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103화 (103/235)

EP.103 그리스 /로마/ 신화

아프로디테의 향초는 금방 유행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걱정과 달리 아프로디테의 올림포스 대신 등극에 대해서 딱히 불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여신은 없었다.

혈통적으로 아프로디테는 항렬상 어머니 레아와 동급이다.

비록 탄생이 늦어 지금의 내 자식세대보다 어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의 고귀한 혈통은 누구보다도 더 권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미적으로도 수많은 여신들이 아프로디테의 앞에서 한 수 접어주게 되었다. 나와 이촌 거리 이내의 여인들이 아니면 아프로디테에게 감히 얼굴이나 몸매로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일부 남신들이야 아프로디테의 얼굴만 보고도 '대여신'이니 뭐니 떠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여신들도 다행히 아프로디테를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받아들였다.

향초의 힘이었다.

그녀가 나와의 섹스 경험을 향으로 만들어 그걸 밀랍으로 엮어 만든 향초는 불과 며칠 사이에 여신들에게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마치 유명 연예인의 화장품이 너무 아름다워 유행으로 번지듯, 향초를 통해 여인들이 나와의 섹스를 아프로디테의 몸으로 체험하며 그들은 잠깐이나마 사랑과 미의 여신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박탈감이야 다소 있겠지만, 그런 게 느껴질 수 있을까? 깨어나면 절정의 쾌감과 여운에 잠겨 오르가슴이 가라앉느라 정신이 없을텐데.

그렇게 아프로디테는 성공적으로 올림포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으니….

"제우스 님, 아프로디테 여신과 섹스 안 하셔요?"

"제우스 님,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혹시 그 말로만 듣던 임신프레스로 해주실 수 있나요?"

"제우스 님, 아프로디테 님이 감히 기승위로 올라타도 감각은 똑같이 느껴질까요?"

내가 일을 할 때마다, 내가 밤에 직접 안아줄 때마다 여신들은 향초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제우스 님, 아프로디테 님과 했던 것처럼 해주세요…."

심지어 향초로 느낀 체위에서 오는 감각을 자신도 느껴보고 싶다는 여신도 있을 지경이었으니, 향초-자면서 제우스가 너무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게 좋더냐?"

"네! 어디서든 제우스와 같이 쓰면…. 자고 일어났을 때 무조건 침대 시트 바꿔야 해요. 호호."

"...와, 그걸 그렇게 응용한다고?"

어디서든 제우스!

자면서 제우스!

딜도 정조대를 착용하고 향초를 피우면 거의 나와 자면서 섹스를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여신들은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릴 때 꾹 참거나 딜도로 자신을 위안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더 많은 향초!

더 많은 의사체험!

더 많은 섹스!

여신들은 제우스와의 섹스에 미쳐있었다.

올림포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사람이 너무 절륜해도 탈이군."

내 자지가 너무 대단해서 생긴 문제니까 담담히 받아들이기야 하겠다만, 이러다가 나중에 향초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거, 완전 그거 아니냐?'

향을 피우면 환각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법의 물건. 색깔이 다행히 아프로디테의 유두처럼 핑크색이라서 그러지, 까딱 잘못했으면 마법의 빠빠가루가 될 뻔 했다.

어쨌든.

내가 할 행위는 변하지 않는다.

올림포스의 안전을 지키고, 여러 여신들을 기쁘게 하는 일.

"섹스만 하고 평생을 먹고살 수 있다니. 이게 섹스지."

섹스, 그 자체인 삶이다.

나는 만족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 * *

그 시각.

가운데 화로의 불이 꺼진 올림포스에는 검은 로브를 쓴 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왔군요."

어둠 속.

제우스의 빈 자리 옆에 선 로브의 여인이 가장 먼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하나 둘 마치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는 양 착석했다.

"제우스 님께서는 오랜만에 홀로 주무시고 계십니다. 깨어나시기 전에 빨리 회의를 마쳐야합니다. 미네르바, 대비책은 마련되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유노. 여차하면 베스타가 나서서 몸으로 막을 겁니다. 그녀는 저희 중 1:1로 제우스 님을 상대하는데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으니까요."

"좋아요. 그럼 오늘의 안건을 말하겠습니다. 오늘은 바로…."

짝!

유노가 손뼉을 치자, 한쪽에서 화로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검은 로브를 쓴 여인이 새로이 나타났다.

"우리들의 새로운 일원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자, 자기 소개를."

"저, 저는 아프…."

탕!

유노가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비, 비너스 입니다!"

"그래요. 여기서는 전부 '이명'으로 불러야합니다. 그분께서 직접 말씀해주신 '이명'을 가진 자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어요."

"그, 그렇군요…."

비너스는 조심스레 자기 몫의 자리에 앉았다. 제우스의 자리를 비운 채 원탁에 모인 11명의 여신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너스. 저희들이 모이는 이유가 무엇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어, 음, 제우스 님과의 동침 순서를 정하는 일?"

"예. 그것도 있죠. 하지만 더 궁극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보지다툼으로 제우스 님을 머리아프게 하지 않는 것."

적나라한 미네르바의 말에 비너스는 입을 떡 벌렸다.

"무슨 다툼이요?"

"보지다툼입니다. 간단한 말이예요. 여자들끼리 서로 보지겨루기 다툼으로 제우스 님을 힘겹게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모임의 역사는 아주 깊죠."

"아주 먼 옛날, 크레타 섬에서부터 시작한 동맹이 지금의 의회로 이어져왔지."

"보지끼리 겨뤄도 되는 순간은 침대 위에서, 위아래로 서로를 껴앉고 제우스 님이 어느 보지에 박을까 고민하시게 만드는 순간 뿐."

"결코 제우스 님을 힘들게 해서는 안 돼."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의입니다.

한 마디씩 돌아가며 하는 말에 비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목적인지 잘 알겠어요. 그런데 저를 이곳의 일원으로 부른 이유가 혹시…."

"그냥 제우스 님께 이명을 받았으니까요."

"다들 제우스 님께서 다른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들만 모였죠."

"그리스의 수많은 여신들 중 제우스 님께 직접 이명을 받은 분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화로의 옆에 있는 한 명 뿐."

"시작은 '넵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이 분으로부터 시작되었죠."

"...후후, 남들이 다 저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제우스 님께서 저를 불러주시는 애칭이라는 겁니다."

"......."

중증이다.

비너스는 모임의 사람들에게서 약간의 광기를 느꼈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에게서도 그 광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여신이기에 안다.

이 여자들은 그저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그 대상이 모두 똑같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며,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들 이렇게 모인 것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아침에 볼 때와 정말 다르네요. 뭔가…."

"아, 그거 다 설정이야."

"뭐...라고…."

비너스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 다, 당신은…."

"마르스. 아빠를 사랑하는 순진무구한 소녀? 풋."

마르스는 원탁에 발을 올리고 다리를 꼬았다.

"아빠가 그런 거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지. 씨발, 내가 아빠보다 강해졌어봐. 바로 자빠뜨려서 따먹었지."

"여기 그런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어, 다, 당신 자리는…?"

"디아나. 낮의 모습도 설정이야. 진짜는 이 모습."

디아나는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스틱스 강의 저주를 피해서 처녀 섹스를 제우스와 할 방법을 찾고 있지."

"세상에."

"나는 아폴로야! 나는…."

아폴'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 근데 그건 마치 다들 꽃을 좋아하는 것과 같아. 단지 아버지는 내가 여자들을 상대로 보지를 비빌 거라고 생각하고 계셔. 일단은 착각하시도록 놔두고 있어. 오히려 좋더라. 아버지께서는 딸들이 다른 남자랑 뭔가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니까."

"제우스 님은 딸들을 이성으로 보는 건가요?"

"아니! 안 보니까 문제지!"

가장 키가 큰 여인이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

"내가 남자들이 하는 일을 맡기는 했지만, 나도 여자라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어머니,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불카누스, 뭐 안 하면? 현실이 바뀌기라도 하니?"

"하, 하하."

비너스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낮과는 다른 여신들의 모습에, 새삼 그녀는 제우스가 자신을 안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자는 다 내숭이지. 너는 어떨까?

"......알고 있지는 않겠지?"

알고 있다면 소름일 것이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다 모른척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혼란이 지속되던 가운데.

화륵.

가운데 화로에 불이 붙었다.

'그녀'가 보내는 신호에 로브의 여신들은 말을 일제히 끊었다.

"'베스타'가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분이 깨어나셨어요. 오늘의 남은 안건 하나, 빠르게 처리합시다."

"향초의 문제군요."

"그렇습니다."

"향초요? 제, 제 것들이 왜…?"

비너스는 겁을 먹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여신들의 시선-특히 자녀세대로부터 받는 시선에 비너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향초의 일은-"

화르륵!

화로가 급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큭…! 일단 오늘은 해산! 다음에 다시 논의합시다!"

유노의 말에 여신들은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비너스는 자신의 손목을 톡톡 건드리는 작은 로브의 신에 화들짝 놀랐다.

"너, 너…?!"

"쉿."

신은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케레스가 신을 데리고 가려고 옆에서 불안하게 서있었지만, 신은 케레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야기 잠깐 하고 갈게요, 어머니."

"그래. …...빨리 끝내렴."

케레스는 자리를 떠났다. 비너스는 자신을 붙잡은 신과 시선을 맞췄다.

"저기…."

"포르세르피나."

"그래, 포르세르피나. 너는 뭐 아무 말도 안 하니…?"

"저야 뭐."

포르세르피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아버지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진짜…?"

"네. 제가 신경 쓰이는 건…."

포르세르피나는 비너스에게 작은 꽃 한 송이를 건넸다.

"꽃이에요."

"꽃?"

"네. 예쁘죠?"

"...그렇네."

비너스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포르세르피나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당연히 사랑하죠.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다만."

포르세르피나는 자신의 옆에서 황급히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 뿐이에요."

"......."

비너스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단지 남녀의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저는 이 회의가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이 회의의 여신들이 그만큼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이니까."

"그…."

비너스는 정말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이 회의에 대해...아셔?"

"음...모르실 걸요? 그도 그럴게."

포르세르피나는 비너스가 앉았던 자리에 손을 올렸다.

"이 회의, 항상 이분께서 차례가 되는 날 열리는 비밀 회의니까요."

"그렇구나…."

"아, 앞으로 이 회의라고 부르는 건 그러니까, 이걸 지칭하는 단어 알려드릴게요."

포르세르피나는 정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회의 이름은 '신성 로마'예요."

"...로마?"

"네. 로마. 별 의미는 없어요."

로마.

올림포스의 이면, 여신들이 모여만든 회의의 명칭이었다.

* * *

"베스타, 로마 회의 끝났냐?"

"뭐...적당히 신호 보냈으니 이제 자러가지 않았을까요?"

"에휴. 이 늦은 시간마다 뭐하자는 건지."

"다 오빠 생각해서 하는 깜찍한 짓이죠. 후후."

"그래, 그래. 우리도 이제 자자."

"예? 잔다니요."

"베스타, 너 지금 뭐하는…?"

"오늘은 헤스티아랑 섹스할 차례잖아요."

찌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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