레에 가득 쌓인 보석의 원석 중 적당히 작은 크기의 보석을 하나 챙겼다.

"헤라 여신께서 주신 것을 나 혼자서 챙길 수는 없지. 다음 괴물을 사냥하러 가는 동안의 여비만 챙기겠소. 대신, 이 나머지는 모두 카드모스 대제전에 '기부'하겠소."

"""!!"""

신이 선물로 준 보석을 기부하겠다?

미친 소리다.

하지만 미친 소리일수록 평범함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간 네메아의 사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보상을, 그리고 다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이 건강할 수 있도록 구휼을, 그리고...."

나는 옆에 술병을 들고 있던 자를 향해 다가간 뒤, 빈 술병을 들고 높이 치켜들었다.

"카드모스 대제전에 참가하는 위대한 전사들을 위하여,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고기와 술을!"

"...오, 서, 설마...!"

"A급 괴수 하나가 쓰러졌으니, 연회를 엽시다!"

나는 수레를 거칠게 한 번 크게 손으로 때렸다.

"헤라 여신께, 이 영광을!!"

"""우오오!!"""

자고로.

공짜 술과 공짜 고기는 못 참는 법.

카드모스 대제전에서 일하는 접수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들을 향해 빈 술병과 원석 덩어리를 들고 미소로 화답했다.

"연회를 마련해줄 카드모스 대제전에도, 영광을!"

짝짝짝짝!!!

그렇게.

예정에는 없지만, 그리스 최고 여신이 내려준 보상과 함께 카드모스 대제전의 연회가 시작되었다.

* * *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테베의 왕, 크레온은 수레에 한가득 쌓이 보석 원석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니까 이게 헤라 여신께서 직접 내려주신 거라고? 네메아의 사자를 사냥한 전사, 헤라클레스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카드모스 대제전에 이 보석을 기부하였고...."

헤라클레스의 요구 사항은 세 가지.

보석 원석은 가공하여 비싸게 판다면 연회를 백날이고 열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양이었다.

"혹시 다른 요구는 없었나? 나중에 찾아와서 사실은 한순간의 실수였으니, 그걸 전부 다 돌려주시오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럴 자는 아닌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도 그럴게, 헤라 여신께서 주신 걸 카드모스 대제전에 기부를 한 걸요."

"허허, 역시 영웅은 다르군. 이런 배포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지금 연회장에 있는가?"

"회랑에 있는 전사들에게 자신이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무용담을 풀고 있습니다."

"어찌 죽였다는가?"

"온갖 방법으로 놈의 가죽을 찢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뜯기지 않아 놈의 목에 올라타서 목을 졸라 죽였다고."

"허...."

네메아의 사자가 어떤 존재인가?

여자를 납치하고, 자신을 사냥하러 온 전사들을 잡아먹던 거대한 사자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털가죽은 그 어떤 강철의 무기도 통하지 않았다고 하는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동굴 안으로 몰아넣은 다음, 숨을 쉬지 못하도록 목을 졸라 죽이다니.

이 위용을 두고 어찌 영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랴!

"선조보다는 못하지만, 확실히 그 위용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대제전의 의장에게 전하라. 빈 창고는 왕성에서 다시 채워줄테니, 영웅과 전사들을 위해 양껏 술과 음식을 제공하라고."

"알겠습니다, 폐하!"

시종이 자리를 떠난 뒤, 크레온 왕은 턱수염을 손으로 쓸며 입맛을 다셨다.

"이 보석이 있으면...."

"아버님?"

"오오, 그래."

크레온 왕은 멀리서 다가온 금발의 여인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나의 딸, 메가라. 이 늦은 밤에 깨어나다니. 누가 너의 밤잠을 설치게 하였느냐?"

"소식을 들었어요. 네메아의 사자가 죽었다고."

"...그래."

어째서일까.

딸, 메가라의 표정은 너무나도 딱딱했다.

"혹시 연회의 소리가 시끄러워서 깨어난 거니?"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져서 그래요. 네메아의 사자가 정말로 죽었는지. 그리고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자가 어떤 존재인지."

"헤라클레스라고 하더구나."

"......!"

메가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레온은 혹시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헤라클레스에게 관심이 있나 싶어 노심초사했고, 메가라는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님?"

"그, 그래."

"정말로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존재라고 한다면, 그보다도 더 강한 괴수를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응?"

"이용하는 거예요. 그 자를."

메가라의 속삭임에 크레온은 귀가 쫑긋 섰다.

"이용한다?"

"예. 테베 근처에 있는 괴수들. 네메아의 사자보다 더 위협적이거나, 더 흉악한 괴수들. 그걸 대제전의 사냥감으로 걸죠. 그리고 부추기는 거예요. 그보다 더 강한 괴수를 죽이도록."

"......역시 내 딸이다. 천재로구나. 그런데 그러다가 헤라클레스라는 자가 죽으면?"

"죽으면, 죽는 거죠."

히죽.

"기대되네요.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 * *

그리고.

연회가 지난 뒤.

나는 크레온 왕의 부름을 받아, 새로운 토벌 의뢰서를 건네받았다.

"...히드라?"

레르네 늪에 사는 거대물뱀, 머리 아홉 달린 괴물 '히드라'의 토벌 의뢰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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