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5 반격의 서막 (3)
저벅, 저벅.
앞으로 걸어간다.
티폰은 나를 향해 땅에서 뻗은 식물 줄기로 나를 묶으려고 했다.
파지지직.
사뿐히 즈려밟으며 줄기를 전기로 지졌다. 전격을 거꾸로 줄기를 타고 흐르게 만들려고 했으나, 티폰은 귀신같이 줄기를 끊어내고 앞으로 달려왔다.
"어딜."
서걱!
나는 스퀴테를 휘둘렀다.
과거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랐던 때처럼, 나는 단번에 스퀴테를 휘둘러 티폰의 남은 뿔을 잘라냈다.
"아…?"
이전에는 아스트라페로 휘둘러도 부러지지 않던 뿔이었다.
이전에는 스퀴테로 휘둘러도 잘리지 않던 뿔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쉽게 잘린 이유는 한 가지.
"봐주니까 우습지? 썅년이."
지금까지 존나게 봐준 걸 생각하지 않고 안일하게 덤빈 결과가 이것이다.
"눈 깔아."
"크으윽!!"
나는 티폰의 목을 움켜쥐었다.
괴로워하는 얼굴에서 아말테아의 모습이 떠올라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지만….
"고인능욕 1스택 추가. 개같은 년."
나는 티폰의 얼굴을 붙잡고 전격을 지졌다. 티폰의 얼굴이 순식간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내가 지금까지 여자랑 싸우면서 최대한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려고 했지, 이렇게 여자를 상대로 남자 다루듯 싸운 적은 없었다."
파지지직!
"너는 여자가 아니다. 괴물이다. 내가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아냐?"
퍽.
"존나 팬다."
나는 티폰의 아랫배를 주먹으로 강하게 한 번 쳤다.
"죽을 때까지."
얼굴은 여전히 손으로 붙잡은 채, 그녀의 복부를 향해 전격을 담은 주먹을 휘둘렀다.
파스스스.
주먹으로 치자마자 바로 피부가 떨어져나온다. 티폰의 몸은 살색의 피부 아래에, 가뭄으로 메말라비틀어진 땅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미라처럼.
"괴물들은 말이야, 말을 해서는 통하지 않아."
"그, 그만…!"
"왜? 아까까지는 나를 상대로 여유롭게 상대하겠다며?"
"내, 내 얼굴이…!!"
"뭐."
나는 티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전격으로 튀겨진 그녀의 몸은 서서히 피부가 떨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좆같은 꽃뱀 새끼가."
그래.
이것이 이 여자의 실체다.
말 그대로 꽃과도 같은 무늬의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뱀 인간이 티폰의 실체다.
"보지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년."
"나, 나를 자꾸 그렇게 모욕하지마!"
"모욕?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나는 티폰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티폰의 얼굴이 땅에 처박혀 좌우로 흔들렸고, 나는 흔들리지 않게 땅에 떨어진 뿔을 잡았다.
콰득!
"캬아아악!!"
"왜 그래? 고작 척추에 뿔이 박힌 것 가지고."
나는 티폰의 뿔을 척추에 박아넣었다.
마치 못이 비스듬히 삐져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교정해주지 않으면 안 될 일.
"플레이야스를 만들 거면 좀 더 정교하게 만들었어야지."
"그, 그런 거 아니야! 이건 아말테아와 네 사랑, 이오의 시신을 이용해서…!"
"시신이든 말든."
파지지직!
"그 여자들은 내 마음속에 묻었다."
나는 척추에 박아넣은 뿔을 발로 밟아 비틀었다. 척추뼈 사이로 뿔이 좀 더 안으로 비틀려들어갔고, 나는 계속 발을 좌우로 문지르듯 밟았다.
"아말테아의 시체라고? 이오의 시체라고? 그걸로 내가 동요를 하기는 했지. 그런데 말이야. 생각을 달리했어."
나는 손을 옆으로 뻗어 아스트라페를 소환했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의 시체를 가지고 좆같은 짓을 저지른 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개빡치거든?"
쾅!
"아아악!!"
"한 대."
쾅, 쾅!!
"두 대."
"자, 잠깐…!!"
"뭘 잠깐이야. 즐겨. 어차피 너 지금 의식 밖으로 빼내지도 못해."
뿔이 잘린 순간, 이미 티폰의 몸속에는 가이아의 영혼이 '갇혔다'.
지금쯤 가이아의 육신은 남은 영혼의 조각을 가지고 본신이 돌아오기만을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티폰을 죽여도 가이아는 분명 자신의 원래 육신으로 돌아갈 터.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아닌 땅이 이 땅에 남아있는 한, 대지가 존재하는 한 가이아를 완전히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죽을 때까지 괴롭게 만들 수는 있다.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영혼에 새겨주마. 척추뼈를 마디마다 이 뿔로 끊어주마."
"그만-"
깡!
"너, 이, 이건 그 아이들의 시신이야!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그걸 함부로 꺼내서 들고온 년이 누군데 그래?"
깡, 깡.
"씨발, 내가 직접 부관참시를 하게 만들어? 내가 사랑했던 여자의 시신마저도 내 손으로 떠나보내게 만들어? 이 개자식!"
쿵!
나는 티폰의 대가리를 한 번 더 밟았다.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손에서 번개의 창을 만든 다음, 양 어깨에 꽂아버렸다.
콰득!
"이제 좀 괜찮네."
단순히 고개를 드는 건 힘들 것이다. 번개는 어깨뼈를 관통하여 땅에 꽂혔고, 티폰이 올림포스의 땅 지면을 이용해 가이아의 육신으로 되돌아가는 걸 전류를 튀겨 방해했다.
"너, 너…! 아말테아와 이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아."
나는 다음 척추뼈 마디를 향해 뿔의 끝을 겨눴다.
"미안."
나, 제우스.
아무리 막나가기로 마음먹었어도 사과는 하는 남자다.
"너희들의 시체를 훼손해서 미안하다. 나중에 영혼을 위로해주도록 하지."
"제, 제우스!!!"
"그래. 내가 제우스다."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나는 스퀴테를 높이 치켜들었다.
"죽을 때까지 죽여주지, 가이아."
서걱!
나는 티폰의 발가락을 잘랐다.
전력으로 휘둘러 정확히 하나의 발가락을 잘랐고, 티폰은 땅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아악!!"
"벌써 그러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시체조차 남지 않게, 모조리 잘라버릴 것이다.
"얇게 저며주마."
마치 횟감을 만들 듯.
나는 티폰을, 아말테아와 이오의 시신을, 가이아가 만든 플레이야스를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썰기 시작했다.
"이, 자, 잔인한…!"
"잔인? 하, 누가 할 소리."
서걱, 서걱.
자른 다음, 나는 바로 전격을 뿌려 단면을 지졌다.
"직접 낳은 아들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그 다음 낳은 아들을 시켜 자지를 자르게 한 잔인한 여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 나는 너를 아기 때 구한 존재다!!"
"아, 그건 고맙다."
가이아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기야 했다.
"그래서 크로노스 족쳐줬잖아. 그걸로 된 거 아니냐."
콰득.
"왜 자꾸 우리 땅을 괴롭히는 건데. 다른 신들처럼 조용히 닥치고 있든가, 아니면 올림포스의 일원이 되든가. 같잖은 예언으로 신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괴물을 만들어 세상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게 네 일이냐? 응?"
"제, 제우스여…!"
우둑, 우두둑.
티폰은 스스로의 몸이 찢기면서도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등에 박아넣은 번개의 창에 의해 그녀의 팔은 반으로 갈라지며 너덜너덜해졌다.
"이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제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다오…!"
"내 눈이 뭐."
"웃어다오, 유피테르…!"
가이아는 내게 뭔가를 격렬히 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는 유피테르가 아니다.
"그 이름 함부로 부르지마라. 그 이름은 메티스 거다. 네가 멋대로 운명이니 뭐니 지껄여서 스스로 영면에 빠진 메티스에게만 허락된 이름이다."
메티스.
아말테아.
나를 유피테르로 알고 있던 둘은 이미 죽었다.
메티스는 몰라도, 아말테아가 시신으로 내 앞에 나타남으로써 유피테르는 죽어버렸다.
"언제든지 괴물을 보내라. 티폰같은 걸 얼마든지 보내도 좋다.
단, 그 때도 이렇게 죽여주마. 가이아, 세상 모두가 너를 대지모신이라고 받들어도, 나만큼은 너를 이렇게 부를 것이다."
나는 스퀴테의 낫을 티폰의 목을 향해 겨눴다.
"뒤져, 씨발년아."
서걱.
* * *
"......."
화르륵.
나는 올림포스의 화로에서 직접 불꽃을 가져와 티폰이었던 것의 위에 던졌다.
1cm 간격으로 얇게 잘린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올림포스의 불꽃에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두손을 모아 그들의 넋을 기렸다.
아말테아를.
이오를.
그리고, 유피테르를.
"이별이다."
티폰이라는 생명체로 새롭게 태어나 가이아의 노예로 부림당한 존재를 떠나보냈다.
"...너무 거칠었나?"
유피테르를 버리기로 했지만.
여자를 향해 상스러운 말을 마구 내뱉고 폭력을 행사하여 실체를 드러내게 하기도 했지만.
티폰을 까발리는 과정은 너무 폭력적이고 잔인했다.
'반성.'
딱히 다시 K-제우스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어느덧 이제는 완전히 '중년'이 되어버린 나는 진짜 제우스가 되었고,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의 한 조각을 불태워버렸다.
"......."
하지만 유일하게 태우지 못한 것이 있다면, 아말테아의 뿔.
"첫사랑은 잊지 못한다던데."
나는 뿔을 쓰다듬으며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의 별로 만들어줄게, 누님."
그녀를 기리며, 나는 뿔을 품에 넣었다.
"......하아."
가이아.
매번 욕을 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불편하고 화나게 하는 일이니, 가이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정돈할 필요가 있다.
"결코 용서 못한다."
마음같아서는 가이아를 죽이고 싶다.
평생 죽여서 타르타로스에 처박고 싶다.
하지만 타르타로스마저도 '땅'이다.
지하 깊숙한 곳이라는 말은 땅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라는 말.
가이아를 죽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기간토마키아를 끝장낼 수 있는 그리스의 '최강'.
"가이아. 너는 죽은 여인의 시체를 이용해 괴물을 만들어냈지. 나는 살아있는 여인으로부터 생명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스의 대영웅.
"기대해라, 가이아."
반인반신이기간토마키아를 끝내는 모습을.
"네가 나한테 티폰을 보낸 것처럼, 나는 헤라클레스 뽑아서 보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