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98화 (98/235)

EP.98 즂간 네버 체인지 (4) 멸망의 씨앗

마음은 편치 않다.

착하디 착한 여신들이 인간을 향해 악의를 쏟아내야하는 상황이니, 내가 다 미안하다.

하지만 의외로 여신들은 판도라에 인간들을 향한 저주의 악의를 집어넣는데 적극적이었다. 꽃 하나 꺾는 것조차 마음아파하는 여인들이 판도라에게 마음껏 악의를 집어넣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제우스를 모욕했습니다.

나에 대한 모욕이었다.

나를 모욕했기에 자신들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생각했고, 올림포스 전체가 모욕당한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인간들을 향한 악의를 담기 시작했다.

"저부터 시작하도록 할게요. 저는 인간들에게...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도록 하겠어요."

바다의 신 넵튠은 갈사(渴死), 갈증의 저주를 내렸다.

"기존의 인류는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제 새롭게 태어날 인류는 달라요. 인간들은 항상 몸에서 물을 배출해내고, 물을 주기적으로 마셔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하루라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이 나서 참을 수 없을 것이며, 물을 장기간 마시지 않으면 몸 속의 물이 빠져나가서 사망에 이르게 될 거예요."

인간은 이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승의 신 하데스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그러니까 노화의 저주를 내렸다.

"인간은 한 번 신체 나이의 절정을 맞이할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이를 먹을 때마다 몸은 노화될 겁니다.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고, 그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은 이제 무병장수 할 수 없다. 아무리 오래 사는 인간도 인간인 이상,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줄 거야. 그리고 가족을 잃었을 때의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을 느끼게 되겠지."

가정의 신 헤라는 가족애와 그에 따른 상실감을 부여했다.

"인간은 이제 어떤 요소로든 죽을 거야. 이전에는 각자 살아나가는 것이 인간의 주된 삶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가족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할 거야. 누구든 가족을 원하고, 가족을 만들고 싶어하고, 가족과 함께할 때 행복하겠지. 하지만 그런 가족을 잃었을 때, 행복했던 만큼 고통스럽고 슬프게 될 거야. 부모의 죽음이든, 자식의 죽음이든, 형제자매의 죽음이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든."

인간은 이제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잃는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는 굶주림을 가르쳐줄게요."

땅의 신 데메테르는 인간들에게 기아의 저주를 내렸다.

"물 뿐만 아니라, 뭔가를 먹지 않으면 살아갈 힘이 없게 만들어야겠어요. 인간은 지금까지 먹는 것을 유희로 여겼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반드시 뭔가를 먹어야 할 것이에요. 물보다는 덜하지만, 물이 아닌 다른 것 또한 먹어야 할 겁니다."

인간은 이제 공복을 느끼고 뭔가를 먹기 위해 발버둥쳐야할 것이다.

"저는 인간의 몸이 항상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하게 만들게요."

화로의 신 헤스티아는 정온(定溫)의 저주를 내렸다.

"인간의 몸은 언제 어디서든 같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인간의 몸이 조금만 온도가 높아져도 괴로울 것이며, 조금만 낮아져도 고통스럽겠죠. 외부 온도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인간은 더위와 추위를 느끼게 될 겁니다."

인간은 이제 자신과 주변 온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제 차례군요. ...저는 인간에게 불완전한 지혜를,지성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인간들에게 지성의 저주를 내렸다.

"제우스 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처럼, 때로는 아는 것이 저주일 때가 있어요. 제가 내리는 저주는 인간들이 자신들이 받은 저주에 대해 인식하는 저주입니다. 이제 인간은 갈증을, 죽음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슬픔을, 기아를, 체온의 변화를 알게 될 겁니다. 그냥 느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배가 고프다는 것을 넘어, 자신이 뭔가를 먹어야 자신의 문제가 해결됨을 알게 될 겁니다. 인간은 이제 가만히 죽지 않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인간은 이제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고민하여 답을 얻으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저는 인간에게 무기를 줄 것입니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도구의 저주를 내렸다.

"인간들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더군요. 하지만 그게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인간들이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낸 활과 화살이 다른 인간에게 쓰일 수 있죠. 도구는 죄가 없지요. 쓰는 자가 잘못을 저지르니. 그러니 인간들에게 날붙이를, 무기를 건넬 것입니다."

인간들은 무기를 알고 그것을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럼 나는 인간들이 멸망한 계기를 그대로 전할 거야! ...아, 아니. 게요. 인간들에게 싸움을 알려줄래요!"

전쟁의 신 아레스는 투쟁의 저주를 내렸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싸워서 쟁취한다! 끝!"

인간들은 이제 욕심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의술이 필요하도록 만들면 되겠네요. 인간들에게 질병을 퍼뜨릴 겁니다. 그들은 의사를 필요로 하겠죠."

의술의 신 아폴론은 질병의 저주를 내렸다.

"인간은 다양한 병을 앓을 겁니다. 단순한 열병부터 시작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병까지. 신실한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하면 고칠 수 있는 병도 있을 것이고, 약재를 조합하는 방법만 알면 얼마든지 나을 수 있는 병도 퍼뜨릴 것입니다. 인간들은 고통을 알고, 의사가 필요함을 알게 되겠죠."

인간들은 이제 질병을 앓고 병을 치료해야만 할 것이다.

"본인은 인간과 짐승이 서로를 사냥하도록 만들겠소!"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는 사냥, 약육강식의 저주를 내렸다.

"인간들을 불을 건네받은 이래, 불을 이용하여 동물들을 사냥해왔지. 동물들은 다시 떠올릴 것이오! 200년 전, 동물들이 인간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던 나날을!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인류는 짐승들과 서로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투쟁의 삶을 시작할 것이오! 사냥꾼과 사냥감이 언제나 일정하지는 않을 터! 인간들에게는 짐승 고기의 맛을 알려주고, 육식을 하는 짐승들에게 인간의 맛을 알려주겠소! 인간은 짐승을 계속 사냥할 것이고, 짐승은 인간을 사냥할 것이오!

인간들은 이제 짐승을 잡으러 다니다가 역으로 잡아먹히기도 할 것이다.

"저는 특별히 생각나는 저주가 없기는 하네요…. 하지만 뭔가 준다고 하면, 저는 곡물을 제대로 기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저주를 내리겠어요."

곡물의 신 페르세포네는 소화의 기능에 저주를 내렸다.

"충분히 곡식이 여물 때까지 잘 키우지 않으면 인간들은 곡식을 먹어도 배가 고플 거예요. 먹은 것이 제대로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게 되는 셈이죠."

인간들은 이제 농사에 진심을 담지 않으면 제대로 곡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

내가 마지막으로 하나를 집어넣는 것으로 이제 인류를 향한 멸망의 시작이다. 기존 인류는 죽어버리고, 새로운 인류로 다시 거듭날 것이다.

그래, 호모가 아닌 사피엔스 사피엔스로의 진화가 이루어질 때가 도래했다.

훗날 미래 역사학자들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 논하면서 제우스를 규탄해도, 나는 판도라를 투입하고자 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역사학자들 또한, 내가 만들어낸 신생 인류가 될테니.

"인간에게 가장 큰 악의가 무엇일까. 나는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그리고 이것만큼 가장 심각한 병이 또 없지."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미 수많은 악의가 점철되어있었고, 악의 사이에 한 줄기 작은 희망이 고개만 빼꼼 내민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나는 인류를 믿는다."

저것은 인류가 가진 선의다.

결국 자라면서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 선한 기운이 커져서 악의를 잡아먹을 수 있고, 악의가 더 강해질 수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것은 단 하나."

고오오.

나는 신의 힘을 이용하여, 권능을 일으켰다. 앞으로 모든 인간은 저것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며, 모든 인간은 저것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라고!

-저러다 제 명에 못 살지.

-저러다 뒤로 나자빠져서 대가리 깨져봐야 정신을 차리지. 으이구, 화상아.

인간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길이 무엇일까.

전쟁? 기아? 고통? 질병?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Why.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닫기 위해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녀의 하복부를 중심으로 갈고리를 그리며, 손가락에 아스트라페의 전류를 이용해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

궁금증.

호기심.

탐구심.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나는 '왜?'라는 것을 인간에게 집어넣었다.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인류를 멸망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쉽게 멸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인간들에게 금기를 퍼뜨릴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금기를 범하겠지. 금기를 범하면 왜 안 되는데? 금기를 범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만하게 금기를 범하는 자에게는...."

나는 엄지로 목을 긋다가 아래로 내렸다.

"신벌을 내릴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금기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인가?

신이 정해야하나?

아니다. 그러면 신의 권위가 너무 떨어진다.

신이 뭐 하지 마라, 뭐 하지 마라, 뭐 하지 마라 일일이 지정하는 순간 잔소리꾼밖에 되지 않는다.

신으로써 금지하는 것은 단 하나.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단지, 그 뿐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이 금기를 정할 필요가 있다.

"판도라가 낳는 아이들은 각 지방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으로 다른 이들을 지배할 것이며, 신의 권위를 대신하여 인간들을 다스릴 것이다."

이름하야, 인적인.

인간의 적은 인간이 되는 셈이다.

"왕정의 시대를 연다."

국왕이 되는 이들이 이제부터 인간들을 통제할 것이다.

법률과 율법, 그리고 금기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을 지배할 것이다.

인간과 신 사이에 지배계급을 만듦으로써, 수많은 인간들이 감히 신에게 불만을 가질 수 없게 만들 것이다.

"판도라여. 내가 비록 온갖 저주를 담았으나, 네 상자 속에는 본디 희망만이 가득하다."

운명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나는 그저 속으로 기도만 할 뿐이었다.

"너를 사랑하는 이가 너를 임신시킨다면 세상에는 희망과 사랑만이 가득하겠지.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너를 강제로 임신시킨다면…."

그 때는 저주가 하나씩 풀려나올 것이다.

"가라, 판도라."

이제 나머지는 인류의 손에 달렸다.

구인류는 마하의 속도로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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