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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86화 (286/287)

〈 286화 〉 공백기 : 샤를로트 편 (2)

* * *

"……."

샤를로트가 입을 다물었다. 날 바라보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조그만 손바닥을 응시하면서 살짝 주먹을 쥔다.

"이게 그 존재 때문에 나타난 힘이라면……, 신현 씨는 어째서?"

"조건이 있는 거겠지. 새로운 능력을 발현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신현 씨, 혹시……"

"몇 가지 가설은 있어. 하지만 단서가 부족해서 명확하게 대답해주기가 좀 어렵다."

"그렇구나……."

샤를로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새로운 능력이 달갑지 않은 것 같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였다. 능력의 뒷면에 어떤 부작용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간단한 조건은 아닐거야. 실제로 발견된 사람이 많지 않은 걸 보면."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도 새로운 능력을 획득한 사람은 없다. 실력이나 마력의 총량 따위가 조건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 조건이었다면 파비아나 루이스가 먼저 각성 했을 테니까.

그 두 사람에게는 없고, 샤를로트에게는 있는 것.

이러한 형태로 조건을 제시하면 그다지 경우의 수가 많지 않다.

남은 것은 하나씩 가설을 검증해나가는 것 뿐.

이것은 샤를로트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괜찮을까?"

샤를로트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심정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마력은 과분한 힘이다. 잘못 제어한 마력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지금, 샤를로트가 습득한 능력이 그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발생한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능력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폭주해서 그녀 자신을 상처 입힐 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혹시 내가 제어를 잘못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때는……"

"그때는 내가 널 멈추면 돼."

샤를로트는 내 주변의 사람 중에서 특히 '선'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내가 살면서 루이스 같은 사람을 또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난 그런 사람이 될 생각이 없다. 그런 손해만 보는 인생은 딱 질색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선행에 보답 받지 못하는 현실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샤를로트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입에 담은 말이었다.

"신현 씨가……, 나를……?"

"그래. 그럼 걱정할 필요 없잖아. 네게는 날 바로 부를 수 있는 수단도 있으니까."

"그건……"

개인실의 책상에 주목한다. 책상 위에는 내가 선물한 브로치가 놓여 있었다. 그 기능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샤를로트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호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거야."

"어……, 그런 게 가능해? 왜냐하면 신현 씨는……"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어. 원리는 대략적으로 파악했거든."

샤를로트와 다시 시선을 맞춘다.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뜬 채 깜박인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천변무궁류는 마력의 기류를 읽는 검술. 그리고 나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세계가 보인다.

물론, 샤를로트가 새롭게 획득한 능력 역시.

거의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따지고 보면 술식이나 주문 없이 마법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마법하고 비교했을 때 결과물은 같지만 과정이 다른 거지."

오른손 검지를 들어서 샤를로트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오히려 마법보다는 나의 검술에 더 가까운 듯한 느낌이 들어. 내 검술도 비슷한 원리거든. 마력의 기류를 조작해서 다른 방식으로 마법 같은 효과를 내는 거니까."

완전히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큰 힌트가 되었다.

조금 시행착오는 겪겠지만 제어하는 요령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신현 씨는, 있잖아."

샤를로트가 슬금슬금 내 시선을 살피면서 말했다.

아주 조그만 목소리였다.

"늘 믿음직한 것 같아."

"그래?"

한결 같은 신뢰를 눈빛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사람에게 과하게 환상을 품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다. 나도 길을 잘못들 때가 있고, 실수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샤를로트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신뢰를 내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못되먹은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이 아이의 기대에 보답하는 멋진 어른으로 있고 싶다.

이 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신현 씨. 이제 들어가야 하지?"

"늦은 시각이잖아. 그리고 너희는 자기 전에 점호도 하는데, 그 전에는 나가야지."

워낙 자주 샤를로트의 방을 오간 탓에 이 수녀원의 점호 시간까지 외울 지경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 그 전에는 나도 나가야 한다.

이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내가 샤를로트의 개인실을 방문한 횟수는 두 자리를 넘어갈 정도였으니까.

샤를로트는 머리가 좋아서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나를 멈춰세운 행동에서 의도가 느껴졌다. 척 보니까 대충 견적이 나온다.

"혹시, 또 나한테 상담할 게 있어?"

"아……, 응."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눈치채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눈에 띄게 밝아진다.

샤를로트가 나를 잠시 그 자리에 세워두고 책상에 다가갔다. 서랍 안에서 뭔가가 나왔다. 종이……, 같은데 뭔가 글씨가 많다. 샤를로트의 글씨는 아니었고, 나이가 많은 사람 특유의 필체가 느껴진다. 연금술사의 글씨와 비슷하다.

"진로희망서라고 쓰여 있는데, 이게 뭐야?"

"응. 수녀원의 사람들은 나이가 차면 진로를 하나 정해서 커리큘럼을 받게 되는데, 아직 결정을 못 해서……"

"진로라. 뭐, 구마?? 쪽으로 빠지는 건가?"

이 세계의 종교에게는 몬스터를 구축하는 책임이 부과되는데, 교회에서 이것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바로 구마과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지원자에 한해서 훈련을 받을 수 있고, 그 중에서 적정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이 구마과에 편입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샤를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어차피 몇 년 지나면 수녀를 그만두고 환속을 하게 될 텐데……, 그때까지 여기에 남아 있을지 아니면 구마과로 들어가서 사람을 돕는 일을 할지 고민 중이야."

환속이라.

따지고 보면 샤를로트는 일이 생겨서 수녀원에 맡겨 졌을 뿐, 원래 신분은 지체 높은 부잣집 아가씨다.

수녀가 속가로 돌아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본가의 사정이 안정되면 샤를로트는 다시 수녀의 옷을 벗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다.

그때까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는 건가.

보면 은근히 워커홀릭 기질이 있다. 느긋하게 쉬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다.

"왜, 구마과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래?"

샤를로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관심이 있는 건 틀림 없어 보이는데.

"그런 건 아니지만……, 올리비아가 반대할 거 같아서."

"하긴."

올리비아는 과보호 경향이 심하니까.

샤를로트와 올리비아는 사이가 매우 좋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답답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신현 씨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구마과에 들어갔으면 좋겠어?"

"나도 마음 같아서는 반대지."

"역시……, 그렇지?"

위험한 일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온갖 위험한 일은 다 하고 다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법이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나이에 부성을 체감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렇지만 네가 하고 싶다면 나는 온힘을 다해서 도와줄게."

"정말?"

"그래."

마음 같아서는 말리고 싶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누를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사실 이쪽이 진짜 이유다.

"그리고……, 느낌이 좋지 않거든."

"그건 무슨 소리야?"

"허유는 쓰러졌어. 아마 몇 년 동안은 잠잠할 거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아. 또 다시……, 무슨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 예감? 그런 게 있어."

근거는 없다. 이건 그냥 감이니까.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애초에 허유의 발언에서 추측했을 때, 놈 같은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복수개체였다.

그 중에서 허유 같은 놈이 또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다시 이 세계를 찾았을 때.

우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내 곁에는 백신아도 남아있지 않은데.

이대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대항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샤를로트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샤를로트를 온힘을 다해서 보호할 생각이지만, 그래도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때, 샤를로트가 스스로의 힘으로 싸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혹시 올리비아가 반대하면 그때는 내가 함께 설득해줄게."

"응……, 고마워. 신현 씨가 도와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샤를로트가 밝은 얼굴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신현 씨……."

"또 부탁할 게 있어?"

"응.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수줍은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이 얼굴에 대고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싶다.

점호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괜찮을 거다. 샤를로트도 나도 시간 엄수는 철저하니까.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시선을 살짝 내려서 눈높이를 맞췄다. 샤를로트는 행복한 얼굴로 진로희망서를 들었다.

"내가 이걸 다 쓸 때까지……, 지켜봐주지 않을래?"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책상에 앉은 샤를로트의 옆자리에 선다. 샤를로트는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즐거운 태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기 좋은 필체였다. 나 같은 경우, 글을 빠르게 쓰기는 하는데 워낙 흘려 쓰는 필체인 탓에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샤를로트의 글씨는 매우 알아보기 쉽다. 반듯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샤를로트는 글씨를 쓱쓱 써 내려가는 것 같으면서도 이따금씩 멈칫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손이 멈추는 것 같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손이 멈출 때마다 샤를로트는 고개를 들어서 나와 시선을 맞추곤 했다.

또 다시,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신기해."

"뭐가?"

"구마과에도 여러 가지로 분야가 많은데, 어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거든. 최종 목표도 완전히 달라지고. 그런데……"

샤를로트가 고개를 살짝 움직여서 내 손등에 뺨을 붙였다. 표정은 부드럽다. 후후후, 하고 또 다시 조용히 웃는다.

"그 어떤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도……, 항상 옆에는 신현 씨가 있는 거야."

"올리비아나 네 아버지는 없고?"

"어? 어……, 그러니까……"

당황한다, 당황해.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농담이야."

"정말, 신현 씨."

샤를로트가 웃으면서 내 허벅지를 검지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가벼운 해프닝은 있었지만 이렇게 작성이 끝났다. 샤를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신현 씨가 지켜봐준 덕에 결심이 섰어."

"아직 올리비아의 허락이 남아 있잖아?"

"응. 지금 쓴 걸 올리비아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부탁할 거야. 그때는 신현 씨도 함께 해줄 거지?"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때,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조금 전에 보았던 원장 수녀의 목소리였다. 점호가 시작한 것 같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샤를로트가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현 씨."

"아, 나도 이만 가볼게."

창문을 열고 창틀에 발을 올렸다. 바깥을 훑어보면서 루트를 스캔한다. 음,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문고리에 손을 얹은 샤를로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고마웠어, 신현 씨. 신현 씨에겐 늘 도움만 받는 것 같아."

"너하고 내 사이잖아. 일일이 고마워 할 필요 없어."

"그래도, 말하고 싶은 걸.'

나 참.

하지만 이런 게 샤를로트의 강점이다. 계속 지금의 마음가짐을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오늘은 달이 예쁘다.

많은 생각이 든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란, 어떠한 것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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