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8 유희의 끝 (1) 아르고스의 납치
몇 달 뒤.
나는 이오를 임신시켰다.
쥬피터는 아니고, 당연히 제우스의 몸으로 임신시켰다.
그리고 나는 티탄 신과 인간이 통정했을 때의 관계에 대해 확실하게 알았다.
남자 티탄이 여자 인간을 상대로 한 번 하면, 무조건 임신한다.
생리 주기?
그런 것 따위, 인간의 사정이었을 뿐.
신의 정자는, 제우스의 정자는 죽지 않고 살아 이오를 배부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오는 무사히 나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누군가의 호출을 받았다.
- 이오에 관한 고민을 무사히 해결하고 싶으면 내 방으로 와.
감히 주신 제우스를 부르다니!
이건 아니다.
누가 감히 제우스를 오고 가라 말할 수 있는가?
아무리 그건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헤라라고 한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빠, 슬슬 이오 질리지 않아?"
"뭐라고?"
나는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낸 헤라의 말에 오한이 들었다.
얘가 지금 뭘 하려고 이러는 거지?
나는 헤라를 뒤에서 박으며 젖을 마음껏 짜내려다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침대에 앉았다.
"솔직히 말해봐. 인간 여자 한 명을 상대로 재미 좀 많이 봤지?"
"...음."
"그럼 이런 생각 안 들어? 슬슬 다른 인간 여자도 따먹고 싶다고."
"그야…."
들긴 한다.
여신과 달리, 인간은 임신을 함에 따라 상당한 스트레스를 보였다.
뭐를 먹고 싶다거나, 뭐를 하고 싶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역시 인간 여자보다 여신이 최고야.'
그냥 마구잡이로 할 때는 몰랐는데, 임신을 시키고 나서 보니 많이 달라졌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이오에게 미안하지만, 캐릭터가 점점 키우면 키울수록 망캐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하고 싶지?"
"음.... 근데 안 되지 않나?"
하지만 플레이야스는 고작 한 명 뿐이다.
쥬피터가 행방불명되거나 폐기해야 할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쥬피터는 계속 이오의 남편으로 살아야 한다.
다음 대의 쥬피터가 만들어지고, 설령 비슷한 얼굴을 가진 남자를 꺼내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르고스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얼굴을 비추면 되는 일.
"내가 도와줄게."
"네가?"
"그래. 내 아래에 있는 수하들 중에 한 명을 보내는 거야. 쥬피터가 그와 멋지게 싸우고 전사하는 거지."
소곤소곤.
헤라는 내게 제안을 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도저히 생각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잔인하면서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나코스가 눈치채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아.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즉시 그 자는 알게될테니."
"음…."
헤라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숨길 수 있어도 내 자식을 숨길 수는 없다.
-아니, 내 손주에게서 위대한 제우스 신의 기운이…?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나코스는 분명 의심할 것이다.
그냥 일반 왕이라면 숨겨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나코스는 강의 신-티탄이다.
티탄이 제우스의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헤라는 두 가지 제안을 했다.
"쥬피터가 플레이야스고, 이오를 상대로 하면 이오가 죽을까봐 인간의 몸으로 임신시켰다고 밝히는 거지."
"제우스의 실체를 밝히는 길이군."
"그래. 다른 하나는...뻐꾸기야."
"뻐꾸기?"
좋은 말은 아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 쥬피터는 장렬히 전사하고, 태어나는 아이는 제우스의 아이야.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사실은 쥬피터가 제우스였다고 사람들이 믿을까, 아니면 제우스가 쥬피터로 변장해서 이오를 하룻밤 범했다고 믿을까?"
"......"
후자가 더 설득력있다.
그리고 후자가 더 메리트있다.
모든 만악의 근원을 제우스로 돌리고, 이나코스가 설령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하더라도 나는 철면피를 깔면 된다.
-제우스에게 범해진 것은 영광이리라!
이나코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오가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오가 많이 슬퍼하겠어."
"이오에게는 내가 따로 이야기할게. 쥬피터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몸이고, 이에 대해 헤라 여신에게 몰래 기도를 올렸다고. 위대한 제우스는 쥬피터의 몸에 깃들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줬다고."
"음...."
사후 처리 확실.
양심에도 찔리지 않고, 제대로 진행만 되면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어차피 오빠, 티탄 신들 상대로 강간마잖아."
"윽."
"좋게 말해서 바람둥이지만, 오빠가 어디 남의 여자 빼앗은 게 한둘이야?"
"그렇긴 하지."
지금은 남편이 타르타로스로 가버린 과부들이 많지만, 그들이 남편을 그냥 타르타로스로 보내는데 일말의 서처도 없었던 이유는 내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게 남은 길은 하나.
"부탁한다, 헤라야."
"그래. 잘 들어봐. 내 아래에 '아르고스'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이 있어."
"아르고스?"
"응. 이름이 똑같지? 흔한 이름이기는 하잖아."
헤라는 올림포스의 안주인이다.
당연히 그녀의 아래에 여러 존재들이 있고, 나는 아르고스의 모습을 살폈다.
"음...."
괴물이다.
내가 생각하던 이야기 속 괴물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전신에 눈이 천 개 가량 달려있는 괴물.
"쟤는 어디서 나온 거지?"
"땅에서 나온 걸 아레스가 싸워서 잡았어. 죽이기에는 너무 불쌍해서 데리고 있었지. 뭔가...사람처럼 생겨서 죽이기도 그렇잖아. 그리고...눈도 좋고."
아르고스는 망루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혹시나 소나 양들이 위험에 처할 경우, 급히 아래에 있는 님프들에게 신호를 보내 가축들을 지키게 만들었다.
"지금은 목동으로 일하고 있어."
"...좋아. 잠깐 외형을 빌리도록 할까."
"아르고스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게. 오빠는 그냥 사력을 다해서 싸우면 돼."
"아니, 이왕이면 화려하고 멋지게 죽어야지. 아르고스와 잠깐 이야기를 하자. 이런 일은 내가 직접 말해야지."
나는 헤라와 함께 아르고스를 만났다.
녀석은 벌벌 떨면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아르고스와 싸우는 일 뿐.
"그런데 헤라, 너 은근히 내가 이오랑 한 거 잘 알고 있다?"
"그럼. 내 신도인 걸. 나한테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잠시 깃드는 것도 가능하지."
"......뭐?"
"후후. 여신으로써 굴욕적이지만…오빠를 상대하는데에는 인간 보지가 아주 효과적이더라구."
헤라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췄다.
"내 남편 잠시 빌려줬잖아? 그래서 나도 이오한테 보지만 좀 빌렸어. 후후후."
"......."
앞으로 헤라의 무녀를 건드리는 건 조금 조심해야겠다.
* * *
며칠 뒤.
나, 쥬피터는 오늘도 이오와 함께 잠시 밤산책을 나왔다.
밤의 거리에는 한창 축제가 펼쳐지는 중이었고, 나는 이오와 축제를 즐기다 따로 나와 헤라의 신전으로 향했다.
무슨 축제냐?
젖소파티!
밀크 페스티벌이다.
나는 이오를 통해 젖소무늬 옷을 사방으로 퍼뜨렸고, 공주가 입기 시작한 것이 뭇 인기를 끌어 너도나도 다 젖소가 되었다.
남자들은 보기에 좋아 좋고, 여자들은 자기 매력을 어필할 수 있어 좋고, 아르고스에는 명물이 생겨 좋고.
공주 이오는 아이가 생겨서 좋고.
그녀는 어느덧 아랫배가 살짝 부풀기 시작했고, 내 손을 꼭 잡은 채 살갑게 웃으며 나를 이끌었다.
"여보, 아이는 분명 잘 자랄 거예요. 걱정마요."
"그래, 내 아이. 예쁘게 자라다오."
나는 이오의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대했다.
비록 대외적으로는 '제우스'의 아이로 알려지게 되겠지만, 쥬피터라는 존재는 제우스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자식마저 빼앗긴 채 사망하는 비운의 영웅이 되겠지만, 이건 모두 내가 이오와의 유희를 잘 마무리하려는 나름의 계책이었다.
"그, 여보. 나...하고 싶어졌어."
"뭐?"
이오는 내 눈치를 보며 주변을 가리켰다.
우리 뒤를 따르는 시종은 이오가 직접 선별한 여종들 뿐이었다.
"너...."
"후후, 좋잖아. 아이 조심해서 관계를 맺으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냥 안 하면 쌓이는 걸."
이오는 내 바지 앞을 가볍게 건드리며 나를 숲으로 이끌었다.
"봐봐, 여보. 나...여보를 위해서."
사락.
이오는 자신의 웃옷을 벗었다.
그러자 웃옷 아래에 숨겨져있던, 내가 그녀를 임신시켰던 날 입혔던 밀크 카우 블라우스 세트를 완전무장으로 갖추고 있었다.
꿀꺽.
꼴리긴 한다.
하지만 이제 저 옷은 이오의 것이 아니게 되리라.
"하고 싶어서 아주 만발의 준비를 갖췄구나."
"응, 그럼 이제ㅡ"
순간.
쿵, 쿵, 쿵.
멀리서 거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대한 떨림에 이오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그보다 더 빠르게 이오를 낚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꺄아아아악!!"
"젖소, 가져간다."
"무, 무슨...!!"
몸 길이가 십수 미터는 넘는 거인이 이오를 손에 붙잡았다.
거인의 등에는 넓은 가방 같은 것이 있었고, 거인은 이오를 손에 쥔 채 계속 걸어갔다.
"이오오오오!"
멀리서 이나코스의 비명이 들려왔다.
"사위! 빨리 저것 좀 어떻게 해보시게!"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왜 이오를 데려가는 겁니까?!"
"저자는 헤라님의 아래에 있는 자야!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공물을 준비했는데, 젠장, 젠장...!"
이나코스는 가방 속을 가리켰다.
"공물로 바칠 소랑 젖소 옷을 입은 여자들이랑 착각해서 다 가져가는 중이야!!"
"예?!"
경악.
가방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여인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모두 젖소무늬 비키니 따위의 옷을 입고 있었다.
"세상에, 설마...."
"저 멍청한 괴물! 자네, 가서 당장 구해주게!"
멍청하다니, 유감이다.
아르고스는 지금 명령대로 정확히 납치를 했다.
"걱정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이오를, 그리고 아르고스의 여인들을 지키겠습니다! 설령…!"
나는 내 가슴을 두드렸다.
"이 목숨이 다한다고 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