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에필로그
* * *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왼팔의 접합을 끝마쳤다.
꽤 오랜 기간 외팔이로 지내왔던 탓일까. 지금은 오히려 왼팔이 붙어 있는 게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균형 감각도 조금 이상해져서, 익숙해지느라 고충이 많다.
팔을 접합한 뒤 깁스로 어깨 부분을 고정한 상태였다. 이제 거의 다 붙기는 했다. 슬슬 깁스를 풀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왼팔하고 다른 부분의 피부색이 다른 것 같은데, 괜찮은 것 맞소?"
"따로 떨어져 있던 기간이 길어서 그렇다네요. 몇 주 정도 기다리면 혈류도 안정되고, 피부색도 돌아올 거라고 들었습니다."
요하네스의 시선에서 걱정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간단한 반팔 차림이었다.
그리고 소매 아래로 보이는 왼팔의 피부색과 얼굴의 피부색이 다르다. 전체적인 피부톤을 고려했을 때, 왼팔의 피부색이 확실히 좀 더 밝고 연하다.
지금은 소매로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접합한 부분을 경계로 이러한 차이가 명확하게 보인다.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몸을 떼어와서 붙인 듯한 느낌이라.
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재활에 집중하면 좋았을 것을.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요하네스는 내가 외출한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양새다.
오늘은 그가 이 도시를 떠나는 날이었다.
원래 좀 더 일찍 떠날 예정이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사건사고가 터지느라 어쩌다보니 오늘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그도 급한 상황이었다.
요하네스가 특급 모험가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는 그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광증 때문이었으니까.
지금부터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광증을 극복하기 위한 수련을 시작한다.
요하네스가 떠나는 날에 맞춰서 나와 마그누스가 배웅을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건으로 바쁘다. 요하네스와 그닥 친하지 않은 사이라는 이유도 있고.
"기분은 어떻소?"
"저요?"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시비라도 거는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을 보면 그런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시비라고 인식하는 나도 좀 이상하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역시 나도 스트레스가 조금 컸던 것 같다.
늘 함께 있던 존재가 곁에 없다.
보기보다, 꽤 괴로운 일이다.
"뭐……, 괜찮습니다. 보기보다는요."
"그런가…….
요하네스가 조용히 숨을 토해냈다.
"나는 그대와 다르게, 그 친구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소. 그저 검을 여러 차례 맞대보았을 뿐이니."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백신아와 요하네스는 지하에 위치한 격투장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다.
그때는 백신아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가면 검사라는 이름으로 자칭했다.
그리고 5분으로 고정된 시간 제한이 끝을 맞이하고, 승부가 무승부의 형태로 끝을 맺었을 때.
그들은……
"하지만 아쉬움은 있소. 그 존재와는 재대결을 약속했었는데, 결국 이뤄지지 못했으니까."
요하네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한 존재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겠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확실하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라오."
"……다시 데려 와야죠."
나는 조용히 대꾸였다.
그때, 내가 입에 담았던 말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어느 때라도 나는 진심이었다.
백신아는 인간의 손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었다. 이 세계와 구분되는 머나먼 '그쪽'에서 이 세계에 찾아온 존재이고, 그 본질은 허유와 한 없이 가깝다.
그렇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반드시.
"할 수 있겠소?"
"검왕은 인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인간의 몸으로 검왕검을 설계하고, 다른 세계에 있던 신아를 검왕검에 가두었죠."
나는 살짝 주먹을 쥐고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이룩한 위업이라면, 같은 인간인 저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가……."
요하네스가 느슨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의 발걸음을 잘 지켜보도록 하시오. 지금의 나는 그대보다 한 발짝 앞서,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남자. 앞으로 그대가 걸어갈 길에 큰 참고가 될 것이오."
그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의 오른손을 마주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그대는 내게 있어 장래유망한 후배요. 부디, 그대가 걸어 나가는 무도??에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도하겠소."
악수를 풀고 요하네스가 몸을 돌린다.
지금부터 그는 광증을 극복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내게는 남일이 아니었다.
광증의 계통은 다르지만 나의 사저인 파비아 역시, 광증을 품고 있었으니까.
"나도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겠지. 이 이상 실력 차이가 벌어지면 곤란하니까."
오른쪽에 서 있던 마그누스가 팔짱을 끼고 입을 열었다.
"신현아."
"네."
"친구를 잃은 네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와 네 친구가 겨루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단다."
그의 표정에서 희미한 흥분을 찾을 수 있었다. 무도가로서 가지고 있는 순수한 호승심이 슬쩍 엿보인다.
"내가 서 있던 경지가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끝은커녕 시작 지점에도 서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마그누스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그의 표정이 희미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아갈 수 있는 무의 길이 아직 이다지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줄 몰라. 그런 의미에서…… 너와 네 친구에게 나는 정말로 감사하고 있단다."
마그누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하늘의 저편, 백신아가 사라진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앞으로 더 강해질거다. 그러니까 신현이 너도……, 얼른 올라와라. 우리가 서 있는, 특급 모험가의 영역에."
지금까지는 일이 많아서 승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진지하게 승급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급 모험가에게만 허용된 정보도 존재하는 데다가, 국가에 관리되는 유적 등을 조사할 때에도 특급의 이름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실력도 정보도 부족하다.
그리고 백신아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실력과 정보, 양쪽 모두가 필요했다.
"나도 스텔라와 오늘 저녁에 이 도시를 뜰 생각이다. 특급 재해가 발생했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사후 처리를 해야 하거든."
"네."
우리에게 있어선 천만다행으로, 여기저기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특급 재해 중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나쟈 하나밖에 없었다.
아마도 허유의 힘을 지근거리에서 경험한 탓에 나쟈만이 앞서 활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그누스는 미래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새로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일 생각이다.
요하네스도, 마그누스도 그렇다.
다들 저마다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나는 왼쪽 어깨를 고정하기 위한 깁스를 풀었다. 팔을 접합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접합한 부위의 경계는 희미했다. 통증도 없다. 하지만 움직임에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곧, 익숙해지겠지.
나는 조용히 검을 빼들었다. 검왕검도, 루이스의 검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검이다. 예전에 대장간에 찾아갔을 때 여러 자루의 검을 한 번에 구입했었다.
검왕검이나 루이스의 검이 아니면 천변무궁류의 출력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차라리 소모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리기 위해서 여러 자루를 챙겨 두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의 내게는 마력이 없었다. 코어의 회복은 잘려 나간 팔의 접합보다도 까다로웠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모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마력도 없고, 검왕검도 없다.
마치 일 년 전의 나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내게는 마력도 없고, 검왕검조차도 없지만.
네게서 받은 이 검술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너와 함께 보낸 1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다.
검을 휘두른 횟수는 순식간에 수백 회에 달했다. 그리고 네 자리 수를 초월하였음에도 지치지 않고, 느려지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붙는다.
파직!! 검을 휘두른 순간 특이한 소리가 들렸다. 검으로 공기를 가른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지금 이 칼끝에는 마력이 휘어 감겨 있다.
마력을 가지고 있을 때와 비교하면 느리다. 하지만 쉬지 않고 끊임없이 검을 휘두른 끝에 칼날에 마력을 휘어감을 수 있었다.
파직!! 칼날이 붉게 변했다. 파직!! 그 다음에는 푸르게 반짝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파직!! 파직!! 파직!! 파직!!
좀 더, 좀 더, 좀 더.
검을 휘두른 횟수는 이제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으로 따지면 다섯 시간 째였다.
다섯 시간 째,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칼끝에 한 번 걸린 마력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끊임없이 모이고, 끊임없이 커진다.
모여든 마력은 환한 빛을 일으켰다. 다섯 시간이 지나, 해가 이미 저물었음에도 지상에는 빛이 있었다.
눈부신 빛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익!! 신발 밑창을 세게 끌면서 검을 멈춘다.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이래, 여섯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칼날은 여러 개의 마력을 휘어감은 탓에 특이한 빛을 발산했다. 한 가지 색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색채가 섞인 채 빛을 내고 있다.
그것은 무지개를 닮았다.
고밀도로 뭉친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칼날이 무너진다.
원래 이 정도 수준의 검으로 버틸 수 있는 마력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칼날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기술을 써서 칼날의 붕괴를 늦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한계다.
모여든 마력을 해방시킬 때가 찾아왔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었다.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한 번 잘려 나갔다가 다시 붙은 왼팔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왼팔의 외침이 들려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으득!!"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비로소 해방되었다. 그 방향은 하늘이다.
달이 드리운 밤에 다시금 태양이 떠오른다. 환한 빛이 밤의 장막을 넓게 넓게 걷어 나간다.
하늘의 저편에 있는, 백신아의 세계를 향해.
그때.
최강의 특급 모험가는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홀로 야영을 하고 있었다.
눈부신……, 달을 향해 역주행을 하는 듯한 눈부신 빛이 하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빛은 여러 가지 색채를 품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색채 중 가장 가까운 것을 꼽으라면 무지개와 닮았다.
그는 무지개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차례로 곱씹었다.
어느 지역의 신화 속에서 무지개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잇는 다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번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기 위해서 싸우는 남자가, 저 자리에 있다.
그때.
올해로 열다섯 살을 맞이한 소녀는 수녀원의 창문으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눈부신……, 달을 향해 역주행을 하는 듯한 눈부신 빛이 하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신현 씨……?"
소녀의 종교에서 무지개는 '신의 약속'을 증거하는 상징물로 쓰인다.
무지개 다리는 끝 없이 길게 나아가 있었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까지 이어진 것처럼.
그때.
루이스는 연금술사, 파비아와 함께 바깥에 나와 있었다.
백신현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신경 쓰여서 나와 보았더니, 거대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몇 시간 동안 곁을 지켰다.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검에 집중한 그의 모습에서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거……, 마치……"
하늘 저편을 향해 쏘아 올린 무지개를 바라보며 루이스가 입을 열었다.
"선전포고 하는 것 같네."
"선전포고……?"
생소한 단어였는지 파비아가 고개를 돌린다. 루이스의 시선은 여전히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에 고정되어 있었다.
"신아는 사라졌어. 그리고 보이드와 보이드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그 괴물 같은 존재도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지. 최정상의 괴물들이 모두 없어진 무주공산 같은 상황이란 말이야."
현 시점에서 제일의 고수는 요하네스이지만, 그 요하네스 또한 광증의 극복을 위해서 물러난 상황이다.
최고의 자리는 공석으로 비어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신아와의 결별……, 그리고 지금부터는 자신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겠다……, 그런 의미로 보였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연금술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현이는 신아에게 다시 도전할 거라고 말했어. 그리고 신아에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거야."
루이스도 그 표현에 동의했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십여초 가까이 지속된 후 천천히 흩어진다.
힘이 다한 것일까. 백신현이 하늘을 보며 자리에 쓰러진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밝았다.
커다란 미련을 털어낸 듯한 얼굴이다.
"……닿았을까."
무지개가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나의 검은 네게 닿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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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소녀가 눈을 뜬다.
소녀는 흰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렀다. 옷은 가벼운 원피스. 희미하게 피부색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다.
지금까지 소녀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의자는 몹시 크고 넓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옥좌도 이보다 더 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투극?이시여.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소녀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살짝 짚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심기가 불편한 듯한 태도에 주변의 분위기가 경직된다.
투극의 각성은 수백 년만의 일이다.
그녀가 수백 년간 침묵하던 동안 허유가 물질세계에서 큰 손상을 입고 소멸해버린 탓에 그들은 알아서 소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 하나 하나가 허유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그 침묵이 미치도록 두렵게 느껴졌다.
"아니……"
소녀가 입술을 천천히 뗀다.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 느슨하게 풀어졌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