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신화의 종말 (6)
처음 크로노스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우라노스 킥을 날리고 도망쳤다.
남자 대 남자로서 싸우겠다는 생각은 막대한 힘 앞에 자존심을 바로 꺾게 되었다.
그리고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고.
현재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나 스스로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신보다! 강하다!!"
카앙, 카앙, 카앙!
아스트라페를 휘두를 때마다 크로노스는 휘청거렸다.
스퀴테를 휘두르지 못하고 계속 날 부분으로 아스트라페를 튕겨내며 막아냈지만, 뒤로 계속 발걸음을 물리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크윽…!"
이전에는 내가 더 빠르기만 할 뿐, 힘이 약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더 강하고 빠르다.
그렇게 되었다.
달은 하늘에 가득 차더라도 결국 기우는 법.
썩 씨딩 유, 파더.
새롭고 젊은 피의 도전에 늙은 왕은 물러날 때다.
"고통받은 어머니와 누님들의 복수요!"
나의 복수에는 정당성이 있다.
크로노스의 행위는 명백한 악행이었고, 나는 정의를 집행하는 중이다.
테미스와 섹스를 한 이후.
나는 '악'을 상대함에 있어 더욱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비단 내가 크로노스를 악으로 규정짓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크로노스를 상대함에 있어 나의 힘은 월등히 강해지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과의 섹스도 마찬가지.
-섹스할수록 강해져.
나는 강해졌다.
섹스를 통해 나는 10년 전의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해졌다.
크로노스를 향해, 명백히 '우세'를 점할 수 있을만큼!
카아앙!!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 아스트라페에 스퀴테가 하늘을 날았다.
"이 일격에 끝낸다!!"
크로노스는 기겁을 하며 스퀴테를 놓쳤고, 나는 아스트라페를 양손으로 붙잡고 크로노스의 배에 찔러넣었다.
"쓰러져라, 크로노스!!"
파지지직!!
전격 방출, 최대로.
아스트라페 끝에 모인 전격은 크로노스의 배에서 폭발했다.
파지지직!!!
전신을 튀기듯 지지는 막강한 전류가 크로노스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크로노스는 눈을 까뒤집으며 몸을 떨었고, 나는 아스트라페의 끝을 붙잡았다.
"제우스 썬더!"
의미는 없다.
하지만 목청껏 토해냄과 동시에, 나는 아스트라페에서 뿜어진 막대한 전격의 방출로 뒤로 날려졌다.
크아아아악!!!
크로노스는 괴성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나를 공격할 수단이 있었다.
서걱!
하늘로 튕겨올라간 스퀴테가 내 머리를 스치며 떨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분명 머리가 스퀴테의 낫에 두동강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스퀴테의 공격을 피했고, 아스트라페를 잡고 있던 손을 하나 뻗어 스퀴테를 꽉 붙잡았다.
파지직!!
스퀴테가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모인 아스트라페의 전격이 스퀴테의 창대를 흐르며 스퀴테의 저항을 제압했다.
파직, 파지직.
전격은 잦아들고, 나는 뒤로 두 다리를 모아 착지했다.
"끝이다, 크로노스."
나는 한손에 아스트라페를, 그리고 한손에 스퀴테를 들고 힘을 방출했다.
치지직.
아스트라페로부터 전이된 전류가 스퀴테의 낫에도 흐르기 시작했다.
보라색으로 물들어있던 창대와 낫의 등 부분이 서서히 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주인의 변화.
스퀴테는 방금 전의 전투를 통해 인정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승자를.
진정한 주신을.
진정한 이 그리스, 이 세계의 지배자를.
"보시오, 크로노스."
나는 아스트라페를 바닥에 거꾸로 놓은 뒤, 그 위에 스퀴테의 창대를 올렸다.
철컥.
아스트라페의 손잡이 부분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벌어지며 스퀴테의 창대 아래를 찔렀다.
스퀴테의 낫이 떨렸으나, 아스트라페에서 뿌려진 전격에 스퀴테는 또다시 저항이 멈췄다.
콰득, 콰득.
스퀴테의 창대에 박힌 아스트라페는 기어이 스퀴테와 하나로 이어지는데 성공했다.
아스트라페는 키클롭스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스퀴테의 봉인구의 역할을 겸하며, 스퀴테가 크로노스의 손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즉, 크로노스는 전력의 태반을 잃었다.
육신의 힘도 강하지만 무기의 힘을 잃어버린, 정확히는 무기에 깃든 '우라노스의 성기를 자른 자'로서 가지고 있던 신격의 힘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금색으로, 나의 색으로 물든 스퀴테다.
"...나는 패배한 건가."
쿵.
전신에 검게 그을린 크로노스는 바닥에 대자로 쓰러지듯 누웠다.
"그렇군. 나는...결국 패배하고 말았나."
"운명이오. 받아들이시오."
"운명에 저항하고자 했거늘...커흑, 역시 가이아 여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만 것인가."
크로노스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왜? 어떻게 이렇게까지...강해진 거지?"
"운명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제우스는 희대의 강간마다.
제우스에게는 섹스왕이라는 운명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운명에 순응했고, 덕분에 빠른 성장과 정점에 이를 성장을 해왔다.
"나의 뒤에는 올림포스 전체가 있소. 받아들이시오, 크로노스. 강자에게 패배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오."
"네, 네놈...커흑…!"
크로노스는 왈칵 피를 토했다.
하지만 나는 크로노스에 대한 조롱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이겼을 때 아니면 언제 또 으스대겠어?'
지금부터는 제우스가 전부 따먹고 또 따먹는 이야기 뿐인데, 언제 또 이렇게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건방진 놈...크흑."
크로노스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분명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그는 다리를 질질 끌며 우리에게 등을 보이며 신전 밖으로 향했다.
"지독하구나."
하지만 전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그는 마음속 깊이 패배했다.
"오빠, 제가 마무리를!!"
"아니, 그럴 필요없어."
나는 트라이아나를 들고 달려들려는 넵튠을 막아세웠다.
"이미 끝났어. 나머지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흐.... 잔인한 놈."
크로노스는 신전의 뒤로 피를 흘리며 걸어갔다.
나는 아스트라페를 쥔 채,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어떤 상황을 연출하려고 하는 건지는 안다.
어떻게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하는 지 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던 결말이 아닌, 구질구질한 짓을 하려고 한다면 즉시 우라노스 썬더킥을 날릴 것이다.
"아아, 넓은 세상이구나. 내가 다스리던 세상이...이제는 끝이구나."
크로노스는 허탈한 목소리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푸른 하늘도, 이제는 안녕이로다."
"감상에 젖을 시간은 그리 길게 드리지 못하오."
"...그래, 패자는 할 말이 없지. 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보마."
크로노스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의 시대에도 레아는...행복해야할 것이다."
크로노스는 인자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 모습에….
"누가 농사의 신 아니랄까봐, 지랄도 풍년이군."
주먹감자를 날렸다.
별 의미는 통하지 않겠지만, 말과 함께 하니 크로노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제와서 레아를 챙기는 말을 해봐야 아무 의미는 없소. 당신이 저지른 짓은 씻을 수 없는 과오니까. 설령 당신의 생각을 전하더라도, 레아는 받아들이지 않겠지. 당신이 생각하는 레아의 행복은 레아의 행복이 아니오. 당신의 행복이지."
"......."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당신의 패배요."
"너는...안단 말이냐?"
"모르지. 항상 짐작만 할 뿐. 하지만 최소한 당신보다는 더 잘 알고 있소."
"그런가…."
크로노스는 고개를 신전의 뒤, 절벽 아래로 돌렸다.
"그렇군."
오르튀스 산의 절벽 아래에는 용암이 들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다."
크로노스는 절벽 끝에 섰다.
"가이아를, 조심하라."
탓.
크로노스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넵튠과 하데스가 급히 앞으로 달려갔지만, 크로노스를 막을 수 없었다.
"오빠, 저기…!!"
"절벽에서의 추락사도, 용암에 다이빙을 하는 것도 티탄 신을 죽일 수 없지."
티탄 신의 몸은 용암에도 몸이 녹아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머리카락도 전부 불꽃에 타들어갈 것이다.
"스스로 타르타로스로 들어가기를 선택한 건가."
용암의 끝은 연옥이다.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나락을 향해, 크로노스는 스스로 들어갔다.
연행되는 것도 없이, 스스로.
"...정말 대단하긴 대단해."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남자의 뒷모습을 보라.
용암 위를 맨발로 밟으며, 신화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저 남자의 등을 두고 누가 패배자라고 부르겠는가.
"그리고...조금 꼴받네."
크로노스.
그는 내게 패배했다.
전력을 다해 싸웠고, 단기결착을 내며 빠르게 결말을 맺었으나, 그는 구차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불필요한 전투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섹스, 섹스, 그리고 또 섹스 뿐.
"...오르튀스 산은 오늘로 폐쇄한다."
크로노스가 다시는 이 산으로 올라올 수 없게, 나는 하늘을 향해 아스트라페-스퀴테를 뻗었다.
"주신, 제우스의 이름으로."
마른 하늘.
벼락이 떨어지며, 오르튀스 산 전체가 폭발했다.
* * *
치이이익.
크로노스는 맨발로 용암 위를 걸었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살갗이 타오르는 소리가 퍼졌으나, 크로노스는 일말의 고통도 없이 앞으로 걸었다.
머리카락, 눈썹, 심지어 음모마저 타버린 그는 하염없이 앞으로 걷기만 했다.
"패배하였구나, 나의 아이야."
"...가이아."
크로노스는 여인의 모습을 한 용암 덩어리를 향해 이를 갈았다.
"나를 조롱하러 왔나?"
"그럴 리가. 아무리 네가 패륜을 저질렀다한들, 너는 내 자식이란다."
"하. 웃기는 소리. 자식이라면...하아, 아니다. 그런 투정을 부릴 때는 이미 지났지."
크로노스는 표정을 바꾸고 담담히 앞으로 걸었다.
가이아를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은 없나?"
"필요없다. 그리고...한 가지 충고하지."
크로노스는 가이아를 비웃었다.
"제우스, 그 놈이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같은가?"
"...뭐?"
"제우스는 언젠가 당신마저 범하려고 들 녀석이다. 그 때가 기대되는군. 자신의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자손의 남근에 타락하고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생명의 어머니가 말이야. 나락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으하하하!!"
크로노스는 광소하며 용암 속에 몸을 던졌다.
빠르게 아래로 흘러내리는 용암폭포를 내려다보며, 가이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타락? 파멸? 아니지."
가이아는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콰과광!!!
오르튀스 산에 벼락이 떨어졌다.
가이아는 입꼬리를 비틀며, 자신의 하복부를 움켜쥐었다.
"이건 숙명이야.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한 숙명. 생명의 어머니니까...그 누구보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자지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
가이아는 쿡쿡 웃기만 했다.
"그러면...조만간 '진짜'로 해볼까…?"
츄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