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거인사냥꾼 오리온 (7)
* * *
막타라는 건 정말 중요하다.
요즘은 딜 지분에 따라 나오는 아이템의 레어도도 달라지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누가 마격을 꽂아 넣었냐 하는 건 RPG 게임의 전통과도 같은 문제다.
사냥도 그렇다.
아무리 여럿이서 몰이사냥을 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사냥하든 결국 마지막에 누가 막타를 쳤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멀리서 화살을 꽂아 넣었든.
가까이 다가가서 목덜미에 칼을 쑤셔 박든.
어떤 방법이든, 마지막에 어떤 공격이 사냥감을 쓰러뜨렸냐 하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저건 내가 잡은 것이오."
나는 아르테미스에게 선포했다.
"나, 오리온이 잡은 것이오."
"내가 먼저 잡았다니까? 저거 봐. 지금 몸통에 꽂힌 내 화살을."
"미간에 꽂힌 내 화살은 보이지 않소? 당연히 살집이 많은 몸통보다 대가리에 꽂히는 화살이 더 치명상이 아니겠소?"
"아, 몰라. 내가 먼저 죽였으니 저건 내 거임."
"아니."
이런 개초딩이 있나.
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려다, 아르테미스의 눈빛을 읽고 바로 아르테미스에게 다가갔다.
"후. 알겠소. 그대가 가지시오."
"...응?"
"어차피 나는 다른 괴물을 죽이면 그만이오. 그대의 화살이 치명상을 입혔다고 하니, 저건 내가 굳이 처리할 필요가 없겠군. 그럼."
"아, 잠깐...!"
아르테미스가 황급히 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는데!"
"뭐 할 이야기 있소?"
"어, 음, 내가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 네가 사냥한 걸 생각해주기로 했거든."
아르테미스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단 언니한테 가서, 누가 더 사냥에 대한 지분이 더 많냐고 따져보는 거야."
"아르테미스 여신의 언니라고 하면 아폴론 여신이 아니오. 아폴론 여신에게 승패를 가려달라고 해봐야 무슨 차이가 있소?"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아니, 그렇기에 나는 아르테미스의 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아폴론 여신이 사냥에 대해 그쪽보다 더 잘 알 것 같지 않은데."
"...킥."
아르테미스는 옅게 웃었다.
"그렇지?"
"그렇소. 대결에 참가자는 두 명이 있는데, 심판이 없으니 어떻게 판정을 내릴 방법이 없군."
아폴론이 피톤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들, 이렇게 현장에서 활로 사냥해서 잡은 괴수에 대한 지분을 판단할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보다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아는 사냥꾼 중에...앗."
아르테미스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니야."
"여자군."
"아니라니까."
"여자지? 그것도 처녀인 미녀가 틀림없어."
"......."
아르테미스는 나를 잠시 째려봤다.
그러더니 털레털레 걸어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인간 여자인데, 혹시 따먹을 건 아니죠?"
역시나.
아르테미스는 내가 아제우스라는 걸 알고 있다.
악타이온 이후로 만들어낸 아제우스와 직접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역시 아폴론이나 에오스가 나를 바로 눈치챈 것처럼 아르테미스는 나를 바로 알아챘다.
근데 그건 그거고.
"아르테미스 여신이여. 내가 인간에 미녀에 처녀면 무조건 따먹으려고 하는 그런 파렴치한 강간마라고 생각하시오?"
"아니에요?"
"틀렸소."
그건 강간마 올리브남 제우스의 이야기.
"나는 강간하지 않소. 그저 한 명의 남자 대 여자로서 섹스 한 번 어떠냐고 제안을 할 뿐이지."
"......."
아르테미스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숨길 이야기도 아니고, 원래 그게 아제우스가 만들어진 이유기도 했다.
"왜. 내가 인간이랑 섹스하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그냥 원래 몸 끌고 와서 '내가 너를 안으러 왔다'고 말하면 될 일을...."
"그러면 재미가 없지."
클럽에서 입을 털어서 여자 꼬시듯.
헌팅포차에서 허세를 부리며 여자랑 따로 자리를 마련하듯.
제주도에 친구와 둘이서 여행을 갔다가 여대생 두 명이 놀러 온 커플과 카풀로 함께 이동하며 어디 펜션으로 향하듯.
"인간 여자들이 튕기는 맛이 있어서."
"...여신들은 헤프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나는 아르테미스의 이마를 튕기려고 했다가 간신히 손을 내렸다.
제우스가 때리는 건 몰라도, 아제우스는 안 된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신성 모독이 되어버리니까.
"어떤 여신이든 제우스가 와서 '야, 벌려'라고 말하면 벌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아."
아르테미스는 깨달았다.
"제우스 신께서 섹스하자고 말하는 건...명령이 되니까?"
"그렇소. 모든 여신이 제우스가 섹스하자고 하면 바로 옷을 벗고 제우스를 향해 두 팔을 벌릴 것이오. 설령 가이아마저도."
아주 좋다고 다리까지 벌리겠지.
운명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일단 섹스 한 번 하자고 하면, 바로 좋다고 다리를 벌릴 것이다.
어쩌면 '박아줄 테니까 운명을 집어치워라.'라고 말한다면 알몸도게자까지 하면서 자지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이아에게 박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먼저 운명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크흠. 아무튼...뭐, 다음에 만났을 때는"
"아니지. 다음에 만났을 때? 그런 거 없어."
히죽.
아르테미스는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놓치는 거, 본 적 있어?"
"...내가 사냥감인가?"
"곰이잖아."
"곰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인데."
"그럼 아제우스인가?"
"......."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아르테미스에게 사냥감이었고, 나는 아르테미스가 붙잡은 팔을 그대로 당기며 아르테미스를 내 어깨 위에 올렸다.
"와."
"꽉 붙잡도록. 일단 아폴론 신전으로 가서 신께 보고를 올려야 하니."
"잠깐만. 이럴 거면...에잇."
아르테미스는 순식간에 한쪽 다리를 들었다가 목마 자세로 바꿨다.
그녀는 허벅지로 내 목을 꽉 움켜쥐었고, 내 머리칼을 손으로 붙잡고 발로 앞을 가리켰다.
"출발!"
"......."
나는 아르테미스의 발목을 붙잡으며 그녀를 고정했다.
'제우스로 해준 적도 없는 목마를 이걸로 해줄 줄은.'
이게 딸을 키우는
"...흐흥."
찔컥.
뭔가.
목뒤에서 습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아무것도 아니오."
찔컥.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흔들리고 뭔가 끈적하고 포근한 감각이 목덜미에 닿는 건 기분 탓일까.
'딸내미 키우는 느낌은 개뿔.'
목마를 타고 남의 목뒤에서 딸치는 딸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밤이라서 망정이지.
"에휴."
"흐흥."
나는 아르테미스를 잡고 델포이 신전으로 향했다.
* * *
델포이 신전에 도착한 뒤.
"어머나. 이상한 애가 올라타 있네?"
"이상한 애라니? 올림포스 12신에 대한 모독이다."
"평소랑 다른 모습이라서 놀랐어. 왜 그러고 있니? 그거, 내 건데."
"내 사냥감인데?"
나는 도착하자마자 나를 두고 싸우는 에오스와 아르테미스에 그만 넋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이야, 재미있네."
아폴론은 그저 과일만 씹어 삼키며 다프네의 허벅지에 누워 구경만 할 뿐.
"어떻게 좀 해주시오."
"내가 뭘?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런 건 그리스 최고 주신인 제우스 님이 직접 오지 않는 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야."
지금 나보고 직접 와서 해결하라고 하는 걸까.
"치정 싸움은 아폴론 신전에서 해결해주지 못해. 알아서 해결하도록."
"어떻게?"
"제우스 신이 강림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빌거나, 아니면 직접 해결하거나."
아폴론은 완전히 방임 상태에 돌입했다.
자신의 신전에서 저들이 무슨 짓을 벌이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남편 있는 여신께서 왜 자꾸 질척거리시는 걸까?"
"그러는 처녀신이야말로 왜 엉기고 있는 건데?"
"처녀신이라도 섹스는 할 수 있거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이봐, 여동생 관리 똑바로 안 해?"
"처녀신도 섹스를 할 수 있죠. 뭘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십니까?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마시고 먹으면서 느긋하게 누워있는 게 섹스지. 흐흥."
이게 태양의 신, 달의 신, 그리고 새벽의 신이 하는 대화?
"아니거든? 진짜로 섹스했거든? 그렇지?"
"그런 말을 하면서 나한테 달라붙으면 내가 뭐라고 하겠소."
"악타...."
"그만."
나는 바로 아르테미스의 입을 막았다.
"...흐응.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아폴론이 귀를 쫑긋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아르테미스랑 섹스를 했어? 스틱스강의 맹세를 피하는 방법으로 뭔가 섹스를 한 건가?"
"......."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다프네를 상대로 손가락 넣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거보다 더한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거든."
".......하아."
협박당하고 있다.
사건을 저지른 아르테미스는 나를 향해 미안한 얼굴로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이렇게?"
"아폴론 여신의 신탁대로, 제우스 신이 직접 와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대화가 끊이질 않겠군."
나는 아르테미스와 에오스의 허리를 단숨에 낚아챘다.
"어, 어어?!"
"처녀신과 섹스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아폴론 여신이시여. 혹시 아주 조용한 방 하나 빌릴 수 있나?"
"내 신전에서 내가 결계를 치면 그게 조용한 방이 되는 거지."
"그럼 끝났군."
사라락.
덩굴줄기가 아래에서 뻗어 나온다.
아폴론이 만들어낸 덩굴 침대의 위로 새의 깃털이 살포시 깔리고, 넓은 천이 펼쳐지며 덩굴줄기 침대를 덮는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떡을 치고도 남지."
나는 에오스와 아르테미스를 침대에 집어 던졌다.
"제우스 신이 직접 내려온다면 분명 누군가 눈치를 채겠지. 헤라 여신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여신들이. 그러면 시끄러워지니까...."
지금은 아제우스의 턴.
"내가 직접 보여주겠어."
그리스 최고의 거인 사냥꾼이 가진 자지컬을.
"여신조차도 떨어뜨리는 사냥 솜씨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