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최종화 : 오늘부터 우리는
* * *
"……비가 그쳤군."
마그누스가 오른손을 하늘로 향한 채 고개를 들었다. 원인은 바로 조금 전, 백신현이 휘두른 일격이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이와 같은 효과를 일으켰다.
그 또한 과거에 몇 차례 목격한 경험이 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휘두르는 절기 중의 절기이다.
사실, 그는 아직 현재 상황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설명이 필요한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백신현을 익히 알고 있을 루이스와 연금술사조차 의아한 시선이다.
"백신아……, 그녀가 이 세상에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게 된 건가."
그에게 있어서도 익숙한 존재였다. 스페트로와의 싸움에서 그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이후에도 그녀의 절대적인 검술과 여러 차례 대련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검왕검에 묶여 있는 정신체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는 백신현의 육체를 통해야만 바깥에 나올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백신아가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약 5분.
절대적인 실력을 가진 그녀에겐 상당히 무거운 제약이다.
그런데 지금, 사상 최강의 검사가 현실에 존재하는 육체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마그누스는 희미한 기대감을 품었다.
사상 최강의 검사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이 눈으로 볼 수 있다.
어찌 기대가 되지 않을쏘냐.
"……."
파비아는 상당히 굳은 얼굴이었다. 그녀 또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에 기대를 품고 있다.
하지만 조금 불안하다. 심장의 고동이 조금 불길하게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을.
파비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 * *
"백신현!!"
그때, 백신현의 발치에 검집 째로 칼 한 자루가 꽂혔다. 루이스의 검이었다. 강도에 한해서는 검왕검조차 능가하는 또 하나의 걸작이다.
백신현이 고개를 들어서 루이스와 시선을 맞췄다. 두 사람은 따로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손에 쥐고 있던 검왕검을 백신아에게 넘겨주고 그 자신은 루이스의 검을 뽑는다.
이로써 두 사람의 검사 모두에게 검이 주어졌다.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됐다.
검왕검과 루이스의 검.
같은 금속에서 탄생한 두 자루의 검이 서로를 마주본다.
"……너, 웃고 있어."
「네, 그렇습니다. 지금의 저는……, 매우 행복한 상황이니까요.」
백신아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꼬리에 흡족함이 걸려 있다.
「이 삶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검주와 검을 맞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것도 현실의 세계에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그 눈동자는 희열과 투지로 가득했다.
「지금의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검입니다. 자! 시작하죠, 검주. 저와 검주의 최후의 대결을!!」
백신아가 바닥을 차고 도약하는 것과 동시에 햇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쏟아지는 햇살은 오직 그녀만을 비추고 있었다.
거대한 천지자연조차도 그녀의 검극을 칭송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의 검이 부딪친다.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을, 백신현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 * *
나쟈를 쓰러트리고 불과 몇십 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마력의 기류는 살아 있었다.
이것은 즉, 두 사람이 수단을 사용함에 있어 전혀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천변무궁류 최대의 제약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두 사람의 칼끝에서 수많은 천변무궁류가 일제히 쏘아졌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서로 부딪친다.
콰직!! 검왕검의 표면에 균열이 달렸다.
"……!!"
실력의 차이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실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백신아 쪽이 더 고수이니까.
이것은 검왕검 자체의 한계였다.
언제 붕괴해서 무너져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검왕검의 파손은 백신현으로 하여금 남아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겨우 이 정도로 굳으시면 곤란합니다, 검주. 최고의 시간을, 스스로 망쳐버릴 셈이신가요?」
그때, 그 목소리가 백신현을 다시 현실로 돌려 놓았다.
뺨, 팔뚝, 옆구리에 동시에 상처가 달렸다. 하지만 이것은 백신아가 충분히 손속을 두었기 때문에 펼쳐진 결과에 불과했다.
그녀가 끝내고자 마음 먹었더라면 이미 결판이 났을지도 모른다.
치명적인 빈틈이었다.
"큭!!"
하지만 백신현은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하는 시간조차 아쉽다고 느꼈다. 그는 이미 커다란 실수를 한 번 저질렀다.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뺨의 고통을 그 증거로 삼았다.
한 번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흐름은 쉽게 뒤집을 수 없다. 흐름을 부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강한 질풍이 필요하다.
적赤
검붉은 마력이 백신현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에 의해서 강화된 신체 기능이 그의 몸에 힘과 속도를 부여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이 강제로 해체 되었다. 백신현의 의지와 전혀 관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이, 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다. 하지만 백신현은 조금 전의 경험을 제대로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당황하면서도 늦지 않게 백신아의 추격을 걷어낸다.
키이이이이잉!! 쇳덩이가 서로 강하게 마찰하면서 기분 나쁜 소리와 불꽃을 동반했다.
「이제껏 제가 보여드린 기술이 제 전부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었다.
백신아의 검극에 의해서 벌어진 의도적인 실패였다.
"날 시험할 때조차 이런 기술은 보지 못했는데……"
「그때는 검주에게 '적절한 절망'을 제시해서 한계를 초월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지금하곤 상황이 다르죠.」
이 시점에서 백신아는 이미 그의 배후로 돌아 들어가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을 휘어감은 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마력이 그 기술을 증명한다.
쿵!! 간신히 방어는 늦지 않았다. 하지만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패배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번갈아서 말을 움직이는 전략 게임과 마찬가지다.
당장은 패배하지 않아도, 조금씩 패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머지 않아 찾아올 외통수를 피할 수 없다.
「전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검주를 때려 눕힐 생각입니다. ……각오하지 않으시면, 순식간에 끝날지도 몰라요.」
그런 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백신현은 오싹함을 느꼈다.
이 싸움에는 목숨이 걸려 있지 않다. 하지만 압박과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던 검에게, 친구에게, 스승에게, 실망을 안겨 주게 된다는 것.
그 무게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차원이 다르다…….'
그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늘 아래 존재하는 그 누구도 감히 백신아의 검극을 쫓아올 수 없었다.
마그누스도, 요하네스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천하제일의 고수들이다. 하지만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의 실력을 숫자로 쳐서 10이라고 가정했을 때, 백신아의 검극은 세 자릿수, 네 자릿수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아득히 머나먼 영역에 백신아의 검극이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식과 논리에 조소를 던지는 듯했다.
그렇다면 백신현의 검극은 어떠한가.
그의 검극은 마그누스조차 완전히 능가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승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도전한다.
맞서 싸운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으니까.
"하아아아아아아아!!"
그가 검을 크게 휘두른 순간 배후에서 수많은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력의 기류가 뭉쳐서 벼려낸 칼날이다.
이런 형태는 천변무궁류에 없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지리멸렬한 탓에 기술이라 부르기도 아깝다.
흐름을 끊어야 한다. 그러한 일념으로 펼쳐낸 일 초였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스치지조차 못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모든 공격이 동시에 방향을 틀었다. 그 표적은 백신현이다.
한 순간에 역으로 장악 당하고 말았다.
쏟아지는 공격에 역으로 맞서는 것조차 빠듯했다. 거기다 백신아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최강검사의 일참이 틈을 노리고 또 다시 파고든다.
무너진 균형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
끝 없이 기울어져 갈 뿐.
캉!!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일참을 휘두른다.
끝 없이 휘둘렀다.
"……아아."
그때, 요하네스는 차마 그 싸움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채 조용히 신음한다.
끝 없는 수치심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나는 이러한 고수 앞에서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단 말인가……?"
요하네스는 현 시대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무인 중 하나다.
특급 제일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단 한 순간도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수십여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끝 없이 무?의 길을 궁구했고, 싸워왔다.
승리에 취하고, 패배를 곱씹으면서 살아온 무도??의 나날 속에서 그의 가슴에는 긍지와 자부심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허상에 불과했다.
요하네스는 발끝조차도 따라가지 못하는 고수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
설령 요하네스보다 열 배 강한 고수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녀에 비하면 하수에 지나지 않는다.
헤아릴 수 없는 격의 차이를 느꼈다.
"……."
연금술사는 가슴팍을 꽉 틀어쥔 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싸움에 빠져들었다.
진짜배기 무인이 아닌 그녀의 눈으로는 싸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무인이 아니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이……, 정점.
수많은 무인들이 추구하는 극한의 세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는 무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인이 아니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최정상의 경지에 도달한 자가 보여주는 기술은 무인이냐 아니냐에 관계 없이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단 한 순간의 공방 속에서도 수많은 영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수천 번의 실험 속에서도 얻을 수 없는 충격이 그녀의 지식을 쉴 새 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대단……, 해……"
짧은 한 마디를 토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시간이 아쉬웠다.
아주 조금만 더, 이 싸움이 계속되기를 기도했다.
'젠장!!'
포효할 여유조차 없었다.
검붉은 마력이 여러 차례 뭉쳤다가 흩어진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은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시도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흩어지고 만다.
이러한 기술은 배우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아마 천변무궁류의 경지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원리이리라.
이것은 백신현의 천변무궁류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으니.
파직, 다시 한 번 검붉은 마력이 모인다. 끝 없이 시도하는 그도 지독하지만 그것을 그때마다 끊어내는 백신아도 만만찮다.
하지만 진정한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단 한 순간의 방심이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다.
파직파직파직파직!! 다시 한 번 검붉은 마력이 흩어진다. 그런데 흩어진 마력이 한 번 공중의 한 점에 모인다.
마력은 탄환처럼 뾰족한 형태가 되었다.
「호.」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피할 수 있었다. 백신아는 굳이 쳐내지 않고 회피했다.
상당히 고밀도로 집중된 마력이라 쳐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쿵!! 검붉은 탄환이 바닥에 꽂힌다. 카가가가가가각!! 바닥에 꽂힌 직후, 대지를 마구잡이로 헤집으면서 질주했다.
나쟈가 날뛰면서 남긴 피해가 무색할 지경이다. 더 크고 참혹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마구잡이로 새겨진 상태다.
「착안점은 좋았습니다. 제가 제이검을 견제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제이검의 사용을 통해서 저의 행동을 어느 정도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죠.」
드물게도, 그 칭찬이 기쁘지 않았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회피한 주제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쏟아지는 찬사.
무인의 긍지에 얕지 않은 상처가 새겨졌을 따름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잊어야 한다. 자존심? 긍지?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가.
절대적인 고수를 앞에 둔 상황에서 사소한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일이다.
기습적으로 발생한 여유를 틈타 다시 한 번 제이검에 들어간다. 전신에 고밀도로 뭉친 마력을 휘어 감는다.
"……."
눈을 반개半?한 채 백신아를 주시한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았다.
이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마력 없이도 높은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백신현과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은 상성이 좋다.
이 상태에서는 팔과 다리도 충분히 무기가 될 수 있다.
원래 백신현은 순수한 검사로 보기 어렵다. 그의 본질은 모험가. 필요에 따라서 검을 포기하는 건 물론, 함정과 속임수 같은 무기도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하지만.
"커헉……!!"
무술가 백신현이 아닌, 모험가 백신현으로 도전하였음에도 여전히 부족하였다.
천하제일의 검사라는 이름의 벽은 너무나도 높다.
포기하면 끝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공격을 시도하고, 그것이 여지 없이 부서질 때마다 마음까지 함께 꺾여 버릴 것 같다.
그 어떤 적에게도 느낄 수 없었던 공포를 그녀로부터 느끼고 있다.
이 싸움에서 승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검주는 충분히 잘 싸우셨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그때는 찾아왔다.
마치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이렇게 되어야 했다는 듯이.
회피할 수 없는 각도로, 방어조차 할 수 없는 방향에서.
주먹에 턱을 얻어 맞았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
루이스가 탄식을 토해냈다. 마그누스와 요하네스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인간을 공격하고 쓰러트리는 것이 직업인 그들이다.
살아 있는 육체로 견딜 수 없는 한계를 안다.
지금, 턱에 꽂힌 일격은 치명적이었다.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백신현의 몸이 덜컥 주저 앉는다.
의식이 완전히 날아갔다. 저런 식으로 쓰러진 사람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마음가짐이나 각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의 신체 구조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한계였으니까.
그 사실을 백신아 역시 잘 알고 있다.
「검주는 훌륭히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하셨군요…….」
눈을 살짝 감은 채 돌아선다.
마지막 싸움은 끝났다.
그렇게 느껴졌다.
「……뭐야, 어째서?」
불과 몇 걸음을 나아간 후 백신아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녀답지 않게 몸을 돌리는 게 늦었다. 조금 머뭇거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쓰러진 백신현이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중이었다.
턱에 얻어맞은 일격 뿐만 아니라 백신현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부상이다. 턱에 꽂힌 일격은 이미 수많은 상처를 입은 그를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 공격에 가까웠다.
「…….」
상당히 당황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백신현은 이미 한계였다. 자세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몸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공격하면 백신현은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높이 들어올린 검은 떨어지지 않았다.
싸움의 승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듯이.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유?"
「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이상 저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미련을 남긴 채 사라지고 싶지 않아요.」
천천히 때를 기다린 후 질문했다.
백신현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그 예상을 뒤집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당장 끝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쪼개서 질문했다.
이유를 듣고 싶었다.
"마지막이잖아."
여전히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지 그의 다리는 흔들리는 중이다.
그러나 눈은 맑았다.
"너와 내가 함께 하던 나날은 끝났어……. 하지만……, 네가 떠난 뒤에도 나는 나의 싸움을 헤쳐 나가야 해……."
백신현의 천변무궁류도 죽지 않았다.
검극에 마력이 모여든다.
"네가 떠나도 괜찮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하는데……, 겨우 그런 잡기술에 쓰러질 수는 없지……."
「……검주.」
"네가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검주로서,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작별 인사잖아?"
전혀 대답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문답에서 해답을 얻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때때로 한계를 초월한 능력을 보이곤 한다. 아마 조금 전의 공방도 그러한 흐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실력이 순간적으로 백신아의 예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나 볼 수 있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 정도로 중대한 싸움이라는 의미일까.
통증과 충격에 탓에 그는 오른쪽 눈이 닫혀 있었다. 한계였다. 하지만 느껴지는 투기는 그렇지 않다.
압박감을 느꼈다.
이제껏 그 어떤 강적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백신현이 검을 수평으로 들어올렸다.
"다음으로 끝내자."
「다음……」
"서로가 가장 자신 있는 기술로……, 끝을 보는 거야."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일까.
백신현의 미래에 승리 따윈 없다.
그 자신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하지만 백신아는 그의 말에 큰 압박을 느꼈다.
격에 있어서 그는 백신아에게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그는 강하다.
진지하게 상대해야 할 정도로.
「좋습니다…….」
천천히 검을 수평으로 든다.
두 사람의 자세는 완전히 같았다. 거울을 마주본 듯했다.
「이제 끝내죠.」
* * *