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우스 엑스 마키나-67화 (67/235)

EP.67 신화의 종말 (5) 고래사냥

저벅, 저벅.

발걸음이 무겁다.

신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우리를 막던 남자들은 모두 따먹혔다.

'존나 아쉽다.'

나랑 하지 않았던 여자들이 아마조네스라도 빙의한 것 마냥 남자들을 범하고 있다.

"오호호! 개처럼 헉헉거리는 이유가 뭘까?"

"아아, 제우스 님께서 가르쳐주신 안면 기승위...!! 남자를 보지로 깔아버리다니, 헤으응, 역시 제우스 님이셔...!"

"허억, 허억, 허억...!"

두 명의 여신이 한 명의 남자를 상대로 위아래 기승위를 하고 있다.

분명 내가 알기로는 저 둘, 자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신들을 차버린 남자 신에게 섹스로 복수한다고 했었지.'

나와 섹스하지 않은 여자들이지만 정확히 기억한다.

나와의 섹스는 자신들이 너무 부담스럽고 황송하니, 대신 두 자매를 상대로 섹스하는 것을 보여주면 자신들이 그걸 보고 따라하겠다고.

"이야, 그 날이 생각나는 구나."

나는 내 옆을 보좌하듯 선 넵튠과 하데스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날 내 얼굴에 누가 올라탔지?"

"...둘 다요."

"누가 먼저 올라탔지?"

"쟤요."

"언니가요."

두 자매는 서로를 눈으로 흘겼다.

"내, 내가 먼저 올라탔다고? 아니야, 하데스.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니? 나는 자지에 먼저 올라탔어."

"무슨 소리세요. 제가 먼저 오라버니의 자지에 거꾸로 박았는데. 그 사이에 언니가 먼저 오라버니 얼굴 위로 올라섰잖아요."

"그건 오빠가 거길 빨아준다고 하셔서 그랬던 거고...! 그냥 엉덩이를 깔고 앉은 건 너잖아...!"

긴장감이라고는 없다.

적진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눠도 될 정도로 긴장감이 없다.

"이야아앗!"

멀리서 어린 티탄 소년이 달려와 우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호잇."

나는 소년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아스트라페에서 뿜어져나온 전격이 내 손가락에서 소년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갔고, 소년은 전격을 맞고 바로 쓰러졌다.

"이 소년은 따로 구속하겠습니다."

"그래. 괜히 트라우마 생기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거라. 그래...아이 돌보기를 좋아하는 님프들에게 던져줘도 되겠지."

"후후, 알겠습니다."

헤카톤케이레스들은 즉시 소년을 이송했다.

소년 뿐만 아니라, 강간의 업보가 없는 청년들을 전부 구속하여 산 아래로 보냈다.

"따먹히는 자는 오직 따먹은 업보가 있는 자들 뿐. 선량한 자들을 괴롭힐 수는 없지."

역강간 당하는 이들은 모두 이전에 아내든 다른 여자든 누군가를 강간한 자들 뿐이다.

"오호호호! 감히 나를 상대로 그런 짓을 했겠다...? 너는 무한 대딸형이야...!"

"따흑!"

심지어 그마저도 여자가 섹스로 복수하기를 원하지 않을 경우, 두 손이 수갑채워진 채 구속당하여 대딸을 당해야만 했다.

"그만, 그만 싸게 해줘...! 이미 7발 넘게 사정했다고...!"

"너는 내가 강간, 멈춰! 라고 말했을 때 멈췄어...?"

"아, 아아...!"

남자 티탄은 눈물과 좆물을 흘렸다.

어쩔 수 없다.

저 남자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매너를 어겼다.

여자가 진짜로 멈춰달라고 말했는데도, 그걸 자신의 왕성한 성욕 발산을 위한 말로 받아들이고 자지를 마구 쑤셨다.

"나도 그만 박아달라고 하면 그만하는데 말이지."

"그러니까요. 여기에 있는 티탄들은...이제 정의를 깨달아야해요."

"섹스란, 사랑으로 이어지는 관계라는 걸."

그렇다.

강간은 섹스가 아니다.

나는 올바른 섹스전도사로서 이 땅에 태어났고, 사랑과 정욕이 넘치는 그리스를 만들 것이다.

황금의 시대?

엿이나 먹으라지.

"나,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

끼이익.

나는 신전의 문을 좌우로 열었다.

"강간의 시대를 멈추고, 화간의 시대를 열 것이다."

신전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모든 남자들이 이곳을 떠났고, 남은 남자는 단 한 명 뿐이니까.

"크로노스, 당신의 아들이 돌아왔소!"

언젠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뭐하러 왔느냐?"

"주신의 자리를 계승하는 중이오. 아버지."

이 말도 꼭.

"...그러냐."

크로노스는 너무나도 약해보였다.

아니, 실제로 약했다.

이미 그는 내가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질 대로 약해져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장성했던 남자는 노인이 되는 것처럼, 크로노스는 정신적으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그 육체는 단단하고 비대했으나, 육체를 가다듬는 정신과 혼이 늙어있었다.

"받아라, 어머니의 원수!!"

넵튠이 먼저 앞으로 달려들었다.

하데스도 베일을 누르며 어둠속에 동화되었다.

"그래, 너희는 복수를 주장할 수 있지."

크로노스는 스퀴테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너희는 약하다."

서걱!

크로노스는 허공을 베었다.

강대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쾅!!

"아흑...!"

충격파 한 번에 넵튠이 벽에 처박혔다.

우리 올림포스 최강자 중 한 명인 넵튠은 허망하게 바닥을 굴렀다.

"언니?! 아악!!"

"티탄 신족이고 나발이고. 감히, 여자가 남자에게 덤비느냐?"

크로노스는 하데스의 배에 창대를 찔러넣었다.

배를 얻어맞은 하데스는 순식간에 신전 기둥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설령 시대가 바뀐다고 한들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 나의 아버지 우라노스가 하늘이고, 나의 어머니 가이아가 땅이었던 것처럼."

크로노스는 스퀴테를 내게 겨눴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

"......."

설마 K-유교의 남존여비 사상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그리스니까 오히려 더 강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조선 시대보다 더 강한 남성우월중심의 사회니까.

"공감하오. 그 정신은 나도 이어나갈 것이오."

나는 아스트라페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되었어. 주먹으로 여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방식은 낡고 고통만이 가득하지."

"그렇다면? 너의 치세는 어떤 방식으로 여자를 지배할 것이냐! 여자에게 알랑방구를 뀌며 치마라도 입을 것이냐? 남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여자로 성을 바꾸어 살기라도 할 것이냐?!"

"아니. 나는 여자를 지배할 것이오. 하지만 주먹을 들어 패는 것도 아니고, 고문을 하고 강간하지도 않지. 나는...."

나는 하늘을 향해 아스트라페를, 나의 자존심을 들어올렸다.

"섹스로, 자지로 정정당당히 여자를 지배할 것이오. 내 자지 없이는 죽고 못살게 만들 것이오."

"그것이...너의 치세란 말이더냐?"

"그렇소. 그러니 얌전히 물러나시오."

쩌저적.

하늘로 번개가 치솟았다.

"더 강한 수컷에게 패배한 자여."

자.

고래 사냥의 시작이다.

* * *

올림포스.

모든 전력이 오르튀스 산으로 진격한 가운데, 이제는 탁한 백금발-아니 백발에 가깝게 머리가 희어진 여인은 동굴 속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아...신이시여."

여인은 여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신을 찾았다.

자신이 신임에도 불구하고 신을 찾을 정도로 그녀는 간절했다.

"부디, 제우스의 승리를."

여신, 레아는 제우스의 승리를 기원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크로노스는 레아의 남편이었다.

겉으로는 상당히 유능하고 외적도 잘 막아내는 최고의 남자였으나, 크로노스가 레아에게 준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든 여자들이 이야기를 듣고 크로노스를 욕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차라리 자신이 예전에 크로노스를 사랑하기라도 했다면, 레아는 자신을 원망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아는 크로노스에게 범해졌다.

그래서 레아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제우스...!"

어머니가 아닌, 여인으로서.

두 명의 수컷이 벌이는 싸움에서, 레아는 제우스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만약 제우스가 이번 일로 업보를 받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저의 몫입니다. 제가 다 덮어쓸 터이니...부디 제우스에게 승리를."

여신은 신에게 기도했다.

가이아 여신도 아니고, 누군가 특정한 여신이 아니다.

그녀는 운명에 기도했다.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쓰러뜨렸던 것처럼, 제우스도 크로노스를 쓰러뜨릴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로 인한 업보가 있다고 한다면...제가 다 받아낼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진정으로?]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건 중요하지 않다. 혼란을 막기 위해 내가 내려온 것이니. 너는 진정으로 업보를 받아낼 것이냐?]

"...예."

[당사자는 알고?]

"모르옵니다."

진실이다.

"만약 제우스가 알면 자신이 그대로 받을테니, 결코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하겠지요. 그 아이는 그런 아이니까요."

레아는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을 구하러 왔던 소년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이제는 당당히 정면에서 번개를 휘두르며 주신의 자리에 도전했다.

누구보다도 사내다운 남자이나, 누구보다도 여자를 배려하는 남자이다.

제우스는 단 한 번도, 레아를 강제로 안은 적이 없다.

레아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언제든지 자지를 빼냈다.

물론 레아 본인도 '싫다'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지만, 제우스는 크로노스처럼 무작정 자지를 꼽고 박은 적도 없었다.

그런 아이다.

[어떠한 업보여도 받아들일 것이냐? 어떠한 운명이라도?]

"예. 설령 제가 타르타로스...아니, 나락 중에서도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영구동토에 평생동안 갇히게 되어 일년에 한 번 제우스를 볼 수 있게 되더라도.... 저는 감내할 것입니다."

[그런가. 그게 네 각오라면 수용하마.]

파아앗.

[패륜의 업과 근친으로 인한 혼란은 모두 네게로 이어질 것이다. 네게는 더이상의 혼란과 혼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야. 죽음으로써.]

"......마지막, 유언 정도는 남겨도 되겠습니까?"

[음?]

"제우스와 아이들에게, 사랑했다고 전해주십시오."

레아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레아의 말에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뭔 소리냐? 누가 너를 죽인다더냐.]

"...네?"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게 가장 끔찍한 형벌을 내릴 것이지.]

사아악.

무언가가 레아의 품으로 들어갔다.

레아는 뭔가 강력한 상실감과 함께 배를 붙잡고 쓰러졌다.

"아, 아아...?!"

[이것이 네 아들이 아버지를 쓰러뜨린 패륜에 대한 업보이니라.]

"그게...업보...?"

레아는 눈앞의 존재가 벌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도대체 무슨...?"

[너의 자궁은 이제부터 단지 정액받이 주머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자궁이라는 이름도 의미가 없겠지. 나는 아들이 어미를 임신시켜 여동생이 딸이 되는 혼란을 멈추기 위해 왔노라. 자, 네게 걸린 저주를 알려주마.]

목소리는 근엄하게 말했다.

[너는 평생동안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임신하지 못할 것이니라.]

"......."

레아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게...저주...?"

[우라노스로부터 이어진 불임의 저주는 네게로 이어졌다. 이것으로 더이상의 혼란은 이어지지 않겠지.]

"그렇다면...임신 걱정 없이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

혼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저주임.]

사락.

혼돈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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